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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72화 - 매부리코의 생각과 여로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1장 순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72화 - 매부리코의 생각과 여로 -

개성공단 2020. 5. 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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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가문의 대리인, 버킹엄 스탠리는

그의 특징적인 코를 납작하게 하고, 

탁자에 올려놓은 물을 여러번 마셨다

머리가 지독하게 아픈 것을 알 수 잇었다

 

그 두통은 이제 버킹엄에겐 고질병 같은 것이였다

게다가 외적인 요인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 등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에서 비롯되는 고통이였다

 

갈루아마리아에서 스탠리가의 외교를 담당했을 때는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일은 한번도 없었지만

갈라이스트 왕국에 정착한 뒤에는 자나 깨나 이 아픔에 시달렸다

 

설마 내가 이렇게 약한 인간 일줄이야

버킹엄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방에서 그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일이

최근에는 버킹엄의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두통을 일으키는 씨앗은 두 가지 였고, 머리속 깊은 곳에 묻혀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스탠리가의 대리인으로서 

형체도 없는 중압을 짊어지게 되는 날들 그 자체였다

원래 당주였던 형은 아직 행방이 묘연해, 유해를 찾지 못했고

친척들은 갈루아마리아라는 기댈 곳을 잃은

스탠리 집안에서 흩어지듯 떠났다

 

본래 차세대 당주이자 조카인 헤르트 스탠리는

사교계에서 혀를 맞대는 데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느새 스탠리 가문의 대리인은 자신이 되고 말았다

 

솔직히 제대로 된 것도 아니였다

의지할 땅을 잃은 명사 따위는 없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갈루아 마리아를 되찾았을 때의

이권을 매매해서, 조금이라도 갈라이스트 왕도에서의

생활과 지위를 유지하는 것 정도였다

 

귀족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

온갖 사교의 장소에 얼굴을 내미는 나날

그리고 거기서의 자신의 거짓된 얼굴을 내미는 나날들..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던 방자의 모습을 연기하며

버킹엄 스탠리는 자극에 굶주린 귀족의 흥미를 끌며

웃음을 이끄는 처세술을 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반복하는 동안

버킹엄은 일찍이 좋아했던 술도, 여자도, 장난짓도

모든 것이 울적해져버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참으로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이라고

이를 깨물며 자조했다

 

암리 싫어지더라도 그런 유쾌한 존재를 계속 연기해야 하는 나날들

그 모순이라는 녀석이 버킹엄의 머리에 통증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모순을 늘 가슴속에 담아내고 낳아서는 안된다, 헤르트

 

일찍이 조카인 헤르트에게

그런 일을 잘난 체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이제와서 보니 정말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골칫거리라는 것은

조카, 헤르트 스탠리의 일 이였다

 

분명 잘 해주고 있긴 했다

대성당 담당으로서의 행동에 불평은 없고

가끔 사교장에 차기 당주로서 얼굴 내밀며, 

서슴없이 교루를 나누어서, 이야기도 잘 하고 있었다

 

왼쪽 눈을 잃으면서도, 성격이 비굴하게 굴러가진 않았다

오히려 더 정정해져서, 이대로가면 분명 좋은 당주가 될 것이라고

버킹엄은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때로 헤르트가 보여주는 위험함 때문에

걱정이 되는 날도 있었다

 

일찍이 갈루아말리아에 있었을 무렵에는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헤르트는 정의와 신의의 신봉자이며, 고뇌하는 일도 당황하지 않고

단지 목적을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였다

 

과거의 나는 그것이 인간미가 없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때가 그리워져 왔다

 

헤르트의 위태로움은 특히 그 정도를 더 해가는 것 같았다

어쩌면 자포자기 해버린 것일까?

 

아버지를 잃고, 의지할 데를 잃고, 한쪽 눈까지 잃었다

헤르트의 나이는 아직도 혈기 왕성한 때다

평상시의 모습으로는 볼 수 없어도

그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암담한 구석이 깔려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헤르트는 결코 작은 그릇이 아니다

시대가 잘만 그 키를 밀면

어디까지라도 뛰어 올라갈 수 있는 그릇이다

적어도 버킹엄은 그렇게 믿었다

 

'똑, 똑'

 

단단하고도 어디까지나 조심스러운 노크가, 문에서 울렸다

버킹엄은 겨우 쉰 목소리로 대답하며,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아무래도 어젯밤은 목소리를 너무 많이 쓴 것 같군

 

들어가요, 슥부님

그런 목소리와 함께 황금색 머리칼의 

헤르트 스탠리가 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헤르트는 아무 거리낌 없다는 듯이 실내 의자에 걸터 앉았다

 

갈루아마리아에 있을 때만 해도

말끔하게 다듬었던 머리카락이 지금은 살짝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난잡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버킹엄은 생각하고 있던 말을 그에게 전했다

 

"헤르트, 네게 좋은 소식이 있다. 성당에서 온 말이야"

 

헤르트는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고, 버킹엄의 말을 곱씹었다

몇 순간 생각했는지, 입술을 열었다

 

"상관없습니다. 마수의 사냥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호위입니까?"

