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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5화 - 지도 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5화 - 지도 위 -

개성공단 2020. 5. 1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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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바위와 마른 풀의 냄새가 공기에 뒤섞여, 바람을 타고 콧구멍을 찔렀다.


그립군, 예전에 지겹게 맛본 냄새였다.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서
향수감마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습성인걸까.

 

그것들의 냄새도, 

아낌없이 쏟아져내리는 눈에 의해 얼마 못가 짓눌려졌다.
아직도 눈은 대지를 휩쓸고 지배지를 늘리기위해 

그 몸을 세계에 퍼뜨리고 있었다.

 


나는 눈꺼풀을 흔들며, 

나지막한 언덕 위에서 눈 아래로 시선을 던진다.

 

갈라이스트 왕국과 동부 도시 국가연합을 나누는 경계, 오거스 강

본래는 셀 수 없이 많은 물량의 유통을 담당하는 그 강도 

지금에 와선 완전히 몸이 얼어붙어서 눌을 가득 쌓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다리를 이용하지 않아도 강 건너까지 건널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갈라이스트 왕국의 영향력 자체는 동부도시 국가 연합까지 미쳐있었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명확한 국경이라고 하는 것은 

후세의 역사가들 밖에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 강이라는 커다란 경계를 가지고 

갈라이스트 왕국이 패권을 발휘해 온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은 그 국경인 강의 둘레를 뒤덮듯이 

문장교 병사들이 몸을 나란히 세우고 있다.

 

한랭기용의 회색군장에 몸을 감싸고, 

모두가 하얀 입김을 토내내는 것이 멀리에서도 잘 보였다.


수는 3천명 정도. 

문장교라는 세력의 규모를 감안하면, 이 이상은 바랄 수 없을 규모 일 것이다.
용케, 여기까지 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오거스 강 연안에 군사를 나란히 세워 달라고는 했지만, 

눈 속에서 이리도 빨리 군사들을 보내줄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동부 국경에 갈라이스트 왕국의 귀와 눈을 집중시킨다는 의미에선 

충분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걸 가볍게 중얼거리자, 

곧바로 한숨을 내쉬는 듯한 말이 날아온다.
서늘한 공기가, 소리를 제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정말 아니도 아니였습니다, 루기스 씨

용병들인 우리의 귀에까지 들어올 정도로 말이죠"


곁에서 그리 말하고 있었던, 

강철 공주 베스타리누 게르아는 하얀 입김을 입 주변에 피어올렸다.

 

듣자하니, 성녀 마티아로부터 내려진 파병의 대명. 

그 명령 하나로 문장교군의 중간 간부 내지 

그녀에 따른 조정을 행하는 라르그도 안은
식사도 한 손으로 만 할 정도로 바빴다고 한다.


그도 그럴게 문장교는 

한랭기 동안 원정을 떠난다는 건 조각만큼도 상정하지 않은데다,
장비조차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았가 때문이였다

게다가 원정을 나가 그 땅에서 굶지않고 동상에 걸리지 않기 위한 

보급로의 확보도 필요했다.


그것들 전부를 하나부터, 

그것도 무엇 하나 준비되지 않은 백지 상태에서 이루어내야 헸기에.
과연, 그것을 위한 얼마나 긴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을 지 

상상조차 하기 싫어졌다.

 

안 님은 원망스러운 듯이, 당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라고

베스타리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무심코, 입술 끝이 비틀어진다. 갈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둔한 아픔이 달리는 목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너무나도 넉넉한 배려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야

다음에 만날 때, 무슨 얼굴을 하고 잇을 지, 두려워 지는 걸

그래서 강철공주님, 베르페인의 용병 쪽 준비는 끝난 거야?"

 

입가에 하얀 입김이 서리도록 물었다다. 

그것도 그럴게 시간이 없었던 것은 문장교군이든 

베르페인 용병이든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베스타리누는 모피를 곳곳에 두른 갑옷에 몸을 감싸면서, 입술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어느 때든 상관없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베르페인의 용병은 비록 부드러운 침상에 누워 있어도

꿈에서도 전쟁터에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는, 베스타리누의 늠름한 분위기가 강조되있었다.  

일체의 흔들림이 없는 음색은,
그 목소리의 뒷면에 일체 파고들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훌륭하군, 어디까지나 의지가 되는 말씀이야  

베르페인의 온갖 거친 일들을 단신으로 평정하고 있을만하다.

 

이번엔 그녀들이 충분히 활약해주기를 기대하자. 

그도 그럴게 한랭기에  그 몸을 휘두르는 것은
국군이나 상인이 아닌, 

목숨을 대가로 장사를 하는 용병으로 정해져있었기 때문이였다

 

씹는 담배를 입에 머금음과 동시에, 

베르페인 용병이 진을 친 근처에서 환호성과 같은 것이 울려퍼졌다.


