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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04화 - 곁에 늘어선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2장 신령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04화 - 곁에 늘어선 자 -

개성공단 2020. 5. 1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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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이란게 그렇게 대단하신 거냐, 응?"

 


자전을 어둠 속에서 번쩍이며, 악덕은 대담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상태는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였다.

 

발밑은 약간 비틀거리고 

어깨는 평상시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들썩이고 있었다.
온몸에 상처를 보이는 그 꼴은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아무래도 신체에 박힌 백색 칼날도, 억지로 뽑아낸 탓일까. 

그 몸뚱이에는 엄청난 양의 피가 철철 흐르고,
군복의 선명한 녹색은 더이상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 참상은 그야 말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도저히, 남에게 손을 내밀어줄 상황이 아니였다.
손을 내밀어주고,  도와준다는 행동은, 

스스로에게 여유가 있는 자가 하는 일이다.


빈민들이 구걸하는데 가서 돈을 줄까?  

스스로의 오늘 내일조차 확실치 않은 마당에 어려움에 처한 

남에게 동조해 도와주려 하겠는가.
그럴리가 없다.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매도당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서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자가 있다면
그건 인간으로서 필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있는 것이였다.


예전에 네놈도 그리 말했을텐데.  그런데, 어째서.


카리아는 경악으로 은색눈을 크게 뜨며, 루기스의 등을 바라본다.  

그 등엔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고, 그녀는 그 광경을 보고

억지로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여기 온거냐.  바보같은 짓 하자미라.  

내가 뭘 위해서 이곳에 남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서 도망쳐 

 

머릿속에선 그런 루기스의 행동을 부정하는 말이, 일제히 나열되어갔다.
입술은 몇번이고 그것을 말하려고, 움직였었다.

 

하지만 결국 그 어느것도, 

입술에서 흘러내리기 전에 목구멍 너머로 삼켜졌다


이성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사지로 제 발로 돌아온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다.
바보 멍청이 같은 짓이다,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해버렸군

 

분명 그렇게 말해야 했다. 

카리아의 사고는 몇번이고 그리 반복하지만, 

입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굳게 닫혀버렸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아아, 나는 나약한 여자다. 얼마나 비열한 여자인가.  

마음 속에 둔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게 만들다니, 
그런 짓은 조각만큼도 바라지 말아야 할 텐데.


막상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자, 뺨은 붉게 물들며, 느슨해져 버렸다
황홀한 표정을 짓고있는지, 스스로도 상상이 안가기에 

도저히 남에게 보여줄만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다.


루기스는 카리아에게 등을 보인채, 말했다.


"이봐, 카리아

네가 그렇게 쉽게 죽으면, 누가 날 지켜주겠어?>"

 

이런 상황임에도, 평소와 같은 농담을 날리는 말투로 그는 말했다.
그런 여유같은 건, 사실 어디에도 없을텐데.


틀림없이 멍청이 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말 한마디로 마음이 붕떠버리는 자신 또한, 바보겠지.

 

뭐, 결코 나쁜 기분은 아니다.  카리아는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을 내뱉었다.
방금전까지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짜내던 말들은, 

어느샌가 전부 사라져있었다.

 


"바보 같은 놈, 내가 그리 쉽게 죽을까 보냐

네놈이 싫다고 해도, 악착같이 붙어 주겠어"

 

조금 자신의 목소리가 상기된 것 같은 느낌이 

카리아에게는 들었다. 

그녀는 그 수줍음을 짓씹듯 입술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여운도, 금방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황금은 마의 실을 찢기고도,
전혀 기죽은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형형히 빛나는 눈이, 부릅떠졌다.

 

"멋진 등장이구나, 마치 동화책의 기사님 같군"


루기스를 칭찬하는 그 말에는 전혀 무게감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담담히, 무감정하게 소리만을 내뱉을 뿐인 그 행동은,  

오히려 기분 나쁘게 느껴질 정도였다.

 

황금이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인가, 루기스, 악덕이라 불리는 자여

결국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텐데"


감정 하나 깃들지 않은 목소리에서 바뀌어,  

이번엔 심해 밑바닥을 연상시키는 고요함과 위압감을 가진 목소리
도저히 사람에게 건네는듯한 목소리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선렬한 감정이, 분명히 그곳에 있다고 느끼게하는 음색이었다.


