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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63화 - 비뚤어진 의지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63화 - 비뚤어진 의지 -

개성공단 2020. 5. 4. 17:25

스스로의 입술에서 흘러내릴 것 같은 열을 기억하면서

로조는 눈을 가늘게 눈을 깜박였다

온몸이 뭔가로 만들어지는 감촉을 느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나쁜 기분은 아니였다

아니, 차라리 시원하다. 이런 기분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짜피 내 인생은 뭔가 타오르는 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신분에, 금화에, 미모에, 그리고 뭣보다 옳음에 연연했다

아무리 원해도,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하루하루를 쌓아 올려도, 

결코 로조의 손에 그것들은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로조의 수중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모래 조각 하나라도 남겨져 잇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애태웠다

애타는 대로 모든 것을 불태워 주고 싶다고 수없이 바랐다

언젠가 뭔가를 잡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 태워 버리는 일이야말로, 희망이 되어갔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의 광경이라고

로조는 생각했다

 

염열이 장부에서 새어 나왔다

피가 말라붙은 몸이 이상하게도 구동을 하고 잇었다

이래서야 마치 괴물이나 마인과 다름없지 않은가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여도 상관 없다

그래, 마인이여도 상관없어

이것이 바로 자신의 소원 그 자체니까

 

로조는 자신의 머리 밑바닥에서 뭔가가 흘러내린 듯한 감촉을 느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겠지

 

올바른 자여, 그 올바름 때문에 구워지리라

부정이여, 그 부정이기에 불태워지리라

 

이 불길에서는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이

이 불꽃이 되어 나를 불태우고 잇는 거겠지

 

암살자도, 필로스 트레이트도, 그 악덕조차도

내 감정이 계속 불타고 있는 한,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다

 

로조의 귓속에서 장엄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그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마치 하늘의 계시나 복음을 그 몸에 받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나에게 미소 하나 주지 않았던

세계가, 겨우 이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마음의 떨림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신에게 고개를 숙인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인 듯, 귀에 지복이 드리워졌다

 

좋다,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외엔 아무래도 상관없어

 

장엄한 종소리, 그 울림과 동시에 형연할 수 없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강탈의 짐승은 무엇보다 굳게 몸을 지켰고

불타는 망자는 죽음을 상실했다

모든 것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다'

 

그런 비웃는 듯한 울림은 

더 이상 로조에게는 들리지 않앗다

 

 

 

 

*

 

 

 

 

로조의 몸에서 열이 치솟으며, 마디마디 꽂힌 장침은

사탕처럼 녹아 사라졌다

브루더는 눈이 살짝 그 열기를 느끼며 찌푸려졌다

 

재생자, 불사자, 밤에게 사랑받는 자

 

그 단어들이 브루더의 머릿속을 몇 개나 달려나갔다

로조가 장침을 제대로 몸을 받아들이면서

태연하게 자세는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어리석은 망상이다 그런 이단적인 존재들은 신화시대에 잇엇던 것들로

아르티우스 이전의 존재일 뿐인데

이제 이 세계에는 운명에 선정된 영웅도

신의 총애를 받은 용사도, 사람을 살리는 마법도 없다

단지 조금의 잔재가 남아있을 뿐이다

 

여튼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자신의 몸을 무대 위에서 굴려줄 뿐이다

브루더는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잇던 바늘을 잡아 올리고

모든 것을 억지로 로조를 향해 내팽겨쳤다

손이 약간 일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어둠 속을 달리는 은침은 반짝이는 유성처럼 공중을 가로질러

그냥 로조의 몸 근처에서 타버리고 말았다

이제 가냘픈 바늘은 로조의 살을 도려내는 것조차 당해낼 수 없다

 

물론, 그런 것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어짜피 꿰뚫는다고 해도, 상대는 기죽지 않았기에

그렇다면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적어도 브루더는 그렇게 했다

 

로조의 열에 바늘이 타오르는 순간,

그것들이 연기를 뿜어대는 얼마 안되는 시간

거기에 몰래 들어가듯이, 브루더의 다리가 붉은 벽돌을 찼다

 

