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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2화 - 푸른 머리의 신앙인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2화 - 푸른 머리의 신앙인 -

개성공단 2021. 5. 11. 02:03






리처드가 자신의 상징인
검은 검을 뽑아 들며 발레리로 칼을 돌렸다
눈동자 색에 속임수는 없었고, 표정에도 탁함은 없었다

찬바람이 몰아치고 등 뒤의 숲이 술렁거리는 가운데
발레리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적대의 자세를 드러낸 자가 눈앞에 있는데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비정상이였다
전투자로서는 치명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소용돌이치는 것은 단 하나




바보같군, 어째서라는 감정뿐인가?
같은 말이 자꾸 가슴속에서 반복되었다


리처드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적으로 돌아설 줄은 알지도 못했다
지금은 다만 엇갈림과 운수에 따라
세력만 달리하고 있을 뿐
언젠가 다시 같은 길로 되돌아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에게 칼을 겨누었다
루기스의 모습을 자기도 모르게 발레리는 눈에 떠올렸다

감옥 벨라에서 서로 만났을 때
아직도 그 남자는 발전 중이였다
여러 차례 아수라장을 통과했음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 뿐... 그저 그만한 인간이었다


그런 남자를 리처드가 영웅이라고 부른다니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아, 발레리의 속마음은 그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감정이 질투란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말이다, 자신의 맹우이자 스승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인간을 그런 남자에게 빼앗겼다는 등
그런 사실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이가 딱딱 맞물렸다
그녀는 마법 갑옷에 마력을 꿰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식간에 군청색 갑옷에 마력이 쏟아졌다
마법 갑옷을 체구, 마력을 혈맥 그 자체로 해서
발레리의 임전 태세는 완성되었다





"…리처드, 한 팔을 잃고 나와 검을 겨룰 생각인가?"


"인간이란 언제나 싸울 때는 그 자리의 패로 겨루는 거야
그리고 얼마나 패를 맞출 수 있느냐가, 투쟁의 본질인거지
미궁 도시 때부터 변한게 없구나, 발레리"




검은 칼날과 청색 갑옷이 대치했다
거리는 좁았고, 한 발만 내디디면 부딫칠 정도였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거리

순간 발레리는 미소를 지었다
리처드와 칼날을 주고받았던 일 등은
그야말로 만남의 땅이었던 미궁도시로 거슬러 올라갔다

첫 만남, 발레리는 검을 휘두르며 그에게 말했다




"용사여, 우리 조상의 긍지와 영혼의 안녕을 위해
당신께 결투를 신청하겠다"




말해 버리면 그것은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열 살이었던 발레리에게는
목숨을 걸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니

당시 발레리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일찍이 리처드가 그러했듯이
그녀는 열 살이란 나이에도, 주위의 누구나가 미치지 못했다
천재라는 명성만 있고 어른과 무술사조차 더는 상대하지 못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자신이 승리하기 위해 있다고 어린 그녀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그녀는 본가를 떠나고 나서
수많은 마수, 동업자들과 검을 맞췄지만
패배를 당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좀 더 잘해봐, 빌어먹을"





장검을 휘두르는 발레리에 비해 그 남자는 맨손 그대로였다

하지만 한 순간의 유예조차 주지 못한 채
시원스레 발레리는 오른팔과 어깨를 부상당해 버렸다

한 달 후에 다시 덤볐을 때에는 두 다리를
다음에는 또 다른 곳이 부러졌을까

하지만 그는 결코 발레리를 죽이지 않았고
발레리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덧 미궁도시에서
리처드가 간 곳에는 발레리가 있었고
그도 왈가왈부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처음엔 투덜댔지만 도중에 관계가 깊어졌을지도

돌이켜 보면, 최악의 만남이며


돌이켜 보면, 최악의 만남이면서도 
흔한 맹우의 입장이 됐다고 발레리는 생각했다
나는 리처드에게 적의를 품으면서도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비로소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궁도시에서의 마법구 찾기에도 끝까지 동행했던 것이였다
결국 그가 목적인 것은 찾지 못한 채였지만

미궁 도시 이래 어김없이 발레리와 리처드는 맹우였다
길을 잘못 드는 일조차 없었다
아무튼 그런 관계가 지금,
서로 간에 적의를 부딪쳐야 한다는 사실이
발레리에게는 믿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싸움의 어디에, 리처드가 얻을 것이 있다는 것인가



승리했다고 해서, 6만의 병사는 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패배하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감정뿐인 싸움을 리처드가 하는 등 발레리는 믿을 수 없었다

정말로 그는 자신과 싸우려고 하는 것인가

발레리는 순식간에 주먹을 불끈 쥐고 마력을 가다듬었다

폐에 찬 숨을 삼키며 발레리는 입을 열었다




"군사들을 데려오지 않았나 보군?"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발레리는 전투태세를 유지하며 물었다
약간 공기를 가볍게 흔드는 정도의 목소리였다





"바보 같은 소리, 너 상대로 군사를 데려와도 어찌 하겠어?"





