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95화 - 불변의 보석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95화 - 불변의 보석 -

개성공단 2021. 4. 7. 13:11

 

 

 

 

 

 

아침 해가 자주색 몸을 밝히고 동쪽에서 넘어온 시각

 

왕도에서는 검은 연기가 들썩이며 치솟기 시작했고

폭설이 멈추지 않는 도시 밖에서는 

병사들이 용맹한 심정으로 싸우고 있었다.

 

아침을 알리는 데는 소란스러운 그 광경을 눈 아래 간직하면서 

보석 아가토스는 그저 하늘에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보석과 함께 허공을 날아올라 

덮쳐오는 날개를 가진 마수들을 쏘아 떨어뜨렸다

아무리 마수들이 강할지라도 그것을 버틸 순 없었다

 

치명적이다고 할 수 있는 손톱이나 송곳니가 

아가토스의 몸에 닿아도, 그것들은 일체의 상처를 입힐 수 없었다

 

 

아가토스가 문득 손가락을 뗄 때마다 

보석이 내뿜는 열선이 마수들의 살을 갉아먹어 들어갔다.

 

이런거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는걸 알텐데

아가토스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잠시 하늘에 몸을 맡겼다

 

처럼 싸이는 하늘의 감촉은 유난히 차가웠다

뺨이 싸늘한 바람에 찢어지는 마음을 상기하며 붉어져 갔다

하지만 본래는 이것이 그녀의 영역이었다.

 

뿌리 깊은 대지가 통제자 드리그만의 영역이라면

끝없는 하늘은 아가토스의 것

아가토스는 현란한 보석과 마수의 살점을 주위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며

색깔이 옅은 흰눈을 부릅떴다

 

눈아래에 보이는 것은 인간들... 피아라트

그리고 루기스라고 자칭한 자가 가도를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칼끝이 겨누는 것은 단 하나, 통제자 드리그만의 목덜미였다

 

 

아가토스는 볼을 풀면서 손가락 끝의 보석을 휙 돌렸다

 

설마 드리그만이 죽으리라고는 아가토스도 생각하지 않았다

인과조차 뒤집는 자신들이 보통 인간이나 

마수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시간벌이는 될 수 있겠지

그 시간이야말로 현재로선 금보다 값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든 엘프든 뭐든 좋다

적당히 발버둥 쳐주면 그걸로 다 끝날 것이다

 

햇빛 아래 하얀 머리카락이 살짝 홍색으로 물들어 갔다

아가토스의 영혼이 자신에게 맞는 육체를 찾기 위해 오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아직 그 때는 오지 않았다

 

 

 

 

 

"왜 여기서 가만히 보고 있는 거에요...?

당신은 무지 강하잖아요...."

 

 

 

 

 

그것은 가슴속에서 흘러나오는 이 가냘픈 말 때문이였다

그것이 아직도 아가토스의 영혼 속에서 준동하고 사라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인에게 넋을 빼앗긴 자는 기다리지 않고 멸실된다

그 자가 살았다는 증거는 하나도 남지 않고 말이다

그것이 통상적인 것이였다

 

그런데도 이 약하기만 한 레우라고 하는 이름의 영혼은

어째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일까

꺼질 듯 말 듯하던 불빛이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위화감이 있었다

 

아가토스는 허공을 날아서, 보석을 조종해가며 입을 열었다

 

 

 

 

 

 

"뭐야, 또 누굴 돕자는 거야?

정말 어리석은 녀석이로구나

네가 말하는 사람을 돕는다는 건 장난같은 거야

너 혼자 돕는다고 뭐가 바뀌겠어?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제일이야, 자기 생애엔 자기 맘대로 살아야지"

 

 

 

 

 

그 어느 때보다 아가토스의 혀가 잘 돌아갔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가 감정의 톱니바퀴를 마구 돌린 결과이니 말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을 

아가토스는 잘 알 수 있었다.

 

초조함

내가 무엇을 귀찮게 여기고 분노한다는 말인가

예전엔 원래부터 떠오르지 않았던 감정인데.

 

그런 아가토스의 질무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

레우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말을 내뱉었다

 

 

 

 

"그렇죠... 당신 입장에서 보면

약한 제가 하는 짓이란 장난 같은 짓이겠죠..."

 

 

 

 

 

레우가 그렇게 인정한 것으로, 조금 아가토스의 초조함이 줄었다

하지만 그것도 불과 한순간 뿐인 일

아가토스의 가슴을 계속 설레게 하면서 레우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장난으로라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가 있는 짓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것 외에는 할 수 없으니까요"

 

 

 

 

 

 

순간. 아가토스의 감정에 따르듯이 주위를 춤추는 보석들이 그 속도를 높여갔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면서도 그들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같이 분노였다.