로조의 모습이나 행동은 확실히, 비정상적인 괴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싸우는 것에 대한 몸짓만 자세히 보면, 아마추어 그 자체였다

어쩌면 주먹다짐 따위는 인연이 없는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노릴 곳은 거기다

브루더는 자신의 심장이 비정상적인 열을 올리는 것을 느기면서

자신의 몸을 튕겼다

발목이 구동음을 내며 신음했고, 로조가 바로 옆에 모습을 보엿다

 

역시 아마추어다. 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확실히 바늘은 통하지 않았다 이제 철검이라도, 그 살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팔 하나라도 잡고, 지붕에서 지상으로 내리친다면

적어도 이 괴물도 조금은 무너질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런 인간적인 발상으로 정말 마인을 죽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무방비 상태로 있는 로조의 오른팔을

브루더의 양팔이 감겨 붙었다

관절을 일그러뜨리듯 조이면서

그대로 상대의 중심을 빼듯이, 허리를 돌렸다

 

관절을 죽이고, 중심을 흔들게 하는 것은

뒷골목 싸움에서 상투적이였다

브루더의 전체 무게를 던지는 방법은 가느다란 체구의 그녀여도

충분히 남자 한 명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하는 이야기

브루더는 이 이론을 세삼 절감하고 말았다

 

로조의 몸은 아무리 브루더가 무게를 실으려 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마치 막강한 용의 꼬리를 잡아, 그대로 던지려는 감촉

손가락 끝 하나라도 움직이게 할 수 없었다

브루더는 둥줄기가 아니라, 몸의 모든 부분에서

피가 없어지는 감촉을 느낄 수 잇었다

 

"젠장할"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 행동하는 로조의 얼굴은 그저 미쳐있었다

눈은 까지고, 맞물린 이는 송곳니로 여겨질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리고 브루더를 휘감아 놓은 팔을 쉽게 뿌리쳣따

 

'고오오오'

 

그것이 소리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 지는 몰라도

단지 바람덩이가 귓속을 튕겨서 머리를 폭풍처럼 흔든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앞 뒤는 커녕, 위 아래조차 판단할 수 없었고

그녀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심장과 내장이 타들어갈 정도의 열을 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쿵, 하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렸다

 

브루더가 겨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전신이 강하게 붉은 벽돌에 부딫혀서

머리가 조금 찢어져서, 피를 흘리고 있을, 그런 무렵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손이 있을 수 없는 방향을 향하고 잇었고

몸은 손가락끝 하나 움직인 것만으로, 무너져 버릴 것 같아다

오히려 아직도 생명이 붙어 있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였다

 

그렇다. 저 괴물은 팔 하나로 인간 따위를

가볍게 찌푸려 뜨려버리는 그런 존재엿던 것이다

가히 마인이라 부를 만 하군

 

무서워, 나의 겁이 목덜미를 물어 뜯고 있는 건가

브루더는 이빨을 엉겹결에 떨었다

 

지붕 위에 자신이 던져진 것은 그저 우연이였다

우연히 그 도깨비의 힘 조절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암튼 지붕 밖으로 내던져졌다면, 

나는 어둠 속에서 앙상하게 뼈와 피를 튀기며 죽어 있을 것이다

 

살았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나의 패기는 이미 날아가버린지 오래였고

지금은 그저 공포에 질려 무섭기만 할 뿐...

 

브루더의 가슴속에서 그 몸을 숨기고 있던

버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지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녹고 타버린 바늘과 마찬가지로 그 가슴에 품고 있던

결심 또한 약하게 녹아버리고 말았다

 

원래 브루더라는 소녀는 평범한 자였다

과거에도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죽기만을 바랬고

그러다 마지막에는 친여동생의 손으로 베르페인의 땅에

완전히 묻히고 말았다

 

본래 그녀 같은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시골마을 처녀로서 평범하게 살고

폭풍우나 눈보라가 일어날 수 없는 길을 걸으며

약간의 아픔을 살아가는 그런 종류의 것

그녀는 그런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용병 생활을 거치며

살을 발라 깎을 것 같은 날들을 넘어서

마침내 이런 곳까지 오고 만 것이였다

 

