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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94화 - 주종의 연민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94화 - 주종의 연민 -

개성공단 2021. 4. 6. 21:16







마성 군림 도시 아르셰 왕궁



본래 있어야 할 주인이 사라져 버린 왕궁의 옥좌에서
통제자 드리그만은 반지 한 조각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몸은 의자에 걸터앉힌 채, 손끝에서 최고의 열기를 느껴졌다

옛 정령신 제브렐리스로부터 하사받은 마구
신의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신화의 구현

인류와 아종을 통괄할 만한 기적이 담긴 그 반지는
과거로부터 변함없는 빛을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그 반쪽을 잃은 거 빼고는 말이다

드래그만은 가슴이 타는 듯한 노기와 순수한 경탄을 잉태하며 눈을 부릅떴다.
눈앞에 있어서 더욱, 이 반지가 나누어진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누구나 망설여지는 법
이게 놀라운 건지 아니면 당황스러운 것인지
드래그만의 심경은 묘했다.



하지만, 뭐 좋아
이것도 언젠가는 다시 하나로 돌아갈거야



어쨌든 반지의 반신이 지금 쉴 틈도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드래그만은 손에 잡힐 듯이 느끼고 있었다.

반지에는 저주가 내려져 있었다.
일찍이 아르티아에게 빼앗기기 직전, 육체의 죽음과 함께 얽힌 주술

이 반지는 반드시 자기 수중에 돌아올 운명에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번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다.

드래그만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간신히 반지를 집어넣자 
말 모양의 하체를 가진 마수 베르그가 발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는 자기 주인이 평정을 되찾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일출과 동시에 도시 밖 사람들이 소규모지만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모두 군사를 돌려 웅전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대응은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베르그의 우는 듯한 목소리에
음, 하고 그렇게 대답하고, 드리그만은 말을 이었다.
적어도 베르그에게는 그것이 위기가 아니라는 것으로 들렸다





"인류는 강해졌군, 경악할만 해"





그 말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베르그는 대답할 말이 막혔다
그렇다고 응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것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게 한 베르그를 보고
드리그만은 쓴웃음을 머금고 난처하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정말로 강인해진 거야
육체가 아니라 영혼 말이야
예전엔 군을 이끌고 마성에 맞설 인간이 없었거든"





일찍이 마성이 대지를 자유롭게 밟고 있던 시대
그 무렵에는 군을 인솔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사물을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이들은 마성을 위한 가축이요, 애완동물이요, 때로는 식량이었다
그것을 누구나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마성에 항거할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빼앗기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마성 측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평화롭고 누구나 행복했던 시대에
무기를 갖추고 마법을 외우며 마성에 송곳니를 보인 인간은 단 한 사람뿐
마치 신의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모든 마성을 무릎 꿇리고
인류신화를 일으켜 세운 그 여자뿐이였다





인류의 영웅 아르티아.





드리그만은 가슴속으로 
꺼림칙한 여자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난 감정들을 토해내듯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하는 바는 많아도 눈앞의 일을 방치할 수는 없다
아르티아의 목에 손을 뻗치려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인류종을 쳐부숴야 한다
이는 기나긴 여정의 서곡일 뿐이다.





"그들의 속셈은 대강 알겠다
아마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위장일 거야
반드시 별동대가 발을 떼서 여기로 오게 될거야"





드리그만의 말에 베르그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는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까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드리그만을 믿고 있었다.





"하나하나씩 깨물어서 으깨버리는거야
별동대에는 베르그 자네가 군대를 이끌고 덤비도록 하라
어짜피 하는 일은 재밌게 괴롭히는 것일 뿐일테니까
모두가 탈선을 하지않게, 적당히 억제하도록"





베르그는 응해 말발굽을 치며 주인의 말에 대답하고, 입을 열었다





"잘 알겠습니다, 통제자님
군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별동대가 있다는 것은
드래그만님을 노리겠다는 것이군요"





위장과 별동대
그것들이 준비되어 있다면 인간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하는 정도는 베르그도 추측할 수 있었
그렇다기 보다는 이 주인 밑에 있는 동안 
묘하게 지혜가 돌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국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쪽의 장수 마인을 참획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만일 인간들이 역겹게도 모략을 세워서
주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피를 토해내고 억지로 도망친 또 다른 마인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나치게 눈에 띄는 이 왕궁은 나와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건축물보다 지키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지만
많은 군사가 나가는 이상, 여기에 계속 머무르는 의미는 희박하다.