발레리는 나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디
이 대화법도 오랜만이었다
미궁 도시에서 악마와 대립했을 때 이래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리처드는 역시 감정에 쏠리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야

그렇다면 여기서 자신에게 덤벼드는 꼴은 저지르지 않겠지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믿었다

순간 그 자리에서 발레리는 발길을 돌려 리처드에게 등을 돌렸다
그녀는 뒤에 누가 있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산림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온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다.
마법 갑옷의 초록이 선이 되어 공중을 달려나갔다



마법 갑옷에 의해 수습된 발레리의 마력이
쇳덩이처럼 뭉쳐 주먹에서 사출되었다
휘두르는 동작도 크기 때문에
대인에게는 쓰기 힘들지만 위협에는 충분할 정도였다

적어도 나무들을 쉽게 꺾을 정도의 위력은 있었다
폭풍우를 만난 듯 나무와 그 가지가 날아갔다

그 속에서 살과 피가 튀는 것을 발레리는 놓치지 않았다
임전 태세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로, 삼림을 향해서 자세를 고쳤다

적어도 이렇게까지 적의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편은 아니다
그리고 리처드의 병사들이라도 아니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동시에 발레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진정으로 자신을 배제하려고 칼을 빼든 게 아니였다
이들의 적의에 반응한 셈이였을 것이다
그녀는 그랬으리라고 필사적으로 믿었다





"문답은 나중에 하지, 발레리
인간이 아닌 것도 섞여 있는 것 같군"


"그래... 내 생각도 그래"




검은 검을 뽑아든 리처드와
나란히 서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발레리는 시선을 홱 돌렸다

발레리에게는 산림에 숨어 있는 존재에 짐작이 갔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그렇지 않은 기색

뭔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겁이 날 지경이였다

발레리는 푸른 머리를 볼 틈도 없이, 입을 열었다




"질루이, 사람 가죽은 그만 쓰지 그래, 내게까지 적의를 돌릴 줄이야"





몇 초의 침묵 뒤에 바로 답이 왔다
달콤하게 웃는 듯한 울림이었다




"무례하군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대답하세요, 발레리, 당신은 착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은 용사 뿐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저와 같이 신에게 뽑힌 수호자이지 않습니까?"




비단을 미끄러뜨리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
표정에는 당돌한 미소, 몇몇 부하를 동반한
수호자 질루이 하노가 눈 앞에 있었다




"저는 궁금한게 잇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적인 그 용사와 함께 있는 것일까요?
신의 적인 인간인데? 신의 뜻을 어기려는 겁니까?"





질루이의 눈동자는 광적이었다
맹신을 품은 색깔은 발뺌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발레리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한번 신의 적으로 정해진 이상 그 철회는 있을 수 없다
협상의 여지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거기에는 위화감이 컸다

만약 정말 질루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모습을 보여줘야 했을 것이다
이 언덕에 들어서자마자 발레리는 주변에 도사리고 있을
사병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즉, 잠깐 동안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겠지

결국 그녀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발레리, 신의 뜻이든 뭐든 말로써 일을 추진하려고 하는 놈은 말야
대개 발뺌할 수 없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저 놈... 뭔가 느껴본 존재야..."





쓴웃음을 머금고 리처드는 왼팔을 내밀었다

한 팔로는 양팔이 있었을 때와 같은 자세를 취할 수 없다
자연히, 반신이 되어 일격에
적을 찌르든가 베든가 하는 싸움 방식이 되는 것이였다

적어도 적의 공격을 능숙하게
연격으로 때려부수는 방법은 곤란하다

통제자 드래그만과의 일전
리처드는 그것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때는 한 팔로 끝났는데, 이번에는 과연 어떨지

어쨌든 리처드는 지금 눈앞의 존재가 아마도 그것과 같다고 확신했다

마인 질루이 하노는
두 팔을 벌리며 푸른 머리를 허공에 흔들며 말했다




"슬픈 일이내요, 용사 리처드 퍼밀리스
운명에 선택되었을 당신도, 세월이라는 것에는 당해낼 수 없는 건가요
너무 덧없고, 너무 처량해요, 억울하시죠?
당신의 전성기는 이제 40여년은 지났으니 말이에요
그런 몸으로 어떻게 제게 맞설 수 있으실 건가요?"




질루이는 시선의 칼끝을 발레리에서 리처드로 옮겼다
흑검과 마법갑옷이 동시에 기울어 그 위세를 더해갔다




"뭐, 어쩔 수 없지, 인간이란 그런 것이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머지않아 다음 세대의 녀석들이 해 줄거야
게다가 의외로 나는 끝까지 희망이란 걸 버리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야"





노회함을 담은 말이 삼림을 겨냥해 튕겨져 나갔다

도발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대를 헤아리는 수많은 말들
그리고 말이야, 리처드는 그것을 덧붙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드래그만 녀석은 형편없었지만, 강했어
강자란 곧 그것을 말하는 걸거야
네가 그 녀석보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 못해
그렇다면 이번에도 살아남아, 너를 죽여줄 테다"





검은 칼끝이 반짝하며
마인을 표적으로 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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