카리아 같은 강한 자도 아니고

마티아처럼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니고

또 루기스와 같은 강고한 자아를 지닌 것도 아닌

그저 자신은 아무것도 갖자 않고 이곳에 왔다

 

브루더의 몸은 피를 흘린 채 느릿느릿 썩어갔다

땅에 엎드려 때문인지, 소리가 잘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자신에게서 조금씩 멀어져가는 발소리

아마도 로조는 이미 자신이 죽은 것으로 믿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더 이상 손쓸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일까

 

브루더는 누워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이대로 땅에 엎드려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적은 없어질 것이고

어쩌면 조금 움직일 정도의 체력은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장 죽는 사태는 막을 수 있는 셈이겠지

 

이젠 빨리 도망가버리고 싶어

저것과 맞선다는 것이 애당초 실수였던 거야

그래, 그렇고 말고, 이건 틀림없이, 나의 진심인거야

 

브루더는 여전히 무사하면서도 떨리는 왼손 주먹을 움켜쥐고

갈색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입을 열었다

 

"얌마, 기다려!"

 

그리고 밤의 허공을 향해 외쳤다

 

억지로 몸을 연 탓에, 입에 고인 피가 역류해서 기침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공기를 마시면서, 계속 음의 나열을 토해냈다

그게 고함소리인지 뭔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암살자로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알 것 같았다

 

온몸의 살을 찢는 심정으로

붉은 벽돌 위에서 자세를 바꾸고, 발을 지붕에 내동댕이 치니

근육이 찢어지고, 몸 속의 삐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움직이지마, 뒤지고 싶어? 라고 몸은 말하는 듯 했다

 

알고 말고, 브루더는 이를 떨며, 눈동자엔 눈물에 가까운 것 조차

떠오르게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고 있어. 내 몸은 한계고, 저 괴물에 맞서다니, 참 어리석은 짓이야

아직도 두려움은 내 몸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무리 몸이 달아오르더라도,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일거야

 

하지만 이런 곳에서 패배자처럼 납작 엎드려 죽어 있으라니

그야말로 죽어도 질색이야

 

그녀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고

심장은 타오를 정도의 열을 전하고 있었다

 

브루더의 정신은 결코 강한 것이 아니였다

쉽게 부서지고 쉽게 녹아내린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아무리 부서지더라도

다시 무리하게 겹쳐저, 어떤 형태로든 몸부림을 친다

 

결국, 그녀는 어디까지나 무리하고

어디까지나 이해력이 없는 것이였다

 

패배를 패배로 보지 않는다

설령 땅에 엎드려, 얼굴을 짓밟히거나

어떤 꼴을 보이든, 자기가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패배가 아니였다

 

그런 비뚤어진 정신성이기에

아버지를 치욕 속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빼앗겼음에도

결코 자살을 하진 않고, 죽음을 바라면서도 도피는 하지 않았다

투척의 한계를 깨닫더라도, 결코 상심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무력해도, 아무리 볼품없어도

나는 아직 지지 않았다

 

그녀는 부러진 오른팔을 질질 끌며 일어서고

자신의 피로 붉은 벽돌을 검게 물들이면서, 크게 외쳤다

로조는 어느새 다리를 멈추고, 이쪽을 보고 있엇다

 

"어디로 도망가는거야

마인씨, 나를 죽이려고 했던거 아니야?"

 

브루더는 까진 뺨을 찌푸러뜨리듯이 웃었다

 

시야가 희미해졌다

이제 로조가 나를 어떤 식으로 보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목에 걸린 핏덩어리를 다시 한번 뱉어내는 순간

 

'피융  피융'

 

뭔가 무거운 것이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거의 동시에 공기에 흽싸여 있던 공기가 폭발하며

아까부터 울려 퍼지던 로조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더 이상 브루더는 볼 수가 없었기에 알 수가 없었고

상황을 이해하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힘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했다

귀청을 때리는 그 도도한 목소리만큼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아이고, 브루더, 적당히 좀 해줘

이러다간 친구를 관짝 안에서 인사할 지경이겠어"

 

무사 태평하게 자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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