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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0화 - 노후한 칼날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0화 - 노후한 칼날 -

개성공단 2021. 5. 11. 01:04





"하하하핫! 용서한다고? 발레리가 그랬어?"





메드라우트 보루의 방에 호방한 목소리가 울렸다

응접실 문째 날려버릴 듯한 웃음소리
도저히 전성을 잃은 노인의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도레는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까, 리처드 장군 각하"




대성교, 갈라이스트 왕국 연합군 사자 도레
대면하는 것은 메드라우트 보루를 수호하는 장군 리처드
서로 1인 호위를 붙인 회담이었다

막강한 노인이라는 것이 도레가 본 지금의 리처드의 인상이였다
과거에도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그 무렵은 나이가 들어도 
인이라는 인상은 받지 못했지만, 정말로 늙어 버린 것 같았다




"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뭘 용서한다는 거냐, 발레리는?
용서받아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네...네놈"




도레의 호위가 엉겁결에 리처드의 말에 반응했다
발레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인간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이였다

도레가 손으로 제압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지 호위가 한 걸음을 내딛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기분 나쁜 기색조차 없었다
원래 보다 난폭한 태도에는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용서한다... 란 말은 이쪽이 할 말이야
우린 너희들의 뒷처리를 해주고 있다고
안 그런가, 도레?"



해학적으로 느껴지는 리처드의 미소를 보며
도레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성격을 도레는 잘 알고 있었다

즉 늙었음에도, 항상 뱃속에 한 가지 안을 담고 있는 인간
그가 협상장에 나온다는 것은 이제 마지막까지의
길을 다 그려가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과거 그가 여러 차례 위험한 다리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용사였다는 직함도, 그의 솜씨뿐만이 아니였다
악랄한 사고를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는 있다고 도레는 보았다
리처드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메드라우트 보루에 남은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성격을 그는 갖고 있지 않았으니까





"...장군 각하, 뒷처리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거래를 하시죠
저도 저의 마스터도 각하가 돌아와 주었으면 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런 성채에서 무덤을 팔 생각은 없겠죠?

이제 승부는 이미 나 있을 것입니다
이익에 따르는 게 각하의 방식, 신왕국은 각하께 이익을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든 무엇이든지 줄 수 있죠"




도레는 가슴팍에서 꺼낸 양피지를 테이블에 펼쳤다

검은 잉크로 차례차례로 나열된 조항에
마지막에는 발레리 브리트니스의 서명
내용은, 아이가 알 수 있는 간단한 것

즉 강화 조건은 리처드 퍼밀리스의 투항과 메드라우트 보루 인도

받아들이기만 하면, 리차드의 신분과 재산, 부하의 생명의 보장
반역죄의 사면, 나아가 갈라이스트 왕국에서의 지위도 인정한다
모두 발레리의 이름 아래 맹세된 것

대성교 성녀에게 직접 수호자를 맡은 발레리에게 그 정도는 쉬웠다





"각하, 우리에겐 불행한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마인이 현현한 이상 각하도 단독으로는 싸울 수 없었고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반군의 손을 들어줬을 뿐..."





도레는 몸을 내밀며 눈꼬리를 강하게 했다
그녀의 피부가 팽팽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반면 리처드는 조용히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왼팔로 턱수염을 어루만지면서 눈동자로 도레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절의 기색은 결코 없어 보였다

도레는 발레리의 주머니칼
지금까지 그녀가 서툴게 하는 교섭일이나
사신의 종류는 도레가 모두 해 왔고
많은 경험을 밟아 오고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리처드는 협상을 하려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곧장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남은 왼팔 손가락으로 쭉 양피지를 가리켰다





"하나 물어볼까?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지?
메드라우트 보루를 손에 넣고, 왕도까지 쳐들어 갈 텐가?"





리처드의 느긋한 물음에 도레는 속눈썹을 들이댔다

그가 앞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조건에 불만은 없다는 것일 것이다




"아니요, 전선을 일단 유지하고
대마 제브릴리스의 토벌까지 시간을 벌 거에요
성녀 알류에노가 수호자와 함께 대마를 멸망시켜 줄 테니까
섣불리 군사를 움직이는 일을 없을 겁니다"





메드라우트 보루만 제거해 방비를 굳히면
신왕국군으로 북상할 만한 여력이 상실된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의 본군은 제브렐리스에 못박혀 있다
취할 수 있는 선택사항은 극히 조금

왕국군은 달랐다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니 리처드가 어느 손을 들어줄지는 명료했다




"훌륭하고 알기 쉽군, 내 취향이야"





리처드의 그 한마디에 도레는 자신도 모르게 뺨을 느슨하게 했다.
그리고 실내의 공기가 이완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세세한 조건이야 어찌됐든
대략적으로는 조건에 합의했다고 봐도 좋을 만큼의 대답

짐을 내려놓은 도레에게 이를 드러내며 리처드가 말했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빼앗는다... 참 좋군"


"의무?"





