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01화 - 저주와 축복 - 본문
검은 빛이 시야 구석구석에 온통 뒤덮여 갔다
눈앞에 있던 마인의 모습이 사라졌고
그렇게 눈에 비치는 것은 온통 검은색으로 변했다.
순간 가쁜 호흡이 해소된 듯 입에서 터져 나왔고
귀에는 심장 소리만 들렸다
오직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사고만이 움직였다
뭐야 이 상황은?
엘디스의 검은 안개? 그런데 왜?
가슴속으로 그런 자문을 하고 있으니
머릿속이 상당히 뜨거운 것을 깨달았다
양주를 과음한 것처럼, 만취한 것 같았다
"천천히 호흡을 해, 루기스
이곳은 여행의 종착점이 아니야
우리가 뭐 하러 왔는지 생각해"
언제나처럼 약간 달콤함을 머금은 목소리가 아닌
귓속을 간질이는 늠름한 엘디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엘프의 여왕으로서의 목소리였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억지로 내 정신을 잡고, 달랠려 하고 있었다
몇 번 눈을 깜박이며 입을 다물었다
비로소 정신이 평정을 되찾기 시작하려 했다
나는 여기 뭐하러 온건가? 마인을 죽이려고 온게 아닌가?
아, 그래,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려고 온 게 아니야
입가에 손을 댔다
무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할아범의 모습을 앞에 두고 피가 거꾸로 솟다니
감정에 사로잡힌 채 소리를 지르며 무작정 보검을 휘둘렀다
이 무슨 추태를 부린건가
그건 할아범한테 배운 기술이 아니야
그저 어리석은 자의 싸움이었다
예전 모험자 시절에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는데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을 흘리면서 두 손으로 보검을 다시 잡았다
보검이 호응하듯 검끝을 떨었다
가볍게 어깨를 움츠리고 엘디스에게 응하니,
그 목소리는 부드러움을 되찾았다
"네가 이렇게 감정이 흔들리다니..
내가 죽으면 얼마나 더 흥분하겠어?"
보검의 끝부분을 흔들었다
그리고 주술의 한계인지, 검은색 연기가 없어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엘디스의 가벼운 말투에 뺨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죽게 놔둘 리 없지"
검은 연기가 사라지고, 주위는 다시 맑아졌다
나는 입을 다물고 미소를 짓고, 다시 칼을 들었다
루기스의 앞에는
아무리 육체를 베여도 죽지 않는 이형이 있었다
그것은 피를 주위에 흘리면서, 나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냉철하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면서 말이다
드래그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잇몸을 드러내며, 입을 벌렸다
"과연... 이 사나우면서도 과감함이라니...
자네는 아르티아가 아니라, 그 남자의 권속인건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야..."
정말 그립군
드래그만은 살을 재생하면서 두 손을 가볍게 벌리며 말을 꺼냈다
살이 다시 기어오르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드래그만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검을 주고받는 전쟁터에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였다
그 몸은 한계없는 힘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동시에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을 얼굴에 비췄다
"그 녀석이든 아르티아든 내 부하를 아주 잘 죽여줬군
그래... 하지만 원망하진 않는다... 내 무능한 탓이니 말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드래그만의 감정에는 분명 걸쭉한 것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놈은 부하, 그리고 동료라는 존재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다
그것은 통제자라는 직함 때문인가
아니면 이 놈의 본래 성격인건가?
거기에 담긴 말에만 달리 없는 무게가 있었다.
드래그만은 볼이 저릴 정도의 압력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전철을 밟진 않을 것이다
이름을 물어보겠다, 부하들을 위해서라도, 너는 여기서 죽는다
이제 더 이상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드래그만의 눈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소리가 났다
아르티아니, 오우후르니 하는 권속들이 아닌
그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눈을 일그러뜨림과 동시에 뺨이 움찔움찔 해졌다
그래도 검을 들고 검끝을 놈에게로 돌린 채 입을 열었다.
