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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06화 - 이름 없는 신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06화 - 이름 없는 신 -

개성공단 2021. 5. 3. 13:16





유사 태양 내부
독극물 쥬네르바의 근원이 만들어낸 극소 세계가 거기에 있었다

눈동자에 비치는 짙은 녹색에 농밀한 마의 기색
인간 문명 등 조금도 보이지 않고
마성에 의한 부족국가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일체의 질서도 법도 없고
오직 신앙과 약육강식의 이치가 있을 뿐이다
미성숙한 이 세계는 혼돈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세계의 중심에는 흙과 진흙으로 쌓아올려 만든 신전이 있었는데

신전 사방에는 뾰족탑이 솟아 있고
무엇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는 미완성의 미와 정밀한 장엄함이 동거했다

주변의 장대한 수목을 내려다보며 신전은 하나의 신을 모신다
이제는 이름조차 잃은 위대한 태양과 바람의 신을...





"많이 그립군... 이것이 네 이상적인 세계인가?"






원전이란 가진 자의 근원적 소망으로 이루어진
.그래서 원전으로부터 창조된 세계는 이상 그 자체
드래그만이 통제세계를 원했듯이 쥬네르바는 이의 혼돈된 자유를 갈망했다

신전 안은 어둑어둑했다
광원은 천장에 만들어진 십자 모양의 창문으로 햇빛이 비칠 뿐이였다
하지만 그 약간의 빛이 만들어 내는 음영이
이 자리에 모종의 신묘함을 주고 있었다

쥬네르바는 신전 안에 서서 말문을 열었다
사나운 눈이 지금 이때만큼은 구릿빛 용 샤드랩트만 포착했다





"그렇지, 약자는 양식이 되고 강자는 또한 강자의 양식이 된다
거기엔 질서란 없는 법이야, 마성이란 그런 것이지
자유인 것이야말로, 마성의 증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쥬네르바의 원전이란 곧 끝없는 자유 그 자체
세계에 질서는 없고, 법전은 없어지고
규율은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원시세계
신과 기타 생물이 가장 가까웠던 시대




"게다가 마력이 희박한 세계라니 질색이야."





큰 새 얼굴이 장기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농밀한 마력에 맞아 그 몸에 입은
큰 상처가 복구를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다
쥬네르바의 얼굴과 거기에 체구가
서서히 변모하고 있는 것을 샤드랩트는 눈치채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과거의 그에게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샤드랩트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말했다





"쥬네르바... 이제 신화의 시대는 끝났어
무리를 해서 신의 자리를 되찾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톱니바퀴의 의도에 놀아난 것만은 아닌지
그러면서 샤드랩트는 쥬네르바의 눈동자를 보고 뒷걸음을 쳤다
모래가 그들의 발밑을 흩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서로에게 그것은 이미 거리라고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발만 뛰면 그것만으로 상대의 목구멍에 손이 닿아 버릴 테니 말이다

샤드랩트라고 해서 도저히 도망칠 수 있는 게 아니였다
아니, 쥬네르바를 상대로 도망칠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빈틈을 찾듯 눈을 이리저리로 흔들었다

쥬네르바는 그 모습조차 강한 분노를 느꼈다
감정이 얽힌 목소리를 신전에 울리며 그는 말했다





"샤드랩트... 이 구릿빛 용...!
질문 하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다
지난 수백 년동안 계속 묻고 싶은게 있었지
대체 왜 그때 도망간 거지? 아군도 모든것도 버리고 말이야!"





언제 일인지 따질 것도 없었다





인류영웅 아르티아와 대마 브릴리간트
그리고 용족과 쥬네르바와 같은 마인, 권속 모두가 싸운 대전

그리고 샤드랩트가 벌레로 둔갑해 달아난 전쟁이였다



왜?





샤드랩트는 전쟁이 벌어진 날
전선에 서겠다고 말해놓고, 도망가버렸다

이 때문에 전선은 대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틈을 타 공세를 개시해버렸다

그 결과 대지는 용의 피로 물들었고
쥬네르바가 통괄하는 마조들도 대부분 생명을 내던지게 됐다
브리간트가 있었기에 전쟁터라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지만
일부는 학살에 가까웠다

그 물음에 그녀는 시원시원하고 가볍게 대답했다




"무서워서 그런거 아니겠어?
게다가 아르티아 같은 괴물과 대립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무서웠다



어리석다





쥬네르바는 가슴이 멍해짐과 동시에
눈시울과 머리속이 심한 열을 갖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그것을 쥬네르바는 긴 시간 속에 생각하고 있었다
뭔가 이유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배신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단지, 무서웠다고 말했다

순간, 분노가 빗방울이 되어 쥬네르바의 마음을 내리쳤다
부리는 더 이상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장기가 몸에 휘감겨 점점 모양을 바꾸고 있었다





"...브릴리간트가 있었잖아!
대체 왜 너는 항거를 하려고도 안했지?
왜 그냥 종속의 길을 택한거야!!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었을 텐데!!"




