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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본문

웹소설/상심 공작영애 레일라의 도피행

1화

개성공단 2020. 6. 6. 09:22

말에 차였다

 

딱히 남의 사랑을 방해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래, 그건 정말 불행한 사고였다

신의 사랑을 받으며 환상의 마법사들을 낳은 광대한 알타이르의

공작령 아가씨로 태어난 내가 조우하기엔 너무나 불운한 사고였다

 

그 날,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보고

약혼자 루이스 왕세자 전하가 드물게 나를 데이트에 초대해 주었다

행선지는 왕도에서 인기 있는 식물원이라고 했던가

 

철이 들 때부터의 약혼자이기는 하지만

전하로부터 데이트를 신청받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매우 들떠 있었다

 

평소엔 아무리 잘 차려입어도

예쁜 여동생의 발 밑에도 못 미친다며 수수한 모습만 보였지만

이 날만큼은 평소보다 화장에 조금 더 공을 들여

머리엔 작년 내 생일날, 전하께서 주신 최고급품을 장식했다

 

갓 맞춘 연한 크림색 드레스에 몸을 감싼 

거울 속의 내 아마색 눈동자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떠오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시간에 딱 맞게 전하께서 마중을 나와서

나는 금으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왕가의 마차에 오르려 했다

전하께서는 약간 긴 달빛 같은 은발을 바람에 휘날리면서도 

여전히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하고 계셨지만

그래도 나는 기뻤다

 

하지만 방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조금만 더 주위에 의식을 기울였더라면

이번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얇은 비단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전하의 손길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두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된 내 버릇으로

전하께서는 특별히 신경 쓰시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그 때만큼은 전하께서 나를 보고 계셨던 것이다

마치 놀란 듯, 보석같이 예쁜 청색 눈동자를 부릅뜨고...

 

"레일라!!"

 

전하께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마차에 연결되었어야 할 말의 신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되돌아 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왕가의 하인이 정성껏 돌보았을 백마가 나를 향해 앞발을 크게 내저었다

그리고 그 뒤엔 애써 말을 달래려는 마부의 모습이 보였다

 

우와, 말의 배는 처음 보는 걸

승마 연습이 있어도, 내가 타는 것은 언제나 얌전한 조랑말이였으니까

 

상황에 맞지 않게, 태평하게 생각한 것을 마지막으로

나의 기억은 거기서 애매해졌다

지독하게 머리가 아팠고, 얼굴 주위엔 미지근한 액체가 묻어 있어 불쾌했다

곁에 있어야 할 전하와 하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하는 그냥 가버리셨을까?

기억나지 않아, 모처럼 전하께서 권해주신 데이트였는데

왠지 아까워져버렸어

다음에 만났을 땐, 제대로 사과해야지

 

멍한 의식 속에서

나는 그렇게 결심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떴다

 

 

 

 

 

 

 

몸이 납덩이 같이 무거웠다

깨어나자마자 느낀 점은 오직 한 가지 뿐이였다

눈꺼풀마저도 살짝만 벌어져도 얼굴 근육이 따끔따끔 아픈 느낌이 들었다

 

저명한 화가가 그렸다는 그림이 담긴 덮개가 달린 침대는

틀림없이 나의 것이였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은 것에 당황하면서

나는 간신히 뜬 눈으로 주변의 동태를 살폈다

 

광택이 나는 얇은 비단 커튼 너머로, 메이드 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뭔가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어라, 나 저런 곳에 테이블 같은 것을 둔 적이 있었나?

 

말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안나왔다

대신 스친 듯한 탄성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자, 아가씨. 오늘도 아침 준비를 하고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비단 커튼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게 딸린 메이드 제시카였다

어렸을 때부터, 내 옆에 있어준 가장 신뢰하는 메이드였다

하지만 항상 제시카는 내가 깨어나, 침대에서 내릴 때까진

말을 걸지 않았는데, 오늘은 어찌 된 것일까?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대신 파란 눈을 부릅 뜨고, 나를 내려다보는 제시카와 눈이 마주쳤다

제시카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은 장미무늬가 그려진 머리빗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 답지 않은 실수 였다

 

"아가씨!? 레일라 영애님!! 깨어나신건가요?!"

 

평소 부드러운 성격인, 

그녀와 답지 않은 목소리에, 나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불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깨어나자마자 큰 소리에 깜짝 놀란 것이였다

 

"제시카, 왜 그래? 소리를 다 지르고"

 

또 한 명의 메이드가 있었는지, 방 어딘가에서 여성의 소리가 났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이상하다, 저택의 메이드라면 금방 누군지 알텐데

 

눈 앞의 제시카는 몹시 당황한 듯 하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 아가씨가... 레일라 아가씨가..."

 

"아가씨 한테 무슨 일 있었어.....?"

