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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19화 - 쳐다보는 자들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19화 - 쳐다보는 자들 -

개성공단 2021. 4. 11. 03:08









"참 잘해주었군
영웅... 아니, 이제는 대악당이라고 불러야 할까? 응?"

실내에서, 즐거운 듯이 은발이 흔들렸다
은색의 눈은 고혹적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그 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있었다
그것도 묘하게 센 힘으로 말이다


뭐야, 내가 뭘 했다고?



항의할 겸 눈을 가늘게 떴지만
카리아는 입술을 짖궂은 고양이처럼 치켜올리며 뺨에 홍조를 띠었다

예감이 너무 안 좋았다
이런 얼굴을 하는 이 녀석은 대개
변변한 말을 꺼내지 않는 법인데 말이다
아니, 오히려 평소에도 별거 아닌 소리만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뺨을 실룩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은 채 입을 열었다




"비꼬는 소리는 이제 질리는데 말야
뭐야? 술 상대라도 해주길 바라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하튼 일찍이 동경의 생각까지 품었던
기사님에서 영웅이니 뭐니 하는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카리아에게 그런 생각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으니
마치 조롱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내 심성이 진심으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비틀려 있는 것도 있었지만
역시 나는 카리아의 모습에 아직도
예전 세계의 그녀를 겹쳐있고 있는 것이였다

그 성질이 심하게 달라졌다고는 해도
머릿속에 눌어붙은 기억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벗겨져 버릴 수 없는 법
우연한 순간에, 그리고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였다

내 말에 반응한 듯 엘디스가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뭔가 거리를 좁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에고, 조금 속상한 걸?
우리는 볼일이 없으면, 널 보러 오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
그런 소릴 듣자니, 원망해 버릴 것 같은데"




엘디스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서늘한 찬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은 꽤 그녀들의 말에 난 가시가 피부에 와닿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심장을 한 번 찌를 만큼 예리한 것은 아니였지만
톱날처럼 조금씩 이쪽의 살을 깎아내는 것 같았다
요약하자면, 일단 뭔가 안좋은 느낌만은 분명했다

엘디스는 내가 얼굴을 굳힌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은 농담이야, 농담
실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말이야
문장교가 왕도를 손에 넣은 지금, 더더욱 들어보고 싶은게 있어"




그렇다면 반쯤은 진심이냐고 거꾸로 묻고 싶었지만
말을 하는 엘디스의 푸른 눈이 너무 똑바로 이쪽을 쳐다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다물어버렸다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데 눈은 묘하게 깊은 빛을 띠고 있었다
농담이라든가, 그런 것을 전혀 말할 것 같지 않은 눈초리였다

이상한걸, 마인 드래그만을 토멸한 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을 텐데
왜 엘디스는 이처럼 불안한 분위기를 살갗에서 뿜어내는 것일까

나는 부드럽게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눈앞의 식사에 손을 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엘디스의 말을 이어 피에르트가 검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루기스, 너는 문장교의 영웅이자, 이미 상징적인 존재야
네가 쓰러진 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빙빙 도는 말이었다
이쪽이 도망치려고 하는 장소를 미리 박살내려고 하는 듯한
그런 말을 모두들 하고 있었다

역시 뭔가 너무 싫은 예감이 들었다
목구멍에 뭔가 무거운 침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어서 피에르트는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면서 그럴지도 모르겠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사한 미소로 피에르트가 속삭였다.





"그럼, 이제 마인이나 대마 앞에 나서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겠내?
이제 너는 수호받아야 할 입장이니까 말이지?"




그 말은 부드럽게 발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강렬한 압박으로 느껴졌다





 ◇◆◇◆






카리아는 전례 없이 은색 눈을 날카롭게 뜨고 정면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날카롭게 하며, 뭔가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 눈은 동요를 드러내며 둥글어지고 있었다
그녀 또한 피에르트의 질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였다

카리아는 다시 눈에 힘을 주었다

성녀 마티아, 그리하여 루기스가 이끄는 문장교는
이제 세상의 조류의 단초를 잡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단순히 세력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갈라이스트 왕국 왕도를 함락시킨 마인을 토벌하고 도읍을 손에 넣었다

심지어 주변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
왕족까지도 옹립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는 아직 불명확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 쉽게 붕괴되는 조직은 아니게 된 것이다



갈라이스토 왕국... 아니, 대성교에서조차 분명한 위협이다
대성교와의 화해가 있을 수 없는 이상
어떻게 발버둥치든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맞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마인, 대마와의 싸움에서도 도망친다던가 하는
그런 선택지는 없어진 것과도 가까워졌다

카리아는 생각했다
그것들은 틀림없이 가혹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지금까지 대성교나 마성이 방심한 것 같은 것과는 다르게 되었단 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카리아는 받아들였다
루기스가 영웅의 길을 택한다면
진심으로 그 결단을 기뻐하고 그것을 위해 몸을 희생하자
그를 위해 얼마든지 길을 열어 주겠다고 말이다

자신은 그의 방패이니까




그러나
요즈음 그는 영웅으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무모한 자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유혹하듯이 그 기세를 더하고 있는 것이였다

상식을 벗어난 존재인 마인과 정면으로 칼부림을 하는 등의
일을 한 시점에서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지금 여기에 그의 목숨이 있다는 것은
수많은 기적의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엔 그런 기적이 없을지도 몰라
카리아나, 피에르트 그리고 엘디스까지 모두 그런 생각을 품었다

영웅이 되려 하지만 너무 무모한 짓을 멈추지 않는 이 남자




카리아는 그 자체에 불만을 품진 않았다
인간이란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을 내딛는 일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언젠가 어딘가에서 분별을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주위의 사람들이 잘 가르쳐야 할 것이다

카리아는 볼을 치켜올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냐, 루기스
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냐
알겠다, 싫다 그 중에 하나만 하면 되는 것이다"




카리아는 자신의 눈을 모르는 사이에 크게 뜬 것을 깨달았다
카리아는 한 가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일이 끝나도, 루기스가 아직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면
그렇게 자신과의 약속과 말을 경시한다면...

이젠 거인인 내가 수단을 선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길을 벗어나는 때가 있다면 그건 지금일거야...

운명이라는 것은 결심 전에 고개를 숙이는 법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할 생각은 카리아에게 없었다
최상의 사랑이란 이해심이라고 하지만 이것만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래서 깨어난 그날 듣기로 마음먹었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이처럼 긴장을 먹은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카리아의 기억엔 그런 것은 없었다



어느새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는 것을 카리아는 깨달았다
루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이야
나에겐 그것밖에 쓸모가 없어...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텐데"





카리아는 루기스가 애써 내뱉는 듯한 말을 내치듯이 말했다






"루기스, 너는 누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냐?
우리를 똑바로 보고 말하라"






은과, 검은 색. 그리고 푸른색의 눈의 시선이 한 인간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수단을 가리지 않을 만큼, 결의가 넘쳐나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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