"루기스다
이름은 외울 필요 없어
그냥 심장만 그 자리에 두고 가면 돼"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다리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온몸에 약간의 공기의 흐름이 스쳤다
이제 아까와 같은 꼴은 저지르지 않겠다
드래그만을 죽이기 위해서 나는 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리를 뛰자 마룻바닥이 이상한 삐걱거리는 것을 알았다
마치 단말마와 같은 그것
그렇게 공기 자체를 깨뜨리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것이 울렸다
이제까지 그랬듯이 마루판이 부서지고
흙덩이와 나무가 옥좌 사이로 솟구쳐 올랐다
창처럼 조립된 그것들은 공간을 도려내고 스스로를 융기시켜 나갔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드리그만의 마원
거리조차 통제하는 놈에게
대지에서 흙덩어리나 나무를 밀어올리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들은 바닥을 뚫고, 그대로 천장까지 뚫었다
그것 자체가 일그러진 기둥이 된 듯했다
흙과 나무는 차례차례 소리를 내며 옥좌를 붕괴로 이끌고 있었다
주위를 모래 먼지가 흩날리며 시야를 메워 나갔다
흙은 덩어리가 되어 주위를 쳐부수고
나무는 창을 만들어 주위 끝에 있는 모든 것을 쳐부쉈다
계속되는 그 알 수 없는 전개는 공성병기라도 눈앞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만약 이것이 인간의 군대과 맞붙는다면
아마도 군대는 궤멸될 것이다
이것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군사가 나아가겠는가
오히려 모두들 도망치겠지
바닥에 발을 붙이고 다음 순간에 도약했다
그러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다
그렇지 않으면 흙덩어리에 온몸이 박살나거나
나무 창에 찔릴것이라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
한마디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이쪽에선 도무지 저기에 들어갈 수 없다
아까부터 드래그만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위험한 것은 흙이나 나무 만이 아니였다
드래그만 자체도 충분한 위협이였다
시야 앞, 드리그만이 손바닥을 폈다
그것을 본 나는, 놈의 시야에서 어긋나도록
살과 뼈를 삐걱거리면서 상체를 비틀었다
둔한 통증이 발꿈치에서 기어올랐다
순간 주위에 다시 굉음이 감쌌다
놈이 그 자리의 공간 자체를 움켜쥐고 분쇄한 소리였다
과연 이것이 놈의 능력인 것이다
대지를 조작하고 거리를 통제하며 모든 것을 분쇄한다
이런 괴물 상대에게 승리를 거두었다니
헤르트 스탠리는 영락없는 영웅이었다
나에게는 이것을 정면으로 타파할 방법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패배할 수는 없다
나는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렇다면 무모함을 답파해서라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놈을 반드시 죽일 것이다
병아리는 스스로 자신의 알을 깨며 탄생한다
그것은 그 여린 존재, 혼자만의 싸움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 또한 못할리가 있겠는가
그래, 이것은 내가 나아가기 위한, 혼자만의 싸움이야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나아갈 때
흙덩어리와 나무의 틈을 비집고, 몸을 앞으로 날렸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드래그만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몸부림이였다
나무들이 뺨을 깎아내고, 흙덩이가 체구를 스쳤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단 하나였으니 말이다
시선 끝에서 드래그먼이 팔을 들어올렸다
손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당연히, 허공을 날아다니는 나에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더 무모했던 것이다
엘디스가 검정 주술을 부리는 게 보였다
검정 주술은, 드래그맨의 주위에 끈기를 가지고 달라붙어 갔다
엘디스의 검은 주술
이제 그것은 안개가 아니라 보다 농밀한 홍수가 되어 드래그만에 얽혔다
공간을 집어삼키고, 그 사지에 달라붙어
그 움직임을 속박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엘프의 여왕이 발하는, 기원인 주술 그 자체는 신화시대의 유물이였다
그것을 본 드래그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바닥으로 주술 그 자체를 움켜쥐었다
검은색이 오열을 터뜨리며 몸을 흔들어 그 색깔을 희석해 갔다
드래그이 쏟아 붓는 축복과 엘디스의 주술이 맞물려
공간에 비명을 지르게 했다
"이래뵈도 요정족 출신이라서 말이야, 저주라면 잘 알지..."
드래그만은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눈을 엘디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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