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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3화 - 이상적인 삶을!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3화 - 이상적인 삶을! -

개성공단 2021. 5. 11. 02:28







"네, 저는 약해요
수호자라고 불리는 사람 중에서도
마인이라 불리는 존재에도 닿지 못할 정도로 말이죠"



 

푸른 머리의 마성은 검은 칼끝을 들이받고는
여전히 태연하게 그렇게 말했다

뜻밖의 말에 리처드는 눈썹을 찡그렸다
마성 중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자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약하다고 거리낌없는 존재는 우선 없었다

마성이란 그것의 성질에 따라
강하게 행동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였기에...

하지만 정반대의 말을 질루이가 뱉어나갔다




"의지할 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어요
붙잡는게 없으면, 서지도 못하지요
하지만 뻔뻔스럽게도 강하다고 우길만한 오만함
그런 것은 제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약한 채로 강한 것을 이길겁니다
약한 자가 계속 지기만 하는 세계는 빌어먹을 테니까요"




공손하고도 무례라고도 할 만한
질루이의 어조가 그 어미에서만 터져 나왔다
그녀가 말을 내뱉는 모습은
처음으로 그녀의 본성을 엎지른 듯이 보였다




"그렇지만, 저는 적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리처드 퍼밀리스, 당신은 틀림없는 신의 적이지만
유일한 신은 당신에게조차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용사여, 신께서 당신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신의 손을 들어줄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 말에 리처드는 어안이 벙벙했다



발레리에 대해서는 왜 신의 적과 함께 있느냐고 따지며
이번에는 리처드를 향해 신에 뽑혔다고 선언해 보이고 있었다
의도가 있는 걸까, 아니면 사고 자체가 정말 지리멸렬한 것일까

리처드는 판단을 하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이것은 틀림없이 적이라는 것뿐




"미안하지만, 이미 선택 받은 몸이여서 말이야
신 께는 줄 맨 끝에 선다고 해"




나란히 선 발레리가 나직이 참견했다




"당신, 너무 그녀의 말을 듣지 마
저 자의 혀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재주가 있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것... 의미는 알고 있겠지?"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누구한테 조언을 하는 거야?
것보다 너는 저쪽에 안 붙어도 되겠어? 너네 일행들이잖아?


"당신과 나는 아직 회담 중이야
그 와중에 난입해 들어온 괘심한 놈을 쫓아내는 건데
아군이고 적군이고 어딨단 말야?"





리처드는 볼에 느슨함을 띄우고는 다시 질루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늘어놓는 말에서 의식을 잘라내고 모습만 바라보았다

언변으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미려한 모습도, 우아한 몸짓도, 만들어진 말투도
모두 가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요점은 자기와 가까운 성질이라는 것

하지만 그녀가 마인이라면 그것만으로 끝날 리가 없다.
처드는 미간을 찌푸리며, 흑검을 치켜들었다

분위기를 고조시킴과 동시에 발레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방식은 단순하다




자신의 일격에 반드시 질루이를 한 걸음 물러나게 한다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 발레리가 혼신의 주먹으로 그녀의 두개골을 부순다

그만큼 단순한 수법이였지만, 효과는 제일이였다
적이 불길함을 숨기고 있다면
숨긴 채 처치하는 것이 리처드의 주의였다

한순간, 주위를 지켜보았다
질루이를 에워싸듯 삼림에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였다
꼴사납게 이쪽을 경계하고 있을 뿐
발레리는 고사하고 외팔의 리처드조차 막을 수 없었다
질루이도 마성의 존재감만 있을 뿐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두려울 정도로 위협이 보이지 않는 게 리처드에게는 섬뜩했다

그래서 곧바로 살의를 굳혔다



냉철한 입김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흑검에 담아갔다
한 초가 지날 때 마다, 주위에 선열한 살의가 얼룩져 갔다




"당신 이교도 인가요?
신의 위광이 미치지 못하다니, 정말 뜻밖입니다

모르는 건가요? 신의 손을 잡으면 새 몸도 가질 수 있어요
전성기의 힘을 되찾고, 영광을 되찾을 생각이 없는 건가요?
자신의 늙음을 미워한 적이 없는 건가요?"


"거래의 전제 조건이 뭔지 알아? 신용이야"




상대방이 내민 거래를, 리처드는 우선 받지 않았다

거기에는 반드시 상대방의 이익이 있고
누군가를 앞지르자는 이면이 있었다
한 마디로 1대1 거래는 상당히 드물었다는 것이였다

그야말로 상당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시답지 않은 문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은 늙고 인간은 쇠약해진다
용자라는 직함도, 강자라는 칭호도 이미 과거의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언젠가는 역사에 묻혀
성격조차 알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업만은 그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제한된 시간에 뭔가를 이루는 데는 가치가 있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리처드는 단언했다
그리고 검은 검을 든 채 뺨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네놈의 신이란 말투로 보건 데, 꽤 오래 살았나 보군
하지만 오래 살아도 별로 대단하지도 않아 보이네"





질루이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리처드는 땅을 밟았다

사람이든 마성이든 말이 통하는 상대는
그것을 받는 순간의 공백이 생긴다
양동으로서는 너무 치졸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게다가 질루이에겐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리처드가 파고들어 내건 검은 검을 내리치는 순간에도
그녀는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한 발짝 물러설 기색조차 없었다
이대로 가면 그녀는 곧 죽음을 맞아 버릴 것이다