그것을 듣고, 루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한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글쎄, 어떻게 하든 귀찮은 악령만 깔아뭉개고

모든게 원만하게 메챠쿠차 엔딩을 맞을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보는 중이야, 아르티우스"


만능이라면, 뭐 어떻게 할 수 없냐, 는 듯한 태도로

루기스는 보라빛 검을 기울였다

보검은 주인에 응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하늘을 찢었다.

 

구제신 아르티우스. 

루기스는 눈 앞의 여자를 가리키며, 대성교 유일신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것은 성녀에 대한 빈정거림인가, 아니면
실제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신령의 강림이라고 말할 셈일까.

 

카리아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목 언저리가 묘하게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의 말은 공상의 부류라고 생각하면서도, 만약 그 말이 맞다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꽤나 쉽게 납득이 갈 수 있다고, 

머릿속은 수긍하고 있었다.

 

그 신의 몸은 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엘프의 저주를 받고도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마법도 한낱 일시적일 발목 잡기일 뿐이였다.
그런 괴물을 앞에 두면 

적어도 악마보다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르티우스는 루기스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듯이 웃었다.


"그런가, 그럼 어디 한번 생각해보거라

그야말로 심장이 바싹 타들어가는 그 때까지, 기다려주지"

 

황금이, 눈을 부릅떴다.  

그 머리카락은 우아한 빛을 보이면서, 허공에 흩날리는 정도였다.

 

딱딱한 소리가 났다. 

아르티우스가 한걸음, 석판을 밟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것 만으로도, 직접 손으로 목을 조여오는듯한 감촉이 있었다.

 

숨이 막히고, 호흡 하나하나가 둔한 고통을 가지고 왔다.  

카리아는 신체를 비틀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이, 놈의 적의라는 것인가.


방금전까지 자신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을 때, 

아르티우스는 마치 아이와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적이 아닌, 그저 장난 삼아 놀아준 상대를 가볍게 날려버리는 듯한 것 말이다.

 

하지만 루기스를 앞에 둔 지금,  

황금의 눈 속에는 분명한 적의가 있다.  

그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름끼치게 혀를 적시는 기색조차 보였다.

 

적의 속에서 떠오른 것은, 진한 죽음의 환상. 

세상 그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위압감

 

아르티우스는 루기스를 부르면서 한걸음, 더 다가왔다. 

 

"죽이진 않겠다

그 대신에 다시 한 번 너를 썩게 해주마

그 의지도, 존엄도, 사상조차 모두 말이야

그러고선 너를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알려주겠어."


그 말을 듣고, 보검을 흔들며 루기스는 말한다.


"미안하지만, 썩기만 하는 인생은 이제 지긋지긋하거든. 

각본을 만드는 게 취미라면, 완전 새로운 걸 가져와줬으면 좋겠는데"

 

루기스의 말에, 무심코 카리아는 눈꺼풀을 깜박였다.

은발이 두둥실, 허공을 흩날렸다.


들려온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말. 

하지만 카리아에겐 묘한 직감이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흘러 나오는 분위기, 

기백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이 언외에, 한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다.


카리아의 은안에, 일순 루기스가 시선을 향한다.  

그리고 카리아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퇴로는 두 사람에게 부탁했어

나는 여기서 잠깐만 있을테니, 길을 먼저 열어주고 있어줘"

 

즉 먼저 도망치라고, 루기스는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듣고, 자신의 직감이 옳았다는 것을 카리아는 이해했다.


루기스는 분명 이곳에서 죽는 것조차 각오하고 있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소꿉친구를 구할 수단을 찾기 위해.

 

카리아의 은색눈이 비틀리며, 가늘어졌다.  

그리고 코웃음치듯이, 대답했다. 

가슴 속에는 복잡한 감동이 뒤엉켜있었다.


"거절하겠어, 그리고 방금 말했잖아?

네놈이 싫다고 해도, 억지로 붙잡아 있겠다고

게다가 나는 언제까지나 네 등에 기대기만 하는 여자가 아니야"

 


루기스의 옆에 나란히 서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것도 없이 

뺨을 치켜올리며 카리아는 말했다
그 뜨겁다고 할 수 있는 시선은 루기스, 

그리고 그 앞의 아르티우스를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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