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77화 - 변질될 기미 - 본문
나는 침대 바로 앞에 걸터 앉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폐에서 공기가 내 몸을 지나다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 안도의 한숨이라는 거겠지
침대에 누워 있는 인물을 보며 뺨을 살짝 풀었다
잠자리가 간소하기는 했지만
환자가 누워 있기 때문일까, 담요가 여러 장 있는 것이 보였다
"몸은 어때, 괜찮아?
그 동안 좋은 술이라도 들이켰어?"
담요에 싸인 브루더는 옛시절의 기운은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재채기를 하며 뺨에 선을 그리는 그 모습은
내가 잘 아는 그녀의 모습이였다
살짝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걸 보니,
아직도 어딘가에 화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멍청한 고용주 같으니라고
술은 이제 시야에도 들어오지 않아
하지만 담배라면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지"
나는 브루더의 말에 무심코
품에서 담배를 꺼내서 그대로 손에 건네 주었다
선물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진통제 정도는 될 것이다
브루더는 몸을 가볍게 일으키고 느긋한 손놀림으로 담배를 물었다
너무 힘을 주면 화상이 몸을 찌를 수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상당히 힘 없는 동작이였다
뭐, 하지만 베스타리누의 말대로 몸은 무사한 것 같다
나중엔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의 의사에게 가면 문제는 없겠지
브루더는 여러 번 담배를 씹으며
냄새를 코에 넣은 후, 입술을 열었다
"......그래서, 뒤에 두 분은 왜 그렇게 서 있는 거야?"
브루더는 씹는 담배를 입에 끼워 넣은 채 의아해 하며
갈색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나의 뒤를 관통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니, 뭐 그저 동행해 온 것이긴 하지만
말을 잘 못 했다간 화약마냥 폭풍을 터뜨릴까 봐
딱히 언급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루더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묘한 입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말을 고르고 있는 사이에
은발이 시야의 끝에서 튀어올랐다
"딱히 별 문제는 없어요
다만, 지켜보는 사람이 없다고
어디 가든지 상관없다고 착각하는 멍청이가 있어서 말이죠"
그 때문에 카리아는 그저 '망'을 보기 위해 왔다고
작게 말한 채, 팔장을 끼고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은빛 눈동자만은 시야의 끝에 있는 사냥감을 쏘아보는 것처럼
강력한 등불을 그 속에 품고 있었다
나는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입술을 누르고
그러고나서 이쪽으로 시선을 돌린 듯한 브루더에게 말을 흘렸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쓸거 없어"
그렇게 말하고, 일단 자리를 비우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것을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
카리아 말고도 더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는게 무슨 말일까?
루기스, 좀 가르쳤으면 좋겠는데"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피에르트 볼고그라드의 것
검은 눈이 시선을 강하게 하여
똑바로 이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리아의 뜨거움과는 달리, 어딘가 냉철함을 머금은 눈빛
젠장할, 또 시작인가
며칠 전 프리슬란트 산맥에 나가겠다고,
그렇게 말한 날 부터
이 둘뿐 아니라 너 나 할 것 없이 이 모양새였다
솔직히, 나는 무엇인가의 꼬리를 밟아버린 것 같다
그것도 사자라든가 늑대라든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닌
더 사나운 놈의 것을 말이다
나의 눈동자는 어떻게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려 했다
식은 땀이 귀 뒤쪽을 흘러내리는 것을 알 수 있엇다
시선을 들어서, 브루더를 바라보니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남의 불행을 보고 웃어버리다니,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건전하면서도 심한 놈이야
나도 모르개 눈꺼풀을 찡그리고 뺨을 찌그러뜨리자
브루더는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뭐가 뭔지 알 것 같아
