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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08화 - 극소의 세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4장 마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08화 - 극소의 세계 -

개성공단 2021. 4. 8. 20:38







드래그만의 몸, 그 마원을 대가로 태어난 극소의 세계
그 구체에 떠오르는 정연한 색조는 드래그만이
마음에 그렸는 통제세계 그 자체일 것이다

그거는 아주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확실히 외부로 침식과 확대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는 한시도 멈추지 않겠다고, 드래그만 자신이 말하는 듯했다

동포의 소멸과 세계의 현현을 보며
보석 아가토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앗, 떨어진다, 잘 받도록 해 피에르트"



아가토스의 말에 피에르트는 크게 두 눈을 동요시켰다
아름다운 검은색이 물결을 치며 소용돌이쳤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 그녀는 말했지만
피에르트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떨어진다는 건 무슨 말인가, 받는다는 건 또 뭔가
아가토스의 보석에 안겨있는 내게 무슨 짓을 하겠다는 건가


그런 일체의 의문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아가토스는 공중에서 강하했다
피에르트의 온몸에서 대지의 중력이란 놈이 다시 느껴졌다
그것도 서서히가 아니라 급격하게 말이다

이건 그냥 떨어지는 거잖아
피에르트는 순간 그녀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눈동자엔 눈물 마저 글썽일 정도였다
자신의 몸이 반대로 뒤바뀐 광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피에르트는 다리를 중심으로 마력을 전개시켰다
급격한 마력의 이동에 혈관이 끓어오른 듯 달아올랐다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어느새 아가토스는 태연한 모습으로
피에르트의 팔에 작은 몸을 맡기고 있었다
즉, 받아 들이다니... 그런 뜻이였나.




"너 말야, 정말 적당히 하라고!?"




눈 앞에 땅이 다가왔고
큰 중력을 느끼며, 온몸의 혈액이 빠져나가는 듯 했다
피에르트는 안간힘을 쓰며, 두 땅에 팔을 붙였다

순간 두 다리에서 마력이 새어나오며 돌바닥이 솟구쳤다
모래먼지가 주위를 가득 메우며 피에르트의 검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온몸의 골수가
추락과 착지의 충격을 견디지 못해 오열을 터뜨렸다
피부가 팽팽해지고 경련이 났으며 폐는 호흡을 멈췄다



눈을 부릅뜨고 몇 초가 지나서야 피에르트는 스스로 무사함을 느꼈다
확실히 손발이나 등뼈에 저리는 듯한 통증은 있지만
뼈가 부러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손가락을 움직이니, 확실히 반응이 왔다

순간 피에르트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안도의 숨결이 흘러나왔다
높은 곳으로부터의 낙하라고 하는
그런 죽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있자니
피에르트의 팔 안에서 아가토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적당히 하라니, 뭐가?
내가 널 떨어뜨리지 않을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
아무튼 난 드래그만을 상대하느라 피곤하다고
그리고 날 받은게 기쁘지 않아? 말이 참 싸가지 없구나"




피에르트는 눈꼬리를 가볍게 치켜뜨며
누가 싸가지 없냐는 듯 아가토스의 하얀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것이 레우의 몸이 아니라면 아직 보복할 방법도 있을 텐데
역시 지금 상태에선 뺨도 꼬집을 수도 없었다

아가토스는 피에르트의 팔에서 뛰어내리며
땅에 발을 붙이자 다시 드래그만이었던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그 눈동자는 동포를 보던 시선과는 달랐다
이물질 자체를 깔보는 듯한 시선이였다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눈동자만은 분명 마성 그 자체였다


반면 피에르트는 아가토스를 외면하고
이제는 붕괴 직전까지 가는 옥좌 사이를 시선으로 더듬었다
여하튼 거기에는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드래그만과 최후까지 맞서 그 심장을 도려낸 그이
아가토스에게서 온다는 말만 들었지 무사하긴 한 걸까
혹시 드리그만의 반격에 그 살을 상하게 하진 않았을까
아가토스의 열선에 살을 태워버린 건 아닌걸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피에르트는 다리로 부서진 돌바닥 조각을 튕겨냈다.



