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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67화 - 같은 종류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0장 혼란도시 필로스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67화 - 같은 종류 -

개성공단 2020. 5. 4. 22:26

"그래서 누가 날 죽이겠느냐?"

 

필로스 성문 앞에서 그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로조의 가슴 속에는 한 가지의 확신이 차 있었다

그것은 루기스가 자신과 같은 종류임에 틀림없다는 것

 

군사를 이끄는 자이면서도,

적병 앞에 스스로 몸을 드러내, 그 목을 내밀어 보이는 모습

신을 향해 자신을 죽여보라고 외치는 모습

 

그렇다, 똑같아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숨따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영락없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를 혐오하고 미워하기까지 한다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결코 숨길 수 없는 정념을 지닌 건 분명했다

 

루기스의 본질은 악덕도, 대악도 아닌

그저 로조는 단지 자신의 동류이며, 자신의 찬란한 적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계란 얼마나 바보 같은지 아나? 내 원수여"

 

로조는 타오르는 입술을 열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자나 바른 자나 모두 누군가를 미워한다

굶주리거나, 잠에 들지 못하거나, 부모가 눈앞에서 살해당하거나

딸이 병사에게 겁탈당하거나, 전쟁터에서 연인의 시체가 짓밟히거나

불행과 증오의 씨앗은 어디에나 뿌려져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증오 따위와는 무관하다는 듯이 옳다고 행동하고 있다

 

그런 것 같으면서도 한 번이라도 배출구가 생기면

그들은 미친 듯이 계속 그 정념을 토해내는 것이다'

필로스 시민도 그렇지 않은가

 

마음에 들었던 그녀, 필로스 트레이트는 올바른 사람이였다

시민을 사랑하고, 때로는 미움받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통치자로소 옳고 적합한 자였다

 

하지만 한번 배덕자로서 그 목에 목줄을 매달아 주면

시민 일행은 다행이라는 듯이 돌을 던졌다

그녀를 감싸는 자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찮아, 결국 소인배들은 자신의 머리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단지 증오로 인해 움직이는 혼란의 인형이 되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희극배우의 걸작이라 해도 상관없겠군

 

그렇기에 로조는 생각한다

놈들에게 어울리는 말로를

그리고 누구보다도 올바른 그녀에게도

이 세상에는 증오와 악의 밖에 없다는 진실을

그것이 올바른 모습이라고 가르쳐버리자

 

로조는 계속 말하면서 자조하듯 미소를 지었다

불길 속에서 그의 입술이 물결쳤다

 

"이렇게까지 말해서 뭐하지만

나는 증오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증오를 긍정하지"

 

그런 것이기에, 그 모든 것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증오를 부정하는 패거리들, 

마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과연 자신은 옳다고 하는 배우들

 

그런 녀석들에게 모든 것을 내동댕이 쳐주기로 하자

가슴속에 맺힌 증오를 붙 태우고, 끓어올려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증오로 채워 주는거야

 

로조는 여하튼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올바른 모습이라고 믿고 있으니

증오를 불태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원천임을 확신했다

 

"동류여, 자네도 마찬가지겠지

지금까지 그 두 다리가 자네를 운반해 온 연료는 증오나 다름없내"

 

로조는 눈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눈을 뜨는 루기스를 향해 드높게 말했다

루기스의 시선은 오직 로조만을 관통하고 잇었다

 

 

 

 

 

*

 

 

 

 

증오? 속으로 가볍게 중얼거렸다

나는 담담히 들려오는 로조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꺼풀 뒤에서 하나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세계에서 봤었던 여행의 기억

땅바닥 끝에서 내 가슴속 깊은 곳을 채우고

몸을 움직였던 것은 무엇이였을까

 

새삼스럽게 물을 것도 없겠지

로조의 말대로 숨이 막힐 정도의 증오다

방자하고 끝없이 난폭해진 마음

그것을 이제 와서 부정할 수 있겟는가

 

태양 같은 영웅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기사단의 준영은 나 따위가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강했다

마법사도, 엘프의 공주님도, 그리고 알류에노도

그녀들은 나 같은 놈들, 손끝도 닿지 않을 만큼 찬란했다

 

암, 미웟구말구, 그리고 선망하구말구

 

짓밟힌 적도 있었고, 존엄성을 걷어차인 적도 있었다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그 존재에 몇 번이나 이를 깨물었던가

몇 번이나 굴욕을 당했던가

구원은 없고, 경의의 조각도 주어지지 않은 그 날들...

