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80화 - 가자리아의 핀 - 본문
큰 나무들이 모여있는 모양을 하고,
주변의 맑은 물로 뒤덮여 있는 궁전...
공중정원이라고 불리는 도시 중에서도
가장 장엄하고 자연과 손잡은 존재가
바로 이곳 이였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있는 옥자 위에서
한숨 같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여자는 여전한가? 발리안느"
그 목소리는 이 궁전의 주인이자, 옥좌의 수호자.
핀 라기아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였다.
땅바닥을 짓밟는 듯한 나직하게 쉰 목소리였다.
엘프라는 것은 마치 조각된 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것인데,
이 노엘프는 얼굴이 상처입은 것 마냥,
주름과 흉터로 뒤덮여 있었다.
"그렇습니다. 공주님...아니, 엘디스는
탑 안에서 언제나와 다름없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핀은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궁리하듯이 목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의 가는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바리안느는 머리를 숙이면서도 그 가슴속에 식은 땀을 흘렸다.
사실은, 당연히 고한대로가 아니였다.
공주님은 탑에 들여박혀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그만두셨고,
새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시고 있었다.
그렇든 말든, 이 늙은 엘프는 옥좌에 눌러 앉아
눈동자로 모두를 응시하고 있었다.
"핀이시여, 괜찮지 않습니까? 가만히 있다면야..."
라기아스를 핀에 자리에 올려놓은
파벌의 한 문관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그는 원래라면 핀을 뒤에서 조종하는
편한 생활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 것이였다.
하지만 이 양반도 단지 핀의 눈치를 보는 체스말에 지나지 않았다.
발리안느는 살짝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음.... 어디까지야?"
쉰 목소리가 핀 주위에 울렸다.
그 목소리는 어딘가 초조하고 아무 감정도 없는
그런 평탄한 음색이였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문관이 당황한 얼굴을 하며 입을 열었다.
상처와 주름에 덮인 라기아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심이냔 말이냐
너의 목소리는 진심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너 같은 자식은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균"
문관은 핀의 그런 말에
작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 모습이 재미었는지 몰라도,
넓은 실내에서 라기아스의 웃음소리만이 들렸다.
"그동안 귀를 썩일 정도로 돌려 줬겟지
하지만, 이제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날은 끝났다.
마수는 주위에 넘쳐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 엘프라고 해서 세상의 어지러운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주위에서 핀을 시중드는 엘프들은
누구나 그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확실히, 요즈음 많은 마수가 부근의 숲에서 확인되었고,
인간의 국가간 다툼이 공중정원까지
휘말릴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은 진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발리안느를 포함한 많은 엘프들이
핀의 말에 어딘가 회의적인 낌새를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진심을 말하는 것일까
어디까지가 배신자를 가려내기 위한 거짓말일까
이 라기아스라는 늙은 엘프의 속을 내다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람은 처음이였다.
하루 종일 바보처럼 거창한 말을 하면서도,
핀의 칭호와 권력을 위해 자신의 형을 죽였으며,
갑자기 성격이 변한 듯이 가자리아의 주도권을 휘둘렀다.
이 엘프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
알 수 없는 의문이 발리안느를 포함한 엘프를 공포에 떨게 했다.
지금까지 역대 핀을 섬긴 사람이라고 해도,
이 라기아스라고 하는 엘프의 본질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숲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엘디스는 너무나 위험하다.
아직도 그 여자를 따르는 세상 물정 모르는 무리도 많다"
옥좌에 느긋하게 걸터앉은 라기아스가
대사를 읽듯이 말했다.
"초목을 갉아먹는 벌레는
그 무리마다 때려 눕혀야 한다.
가자리아 그리고 엘프의 내일을 위해서 말이다."
발리안느는 그의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엘프의 내일을 위해서?
그 말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엘프는 예로부터 정령에 의지해서 생명을 이어왔다
정령의 수호를 받은 우리는 결코 전란에 휘말리지도 않았고
대재앙 또는 대재해에도 처한 기록이 없었다.
확실히 마수들이 주위를 서성거리긴 하지만,
이 가자리아에까지 쳐들어 오려고는 하지 않았다
엘프 병사들을 이끄는 발리안느에겐 지루한 나날이긴 해도,
평화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라기아스의 행동이 화를 불러들이는 것은 아닐까
...라고 발리안느는 머리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이긴 했지만, 맹약을 맺은 문장교도의 인간을 붙잡는다
... 도대체 이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일찍이 숲을 떠나 인간과 교우를 맺은 적이 있었다
그는 역시 인간에게 완전히 물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엘프는 엘프만의 관습이 있다.
그것을 지키고 영령을 받들어 왔기에 지금의 평화가 있다.
그것을 타파한다면, 거기에 있는 것은 파멸뿐일 것이다.
역시 공주님뿐이야...
그래, 발리안느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과거 수백년의 평화를 이룬 위대한 핀.
그의 유일한 딸이자, 정령의 사랑둥이 공주...
그 분만이 이 가자리아를 다스릴 수 있다
"발리안느"
느닷없이 던져진, 간헐적인 목소리에,
무심코 발리안느는 등골을 떨었다.
설마 내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던 소리를 들어버린건가?
...하며 눈을 부릅뜨고, 말에 응하듯이 얼굴을 들었다
거기에는 깊게 웃는, 늙은 엘프의 얼굴이 있었다
"계속 그 여자를 감시하거라
만약 불온한 움직임이 있다고 해도, 그냥 내버려 두거라.
뭣하면 네놈고 그녀와 함께 해도 상관 없다."
농담인가, 진심인가
전혀 모르겠다
설마, 하고 가볍게 응하면서
발리안느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낮게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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