무사할까? 무사하겠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사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도망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설령 자신의 몸이 으스러지고 살이 떨어져도
등을 보이고 후퇴하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는 그런 남자니까

그의 영혼에 뭔가 새겨진 듯
그는 절대로 도망을 치지 않았다
피에르트가 얼마나 갈망하듯, 그것만은 바꾸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루기스는 아직 이곳에 있을거야

사납게 흩날리는 흙먼지를 날리며
피에르트는 검은 눈을 휙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그 사이에도 심장은 쿵쿵 그 몸을 격렬하게 뛰게 만들었다
억지로 억누르던 불안감이 이젠 가슴속으로 쏟아져 나왔다


생각하기 싫었던,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
만약 루기스가 여기서 드래그만과 맞부딪쳐 절명해 버렸다면...

그 땐...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피에르트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울고 불고 해야 하는가
분노를 이 몸이 시들때까지 휘둘러야 하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방향의 감정을 취해야 할까

어쨌든,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만은 알기에, 그래서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이가 딱딱하고 소리가 나며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어디야, 어디야, 어디있어
피에르트는 그것만을 계속해서 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를 발견했다

두 팔을 내동댕이친 채 쓰러져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루기스와
그를 부축하는 엘디스의 모습
엘디스는 아마도 그에게 바쳐지는 정령의 가호를 강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몸을 잔뜩 루기스에게 기대고 있었으니 말이다


피에르트는 그녀도 모르게 눈썹 근처가 움찔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목숨이 무사하다면, 다음엔 그 병세를 걱정해야 할 거야
그리고 나도 온 정신을 다해야 겠지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슴속에 어두운 생각을 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를 구한는 자가 나이고 싶었다는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의존한다면 그 역시 나와 같았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그것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피에르트는 루기스에게 달려갔다
그를 부축하는 엘디스가 볼을 살짝 풀며 말했다.





"상상 이상의 지원이였어, 피에르트
내 스스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지"




농담 할 여유는 있는 것 같았다
피에르트는 어깨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이 꼬맹이는 활기가 너무 넘쳐, 내 말도 도저히 들어줄 것 같지 않아"





그러면서 피에르트는 가느다란 손가락을 루기스의 뺨에 닿게 했다
의식을 집중하니 과거 그의 온몸에 쏟아부었던 마력이 미미하게 반응했다

거기서부터는 그의 모습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뼈의 모습으로부터 피의 흐름
그 장기의 움직임까지도
그 자체는 정말 기분 좋은 일이지만

대략적인 상태를 파악한 피에르트는 눈살을 찌푸리고 입술을 찡그렸다





양팔은 거의 파괴되었고
신체 곳곳에 구타 자국과 베인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나
무사하다고 할 만한 곳을 찾는게 어려울 지경이였다
마력을 다시 그 흉터에 스며들게 해 복구를 하겠지만
그래도 이 팔은 당분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뭐 치료 동안엔 항상 자신이 필요하게 된 다는 의미니까
아예 안좋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피에르트의 마력에 반응한 듯
영웅 살해라고 명명된 칼이 살짝 흔들렸다




"피에르트, 저거 뭔지 알겠어?
행복을 부르는 장식품이라면 그냥 두어도 좋을 텐데"





루기스가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그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걸 보면
목에 난 상처가 호흡을 어렵게 하는 것 같았다

피에르트는 그의 몸에 기댄 채, 그가 가르킨 것을 보았다

드래그만이 바뀐 구체
그것을 시야에 담은 것만으로
피에르트는 발꿈치 언저리에서 한기가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제정신을 의심하고 눈을 깜빡이며 다시 한번 그것을 바라보았다

구체는 자신들의 앞에서 자리잡고 있었다

크기는 인간,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마력 보유량
자신이 용병도시 베르페인에서 다룬 것보다 더 위
그것이 자꾸자꾸 기세를 더해 확대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런 것이 있을 수가 있는가?
자신이 잘 못 본게 아닌가 해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지만
이것은 실제로 본인들 앞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였다

피에르트가 입술을 열고 응하기도 전에
어떤 목소리가 루기스에게 대답했다.





"저건 세계야, 통제자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
어서 도망치지 않으면 너희도 삼켜지고 말 거야"



아가토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무엇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듯한 소리가
피에르트의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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