떠올리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는 그 일상

 

그걸 생각한다면, 확실히 나와 로조는 같은 종류겠지

녀석이 나와 같은 나날을 보내왓다고 한다면

그 손이라도 잡아줘야 할 것이다

 

나는 심장이 타버릴 정도의 뜨거움을 느끼면서도

입을 열었다

 

"로조, 나는 말이지. 네 말을 부정할 수는 없어

증오란 것은 익숙한 것이였고

부러움 같은 것은 몇 번이나 껴안았는지 모를 정도야

그런 뜻으로만 본다면, 확실히 나와 너는 동류야"

 

어떻게 발버둥쳐도, 나는 이 가슴에 안기를 증오를 부정할 수 없다

분명 앞으로도 계속 나는 이 혼탁한 것을 가슴속에 달라붙어 살아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입을 비쭉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같은 종류는 아니야

다른 건 딱 하나

너는 무작정 태우기만 했지만, 나는 애태우고 있었거든

그 뿐이야"

 

거친 한숨이 입으로 새어 나왔다

목구멍으로 너머가는 숨 자체가 기도를 다 태워버릴 것 같았다

나는 왼손으로 억지로 보검을 움켜잡고

먼 곳에서 로조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엇다

 

나는 동경해 왔던 영웅들을, 증오인 채로 태워버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말이야, 그들을 발길질하고 싶었던게 아니야

깎아내리고 싶었던 것도 아닌, 그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어"

 

아아, 뭔가 이상한 것이 마음으로부터 치밀어 오를 것 같아

 

나는 그 빛나는 영웅들에게 손을 뻗고 싶었다

그들의 등만 쫓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걷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의 근본에 있던 것은, 그 눈부심 뿐인 동경이였다

그것만을 위해 목숨마저 내팽개치고 있던 것이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와 로조는 같은 종류다(同類)

하지만 그 세부는 다른 것이다(同種)

 

"유감이군, 그렇다면 널 태워서 재로 만들 수밖에..."

 

그렇게 말하는 로조의 모습은 정말 마음속에서 나온 듯한 목소리였다

크게 일그러진 눈에 비치는 감정은 마치 슬픔마저 떠올리게 햇다

정말로, 어디까지나 슬픈 것 같은 그 표정,..

 

로조의 말에 답하듯, 왼팔만으로 보검을 잡았다

 

이제 몸은 불탄 고기 같았고, 피부는 탄 듯, 찌그러진 소리를 냈다

내부에서 통구이가 되는 듯한 이 감각...

하지만 이상하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열도 있는 것 같았다

구워지는 것이 아닌, 상당히 기분 좋은 감각이...

 

눈이 달아오르고,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안심해라 로조, 넌 내가 여기서 구해주마"

 

나와 로조, 분명 그 근본에는 같은 것이 있었으이라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같을 수가 없었다

 

이유 따윈 알 바 아니다

나는 놈의 과거를 모르고, 녀석 또한 나의 과거를 모른다

서로 알려고 조차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단추 하나 잘 못 끼우는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나는 알류에노도, 나인즈 씨도, 그리고 할아범이 있었지만

그 녀석에게는 없었다 ......분명 그런 작은 차이일 뿐이다

 

그런 사소한 차이로 녀석은

결국 자신의 동경마저 불태우고 말았다

 

나는 어깨 위에서 보검을 들고, 벽돌을 밟으며 움직였다

다시 로조의 몸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고

그의 손에서 불꽃의 뱀들이 적의를 향하듯, 이쪽을 응시했다

 

나는 보검에 소원을 빌듯이, 한순간 눈꺼풀을 감았다

 

"소원을 빌 필요도 없다. 나는 이미 주인의 소유물

주인이 원한다면, 저것을 단칼에 베어버릴 것이다"

 

그런 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는 것과 동시에

루기스는 다리를 차고, 쓰러질 듯한 기세로 보검에 그 몸을 맡겼다

 

로조의 불꽃이 눈 앞에서 번쩍거리듯 흔들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형형하게 불꽃에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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