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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05화 - 일시적인 유예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6장 성녀 마티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05화 - 일시적인 유예 -

개성공단 2020. 3. 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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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무력함을 돕는 것은

신이 주신 선행입니다"

 

이 말을 자신에게 주입한 것이

부모였는지, 문장교의 사제였는지,

마티아는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장교는 지식을 숭배하는 집단이다.

이 세상의 진리는 탐구 속에 있고

문장만이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상을 염두에 둘 수록

문장교는 선의나 악의와는 동떨어져 갔다

문장교는 오직 지식을 가득 담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집단 이였다.

 

물론, 아무런 목적을 가지지 않고

지식을 집적하는 것은 아니였다.

그런 것은 더 이상의 돈이 필요없는데도,

금화를 수북히 쌓는 졸부와 다름 없었다

 

마티아는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입술에 잔물결을 띄우며 생각했다

 

지식의 집적

이것은 인간의 본분을 위한 것

 

사람이야말로 튼튼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지식을 집적하는 것이였다.

 

그러므로 마티아는 인간이

아무리 타산을 위해 산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의 근본에서는

남을 돕고 손을 잡는 선의가 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마티아는

때로는 남을 이용할때마다

가슴 속에 고통이 느껴지기도 했기에

 

마티아는 그런 감정이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 강도, 이단, 난폭한 자,

그들 모두 부득이한 사정으로 타락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밑바탕에는 순진하다고 할 수 있는

선의가 담겨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루기스의 도움 같은 것은

적당한 때에 하면 된다는 말이

마티아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루기스라는 인간이 어딘가 비뚤어진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성녀 마티아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측근인 라르그도 안의 염려스러운 목소리에

마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을 치켜올렸다.

눈 앞에는 작업 중인 양피지와

보기 흉한 잉크 얼룩이 크게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한동안 멍을 때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또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가

 

마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구멍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그냥, 약간 멍을 때리고 있었군요

따뜻한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집무실의 문을 나갔다

 

마티아는 자신의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갈루아마리아 대성벽 내에 존재하는 감시탑은

마티아를 포함해서 문장교도를 이끄는

주요 인물들의 거주지였다.

이곳이야말로 긴급시에 대응하기 쉽고,

적이 쳐들어왔을 때도 병들에게 지령을 내리기 쉬웟다

그렇기에 마티아가 이곳을 지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고

마티아는 스스로 생각했다.

 

기본적으로 돌을 쌓아서 만든 성벽이기에

내부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밤늦게까지 집무를 해야 되는 마당에

손은 금방 차가워져 얼어붙었다.

 

하지만 마티아는 쉴 수 없었다.

집무를 볼 수 있는 인간이 자신과 안

그리고 몇몇의 인물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였다.

 

물자의 보급과, 동맹을 맺은 가자리아의 연락망,

긴급시의 대응, 환자의 취급,

상인과의 거래 등등이

모두 마티아의 손을 거쳐가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은 안건 같은 경우

아랫사람에게 분담시켜서 할 수 있었지만

성녀에게는 그런 짓은 용서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 것은 모두 태만으로 여겨졌기에

성녀는 자신의 몸을 계속 혹사시키고 있었다.

 

지금 멍하니 있는 시간만해도

얼마나 아까운 시간인가

 

그런데 왜, 내 머리속에는

자꾸만 그 남자가 떠오르는 거지?

왜 그 남자가 나의 가슴을 애태우는 거지?

 

성녀란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되였다.

그것이 마티아가 믿는 성녀 본연의 자세였다.

 

설령 감정이 가슴속에서 표정을 바꾸더라도,

겉으로만 감춰도 그만이다

...이것이 성녀 본연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도 감추지 못하다니

성녀로서 이게 무슨 꼴인가

 

그래, 이건 전부다 그 때문이야

이 모든 것은 루기스란 남자가 나쁜거야

 

내가 바쁘게 일하는 가운데,

협력자의 한 사람인 그를 보러 갔는데

그의 태도는 대체 뭔가

 

언제나처럼 장난치고, 도도하고 경박한 태도였다

정말로, 신사라고 말하기엔 전혀 거리가 멀었어

 

그래, 분명 그것 때문 일거야

그의 개소리를 거르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이 모양이 되버린 걸꺼야

 

마티아는 속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스스로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그를 머리 속에서 지울려고 해도

그는 계속해서 그녀의 머리속을 맴돌았고

그럴 수록 그녀의 뺨은 빨개지고

가슴 속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티아가 당황하는 사이에,

안이 컵을 들고 나타났다

 

마티아는 콜록, 하고 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안, 당신은 이제 자도록 하세요

저도 좀만 있다가,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안은 그 말을 받으면서도

입술을 불안하게 일그러뜨렸다

 

"....알겠습니다, 성녀님

하지만 그......"

 

마티아는 눈동자를 둥글게 떴다.

안이 말을 우물거리는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였다.

 

잠시 안은 눈알을 굴리면서

쭈볏쭈볏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일은 가자리아에서 온 사신을 불러서

의논할 자리가 있으니까

아무쪼록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안은 서둘러 집무실에서 나갔다.

무엇인가 걱정스러운 일이 있는건만 같았다.

 

마티안는 신기한 듯 입술을 쓰다듬으며

시한이 다가온 집무를 정리하기 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이따금씩 그 펜이 좀처럼 멈추는 것은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 속을 술렁이는

감정의 흔들림 때문인지,

그것은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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