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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00화 - 본질 - 본문
리처드의 몸이 보랏빛의 그림자에 튕겨지는 것과
마인이 손바닥을 움켜쥐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돌판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소리를 냈다
귀가 멍멍할 정도의 굉음이었다.
리처드는 그러던 중에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식이 무리한 건 과거와도 변하지 않았군
리처드는 오른쪽 어깨가
계속 피를 토해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신을 잃을 뻔한 것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말이다
"......늦었잖아, 어디서 여자랑 술이나 한잔 하고 왔냐?"
그 목소리 속에는 후회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다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리처드의 가슴에만 묻힌 것이였다
내뱉은 말과는 달리
리처드는 그 발자국 소리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칼날을 맞대고 모두 이해했다
마인이란 거침없는 신화에 나오는 괴물 그 자체
인간 따위와는 열량이 다르다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인간과는 별개의 존재다.
그런 것에 승리하려고 한다면
목숨 한두 개 내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도, 방화도 결코 지나친 처사가 아니였다
마인의 상대로는 오히려 모자랄 정도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쩌면 이대로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 혼자만의 목숨으로 끝났을지도 모르는 것이였다
바보 같군, 그런 말이 리처드의 가슴속에서 들렸다
불에 탄 이 자리는 이미 죽음 그 자체
아마 부하들도 탈출을 했을 것이다
그 속에 어떻게 발을 들여놓을 도리가 없었고
자신은 아마도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을 터였다
그러한 리처드의 생각을 떨쳐 버리듯이
보라색 빛을 들고 있던 발자국 소리는 말했다
"미안하다구, 할아범
아름다운 여자와 달콤한 약속을 하고 와서 말이야
늦은 만큼 빨리 끝내고 가야겠어"
그는 리처드에게 무릎을 꿇은 채
마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기묘함 같은 것은 조각도 품고 있지 않았다.
저만치 보이는 등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루기스의 모습을 리처드에게 떠올리게 했다
지금 그를 따르고 있는 엘프의 여왕도 모를 것이다.
메마른 아이로 사물의 이치를 모르고 재주도 없었다
그리고 리처드에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했던 그 시절 그대로였다
◇◆◇◆
영웅 살해
그렇게 명명된 보검은 만족스러운 듯이
자신이 주인의 손아귀에 있으면서 그 영혼을 살짝 흔들었다
일찍이 죽인 그리운 마인의 모습에 그 혁혁한 칼날을 빛내고 있었다.
"자... 아르티아의 권속이여, 어떻게 하겠느냐
다시 한번 전쟁을 할 것인가, 순순히 내 보물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렇다면 기쁘겠군
통제자 드리그만은 당당한 행동으로 머리를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한 두려움도 초조도 없었다
그의 예전부터 변함없는 그 모습은 늠름했다.
주인이 누구누구의 권속이라는 식의 인식은 지극히 기분 나빴지만
지금 이 때만큼은 보검도 그런 일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차라리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사실 주인의 귀엔 이 마인의 말이 조금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보검도,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단지 머리끝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매우 뜨거운 것이 달리고 있었다
그 열이 무엇인지를 보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각했다, 좋지 않다고...
주인이 무의식적으로 말을 꺼내는 것을 보검은 들었다.
"재잘재잘대지 말라구,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잖아?"
말이 나온 직후, 보랏빛의 선을 그리며 보검은 마인의 몸으로 달려들었다
내리친 섬광은 마인의 왼쪽 어깨와 심장을 그대로 도려냈다
육신과 장기를 양단하는 감촉이 보검에 생생하게 휘감겼다
그리고 마인의 피가 순식간에 공간을 더럽혀갔다
단순한 철검이라면
인과조차 비틀어 튕겨내는 마인의 신체도, 이 보검만은 예외였다.