샤드랩트는 어깨를 움츠리며 응했다





"브릴리간트의 힘이 쌨기 때문이랄까?
강한 자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법이야"


"...바보같은... 샤드랩트! 샤드랩트! 넌 변했어!"





쥬네르바가 외침과 동시에 그 체구가 변모의 정점을 이뤘다
날개는 장대하게 자라고, 체구는 더 이상 조류의 것이 아니게 됬다

말하자면 그것은 거대한 뱀이었다
이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는 사람조차
얼마 남지 않은 날개 달린 대륙뱀

그것은 이름 없는 신이였다





"이제 그만둬! 네가 그런 짓을 해서 뭘 어떻게 하겠어? 의미가 없잖아!"





샤드랩트는 알아본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틀림없는 그가 신이었을 때의 모습이 장기와 함께 그곳에 있었다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의 압력은
마인이었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도시 하나쯤 그가 입을 열면 잠잠하게 만들 정도의 힘이 있었고
그가 시선을 강화하면 그 자체로 마족마수를 사살할 수 있을 법한 힘이 있었다

그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앞에 두고
샤드랩트가 생각한 것은, 몹시 슬프다고 하는 것이였다

지금 그는 신의 힘을 되찾았다
그것은 이 이상 세계의 영향도 있고
아마 저 톱니바퀴의 인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원전을 이용했다고 해도
지금 이 시대는 그가 신으로서 있기에는 너무나 무른 시대였다

그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더 이상 알 수 없다

비장한 표정을 짓는 샤드랩트
그리고 대면하고 있는 이름 없는 신도 분명 비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 없는 신은 어째서? 라고 묻는 것 같았다

왜 그 때 도망친거지? 왜 그 때 너는 굴복을 감수한거지? 이상하잖아?

왜 나와 같은 선택을 해주지 않았는가?





이름 없는 신의 포효가 신전을 준동했다
진흙과 흙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빗방울이 흩날렸다

날개 달린 대륙뱀이 커다란 턱을 벌리고
샤드랩트를 삼키려고 씩씩거렸다
입안에 퍼지는 것은 허공 그 자체
압도당한 자는 그대로 아무것도 되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일찍이 대륙 하나 삼킨 거대한 뱀이 지금 하나를 향해 
모든 힘을 쏟아부으려고 하고 있었다

샤드랩트에겐 탈출구는 없었다
한순간 피할 수 있었다고 해도, 다음에는 소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눈앞에까지 그것은 이미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용의 권능을 가지고도 도망은 불가능하다

샤드랩트는 그저 슬펐다

그가 자기를 토멸하려고 그런 수단을 취하는 것이 너무나 슬펐던 것이다





"――"



그의 옛 이름을 샤드랩트는 불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의 해후가 끝났다

그것은 승부 따위가 아니었다
단지 약자가 강자에게 먹힐 뿐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마치 이 세계가 이상으로 삼은 자유인 땅





"나는 네가 아기일 때 부터 몇 번이나 가르쳤었잖아"





무너져가는 신전 안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구릿빛 용이 대륙뱀의 심장을 물어뜯고 있었다





"마성은 이 세계에 태어난 이상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숨쉬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모든 것은 투쟁에 달려있다고..."





인간의 모습을 한 구릿빛 용의 눈동자는 지독히 냉철했다
그녀의 입안에서 심장은 아직 살아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송곳니로 인해 곧 짓눌러졌다





"네가 나에게 독을 썼다면, 난 수백년 안에 죽었을텐데
그 동안 도망쳐 다녔다면, 날 이길 수 있었어"





그 승기를 버리고 어이없는 단기 결전에 도전하다니 참으로 우스웠고
동시에 그것은 샤드랩트에겐 뭔가 서러웠다

대륙뱀은 이제 생명을 잃을 것이다
피를 온몸에서 뿜어내면서도 그래도
샤드랩트를 바라보며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어째서... 대체 왜..."





그것은 조금 전의 질문의 계속이라고 샤드랩트는 받아들였다
그녀는 대륙뱀의 거구 위에서 다리를 꼬며 말했다




"말 그대로야
괴물 같은 녀석에게 도전하는 건 어리석어
게다가 인간은 백년 후면 죽잖아
왜 위험을 무릎쓰고 싸우려고 하는 거야?"




브릴리간트 처럼 막강한 힘을 숨기지 않고 휘두르는 존재는
언젠가 그 이상의 존재와 대립하여 치명적인 상처를 입늗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영원히 번영하는 자는 없고
모두 언젠가는 망할 운명에 처해버린다






"이 세상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오직 승리 분
나는 그것을 얻지 못할까 두려웠던 거야
패배해서 죽는 것이 두려웠고
완벽은 모든 것에서 우선순위를 얻잖나...
긍지도, 존엄도 패배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으니까"





쥬네르바는 우울하게 말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결국 이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무너져가는 신전, 그리고 한 세상의 끝을 보며 
샤드랍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쁜 일은 단 하나
이로써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다시 줄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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