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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08화 - 깨어난 신화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08화 - 깨어난 신화 -

개성공단 2021. 5. 3. 13:55





인류군 좌익
거인 카리아의 강력의 진군과
레우가 가져온 군세에 앞뒤에서 끼어든 마군은
더 이상 군으로서의 체면 따위는 유지하고 있지 않았다

카리아가 검붉은색 대검을 한 번 휘두르면
그만 절규가 터지고 사나운 본색을 남긴 것일수록 먼저 죽어나가기만 했다

본능에 잠든 겁에 질린 자는 정신없이 가도를 달리다가
조그만 틈을 찾아 달아나거나 피와 살이 되어 땅을 더럽혔다

그것은 싸움 따위가 아니었다
찌부러뜨리는 자와 찌부러지는 자가 있을 뿐이었다

군과 군의 전역으로 본다면 인류의 압승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내듯 마군은 참획되고 있었다

병사들의 눈동자에는 사나움과 함께 승리의 글자가 떠올랐다
일부는 미소조차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가장 먼저 그걸 알아차린 것은 지휘관인 카리아였다.





"……뭐야, 이건"




묘하게 목이 멨고
오한이 고체가 되어 온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적은 이미 뿔뿔이 흩어졌고 레우와 카리아의 군세는 합류하기까지 했다
좌익의 승리는 결정적...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었는데

그녀의 손끝이 몹시 떨렸다




"카리아님, 무슨 일이십니까? ...땀이"


"...땀?"




부관이 그런 말을 들을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이마에서 땀이 뚝뚝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온몸은 놀랍도록 차가웠다
땀이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열이 빼앗겨 가는 듯 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
아니... 한 번... 단 한 번 있었어 



프리슬란트의 대신전
황금의 여인, 신령 아르티우스

떠오르는 것은 세계가 그대로 떨어진 것 같은 존재감
그녀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위로 향했다
카리아는 자신이 지금 서 있다는 사실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 끝내 나와버렸군, 그 반응이라면 눈치챈건가? 되게 예민하내?
뭐 어찌됬든 이미 늦어버렸군, 어쩔 수 없는 법이야
누구나 자기가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 건, 이미 늦어버린 후니까 말이야"




주위를 짓누르는 듯한, 그러면서도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목소리였다
카리아에게는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레우의 목소리에 가깝지만 전혀 다른 목소리

머리를 붉게 물들인 마인 보석 아가토스는
카리아의 발밑으로 다가가 말을 이었다




"마인들을 처치하고, 피에르트를 되찾았으면 했는데, 큰일 났군
그거 이제 아무도 막아낼 수 없을 거야
그야말로 아르티아라도 부활하지 않는 한 말이지
갑자기 그녀가 그리워지는 군... 구역질이 날 정도로..."





평소 아가토스의 장황한 말투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말투로 느껴졌다
그녀라고 해서 결코 냉정하지는 않아보였다

오히려 그녀의 그 굳은 표정이 말보다 더 와닿는 것 같았다


카리아도 아가토스도, 모두 볼버트 왕궁
그 안쪽에 진좌하는 거대한 산을 보았다

저기에 뭐가 있지?...라고 묻는 것은 더 이상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대마 브리릴리간트"





어느 쪽이 말했는지는 상관없다
어쨌든 인류가 두려워하는 신화 시대의 괴물의 기색이
거기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





구릿빛 용 샤드랩트가 그 몸을 녹아내린 햇빛에서 새어나왔다
이제 독극물의 이상세계는 사라지고 한몸의 마 만이 거기에 있었다
더 이상 마인이 있었다는 기색은 없었다

순간 샤드랩트는 코를 킁킁거렸고 입안에서 작게 혀를 찼다

진하고 깊은, 코가 저릴 정도의 마의 향기
차마 이 마를 얇은 시대에 맛볼 수는 없는 것이 있었다

젠장, 무슨 일이 일어났군, 그 짐작이란 단 하나

문득 고개를 돌리자 가도에는 그가 있었다
마군은 흩어지고 인류군은 재편 중에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궁궐과 그 뒤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빨리 왔내? 오랜만의 만남은 어땠어?"






루기스는 샤드랩트를 돌아보지도 않고 등을 보이며 말했다

그가 쥬네르바로부터 어디까지 듣고
어디까지 살폈었는지 샤드랩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그의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그것을 향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판단했다





"무... 무서운 용이 나와버렸지? 난 도망칠거야, 넌 갈거야?"






어깨에 올려놓은 마검을 쭉 뽑으며 루기스가 말했다
별로 긴장하고 있는 모습도 없어보였다




"어, 뭐 그렇지, 갈 거야"





샤드랩트는 한숨조차 내쉴 뻔했다
마인이 되어 조금은 마성다워진 것인가 하면, 전혀 변함이 없었다

브릴리간트에 맞선다는 것은, 주사위를 던진다는 것
다만 승산은 어디에도 없고 어떤 면이 나오든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결국 그는 어리석은 모습 그래도
샤드랩트는 막말을 하듯이 입을 열었다




"브릴리간트는 신화 시대에 있었던 자야
원전만 가지고도 될 상대가 아니라고, 죽고 싶으면 알아서 해!"





이 말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샤드랩트는 생각했다
어차피 루기스도 승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고
그래도 안 갈 수는 없다고 대답한 것일 것이다

정말 하찮은 일이었다
완벽이야말로 전부인 샤드랩트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장 모멸할 만한 행동이였다

루기스는 그저 등을 보인 채 말했다





"어이... 내가 설마 이길 수 없는 승부를 한다고 생각해?"



"……응?"





발길을 돌리려 하는 순간 샤드랩트는 엉겁결에 이완된 목소리를 냈다
루기스의 말이 몇 초가 지나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긴다... 뭘로? 브리간트에게? 미친 놈인가?



그런 문답을 샤드랍트가 가슴속에서 이뤄낸 순간
루기스는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검이 흔들리며 허공을 가볍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짜피 한 번 무덤에 들어갔던 용이잖아? 그럼 이번에도 죽이면 되는 거잖아"




진담으로 하는 소린가
붉은색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샤드랩트는 무심코 루기스를 쳐다봤다
정말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루기스의 진홍색 눈동자가 곧바로 샤드랩트를 포착했다
도저히 마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같이 있어 줘, 샤드
그 놈이 살아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잖아
그렇다면 죽여버리면 되는 거야
그저 날 데려가기만 해주면 돼"






그것은 뭔가 들어 본적 있는 말이였다

샤드랩트의 긴 생애에서도, 브리간트를 죽일 수 있다라고 선언한 존재는
루기스를 포함한 단 두 명... 그것도 처음은 인간이었다

찬란한 황금 같은 인간






"당신은 저를 인도만 해주면 되요, 사악한 용을 죽여줄테니까"





그리고 그녀는 분명히 그것을 이뤄냈다.



그때도 이런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샤드랩트는 생각했다
그녀는 머뭇머뭇한 뒤 입술을 삐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겠지?
나는 그것에 접근하고 싶지는 않아"


"그걸로 됐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해버릴테니까"



약간의 위험은 있지만
그래도 브리간트가 죽는다면, 그 정도는 못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루기스라는 마인이 죽는다고 해도

샤드랍트에게는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자가 또 하나 줄어들 뿐이였다
그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알겠어"





두 팔을 벌리며 샤드랍트는 그렇게 말했다
눈을 뜬 용의 포효하는 소리가 그 귀에 들려올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눈동자를 뜬 괴물에 접근하는 것이다
샤드랩트는 결코 루기스를 믿는 법이 없었지
그래도 주사위를 던져보는 기분 정도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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