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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2화 - 계략은 악한 징표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2화 - 계략은 악한 징표 -

개성공단 2021. 4. 11.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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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깊숙이 앉아
리처드 할아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손가락 끝은, 와인 용기의 겉을 가볍게 덧대고 있었다
햇살의 반짝임이 창을 지나 한 줄기 빛을 실내로 실어 나르고 있다

내가 한 말에 수긍한 거야, 아니면 불만스러운 거야?
할아버지의 표정에서는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치는 있었던 것 같다

한 팔만 남은 모습으로 용하게 팔꿈치를 괴고
나의 대답을 마음껏 생각하고 나서 할아버지는 입술을 열었다
그 모습은 내가 잘 아는 옛날 모습...

넉살 좋고 악덕과 폭력을 중히 여기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 재밌군, 루기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보자
문장교의 국교화니, 왕권 탈취니... 그런거 상관없이
그런 짓을 해서 네가 얻는 것은 뭐지?
고작해야 명예일 뿐 이잖아"




명예란 그저 꾸민 말이다
배 하나도 안 부르는 거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할아버지는 이를 드러내고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었다
그의 얼굴은 당돌한 표정의 빛을 띠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상당히 불쾌한 예감이 들었다
내 살갗이 기묘하게 술렁거렸다

경험상 할아버지가 이런 표정과 목소리를
보여줄 때는 대개 변변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미간 언저리에 작은 통증을 느끼며 
입술에 와인을 적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동시에 할아버지가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나와 네가 함께, 이 나라를 통째로 빼앗아버리자, 어때?"




반사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무슨 소리야 이 할아버지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경종을 치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렷다
입 안에 머금은 와인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와인을 막 삼켰는데도 몹시 목이 말랐다
나는 말문이 막힌 듯 하며, 입을 열었다





"…할아범,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치매라도 걸려버린 거야?"




목소리가 묘하게 쉬어 있었다
그중에서 어떻게든 짜낸 말이 이것이였다

아직도 심장은 쿵쾅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할아범이 한 말에 대한 충격도 컸지만
그 이상으로 이 양반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그런 양반이였기 때문이였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줘
그런 의미를 담아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참 즐겁게 이를 드러내며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못 할 것도 없다
지금 이 왕도를 점령하고 있는 건
내 병사와 네 병사야, 루기스"


"내 병사가 아냐, 문장교 병사지, 나를 따르는 놈 따윈 없어"



그런가, 하고 할아버지는 훌쩍 일어나 한쪽 팔을 창가로 걸었다
시선이 어느새 밖을 향하고 있었다
햇빛이 할아범의 백발에 색을 띠었다

할아범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 말하길
군사란 왕이 아니라 장수가 되는 것이라고
이상과 교의를 이야기하고 후방에서 모두를 가르칠 지도자보다는
전선에 서서 함께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낸 장수를 병사들은 신뢰하는 법

함께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대화한 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것이 바로 병정이라는 게 할아범의 말이였다

등 뒤에서 피에르트가 몸을 내밀며 말했다




"그렇게 간단하다고 생각되진 않군요
문장교병은 독실한 신자들 뿐이에요
당신이 아는 병정의 상식과는 다르지 않을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적의까지는 아니지만 응분의 감정을 말에 싣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시를 머금은 소리에 대해
할아버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하지만 군대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있는 건, 분명 이 녀석이야
루기스, 네가 움직인다면 그 성녀는 틀림없이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 누가 군사를 거느리고 있느냐 따위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일 것이라고 할아범은 말했다
오래 전부터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부드러운 말투였다

아무래도 할아범은 나한테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거기에 어떤 이익이나 의도가 얽혀 있는지까지는 읽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술자리에서의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첫째로, 문장교가 위에 서는 한
네가 가장 싫어하는 신이라는 녀석이 따라올거야
그리고 성녀님과 공주님은 대재앙 진압에 적극적일까?
누구든 유리한 카드를 쥐고 싶어하는 건, 당연지사인데?"




양손의 손가락을 꼬아 쥐었다
땀이 손바닥을 덮고 있었다
정말 싫은 영감이야
이쪽의 찔리기 싫은 곳을 정확히 잡아오니 말이야

그야 물론, 대재앙을 스스로
진압하고 싶은 것은 세력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자기 성에 직접 불을 지를 때까지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어떻게든 죽더라도 어떻게든 최후까지 살고 싶다고 버둥거릴 뿐

세력이란 늘 그런 법이다
모든 세력의 목적은 자기이익의 극대화이며,
쉽게 버릴 수 있는 세력이란 없다

마티아나 필로스가 지금 이 왕도를 얻고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왕도 근교의 세력을 사수할 수 있도록 움직일 것이다
문장교 단체로서는 그것이 분명 최선이니까

눈이 어쩔 줄 몰라 흔들렸다
어금니에는 어쩔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네가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네가 전력을 가질 수 밖에 없어
루기스, 언제나 힘이란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빼앗는 수 밖에 없다고... 예전에 가르치지 않았나?"


"나보고 그들을 배신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할아범?
어디의 무대 배우라면 아주 박수 갈채를 받겠어"




발바닥으로 마룻바닥을 딛으면서 손가락을 작게 튕겼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할아버지를 보았다
몸속에 넣어두었던 술이 모두 어디로 날아간 느낌이였다

할아범은 일체의 빈틈없이 대답했다





"배신할 필요는 없어, 네가 위에 서라는 거야
말했잖아, 이대로라면 너는
누군가의 손바닥에서 춤추는 것만으로 끝날거야
너의 인생은 누군가의 장기판이였나?"





성녀 마티아로부터 문장교의 주도권을 빼앗고
그 뒤엔 공주와 혼인이라도 하면 된다
그러면 국가 주인의 지위는 굴러들어 올 것이다
대의와 실이 모두 눈앞에 있다는 것

햇빛을 받아 외팔이 되어도
여전히 건재한 야심을 눈에 빛내면서 할아범은 말했다

저린 손가락으로 이마를 누르면서 할아범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 눈빛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투는 전혀 없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입 밖에 낸 것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할아범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농담하는 거지, 할아범



하려던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입술이 바짝 말라 제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꾸해야 할 것인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북쪽으로 피신한 국군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근교도시의 통치는, 제국에의 대응은?
그런 의문은 얼마든지 나왔지만
말로 표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할아범의 말을 들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 주변도 전부 생각한 다음 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 틀림없어
그렇다고 섣불리 의심을 내려놓다간, 모두가 말려들어 끝장이 날거야

입술을 축이듯 다시 와인을 입에 대고 말했다




"대체 왜 나한테 그런 걸 전하는 거야?
할아범... 할아범은 목적이 뭐야?"


"야망, 항상 야망은 일의 목적이 될 수 있지
그게 선이든 악이든 말이야"





할아범의 눈을 뜬 동시에 귀에 큰 소리가 들렸다
마루판을 쿵쿵 구르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였다

전령병의 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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