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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1화 - 왕도의 용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1화 - 왕도의 용도 -

개성공단 2021. 4. 11. 05:03

 

 

 

 

 

그만뒀으면 좋겠군

 

 

 

리처드 퍼밀리스는 눈썹에 힘을 주고

그런 일말의 생각을 가슴속에 지웠다

눈앞에는 본래의 목적이 되는 제자인 루기스

그리고 쇠사슬이라도 감긴 것처럼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주위를 에워싸는 여자들이 있었다

 

기사 카리아=버드닉

마법사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

그리고 엘프의 여왕인 핀 엘디스.

 

그 광경만 본다면

루기스가 영웅 호색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리처드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만한 것을

3명이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모두들 눈빛이 정말 위험했다

단지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여자의 그것이 아니였다

그보다도 뭔가 더 무거운 것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져온 술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리처드는 거대한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댔다

그러고는 손주전자에 포도주를 기울이며 말했다

 

 

 

 

 

"......남자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단 말인가?"

 

 

 

 

하얀 수염을 출렁이며 불쑥 그렇게 말하자

여섯 개의 눈동자가 강하게 반응을 보이며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그 색조는 적의에 가까웠다

아니 원래 적장이었으니 그 반응이 틀린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묘한 어둠을 동반한 은색이 출렁였고

카리아 버드닉이 리처드의 눈을 사로잡으며 말했다

 

 

 

 

"들어 줄 수 없는 제안이로군

리처드 퍼밀리스, 일시적인 동맹일 뿐인

네놈과 루기스의 일대일 밀담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게다가, 라고 카리아는 묘하게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이전에 군 회의장에서 만났을 때는 본 적이 없던 표정이었다

 

 

 

 

 

"게다가 이제 루기스는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어

그렇다면 특별히 남몰래 숨길 필요 없잖아?"

 

"......괜찮아, 할아범

할아범, 그 쪽이 괜찮다면 상관없어"

 

 

 

 

그 말을 듣고 문득 루기스 쪽을 바라보니

뺨을 실룩이며 시선을 숙이고 있었다

리처드는 진의를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진실이기는 한 것 같았다

 

마법사인 여자와 엘프의 여왕 폐하도 같은 이유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지조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 정도의 여유는 있어도 상관없다고 해야 하나

 

셋 다 루기스가 선택한 여자일 테니 이렇다 저렇다 말은 안 하겠지만

지나치게 주도권을 잡힌건 아닐까 하고, 리처드는 입을 일그러뜨렸다

 

살짝 마른 목에 와인을 흘려 넣으며 리처드는 소리를 냈다

짙은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뭐 그럼 진행하도록 하지

이 왕도의 용도에 대해서도 말이다, 루기스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 충분한 가치가 있단 말이지"

 

 

 

팔아 치울 것인가 아니면 다 소비할 것인가, 그 중 하나 말이야

 

 

 

리처드가 그렇게 말하자 무슨 소리냐는 듯

루기스가 의아스러운 듯 눈을 흘겼다

하지만 말참견을 하는 것 같은 일은 하지 않고,

턱을 당기고 말의 계속을 재촉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대충 알고 있어

그 첩의 공주 전하를 잘 부려먹을 생각까지 말이야

그래서 그 후엔 어떻게 할 것이냐, 루기스"

 

리처드의 노회함을 포함한 눈이

루기스의 표정을 들여다보듯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 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색이 담겨 있었다

 

 

 

 

 

 ◇◆◇◆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할아범이 한 말을 입속으로 되새기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 말이 보여주는 진의를, 눈 속에서 살피고 있었다

 

할아범의 얘기로는

내가 필로스 트레이트를

갈라이스트의 옥좌에 앉혀 왕권 찬탈을 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조금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그 뒤란 뭐냐

그 이전에, 할아범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가져온건가?

 

정치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것은 내 분야 밖이다

마티아와 안, 그리고 필로스 등이 앞장설 것이다

 

할아범이 가져온 와인으로 입술을 적신 뒤 입을 열었다

옆의 카리아나 피에르트, 엘디스는 참견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입회하고 있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별로 특별할 건 없어

그녀가 적법한 공주가 되고

그 후엔 이 도읍에서 왕권을 행사하는 거야

문장교는 대성교로 위장해 활동한다... 그것 뿐이야"

 

 

갈라이스토 왕국의 주변부는 아직도 비옥한 대지다

오히려 그러기에 왕도라 할 만하다

 

이 왕도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면

문장교는 지금처럼 요충도시를 억제했을 뿐인

소규모 조직은 아니게 될 것이다

대륙에 자리한 한 세력으로 크게 도약하기 위한

분명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기반을 기초로 마수 재해 토벌의 기두가 되어

각국과 제휴해 이 대재해를 결착한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최대의 목적이였다

 

 

 

당연히, 말로 하면 간단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안이한 길도 아니고, 아직 몽상에 가까운 일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갈라이스트 왕도가 함락되고

국군이 북쪽으로 도망간 지금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가령 무슨 일이 있어도 대성당

아니, 아르티아 놈에게 주도권을 쥐여주는 일만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

저속한 말을 좋아하는 그 녀석은...

또 무슨 시시한 각본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인간을 희생시키는 그런 엄청난 짓을 말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을 부정하고

그 손에서 알류에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일부 잘라내면서 그렇게 말하자

할아범은 관자놀이에 주먹을 갖다대며 무표정한 채 대꾸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루기스

네가 이 나라, 갈라이스틀 삼키고 뭘 할지 묻는 거야"

 

 

 

 

할아범의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입술이 다물어졌다

눈꺼풀이 크게 뜨며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문장교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뭐라고 대답할까 하고,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할아범의 눈은 이제 나밖에 보지 않았다

분명히 카리아도, 피에르트, 엘디스도 시야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포도주가 아직 절반 이상 담긴 그릇을 탁자에 놓고는

정면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건 나 같은 서민이 짊어지기엔 너무 큰 얘기잖아?

성녀 마티아나 공주 전하의 영역이라 생각하는데"

 

 

"이 멍청아, 난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게다가 그런 입으로 도망칠 수 있는 지점은 이미 넘어버렸어

생각이 없다면, 넌 누군가에게 적합한 장기 말일 뿐이야"

 

 

 

 

성녀님인가, 공주님 전하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의 장기말 일지도 모르지, 하며

할아범은 주위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옆에는 카리아와 엘디스 등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태도야말로 어느 때보다 조용했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으스스했다

 

나는 턱에 손바닥을 대고, 입술을 눌러 숨을 삼켰다

이 할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다

 

결국 이 후, 대재해가 끝난 뒤의 일

그 뒤에 무엇을 이룰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없으면, 그냥 물러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한테 무슨 수가 있을까?

사고를 머리부터 끝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그래... 알류에노의 손을 잡는 것과

그렇게 해서 헤르트 스탠리와 같은 영웅이 되는 것

그것 이외에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조차 안해봤다

 

 

 

 

대재앙의 후... 순간 말을 가다듬고 나서 입을 열었다

 

할아범의 눈은 똑바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용서해달라고... 거창한 말을 할 만한 교양이 없다는 걸 알 텐데

 

 

 

 

"새삼스럽게 공손할 말을 늘어놓을 생각은 안하는 거야?

예전처럼 아직도 스승인 체한다면

다시는 고국으로 못 돌아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나란 놈은 변변치 않은 무식한 놈이니 말이야"

 

 

 

 

볼을 치켜올리고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할아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에 와인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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