고용주는 말뚝에 매여도, 말뚝을 끌면서 움직이는 성질이니 말이야"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놈이군
그 말 뜻은 마치 내가 바보라는 말 아닌가
적어도 좀 더 말을 선택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브루더가 조용히 눈가를 닦으며
그럼 저 밖에 죽 늘어선 녀석들도 마찬가지냐고 물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천막의 출입구 부근에, 너댓명 쯤 되는 그림자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그 중에는 엘프들도 섞여져 있었다
젠장할, 내 말은 카리아나 피에르트는 물론이고
엘디스나 마티아의 가슴 속까지 흔들어 버린 거 같군
천막 안으로 들어 오려고는 하지 않았지만
요 며칠 문장교의 병사나, 가자리아의 병사들이
부자연스럽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어딜 가나 시선이 있다
마치 죄인이 되버린 기분이다
그런 말을 대강 중얼거리자, 브루더는 다시 흥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은 의외로 자신이 뿌린 씨앗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잊어버리는 거야
고용주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운 곳에 씨를 떨어뜨리고 있는지 모르겠군"
물런 그런 브루더의 눈동자가 미소 같은 것을 감추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
"뭐, 네놈이 어딜 나가든, 난 별로 상관없어"
브루더의 병문안을 마치고 천막을 나서자마자
카리아는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매끄럽게 움직여
내 등을 만지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정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고 말하는 듯
은빛 눈동자가 내미는 시선만은 전혀 달라지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네놈이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성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나는 길 안내라도 해주겠다... 다만, 말이다"
카리아로서는 상당히 상냥한 말투였다
정말로 두 손 들고 기뻐하기라도 할 것 같군
그 뒷내용을 묻지 않아도 된다면, 이라는 조건이 붙지만...
카리아는 내 등에 무게를 실으며, 작은 입술을 내 귀에 갖다댔다
긴 속 눈썰이 살짝 들어오는 햇빛을 가르는 것이 보였다
"그냥 나는 네가 거짓말을 하는게 너무 싫다
저번에도 내게 등을 맡긴다고 했으면서
혼자서 화상을 입고 오지 않았느냐"
카리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고 있었지만
등에서 그대로 내 심장을 움켜잡은 것 같은 기색이 있었다
그러나 카리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였다
나는 카리아와 약속을 했고, 그 부분을 어긴 것이였다
그렇다면 책망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허용해야겠지
적어도 카리아가 머리를 식혀줄 시간은 갖고 싶었지만...
"그래, 루기스
나도 당신이 어디에 가든지 뭐라 하진 않겠어
하지만 한 가지만 들려줫으면 해"
마치 카리아의 말에 파장을 맞추듯
피에르트가 입술을 들썩였다
편하게 소리를 내는 것 치고는
그 질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내 오른쪽 어깨에, 피에르트의 손가락이 닿았고
손끝은 매우 섬세한 나머지, 마치 깨진 물건에 닿는 듯 했다
그리고 그대로 피에르트의 몸이 기대듯이 오른팔을 잡혔다
속삭이는 듯 간지럽기까지 한 목소리가 바로 가까이셔 울렸다
"혹시나해서 묻는건대,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거나
아니면 내가 네 손바닥에서 움직일 거라는 생각 하는건 아니겠지?
나는 그래도 갈루아마리아 시절보다 달라졌지만 말이야"
그 목소리는 카리아보다 더 무겁고
그러면서도 귀의 뒷면을 스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마치 옛날, 두 사람이 영웅이라고 불리던 시대에
가지고 있던 압력과 존재감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여기에서 조금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재 두려운 것은 그것이 아니였다
무서운 것은, 그 기척, 존재감이 옛 시절과는 성질을 바꾸어 버리는 것
마치 무언인가 얽혀버리려고 하는 것 같은 혼미한 기색
카리아와 피에르트는 따로 나를 해치려는 것도 아니고
호통을 치려는 것도 아니였다
그저 두 사람은 나를 뭔가 배려마저 느낄 정도로
정중하게 대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인가 위험한 것이
등줄기에서 기어 올라 오는 것 같은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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