 

말은 꺼내지 않은 채 아가토스는 눈에 불이 켜진 것을 깨달았다

비로소 그녀도 자기 속에 싹트는 감정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젠장할, 역시 이 아이는 맘에 안들어

 

대체 뭐지?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그것도 하필 인간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인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쭉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가토스는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고

그것들은 하얀 안개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이봐, 너는 그 인간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죽을 뻔 했잖아

 

 

 

 

 

처음 이 몸에서 깨어났을 때 아가토스는 우선 적지 않은 동요를 느꼈다

인간 아이라는 수수께끼같은 영혼을 선택한 것도 놀라웠지만

더구나 그 몸 상태는 이상함 그 자체였다.

 

손과 발가락이 동상이 돼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괴사조차 할 것 같았다

뼈도 살도 정상적인 성장이 저해된 나머지 뒤틀려 

작은 몸에 담겨진 채, 폐를 포함한 내장도 그을음에 노출돼 

정상적인 호흡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였다

 

운이 안 좋아

처음에 아가토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마성의 노예가 되었던 인간을 선택한 것 같다고

그것도 어지간히 조잡하게 다루는 무리들 말이다

아마도 불완전한 상태의 융합이 된 것도

너무나 레우의 몸과 영혼이 뒤틀려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설마 그것이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 무리 속에서

행해진 처사라고 아가토스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성이라고 해서

동족끼리 서로 죽이는 것이나 이해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아가토스 자신이 자신에게 덤벼드는 마수를 잡아먹은 일은 부지기수

그 중에는 불합리한 처사였던 적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승복하기 어려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그것도 같은 종류의 인간이 이러한 짓을 한 걸까

 

심지어 이 아이는 특유의 솔직함으로

그것이 자신의 생애라고 받아들여 영혼조차 남에게 바쳐 죽으려 했다

말도 안돼... 그런 빛없는 삶... 이 보석 아가토스는 결코 인정하지 않아.

 

희끗희끗한 흰색과 활활 타오르는 붉은색이 섞인 머리칼이 

허공을 흔들며 꿈틀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레우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변하지 않을 거야

보석이란 불변하는 존재야, 누구도 나를 변하게 할 수 없어

그 누구도 나를 더럽힐 수 없단 말이야, 난 그런 존재라고"

 

 

 

 

 

그래... 결정했어

그렇게 단언하며 아가토스는 입술을 파닥였다

미려한 선이 뺨을 치켜올리며 미소를 짓게 했다

마치 장난꾸러기가 불길한 일을 떠올릴 때 지어주는 그런 미소였다.

 

 

 

 

 

"네가 그렇게도 인간을 위해 사는 존재라면

나는 인간을 마주칠 때 마다 모조리 죽여주겠어

네가 기도하고, 말을 던질 때마다, 반드시 인간을 죽여주마

네가 언젠가 인간따위를 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 날까지

네가 볼 수 있는 사상 최대의 지옥을 보여주마, 알았냐?"

 

 

 

 

 

 

레우가 뭐라고 큰소리를 친 것을 아가토스는 알 수 있었다

의미는 읽지 못했지만 초조인가 분노인가

무엇인가의 감정에 가득 찬 목소리였던 것이 확실했다

아가토스는 그래도 미소를 머금었다.

 

인간은 추악하다

그것은 곧 아가토스에게 용서할 수 없는 죄

선악이나 이해관계를 절대 기준으로 삼는 자가 있듯이

아가토스에게는 영혼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저울로 삼는 자였다

 

물론 인간 안에도 그 피에르트란 여자와 루기스란 사람처럼 

괜찮은 부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극히 작은 예외일 뿐이다

개인으로서의 차이는 있으나 

그래도 종족으로서 보면 더 이상 고려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다

 

이런 종족이 아름답다는 둥 그런 허튼 소리는 들을 가치가 없다

이런 추한 것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그 추악함을 눈에 수없이 각인시킨다면

필시 레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건 구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아아, 참으로 좋은 생각이야

아가토스는 손가락을 휙 돌려 허공을 뛰었다

보석들이 희희낙락하며 그 주위를 맴돌았다.

 

 

 

 

 

 

"우선 통제자를 목 베어 죽이는 거야

그 다음에는... 이 왕도의 모든 인간을

웅장하고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꾸어 주겠어

기쁘지... 레우?"

 

 

 

 

 

보석 아가토스는 유쾌한 듯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아름답게 웃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