 

순간 낯선 여인의 목소리에 불안의 빛이 섞였다

비단 커튼을 헤치고 낯선 여자가 제시카 옆에 모습을 드러냤다

그녀는 제시카와 같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이런 메이드가 공작가에 있었던가?

여동생이랑 같이 다니는 메이드도 아닌 것 같은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며, 낯선 메이드와 제시카를 올려다 보고 있자

낯선 메이드가 제시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뭘 멍하니 있어!

제시카는 주인님이랑 안주인님에게 전해줘!!

난 서둘러 의사선생님에게 연락할테니까!!"

 

"예..예예"

 

제시카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며, 어색한 미소를 내게 지었다

 

"아가씨, 지금 주인님과 사모님을 불러올테니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저 잠에서 깨어난 것 뿐인데 무슨 호들갑이란 말인가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통지를 받은 부모님이 방에 들어 오실 때까지

오늘의 티타임 차는 어떤 종류로 할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등에 많은 쿠션을 얹어, 간신히 조금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내 곁에는 아직도 환상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와 레이스 손수건을 움켜쥐며 

떨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아버님의 아마색 머리에는 군데군데 흰 것이 섞여 있었고

그것이 불필요하게 현실을 직감하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저는 2년 동안이나 잤다는 말이군요"

 

달려온 부모에게 전해들은 현실은 너무나 예상치 못했다

그 날 말에 채인 나는 머리를 다쳐, 2년간 잠을 잤다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내 손발은 마치 몽둥이처럼 가늘어져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의사에겐 깨어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더라고...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아버지의 말을 이상하게 여기는 듯한 눈으로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원래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담백했다

그들은 엄마를 많이 닮은 동생 로제를 더 귀여워 했으니 말이다.

 

"그래, 다시 목소리를 들으니 기쁘네, 라일라..."

 

그 말과 달리 어머님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2년 만에 깨어났다는데, 이 태도라니...

 

"아버님과 어머님께는 폐를 끼쳤습니다.

빨리 원래대로 생활 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부모님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2년을 허송세월하게 보낸 대가는 크다

나와 전하의 결혼식은 벌써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든 결혼식 때까진, 제대로 지낼테니..."

 

부모님의 우려는 거기 일 것이다

애슈버리 공작가의 영애답게 행동하라고 귀 아프게 타일렀던 사람들이니까

 

"레이라, 그 건 말이다..."

 

드물게 어머님이 주저하듯 말 끝을 흐렸다

언제나 의연한 사교계의 꽃인 어머님이

그렇게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다니, 처음이었다

 

"좋아, 내가 얘기하지"

 

아버님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어버린 어머님께 말했다

자세를 바로잡고, 심호흡을 하는 아버님의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자세를 취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레이라, 잘 듣거라"

 

아버님의 아마색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매우 한심한 표정이였다

이런 모습이면, 왕세자 전하의 약혼자로서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왕세자 전하는 로제와 결혼하게 되었다"

 

잠시 동안 아버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내 방을 가득 채워갔다

 

전하, 하고 로제가 결혼?

 

아버님은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거야?

 

약혼자는 분명 나 일텐데

그 누구도 아닌 나, 레일라 애슈버리 일 텐데...

 

"아버님, 농담이 지나치시내요"

 

나는 쓴웃음을 짓듯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아버님은 그 시선을 참지 못했는지, 어머님처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미안해, 레일라

...이제 너는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그래도 왕가는 어떻게든 우리 공작가의 혼인을 바라기에...

그래서 대신 로제를 전하의 약혼자로..."

 

뚝 하고 굵은 눈물이 손등에 떨어졌다

2년간 자고 있던 몸이라도, 눈물은 흘릴 수 있구나

...라고 장소에 맞지 않는 감상을 안고 말았다

 

아아, 이런 바보같은

 

철 들 무렵부터, 

미래의 왕세자비로서 교양을 피나는 생각으로 몸에 익혔는데...

읽고 싶은 소설보다, 

이 나라의 역사를, 지리를, 경제를, 우방의 말을 익혔는데...

 

살갗이 벗겨질 때까지 완벽한 춤을 출 수 있도록 노력해 왔는데

수수한 생김새를 비웃지 않을 정도로, 피부를 정돈하고

머리카락에 광택을 내서, 다른 사람의 몇 배나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왕세자 전하가 이따금 보인 달콤한 미소와

청색의 눈동자가 생각났다

설령 가장 사랑받지 못했다고 해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마저도 더 이상 이뤄질 수 없다는 건가, 전부 다 헛수고라는 건가

 

"...일단 여쭈어 보겠습니다만,

제가 깨어남으로서 로제와 전하의 혼인이 철회되는 일은 없는 것입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묻자,

아버님이 가볍게 고개를 들어 말을 짜냈다

 

"상황이 아니였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텐데..."

