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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50화 - 인형과 전사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50화 - 인형과 전사 -

개성공단 2020. 5. 2. 22:32

"잘 오셨습니다, 문장교 여러분"

 

그 말을 시작으로 필로스 성문 위에서 드높은 목소리를 내는

로조를 바라보며 눈을 느슨하게 했다

로조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상당히 매끈한 것이였다

 

과연 혀가 잘 도는 남자다

입술을 열면 열수록 말이 머리속에 떠오르는 그런 성질일 것이다

말을 주물럭거리는 그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당당하다

 

"로조 님, 무슨 생각인지 알려주시면 고맙겠군요"

 

옆에서 라르그도 안이 로조의 이야기에 맞물리듯 입을 열었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시선을 낭비하게 하려는 심산일 것이다

시계 바늘이 다리를 놓아주면, 적의 뱃속에 가라앉아 버린

이 최악의 상황도 아직 나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안을 바라보며,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대성교, 그 쪽은 문장교도

비록 심장에 말뚝이 박히는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죠"

 

그 남자의 목소리에,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병정이 눈이 흉포해졌다

마치 로조의 목소리에 그 사고가 도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역시라고 해야 하나, 녀석이 머리고 도시병은 그 수족이라는 건가

그들은 본질적인 곳에서 단지 다른 사람의 말에 따르고 있다

실질적으로 그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참, 알기 쉽군

 

"문장교 군사여 들어라!, 이제 그대들의 명운이 다했다!"

 

로조는 아무래도 안에서 병사로 표적을 바꾼 것 같았다

역시 문장교라기보단 성녀 마티아의 광신자인 안을

회유할 수 있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노리는 것은 군인이였을 지도...

 

"설령 이 곳을 피한다고 하더라도

머지않아 유일한 신께서, 그 심장을 꿰뚫어 낼 것이다

대성교병과 문장교 병사 그 수를 비교해 보아라

얼마나 열심히 손발을 휘둘러도, 너희들은 반드시 죽는다"

 

로조는 담담하게, 그러나 확실한 힘을 주어 이야기 했다

시야 끝으로 문장교 병의 어깨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기막하게 이쪽의 아픈 곳을 찔러주는 건가

로조가 말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한번 대성교 세력을 물리쳤다고는 하나

아직도 문장교는 대성교에게 손으로 살짝 치면

사라질 정도의 존재일 뿐이였다

 

분명히 그것은, 마티아와 안 뿐만이 아니라

병사의 대부분도 이해하고 잇는 일이였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우리는 어딘가에서 완전히 망한다

목이 잘려나가거나, 가슴이나 배가 찢겨 죽고 말겠지

 

누구나 그 사실에 열심히 눈을 떼며

마음에 깃든 감정대로 계속 싸워 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앙을 위해서, 긍지를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서

 

"자, 문장교 제군, 대성교 사제는 관대한 분이시다

너희는 배덕자가 아닌 그저 이교자일 뿐이고

그저 대성교를 모르고 있던 자들 뿐이였다"

 

아, 역시 그런 말이 되나

나는 울적함에 한숨을 쉬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들은 그 악마 루기스와 마녀에게 속아 넘어갔을 뿐이 아닌가!

유일신 아르티우스 님은 너희를 기꺼이 맞아들일 것이다

그 악마의 손만 너희의 손으로 잡는다면!"

 

로조는 똑바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성문 위에 서 있는 놈의 표정을 똑똑히 읽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왠지 그 표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분명, 지금의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병들이 눈동자에 동요를 담고, 이를 떨었다

몇 가지의 표정들이 나를 쳐다보았고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일까

안이 순간적으로 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안이든 카리아든 내 위험을 걱정해 주는 건 기쁘지만

그렇게 안쓰럽다는 표정은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말을 너무 잘하는 거 아니야?

시대가 시대라면, 왕궁시인이라도 했을 텐데

사기꾼이라니, 시대의 비극이란 역시 슬픈거구나"

 

나는 가엽다는 말투와 친숙한 어조를 섞어서 말했다

아무리 해도 볼이 느슨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가

 

"그리고 착각하면 곤란한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는 인형이 아니라

의지하는 전사다"

 

남의 흉계라는 것을 마음껏 때려눕히는 건 말야

 

 

 

 

 

*

 

 

 

 

 

고용주는 어떤 표정으로 자신들을 맞이할까

브루더 게르아는 흔들거리는 마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돌판이 깔린 가도를 용병 일당이 말굽을 울리며 밟고 다녔다

 

베스타리누와 함께 문장교에 합류한다는 뜻은 편지로 전했고

창구였던 라르그도 안으로부터 환영한다는 내용을 받았다

하지만 그동안 고용주 루기스의 이름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기뻐해 줄까? 아니면 놀랄까? 도저히 모르겠단 말야

 

어쨌든 시골에 틀어박혀 버리겠다고 전했던 만큼

이대로 만나기는 조금 쑥스러웠다

어떻게든 괜찮은 변명은 없을까 하고

브루더은 입술에 담배를 문 채, 생각을 돌렸다

 

베스타리누가 은혜를 갚고 싶다 했으니까...

이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여동생에게 떠넘기는 것처럼 들려버린다

그럼 고용주가 걱정 되었기 때문에 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 그것도 뭔가 잘못된 억측을 하면 곤란해

 

브루더는 더 좋은 말이 없는지,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목을 비틀며 머릿속을 휘저으며 생각했다

나라는 인간이 문장교에 협조해도 상관없다는

이유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은발의 검사에게 고용주 앞에서 명확한 적의를 보였고

바늘을 겨누겠다고 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찌 문장교의 손을 잡을 수 있겠는가

 

말뿐인 값싼 사람이라고 고용주에게 추앙 받고 싶진 않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그렇게 알리고 싶었다

브루더는 가장자리가 큰 모자를 고쳐 쓰고

씹는 담배를 입술 위로 굴렸다

입안에 퍼지는 감각은 조금 쓴맛이였다

 

담배라는 것은 도무지 맛있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고용주는 이딴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브루더는 담배의 쓴 맛 때문에,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브루더가 생각을 굴리는 동안

 

마차가 가벼운 진동과 함께 멈추고 말았다

울리던 말굽 소리조차 멈추었다

 

무슨 일일까, 문장교의 진지는 자치도시 필로스 근교 일텐데

그렇다면 조금 더 가야할 거리가 있을 것이다

 

살짝 마차에서 얼굴을 내밀어보니

어딘가의 병사와 베스타리누가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이곳은 선대의 왕이 만든 가도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발이 묶일 이유는 없습니다"

 

갈라이스트 왕국 내부와 그 근방에 그어진 가도는

선대의 건축왕이 만든 것

아무도 그곳을 점유하는 통행료 같은 것은 거론하지 않고 있었다

 

갈라이스트 왕국 주변에 사는 인간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도대체 어느 누가, 무슨 목적으로 길을 막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가늘게 뜨는 순간

 

"제발, 저의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지금 바로 우리 필로스는 대성교의 대역죄인을

멸망시키려고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 말이 브루더의 귓속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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