일찍이 마인
거기에 대마도 목 베어 죽인 아르티아의 영혼으로부터 추출된 기적 그 자체
그래서 마인 같은 육체는 이것을 막을 수 없었다
루기스는 그대로 숨조차 쉬는 것을 잊은 듯
한 발을 내디뎌 마인의 장부를 참획했다
드리그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기스의 몸짓이 너무 폭력적이였기 때문
보검이 여러 가지 감정을 뒤섞어 가며 하늘을 가르고 소리를 울렸다
주로 휘둘러져 그렇게 함께 어려움을 물리치기는 것은
보검에게 있어서 단연 최고의 감정일 것이다
지금 이때도 황홀한 것을 칼날 속에 간직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였다
하지만 지금 한 가지, 보검에게 큰 불만이 있었다
그것은 루기스가 휘두르는 칼날이 모두 보검이
가르치는 것과는 벗어나고 있었다는 점이였다
보검이 그 눈을 뜨면서부터 루기스의 칼날은 늘 보검과 함께 있었다
보검이 가르치는 일격을 주인은 휘두르고
보검은 저장했던 모든 관측 기록을 주인에게 주었다
그것은 보검이 느끼는 기쁨 그 자체
나와 주인의 관계 그 자체라고 해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루기스는 그 가르침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아니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였다
그 전신에 넘치고 출렁이는 격정 그대로
오직 흉적인 살의로 루기스는 칼을 휘둘렀다
그렇다, 지금 주인은 몹시 흥분한 것이다
자기가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 짓밟히고 모욕당했다
그것은 얼마나 굴욕인가
그 때문에 분노가 용솟음 친 것이였다
본래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주인은 다르다
그런 멋진 생각이 아니라
더더욱 위험한 것이라고 보검은 벌벌 떨었다
그러니까 좋지 않다
주인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그 존재 이유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다
그것은 때때로 주위의 영웅에게, 때때로 양부모에게
지금은 자신의 스승에게, 한 마디로 남을 위해서야말로
주인은 살길을 택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만약 그것이 상처를 받았을 때
주인은 그 밖의 모든 것이 아무래도 좋아지는 것이였다
즉, 자신의 신체도 신경쓰지 않았다
드래그만은 보라색 검의 폭풍우를 맞으며, 몸을 비틀어 팔을 흔들었다
거창하게 피를 토해내면서도, 그 몸은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에 지닌 권능이 죽음을 허락치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역습은 당연할 것이다
드래그만은 손바닥을 열어
아득한 지하 깊은 대지를 융기시켜 솜씨를 발휘했다
그 축복을 받으면 근소한 땅의 부풀어오름마저
살을 먹는 창으로 탈바꿈한다.
과거에는 수많은 적병의 시체를 그 수법으로 땅에 드러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위한 한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뻗은 오른팔은 세로로 양단돼 살점과 붉은색을 튕겨 의미를 잃었다
그렇게 보검은 한번도 멈추지 않고 드래그만의 목덜미로 달려들어갔다
그것은 아주 작지만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사실 그것은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 루기스와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면 반드시 어딘가에 금이 간다
관절은 무너지고 살과 뼈가 뒤틀려 움직임은 반드시 멈출 것이다
루기스의 몸도 전혀 무사하지 않다
그 온몸이 지금 이 순간을 두고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근육이 갈라지고 뼈도 갈라지고 관절은 여러 차례 붕괴됐다
그래도 여전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마법으로 연결된 몸에
강인한 거인의 피가 순환돼 정령의 은총이 온몸을 뒤덮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을지 모른다
루기스 자신은 분명 언제까지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몇 분...? 아니면 몇 초...?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이 녀석을 단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죽이는 일
베어 쓰러뜨려서 깔아뭉개서, 이 녀석을 없애주겠다
그것이 루기스에게 전부였다.
끝을 모르는 파멸적인 폭력과 멈추지 않는 목적 수행 의지
아마도 그것이 루기스라는 인간의 본질
그것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명의 스승으로
일찍이 제어할 수 있었던 건, 그 스승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없다
단지 스승을 모욕한 존재가 있을 뿐
멈추는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설령 자신의 몸이 무너져 파멸에 빠진다고 해도 말이다
보검은 루기스의 뜻대로 흔들리며 신음한다
젠장할,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속도와 폭위로 압도해도, 드래그만은 이대로는 죽지 않는다
그것을 알면서도 주인은 멈출 수 없었다
스승의 상실은 그에게 있어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였다
단 하나의 호흡조차도 몸에게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였다
순간, 보검은 머뭇거렸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더 이상 머뭇거릴 틈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주인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영락없는 죽음만이 남겠지
"주인, 조금만 참아줘"
보검은 루기스의 손에 들려 잠시 그 궤도를 주인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건 정말 사소한 것으로
이 전투에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루기스가 마음에 그리는 대로의
궤도를 실현한 보검의 행동으로서는, 분명히 이질적인 행위였다
그 위화감에 순간 루기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인의 피를 받은 뺨이 흔들렸다
그 순간 뒷 쪽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기스! 아아, 어쩔 수 없는 내 기사여!"
엘프의 여왕이 맑은 목소리로 말하며
검은 주술을 손끝에서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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