 

쓸데없이 말끝을 흐리는 아버님께, 나는 난생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새삼스럽게 말을 얼버무려, 내가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무심코 시트를 움켜쥐고, 말투를 강하게 내뱉었다

 

"똑바로 말씀해 주세요!

한번 상처를 입은 영애는, 

이제 신성한 왕가에는 시집 못간다 그런 말이군요...?

저는 이렇게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는 거군요"

 

부모님은 언성을 높이는 나에게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지, 내가 큰 소리를 낸 적은, 철이 든 후엔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부모님이 바라는 그런 영애스러운 행동을 해왔다

한 번이라도 그것을 무너뜨린 적은 없었다

여동생은 적어도 그렇게 자유롭게 매일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니야, 레일라! 아니야....."

 

어머님은 소리 높여 나를 제압했다

그 맑은 하늘과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언제나 의연하고 아름다운 귀부인의 모범 같은 어머님이 우는 모습이라니

나는 일생 처음보았다

 

"...로제의 배에는 전하의 아이가 있어..."

 

어머님은 손에 들고 있던 

손수건을 눈에다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로제의 배에 전하의 아이가?

 

"...그래서 결혼식이 빨라지는 거야

배가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마 2월 중순에 결혼식을 하게 될거야"

 

어머니는 그것만을 말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

그저 해야 할 말만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단 말입니까... 정말 경사스러운 일이군요..."

 

원래 신에게 맹세했던 사이가 되기 전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별로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가 왕가의 인간이라면 이야긴 다르다

누가 왕가에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나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런 바보같은...

 

자연스럽게 내 입가엔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전하는 내가 아홉살 때 약혼한지 7년이라는 긴 세월이 있었음에도

입맞춤 하나 한 적이 없는데

약혼한지 2년이 된 로제는 전하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니...

 

나도 로제처럼 흰 금발이고, 파란색 눈동자라면 사랑을 받았을까

로제처럼 화려하게 웃고, 다소 분방해 보일 정도의 행동을 하는 편이

귀엽게 느껴졌을 수도 모른다

 

로제의 배에 전하의 아이가 있는

단지 그만한 사실이, 내 인생을, 

아니 존재 자체를 전부 부정하는 것 같았다

 

"...이런 거라면 깨어나지 않는 게, 얼마나 좋았을지 모르겠군요"

 

다시 뚝, 하고 눈물을 흘리며, 어딘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나는 중얼거렸다

이상하게도 입가는 어딘가 자조스럽게 웃고 있었다

 

"레일라,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주겠니?

어머니도 네가 깨어나줘서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왠지 울음을 떠뜨리는 어머님을 걱정하면서도

아버지는 눈꼬리를 숙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눈을 뜨지 말았어야 했는데, 죄송하게 됬습니다

애슈버리 공작가의 영애로서 실격입니다"

 

"레이라!"

 

"그만 돌아가주세요,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있고 싶어요"

 

"레이라... 미안하다,

하지만 모두가 널 걱정했던건 사실이야"

 

"호호호호, 어머님은 그러지 않은 것 같은데요

뭐, 결과적으로 어머님이 아끼는 로제가 왕세자비가 됬으니

이것은 이것대로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레이라! 엄마한테 너무하구나!

너도 로제도 모두 평등하게 사랑했단다"

 

아버님은 어머님의 어깨를 감싸고, 

필사적으로 어머님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지만 말야

 

"아이들도 알아 차릴 만한, 거짓말을 할 바에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죠

어서 나가주세요, 두 분이 못 나가시겠다면, 제가 나가겠어요"

 

나는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대에서 발을 내려놓았다

내가 봐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추하고 앙상한 다리가 드러났다

방구석에서 대기하던 제시카를 비롯한 메이드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아가씨!!"

 

"레이라! 그만둬!

그러다간 네 몸을 해치게 될 거야

당장 나갈 테니까, 얌전히 있어!"

 

아버지는 흐느끼는 어머니를 부둥켜안듯이 일어서더니

묵직한 걸음으로 문 쪽을 향했다

 

".....나중에 다시 올테니,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먹어라"

 

일부러 나가기 직전에, 걱정스러운 내색 따위는 보이지 않아도 되는데

그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너무나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가씨, 아아... 레일라 아가씨... 무리하시지 마세요"

 

제시카가 곧장 내 곁에 다가가 내 몸을 침대에 가라앉혔다

눈물이 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갔다

눈물을 훔치기 위해, 손을 드는 것도 벅찬 내가 한심해서,

눈물이 더 쏟아져 나왔다

 

"제시카... 이제 내버려둬"

 

이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가

 

재차 그런 생각이 가슴을 차지해나갔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았을걸, 

아니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이대로 잠들어버리듯이, 죽어버리고 싶다

 

나는 그런 담담한 소원을 품으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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