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84화 - 세 명의 마인 - 본문
검붉은색이 통곡하며 허공을 양단했다
주위에서 숨 돌릴 틈도 없는 찰나의 강격이였다
시선을 모두 두고 카리아는 발걸음을 옮겨 대검을 허공에서 내렸다
그것은 이미 폭위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거인의 철퇴
소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세계가 삐걱거렸다
카리아의 은빛 눈에 비치는 것은 오직 하나, 톱니바퀴 라브르
루기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은 카리아가 알 수 없다
그래도 뭔가가 일어나고 뭔가가 나뒹굴었기 때문에 그는 저렇게 됐다
몸속에 진하게 흘러내리는 피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용의자라고 생각되는 자는 단지 하나
그렇다면 이제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거인의 판단은 1초도 안 돼 내려졌다
즉, 주저없이 파괴해야 한다고...
치켜 올려진 검을 향해 두 손을 작게 벌리면서 라브르는 그것을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면 그 어깻죽지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
저항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건가
그런데 피할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일인가?
마치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카리아에게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저 단지 파괴해야 한다는 집념만이 강하게 있었다
폭위가 내리쳐졌다
그것은 빨려들어가듯 라브르의 몸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자주색의 위협에 막혔다
폭위와 위협이 맞부딪쳐 굉음을 주위에 울렸다
카리아의 탁 트인 동공이
마인과의 사이를 파고든 루기스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었다
심장이 강하게 뛰었지만, 이유를 물을 틈은 없었다
화사하게 변조된 보검은 맥동치듯
보라색을 빛내며 검붉은 색의 검을 얽어갔다
그것은 단지 순수한 근력만이 아닌, 마를 내포한 이물질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거인 키리아의 일격을 맞아 싸울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화사한 보라색과 검붉은 선이 몇 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일격을 서로 물어뜯을 때마다 사선이 시야를 지나갔다
한 번, 두 번으로 그 일이 계속된 후
카리아는 칼끝을 꺼내 칼집을 억지로 물리쳤다
특유의 잔향음을 귀에 느끼며 손목을 돌려 검을 고쳤다
시선 끝엔 여전히 루기스가 있었다
마치, 라브르를 감싸는 것 같은 위치에 있었다
맞아, 감싸고 있어...
카리아의 심장에 강한 열이 엄습했다
호기가 입술을 녹여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은 할 수 있을까 네놈...
입안에 스며드는 고통과 굴욕의 맛에
카리아는 얼굴을 많이 일그러뜨렸다
미간에 주름이 새겨져 있고
은빛 눈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대답이 없을 줄 알면서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루기스, 네놈...
혼자 나돌아다닌 결과가 이거냐?
설마 변명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군"
격정 자체가 흙탕물이 되어 새어나온 듯한 카리아의 말
이제 그가 라브르 곁에 서 있는 모습은 조각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모습을 시야에 담는 것만으로
심장이 마구 휘젓는 기분이 드는 것이였다
그녀의 장기 안쪽에서 벌레가 솟아나오는 기색마저 보였다
반면 대치한 루기스는 미소마저 지었다
그리고 카리아의 속마음을 모르겠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보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알까 보냐, 왜 내가 너한테 신경을 써야 하는데?"
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속눈썹을 치켜올렸다
몸 속 깊은 곳에 있던 정신이 순간 흐려졌다
도대체 나는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그게 말인 줄 알면서도 뇌가 이해를 거부했다
받아들이는 데만 가볍게 몇 초는 걸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기보다 저건 누구야
카리아는 다시 루기스를 쳐다보았다
시야가 떨리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루기스는 지금 눈동자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감정, 그 말의 마디마디, 동작...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라는 것이 전혀 달랐다
외모를 보지 않으면 그라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
물론, 루기스가 마에 얽혀 있는 것은 카리아도 알고 있었다
마에 홀려 일시적으로 제정신이나 이성을 잃는 자가 있다는 말은
소문 정도는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루기스의 현 양상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마치 다른 인격이 그 몸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카리아의 당혹감을 떨쳐버리며
루기스는 보검을 가볍게 어깨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넌 내 적인가? 날 죽이려고?"
루기스... 아니, 마인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위의 마성들도, 그리고 군사들도
라부르 이외의 누구도 이것이 어떠한 사태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모두가 이해한 것이 있었으니
이 남자는 마 그 자체
마인은 역시 이를 드러내며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유쾌한 것 같았다
루기스가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였다
그가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분위기를 녹여 갔다
"어디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작은 계집얘라도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그러면서 루기스는 또 한 발을 내디뎠다
한 번 벌렸던 사이가 다시 채워져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리아는, 대답도 하지 않고 단지 검끝을 내려 버리고 말았다
본래는 위협을 무릅쓰고 적을 맞아 싸워야 할 것이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단숨에 간격을 좁혀야 할 것인데
하지만 무리야
카리아는 쉽게 굴복했다
어쨌든 양손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고
조금만 기울면 검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아니, 아예 쓰러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눈동자 가장자리가 글썽글썽한 것을 카리아에게는 알 수 있었다
억지로라도 억누르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방금 녀석은 뭐라고 했지?
나를 향해 뭐라고...?
알아, 지금의 그는 그가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 목소리로, 그 영혼으로
나를 모른다는 말을 들은 것은 틀림없었다
카리아의 가슴속, 그 깊은 곳에 있던 심지가 삐걱거렸다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해 서 있는 건지 쓰러져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설마 내 몸과 정신이 이처럼 나약하다니
카리아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 마음을 다잡아 채찍질해도, 서 있는 것이 최선이였다
루기스는 의아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깨에 보검을 얹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카리아에게 다가갔다
그것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과 같은 뜻
아무튼 카리아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
루기스도 멈출 마음이 없었다.
"카리아님!!"
그래서 움직인 건 흰색 소녀였다
레우는 움직이기 힘들어 보이는 모습으로
억지로 카리아를 밀어내듯이 돌격했다
그것은 바로 전신을 사용한 돌격으로
그 후의 일 따위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리아는 검을 움켜쥔 채 들이받았고 레우는 땅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다 굴러간 그 끝에 칼날이 보였고
내리쳐지던 칼이 멈췄다
"뭐야, 이 덩어리는?"
"...루기스님"
"너 같은 얘는 좀 더 신경 써 주고 싶은데"
역시 레우도, 안면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투는 아니었다
문득 루기스는 상공을 올려다보며, 선을 긋기 시작했다
보라색이 한스러운 오열을 토하며 허공을 갈랐다
그 앞에서 마조 몇 마리가 절명했다
일체의 저항도 없이 시원하게 말이다
루기스는 카리아와 레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위의 존재를 바라보았다
크게 날개를 펴고 수많은 마성을 거느린 마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주위의 마조들을 제압하듯 부리를 불며 말했다
"현현한 마인이란 마인이란 너라고?
정말, 인간이란 건 잘 모르겠내"
"피장파장이잖아, 나라고 새대가리가 생각하는 건 잘 모르겠어"
마인 독극물 쥬네르바가 거기에 있었다
인간의 무리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마인으로 변한 루기스에게만 시선을 쏟고 있었다
또 루기스 역시 인간들에게 관심도 없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쥬네르바와 몇 차례 말을 나눴다
지금 볼버트 왕조라는 국가를 통솔하는 마인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류의 적
일찍이 수많은 영웅 용자를 대지에 때려눕힌 재해들
그것을 물리쳐야 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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