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3화 - 마성 도시 아르셰 - 본문
왕도 아르셰
부기 영화를 누리며 대륙 문화의 중심지로까지 불린 당
지방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상품들이 거리에 진열되어 있었고
상인들은 분주히 고위 귀족의 저택을 오가곤 했다
마련된 시장과 투기장에서는 서민들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교역도시 갈루아마리아의 번영과는 다른 맛이였지만
그래도 아르셰는 틀림없이 끝없는 번영을 빛을 발하는 곳이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번창하고, 풍부한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귀족과 서민들은 그 생각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인간은 그저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이
언젠가 없어질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종이였다
하지만 얼마나 단단한 것이든, 반드시 무너지는 날은 온다
힘도, 영화도, 나라조차도... 태어나는 순간 붕괴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왕도 아르셰
금괴로 쌓아올린 대륙의 중심지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도시가 아니였다
이곳은 마성이 군림하고 지배하는 땅
인간이 당당하게 생존할 권리따윈 없었다
"음.... 죽어버렸나... 어이"
그다지 유창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느긋한 말로 어떤 이가 말했다
눈 앞에서 눈을 번뜩이며 팔다리를 내던진 인간 여자는
대답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죽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따뜻하다
마성은 그 인간과 밀착하며, 민간하게 그것을 살폈다
팔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붉은 피가 펑펑 쏟아지며, 단정한 얼굴이 무너졌다
그리고 세 번째 시도 끝에, 여자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기절을 했던 것 같다
"도와....줘... 이제... 그만.... 하아아아..."
몹시 고통스러워 보이는 군
말의 마디마디가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의식의 한계가 명확히 전달되어 왔다
하지만 마성은 여전히 그녀를 두 팔로 끌어안아 체온을 느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추웠기에 말이다
그는 인간의 목소리 따윈 듣지 못했다
그것은 울음소리 일 뿐, 굳이 말한다면 사물에 색채를 주는 향신료 같은 것
의미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여자는 몇 번이고 울며 도움을 청했다
용서를 빌고... 구원을 청하며... 때로는 절규까지 했다
신경쓰지는 않지만, 왠지 보니 울적해지는 바람에
마성은 그만 두 팔에 힘을 주고 말았다
직후 통쾌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성의 마음을 잠시 녹였지만, 이내 사라졌고
그 점에 마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이제 울지 않는다
"로곰... 그렇게 추우냐 이 바위야?
왜 이러는 건데, 이런 아까운 짓이나 하고?"
로곰, 그렇게 불린 마성은 여자의 시체를 그 자리에 버렸다
그의 온 몸은 마치 광물 같은 광택을 머금고 있어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유일하게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건 목소리 정도일까
"추워..... 아주... 추워.... 마수인 네놈은 모르겠지"
이들은 바위에서 태어난 마족
피부도 살도 없는 그들은 본래 더위도 추위도 느끼지 못할 터
하지만 어쩐 일인지
로곰은 늘 타는 듯한 추위에 시달렸다
햇볕을 쬐어도 전혀 녹지 않는 얼음 처럼 말이다
영혼인가 아님,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는 건가
그것은 그 자신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무튼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껴안아 죽이곤 했다
그 생명의 등불이 그들에게 영혼을 준다나 뭐라나
살아 있는 핏줄의 열기가 눈깜짝할 사이에
잠깐이지만 자신들을 달래준다고 했다
고양이 머리에 인간과 같은 몸을 지닌 마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코볼트라고해, 마인님께서 이름을 알려주셨지"
로곰에게 말을 건 마수는 자신을 코볼트라고 밝혔다
사실 로곰이든 코볼트든 자신들에게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드래그만은 말했다
예전에 너희의 종들은 모두 지성이 있었지만
그것을 잠깐 사이에 잃어버렸을 뿐이라고...
코볼트는 그 말을 자세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마인이 말하는거라면, 아마 맞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더 거대한 마의 영향을 받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에게 좋은 것이니
머릿속을 기어다니는 지성도, 몸을 움직이는 힘도
마인의 영향으로 날이갈 수록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드래그만님 께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로곰은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의 팔뚝 같은 신체가 방구석을 가리켰고
거기엔 조금 전의 여자보다 작은,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아마도 여자의 딸일 것이다
얼굴은 창백해 있었고, 눈물은 얼굴을 아예 덮어 있었다
아까의 단정한 얼굴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녀는 주저앉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로곰의 주목을 받자, 흡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어이, 이건 내게 맡겨둬"
로곰은 수를 맞추려면 저것도 포함시켜야 했고
코볼트는 그를 가로막으며,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마족과 마수와는 서로 감성이 좀 다른건가
"인간이란 말이야... 정성껏 해줘야 고기가 맛있어지는 거야"
코볼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작은 여자아이가 움켜쥐고 있는 손을 짓밟았다
몇 차례의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손은 기능을 상실했다
딸의 절규, 마치 그 어머니의 행실을 따라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코볼트는 다른 손도 똑같이 저질렀고, 그 다음엔 다리를 으스러뜨렸다
그때마다 여자아이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졌고, 눈물과 땀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죽이지 않고, 장난칠 수 있는 것은
요즘 코볼트 종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희였다
능숙한 자는 온몸의 껍질을 벗겨내고, 인간을 생존시킬 수 있다고 한다
거기까지 고통을 받은 인간의 고기는... 정말로 맛있었다
코볼트는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먹는다고 하는 행위나, 그것 때문에 괴롭힌다고 하는 것은
로곰에는 전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였다
이 여자아이는 곧 코볼트에게 먹힐 것이다
대체 이런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여전히 로곰은 머리를 긁적였다
왕도 아르셰... 여기선 이런 행위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왕도 아르셰, 옥좌
거칠지도 않고, 휘황찬란함을 유지하는 이곳을 보면
문득 아직도 아르셰라는 땅에 질서가 잡힌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옥좌에 앉아있는 것은 국왕이 아닌, 마인 드래그만
그리고 옆에 있는 건 귀족이나 군인이 아닌
반인반수의 마수 베르그였다
여기서 인간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웠다
"주변 촌락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이고 있습니다
군사들 중에서는 악행을 저지르는 자도 있는 것 같은데..."
