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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7화 - 목구멍을 기어가는 오한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17화 - 목구멍을 기어가는 오한 -

개성공단 2020. 5. 1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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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는 동안, 각국의 가도란 가도는 상당히 조용해진다.

 

눈이 흩날리는 동안은 귀족이나 상인들 대다수가

자취를 감추고, 모은 재물로 호사를 구가하는 시기였고
평소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살기에 바쁜 서민들도 

시골로 내려가 얌전히 술잔을 기울이기 일쑤였다.


모두가, 그야말로 마수 이외엔 조용히 숨을 죽이는. 한랭기란 시대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의기양양히 가도를 밟으려는 인간은 

고작 두 종류 밖에 없었다.

 

도를 넘을 정도로 탐욕스러운 상인이나, 

지금이 돈벌 때라는듯이 실력을 뽐내는 용병들.


덜커덩덜커덩 눈 속에서 흔들리며 상단의 마차가 몇개나 달려간다.
주위에는 십여 명의 용병이 나란히 달리고 

마차 안에는 상응하는 인원이 채워져있는 듯했다


이들을 고용하는데에는 상응한 돈이 들겠지만, 

상단을 이끄는 상인에게는 그에 걸맞는 이익이 있다.


이번 거래처는, 감옥 벨라. 

그 안에는 수백명을 넘는 인원과, 그 몇배의 죄인들이 있었다.

즉 그 무수히 많은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물이 필요했다.


당연히 죄인들의 뱃속에 들어가는 싸구려 음식에 불과하지만, 

그런 것이라도 한랭기가 지속되는 와중에 운반되면 

치는 몇배로 뛰어오른다. 

곰팡이 핀 빵이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오히려, 벨라에 갇혀있는 구교도에겐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설령 법도를 벗어난 값을 매기더라도, 

따로 식량을 운반해줄 상인 따위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감옥측도 이쪽이 부르는 값으로 식량이나 자재들을 

사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이보다 더 좋은 장사는 없다고 상인은 생각했다.


물론, 마수들에게 습격당할 위험도 있었고, 

언제 모든 것을 잃게 될지 모르는 위험도 존재했다.
동업자가 그렇게 됬다는 이야기는 몇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상인은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다. 설령 자신이라고 해도 지금은 아니다.
아니 죽을때까지, 그런 꼴을 당할리가 있겠는가.


그런식으로 생각했을 무렵이었다.  

선두에 달려가던 말이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발굽이 날뛰는 소리가 나며 마차가 삐걱거렸다


또 눈이라도 말의 눈에 들어간 거겠지.  

그런 느긋한 생각이 모두의 뇌리에 스쳐지나가던, 순간...

 

마차를 끌고 있던 몇마리의 말들의 머리가 피와 함께 튕겨나갔다. 

도끼가 말을 능수능란하게 도축했다

 

동시에 폭음이 울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순간적으로, 용병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꽤나 익숙한 소리가 귀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목소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함성.

갑옷과 무기가 쇳소리를 내는 울림, 몇몇 발굽과 사람이 땅을 치는 소리


모를리가 없다. 사람이 사람을 덮칠 때의 소리다

 

용병들이 손 안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

 

 

 

 

 

 

눈 속에, 철을 기세좋게 휘두르는 소리가 울렸다. 

단색으로 가득채워진 눈의 세계가, 희미하게 붉은 빛을 띠어 갔다.


적색은 보다 강렬한 선혈이 되어, 눈을 녹이며 대지에 스며들었다.


그것이, 몇번이나 지속됬다.


귀에 들려오는 것은 검이 맞대는 소리와, 사람의 비명소리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불쾌한 감촉이 손바닥 가득히 퍼져갔다.

 

흐릿한 하늘 아래 쏟아지는 눈을 튀기는 듯한 절규가
잠시 마차를 중심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습격당할 때 나는 소리였다


"살려줘!! 이젠 팔이 부러져서 싸울 수 없다고!!"

 

눈 앞의 남자는 옷차림을 보니 분명 용병인 듯 했다.
장비의 질을 생각하면 

이 남자가 상단의 호위를 하던 용병단의 두목일 것이다.

 


그것이 지금 무릎을 꿇고, 

분명하게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팔을 보여주며 무언가를 부르짖고 있었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해서 용병이 된 거 아냐?

너는 내 얼굴을 잘 기억하며, 하늘 위에서 원망이나 하며 죽어라""


보랏빛의 선이, 공기를 갈랐다.


화살을 쏘는 듯한 기세를 칼날에 실어 용병의 머리를 깼다.
피의 분수가 거칠게 튀었지만, 그것도 머지않아 눈에 덮여버렸다
눈 속에 한랭나비가 깜박이는 것이 보인 듯 했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자, 검이 부딪히는 소리나 비명이 일체 멎어 있었다. 

아무래도 모든 게 일단락된 모양인 것 같았다.