아직도 뭔가 있는 건가?
아니야, 그녀는 정말로 문외한 인것 같아

리처드는 맥이 빠지는 것 같았다




종종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는 법
강적이었을 자가 한순간의 방심으로 깔아뭉개진다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 사소한 판단을 잘못해 즉사한다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잔인했다

유일하게 우려할 것은
마인 드래그만 때처럼 일체
육체에 칼날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지만
설사 이 정도 상대라면 문제가 없다고 리처드는 판단했다

설령 자기가 안 된다 할지라도 발레리가
발레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루기스가 반드시 이를 죽일 것이다
이 정도 존재는 제자를 패배시키지 않을 것이다

리처드의 한순간의 안도
느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생각의 중단

그것을 가로채듯 시야가 눈부신 흰색으로 덮였다




오로지 빛만이 주위에 보였디
마치 하얀색 하늘이라는 빛의 천으로 뒤덮인 듯한 지평이 있었다

눈치채면 그 자리에서는 발레리는 없어졌고
언덕도, 삼림도 저 멀리 보이던 제브렐리스의 모습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던 질루이조차도..




빈틈을 보이지 않은 채
리처드는 흑검의 칼끝을 주위에 돌려 시선을 가늘게 했다
동요는 없었다, 이게 누구 짓인지는 분명했기 때문이였다
그저 필요한 것은 사태 파악




"후후,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어요!
이 곳은 나의 이상세계... 라고 해도, 약한 저는 누군가를
한순간 끌어들이는 정도 밖에 할 수 없습니다만 말이죠
실제로 저는 당신에게 베어 죽기 직전까지 갔어요, 리처드 씨"




뭔가 딱딱한 소리를 내며 그녀는 나타났다
그리고 천진하고 무경계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틀림없는 마인 질루이 하노

푸른 머리와 같은 색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고
빛 속에 있는 모습은 거룩함마저 느끼게 했다

하지만 합치하고 있는 것은 모습뿐이었다
조금 전까지의 도도하고, 광신밖에 모르는 여자의 성격은 사라지고
마치 어디에라도 있는 마을 처녀처럼 말하고 있는 그녀였다




"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어떡하죠? 제가 마중가는 방법을 몰라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한데"





정말이지 일체의 사심이 없다는 투로 여자는 말했다

성격이 변모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 끌어들인 목적은 무엇인가
리처드는 어떠한 사실도 현재로선 알 수 없었다

리처드는 거리를 두면서 경계하며 검은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분명 잃었을 오른손이 있었기에 말이다




"말을 하는 데는 익숙한 신체가 좋겠지요?
인간은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리면
정신에도 변조가 생긴다고 들었으니 말이에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군
아직도 권유가 안된단 말이야?
늦지 않았다고 말해둬. 네놈의 신에게 말이야"


"하하, 당신이 의연하고 고상한 정신을 지녔다는 걸 잘 알았습니다
과연 용사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당신의 권유로는 도저히 수긍해 주실 수 없을 겁니다
아주 아주 훌륭하기에, 약한 저로서는 이룰 수 없겠죠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 있어요!"





질루이는 동네의 마을 처녀처럼 가슴을 폈다

검은 검을 치켜들고 있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의 솔직함과 한결같음
이것이 그녀의 원래 성격이라면
드러나게 말하고 있는 그녀는 무엇인가

하지만 그런 의문을 던질 겨를도 없이
질루이는 두 팔을 벌려 캔버스 한 장을 꺼냈다
빛 속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삼각대를 받친 캔버스는 하얗고 얼룩 하나조차 없었다
하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천천히 무언가를 그려냈다

처음에는 검은색이나 흰색밖에 보이지 않던 것이
서서히 색채의 종류를 늘려 하나의 풍경을 떠올려 갔다





리처드는 당황했다

캔버스 속에는 그저 그림이 떠오른 게 아닌
그림 그 자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진짜 그 풍경을 직접 보는 것 같았다

그림이 보여주는 것을 한순간에 리처드는 깨달았다

잘못 볼 리가 없지




일찍이 자기가 살았던 가난한 촌락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과 여동생
그림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리처드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가족들의 초상

불길한 예감이 리처드의 사고를 뛰어갔다
그리고 최저의 예감이 들었다

질루이는 두 팔을 벌린 채 꿋꿋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리처드 씨
분명 회춘할 수 있고, 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당신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근데 이거면 어떨까요?"






이것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물을 필요조차 없이 그녀는 말했다.






"당신의 과거를 알고 있습니다
가족을 구하지 못한 것, 억울했죠? 억울했죠?
하지만, 당신은 아무 것도 나쁘지 않아요
당신은 위대한 용사예요,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인 걸요!"


"그만해"





리처드가 내뱉는 듯한 말을 질루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시 시작해요, 리처드 씨!
저는 운반하는 자는 아니지만, 우리의 신은 허용해 주었어요!
당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그 날부터!
모든 것을 칠하고, 인생이란 그림을 다시 그려 봅시다!
이번에야말로 이상적인 삶을 위해서 말이죠!"






질루이는 마을 처녀가 글썽이는 웃음을 지으며 악의 하나 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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