 

헤르트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가볍게 턱을 당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오만함도, 여유로움도, 자포자기라고 할 수도 있는 애매한 대답

 

버킹엄은 매부리코를 높이 들고, 헤르트의 태도를 살피듯 입술을 열었다

 

"호위이지만, 아무런 위험은 없을 것이다

너는 스탠리가의 당주야, 위험한 일을 맡길 것 같으냐"

 

버킹엄은 하얀 이를 보이며, 말을 매끄럽게 뱉었다

사교장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또 다른 미소였다

 

"네가 가는 것은... 성녀의 여로, 순례의 호위다

헤르트, 내 옛 친구 중에 성당 기사가 있다

너는 형식상 그의 동행자가 될거야"

 

그러면서 한 기사의 모습을 뇌리에 어른거렸다

창을 휘두르며 매서운 미소를 보여줬던 그 남자

그의 바로 옆에 있다면, 혹시라도 위험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순례의 여로란 신이 지켜보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거기에 죽음의 위험이 있을리가

'

옛 순례의 일화는 모두 기적적으로 성녀를 포함한

모든 통행자가 살아났다는 것이 적혀있었다

 

"의식의 들러리 역할을 맡으라는 거군요

뭐, 대성당의 호위 임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거의 흥미없다는 헤르트의 말에

버킹엄은 자신도 모르게 머쓱해졌다

 

과거 같으면 흥미가 없다는 말을 한 사은 아니였을 텐데

특히 순례의 도우미는 누구나 원하는 가운데, 

한 사람만이 뽑힐 수 없는 역할이다

성녀는 신과 연결되는 존재, 

말하자면 신화의 한 끄트머리에 관련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버킹엄은 순간 말문이 막히면서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술에 적셨다

 

이번에 헤르트가 순례의 동행자로 선정된 데는

버킹엄의 입김도 작용 했었지만

무엇보다 대성당이 이를 요구했다는 점이 있었다

이유는 버킹엄에게도 쉽게 상상이 갔다

 

지금 대성당은 약간 초조해하고 있다

눈이 오기 직전의 전투에서 문장교에 지고 말았다

대성당이 그대로 패배했다는 말은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사제들은 크게 당황햤을 것이다

게다가 백성들의 심정도 적잖아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놈들은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다

마음을 충족시키고, 고양을 얻기 위한 이야기와

패전의 책임에서 눈을 돌리기 위한 무언가가...

 

그래서 생각해 낸 줄거리가 이렇다

 

문장교에 의해 생가를 빼앗긴 후손이

대성당의 비호 아래 그 의지를 확실히 한다

그리하여 성녀 순례를 거쳐, 신의 선택을 받은 뒤

문장교의 토벌을 맹세하며 성당 기사가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시민들은 이런 싸구려 연극이라도, 가슴을 뜨겁게 해줄 것이다

정말이지 걸작이군

 

하지만, 어떠한 의도가 뒤에 있든, 일단 좋은 기회임엔 틀림없다

성당 기사란 국왕 직하의 기사와는 다르게

대성당 관할이기 때문에, 일종의 불가침성을 갖는다

시대에 따라 하위귀족 이상의 권한을 갖는 일도 있을 뿐만 아니라

대성당이 확실한 근거가 되는 일도 컸다

 

헤르트가 자포자기한 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버킹엄은 아무래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 터를 만드는 것은 결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버킹엄은 살짝 가늘어진 황금의 오른쪽 눈동자를 보았다

 

헤르트는 과거부터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사람을 매료시킨다고 하면 좋을지

그 눈에 뚫리면, 마치 자신의 깊은 곳을 비추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끄는 재주가 있는 건가

 

이런 곳에서 구부러져도 좋을 것 같은 존재는 아닐 것이다

이번에 좋은 이야기가 돌아온 것도 그 증거다

신의 인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 일단 준비를 하도록 해라

내 친구... 가르라스 라는 사람인데

무척이지 성깔이 좋은 남자야, 분명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거야"

 

버킹엄이 매부리코를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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