 

"마치 도적이라도 된 기분이군요

루기스 님은 꽤 익숙하신 것 같은데, 경험이라도?"

 


베스타리누가 이쪽을 바라보고, 전투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그 눈에는, 조금 질렸다는 듯한 색이 떠올라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뺨에 피가 튀고 있었지만 아마도 그것은 상대를 죽일 때 

같이 튄 것일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보검에서 피를 닦아냈다.


"글쎄, 뭐 비슷한 일 정도는 여러개 해 본적이 있지만..."

 

그렇게 말하며, 폐 속에서 충분히 공기를 토해냈다.  

전투의 고양감이 빠져나가자, 전신에 저릿한 통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닌

그저, 프리슬란트에서 너덜너덜해졌던 몸이 

완치되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뭐, 이런 상태라도 몸이 움직여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우리쪽 피해규모는 어떻냐고 묻자, 

베스타리누는 나를 흉내낸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부상자가 몇명, 있다고만 말했다.
딱딱한 성격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의외로 겉은 가벼운 성격일지도?.


사망한 자는 없다.

더 할 나위 없는 좋은 결과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쪽이 300명 가량의 수를 거느려서

수십 명에게 기습을 가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허리춤에 보검을 회수하고, 백색검과 함께 질퍽해진 대지를 바라보았다.
눈이 쌓인 가도 속에, 분명한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살아남은 상인은 예정대로 감옥 벨라를 향해 도망쳐준 모양이다.
이 뒤로도 작전대로 잘 풀리면 좋겠는데 말이다

 

순간, 목덜미 부근에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눈썹을 찌푸렸다.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라는 인간의 계략이 이토록 순조롭게 풀린다는 것은
잘못하면 좋지 않은 무언가가 깨어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말이 굴러가는 것이다.
갈루아마리아에서도, 베르페인에서도 그래왔다.

 

베스타리누가 내 옆얼굴을 의아한듯이 바라보며 말한다.


"상인으로부터 먹을 것을 빼앗다니, 군량을 벌 속셈인가요

그랬다간, 안에 있는 죄수들이 죽어나갈텐데요, 루기스 님"


무엇이 계기인지 모르겠지만 

베스타리누의 머릿속에서 나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는 모양이었다.
원래부터 어딘가 청렴한 부분이 있는 그녀와 나 사이엔, 

서로 맞물릴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상인이 두고 간 짐수레의 덮개를 손끝으로 가볍게 열어보니

몇 가지의 음식이 원 없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잇었다

너무 무리하게 넣은 게 아닌가 싶었다

이래서야 안에 무엇이 실렸는지 확인 하는 것도, 이만저만 하는게 아닐텐데


손가락으로, 입술을 쓰다듬었다. 

뺨을 비틀며, 베스타리누에게 말했다.


"에이, 한랭기에서 장기전을 어떻게 하겠어?

내가 왜 상인을 그대로 보내줬는지 모르겠어?"

 

그래, 내가 왜 상인을 그냥 보내줬는가

감옥 벨라의 간수나 병사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입술을 열며, 말을 이어나갔다

 

"녀석들은 빠르면 당장,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감옥에서 뛰쳐나올 것이야"

 

한랭기는 가뜩이나 먹을 것이 부족하기 십상이다

특히 촌락에서도 떨어진 감옥이 되면 더욱 더...

 

그렇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식량을 운반해오는 상인은 그야말로 생명줄.
뭐 아무리 그래도 곧바로 아사자가 나올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진 않겠지만.
도적들에게 빼앗긴 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놓아줄 정도로 여유는 없을 것이다.


되찾고 싶겠지. 반드시 오고말고. 상인들이 잘 전해줄 것이다.
그리 간단히 운반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짐을 가지고 왔다고. 

도적들은 운반하기 위한 말들을 죄다 죽여버렸다고. 말이다


"용병을 모아줘, 앞으로의 절차를 말해줄테니..."


내 말에, 베스타리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그 눈 속에는 조금, 회의감이 깃들어있는 듯 했다.


"상관없습니다만, 이상한 내용이라면, 전 거부할 것입니다

제대로 설득해 주시길..."


그것은, 원래부터 감옥 베라를 습격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던 

베스타리누다운 말이였다.


사람 한둘쯤 구출하는 거라면 몰라도, 

감옥 자체를 박살낸다니 너무 무모하다고, 말했던가.


이전부터 미움털이 박힌 것도 있었겠지만, 

과거 함께 베르페인에 침입했을 때 꽤나 무리를 했던 탓일까.

아무래도 신용이라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말을 하자, 베스타리누는 당연한다는듯이, 말했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루기스 님

당신은 아직 제 질문에조차 대답하지 않으셨잖습니까""

 

베스타리누는 그것만을 말하고, 등을 보였다

전쟁도끼가 휙 돌며, 눈 속에 피를 튀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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