이 한풍이 부는 와중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내기 위한 궁리, 라는 명목으로 술잔치라도 벌이고 있는 거겠지... 저쪽은 여전해서 다행이군


문득, 생각에 이르러 브루더에 대해 입에 담았다. 

베스타리누의 언니이자 내 친구인 그녀는

베르페인 용병과 그 행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


지금은 도시 필로스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갈루아마리아에서 그 몸을 진정시키고 있을테지만,
역시 조금 그 안부가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전생에서 한번 그녀를 잃은 것은 

내 가슴 속에 적지않게 구멍을 뚫은 모양이었다.


베스타리누는 내 말을 듣고는, 천천히 시선이 강해졌다.

 

"상태는 꽤나 진정되었습니다

이번 동행은 역시 단념했습니다만, 곧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딱딱한 말만을 내뱉고는, 베스타리누는 입술을 닫았다. 

표정도 어딘가 아연실색 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건대, 

어쩌면 브루더도 이번 파병에 따라가겠다고 말을 꺼낸 걸지도 모른다.
브루더라는 인간은, 왠지 모르게 스스로 위험 속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느낌조차 들었다.

 


그러한 경향을 좋은 점이라 불러야할지, 

나쁜 버릇이라 불러야할지는 조금 판단하기 어렵지만
베스타리누의 태도를 보건대, 

그러한 점에서 다소 자매간에 충돌이라도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럼, 왠만해선 건드려도 될만한 화제는 아닐 것이다


베스타리누의 말에, 나는 가볍게 끄덕이며 답한다.  

뭐, 무사하다면 좋은 일이다. 또 기회를 봐서 술이라도 선물하러 가야지.

 

"그래서, 적당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루기스 님, 용병은 일자리가 없으면, 굶어 죽어버리니까요"


근처 마을이라도 습격하는 겁니까, 하고 

베스타리누는 가볍게 목소리를 내었다.
아직, 그녀들에겐 그 부분을 전하지 않았었다.

 

딱히 그녀들을 믿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단순히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씹는 담배를 한번 입술 위에 세워, 독특한 향을 코끝으로 굴렸다.
몇번이나 말을 사고 속에서 정리했지만,  쓸데없는 짓 같아서 그만두었다.


어떻게 꾸며 말하든 할 일은 단 하나 뿐이다. 

베스타리누에게 시선을 던지며 곱씹듯 말한다.

 

"베스타리누, 용병들이 하는 일은, 옛날부터 정해져있잖아

지금은 단지 그것을 이루는 것 뿐이야"

 

용병이란 것은 시대와 지역에 의해 그 모습을 크게 변화시켜왔다.
때론 귀족의 사병처럼 취급받았던 때도 있었지만, 

산적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시대도 있었다.


국군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에는, 

각지를 점유하는 용병이 국가의 병사 그 자체였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용병의 전통이 있다.

 


그것은 습격과 약탈, 싸우는 것과 빼앗는 것


"갈라이스트 왕국엔 매장지라고 불리는 감옥이 있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늙은이 있는데, 어서 해결 해버리려고 하거든""

 

베스타리누가 그 속눈썹을 높이 치켜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생각하는 바가 있었을까. 

평소 그런 말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그녀의 입술이 몇 번 흔들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수초의 시간이 지나, 그녀는 입을 열었다.

 

"그건, 감옥에서 누군가를 구출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베스타리누의 호흡이, 희미하게 거칠어져있었다.  

하얀 연기가 우박이 되어 크게 너울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

 

그 물음에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기보다,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다는 식의 말이였다.

 

이쪽을 똑바로 응시하는 눈을 보며, 말한다.


"물론. 하지만 그것만은 아냐, 아예 끝내버리고 싶은게 있거든"

 

나는 입술을 달싹이면서, 말을 계속했다. 

베스타리누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손가락을 지그시 거머쥐었다.

 


"매장감옥 벨라는 이제 문장교에 대한 박해의 심장이야

그것이 있는 한, 문장교도와 대성교의 입지는 변하지 않아

박해받는 측과 박해하는 측 그대로인 셈이야"

 


설령 이쪽이 조금 물어뜯어 준들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은 뒤집을 수 없을 것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는 어쩌면 그런 것이니 말이다.


만약 그대로 관계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사실상 문장교와 대성교는 어느 한쪽이 지상에서
모습을 지울 때까지 서로 물어뜯고 싸울 수 밖에 없게 되버린다.

 

그도 그럴게 사람이란 것은 한번 얻은 이익이나 우위란 것을, 

그리 간단히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언제까지나 문장교를 유린하고, 박해해서, 

자신의 우위를 증명하려들 것이다

 

그리고 감옥 벨라는 그 상징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이제 없애버릴 수 밖에 없어

베스타리누, 간단한거야, 지도 위에서 이름 하나 지울 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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