베르그는 약간 말끝을 흐리다가, 드래그만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통제자라고 불린 주인이
어느 정도의 너그러움을 지닌 존재인지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말단이라고는 하지만 병사들의 행동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베르그의 상상과는 정반대로
드래그만의 얼굴에 불만은 전혀 없어보였다
아니, 오히려 부드러워 보인다고나 할까?
"괜찮지 않은가, 웬만한 일은 용서하도록
놀이는 놀이야, 바람직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수용하도록 하지
게다가 인간들도 늦기 전에
스스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 행복할테고 말야"
그 말에 베르그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도 드래그만의 성격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드래그만은 마성의 본능에 대해 매우 관용적이였다
그 근처의 마성의 대장과 비교해도 매우 관용적
책망하는 짓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그만큼 요구하는 바가 크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은 종족으로선 죽느냐 사느냐란 문제를 잘 판단한단 말야
그 점은 매우 칭찬할만 해"
드래그만은 인간의 신용 등 그런 말장난을 했고
베르그는 가볍게 말을 이어나갔다
"인간에 관해서 말입니다만
아직도 반항하는 패거리가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병사 수는 우리보다 많고요"
1만, 아니면 2만이라고 할 수 있겟습니다
베르그의 보고에 드래그만은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이미 인간 종이 반항을 좋아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였다
드래그만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였다
우선 하나는 자신의 주인인 대마 정령신 제브릴리스
그 유일무이한 존재는 확실히 감지되고 있지만
역시 의지가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호소해도 대답이 오지 않았다
아직 아르티아의 지배하에 있는 것인가
지금 비로소 마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면 주인이 조속히 의지를 되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
나의 동포
보석 아가토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깨어났다면, 그녀도 당연히 깨어 있을 법 한데
그런 사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드래그만은 자신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 답지 않아, 질서를 만들어야 할 자신이 이렇게 초조해있다니
이전의 시대에서 잘못한 것을 떠올린 것일까
이번만큼은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마 매우 초조해진 것일 것이다
드래그만은 미소를 지으며 베르그에게 말했다
"알겠다, 보고하느라 고생했다
작전준비만 게을리하지 않도록
인간에겐 용감함도 지혜도 필요없다
이번엔 잘 정리해서 처분해 버리는 거야"
베르그는 자신의 주인인 마인을 받들어 순종적인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틀림없는 경의의 표시였다
*
왕도 아르셰 근처
눈이 내리는 대지에 발자국을 남기는 자가 있었다
언뜻 보면 소녀 같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폭설의 시대에 혼자 밖을 돌아다니는 점
누구든지 마성이 돌아다닐만한 곳은 피해다니기 마련이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조심조심 발길을 뻗치는데 말이다
설령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해도
함께 다니지도 못할 마정, 혼자 다닌다 하면
움찔움찔 겁먹은 거동을 취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는 달랐다
당당한 몸짓으로 눈밭을 다니며, 콧노래까지 했다
소녀는 자신의 위치가 왕도 아르셰인것을 확인하고
두 팔을 벌리고, 기쁨을 표정에 담으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아...! 내 사랑 왕도!
내가 돌아왔어! 몇 백년... 아니 어쩌면 더 지나갔을지도!
그런데도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이야!"
그 말엔 넘치는 충족감과 기쁨이 가득했다
소녀의 겉모습과는 달리, 조금 어른스러운 말을 쓰면서
그녀는 몇 번이나 기쁨을 표했다
"분명히 내 평소의 행실이 좋았으니까!
역시 난 대단해! 대단한 나! 세상에서 제일 멋져!"
그녀 혼자인데도
마치 누군가에게 말 걸듯이 말하는 소녀
"....시끄러워, 난 너처럼 이런 사리분별 없는 소녀가 싫어"
그녀의 주위엔 역시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모습도, 마성의 모습도...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너 내가 없었으면 죽었을거 아냐
일이 이렇게 된 것도 네 탓이니까
조금은 참도록 해, 나도 너와 몸 쓰는 건 싫어"
그것은 마치 연극의 독백과도 같았다
1인극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
마치 혼자서 두 사람의 역을 연기하는 듯한...
소녀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타이르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걱정하지마, 나는 보석이야
누구보다도 빛나고, 누구에게도 더럽힐 수 없는 존재"
소녀는 그 말을 마치고, 다시 눈밭에 발자국을 남겼다
행선지는 오직 하나, 이제 마성의 지배 하에 놓인 왕도 아르셰
무대를 물들일 배우들이 한 곳에 모이려 하고 있었다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제14장 마인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5화 - 귀로 느끼는 재앙 - (0) | 2021.04.02 |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4화 - 세 세력 - (0) | 2021.04.02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2화 - 독은 미덕의 극치 - (0) | 2021.04.01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1화 - 가르침 받은 자 - (0) | 2021.04.01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70화 - 병사들의 포효와 파도치는 마성 - (0) | 2021.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