그렇게 말발굽을 움직이는 베르그에 드리그만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하진 않는다
나는 여기서 별동대의 일부와 싸우겠다
베르그, 자네가 왕궁으로 향하는 인간 모두에게 상대하는 건 허락치 않겠다
어디까지나 너는 이곳에서 탈선하는 병사들만 관리하도록"






그런 말을 듣고 베르그는 드리그만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지 못했다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드리그만의 말에는 유무를 가리지 않을 만큼 박력이 있었다
늠름한 풍모가 강한 표정으로 베르그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당연히 농담인 듯한 기색이 없었다




어째서? 적은 분명히 이 쪽의 핵심인 마인을 노리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쪽은 군사를 이용해 그 곳까지의 길을 분단시키거나
겨냥이 빗나게 않게 흐트러뜨려 주면 될 뿐이다
때가 지나면 그만큼 우리에게 유리해질 것이니 말이다

호락호락 상대의 손바닥에 스스로 들어가 맞아들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게 되면 상대를 우쭐거리게 만들 뿐이다
베르그는 혀에서 흘러내릴 뻔한 말을 애써 억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이유만을 물었다.

드리그만은 입술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네가 내게 이유를 묻는 것은 처음이구나 하고, 그렇게 말했다





"...이곳의 옥좌는 정령신 제브릴리스님을 위한 것
그분이 정신을 차리시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비울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드리그만의 음색에는 별다른 열기가 담겨 있지 않았다


어쨌든 드래그만이 일종의 마법 기구를 여기에 갖추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은 인간들이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한때 발을 디딘다고 해도 무슨 불편이 있겠는가?
정녕 인간들이 왕궁을 휘젓고 다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베르그는 드래그만의 말을 계속 들었다
아마 이것이 실질적인 이유겠거니 하며 말이다





"그리고 보석이란 것이 있다
그녀는 한번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부어서라도 굽히지 않는 여자다
보석이란 곧 그런 녀석이니라
그러므로 한 번 적대한 이상, 끝나는 것은 나나 그녀가 죽을 때 뿐이다"




그런 보석 아가토스는 대다수 대군의 명수다
보다 많은 것을 목매어 죽이는 일에 능한 존재인 것이다
군대가 있으면 그만큼 죽을 것이다.

드리그만은 그렇게 말하며 
옆에 둔 잔을 들어 입술에 갖다 댔다
그제서야 베르그는 자기가 주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차렸다

순간 반사적으로 베르그는 입을 열었다.
마수의 포효가 왕궁을 쓰다듬는것 같았다





"통제자님... 저나 병사들은 목숨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뜻있는 죽음이라면 더더욱 겁나지 않습니다!"





마성마수란, 모두 그런 것이라고 강조하듯이 베르그는 말했다.
눈이 지금까지의 생애에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찌푸려져 있는 것을 깨알았다.
주인의 말을 거역할 순 없어도, 이 말만은 하고 싶었다

드리그만은 얼굴에 변화를 주지 않은 채
그저 덤덤히 입을 열었다




"고맙다, 자네 말은 더할 나위 없는 명예군
하지만, 베르그 내 명령은 변하지 않는다"





그 목소리에는 상대의 말을 새겨듣게 하는 기세가 있었다.
반론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의 위엄이 
그 눈에서 희미하게 떠오르기까지 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통제자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이상, 내게는 너희들을 올바르게 할 의무가 있다
보석이 여기에 왔디고 해도, 나는 죽지 않는다
다만 너희는 죽겠지, 나는 그것을 너희들이 허락해도 용서할 수 없다"





다시는 말하지 않는다
자네는 자네의 사명을 다하라고, 드리그만은 그렇게 말했다
베르그는 세 번 발굽을 바닥에 찧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통제자의 말에 응했다

다만 말없이 주고받는 주종의 인연만이 거기에 있었다
드래그만은 잔에 다시 한 번 입술을 묻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반지의 조각이 왕궁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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