이완된 사고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도레는 되묻고 말았다.

홀로 그 말만이 뇌 속에 스며들었다
리처드는 그렇다고 말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대마 제브릴리스를 진압하고 토벌하는 건 대성교의 의무
하지만 이미 상당히 포기해 버린 듯 하군"


"……많은 백성들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여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저것은 말 그대로의 괴물
아무도 말릴 수 없었어요"




순간 도레의 뼈에 두려움이 스쳐갔다
한 번 마음이 풀린 뒤라 묘하게 발걸음이 불안했다

들어선 안 될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하지만 뜻을 거스르듯 리처드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래, 의외로 태만하군
얼마나 많은 장수들이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도레의 호위가 눈길을 끌었지만
그다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투항하는 장군 입장이라면 비아냥거림의
한마디라도 하고 싶은 심정은 자신도 알았기 때문이였다
발레리와 관련 없는 부분에서 호위는 이성적이었다

오히려 이성적이지 못한 것은 도레일지도 몰랐다




"장군 각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레의 말에 리처드는 개의치 않았다




"너라면 이미 알잖아
스지프 성채에서 제브릴리스를 막지 못한 게, 제일 태만해
그 때는 제브릴리스의 기세가 가장 약해졌을 때야
충분히 손을 쓸 필요가 있었지만, 놈들은 아무 의무를 다하지 않았어
수 만 병사가 헛되히 죽어버렸던 거야"


"그들은 의무를 다했습니다"





세게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가 났다
그게 순간 누가 낸 소리인지 도레는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아닌, 자신이 주먹을 휘두른 소리였다

도레는 가슴속에서 생각을 저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협상역으로 악용되는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자신의 동요는 이 남자의 수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악물 틈조차 도레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도레?
스지프 성채의 무리들은 6만이나 되는 군사를 갖고도
마수에게 패한 얼빠진 놈들이야

그 결과, 모두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쳐
어느 나라, 어느 군조차 등을 돌린 상대와 싸우는 것은 단 한 명
니들이 대막의 주인이라고 매도하고, 악의 화신이라 부른 남자만이
오직 네들의 의무를 대신하고 있어"


"그들은 얼빠진 사람이 아닙니다
정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하"


"응? 실제로 보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여기 있는 거고"





이런 빌어먹을

도레는 입속으로 혀를 찼다
이 남자는 다 알고 있어.
알고 있기에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를 겹치며 도레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 이때 주인 발레리가 강렬한 감정을 쏟는 상대에게 
도레 역시 강한 감정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그것의 이름은 증오




"냉정하게 생각해라, 도레
내가 말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내 멋대로의 착각이야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은 나 말고도 얼마든지 있지"


"무...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냉정해, 지금 2만 5천의 군사를 갖고 있는
루기스가 제브릴리스의 토벌을 향해 가고 있다
스지프에 있었던 절반 이하 병사들로 말이지
그것도 평지, 단 하나의 성채도 없이 말이다





다시 도레는 탁자를 쳤다
이 노회한 사람이 지금 나에게 뭘 전하려고 하는지
그러면서도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지를 알것 같았

격앙을 억제해야 한다
냉정하게 노력해야 한다.
발레리 브리트니스의 주머니 칼은 흔들리지 말아야 해




"그 녀석은 반드시 제브릴리스를 죽일 거야
그럴 때, 세상은 그에게 뭐라고 할까?


"그럴 리가 없어!
제브릴리스를 죽일 만한, 인간이 있을리가!"





도레는 직접 그것을 본 것이였다

하늘을 찌를 정도의 거구를
놀라울 정도 커다란 무언가도 삼키는 모습을
온몸을 뒤덮는 두려움을

저것을 죽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같은 괴물밖에 없을 것이다
성녀가 신의 화신이라고 한다면
죽이는 것은 그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한 인간이 그것을 죽여버린다면

그들의 용감함은, 그들의 각오는, 그들의 희생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도레는 그것이 견디기 너무 힘들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아는 것은 자신뿐이다
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존재에 의해
평가 절하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다





"그래? 하지만 그 녀석은 대마 브릴리간트를 죽였어
정보가 통제되어 있다해도, 너는 알고 있겠지, 도레
그렇다면 그것이 다시 한 번 성립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딨겠어?"





리처드는 왼팔 손가락을 딱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

도레는 반론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불쾌한 호흡소리만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삼백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침묵의 사이가, 몇초 계속 되어갔고

도레의 얼굴이 파랗게 물들어 갔다
리처드가 왼팔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안심해, 도레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대로라면 놈들은 누군가의 발판인 채로 끝날거야
어때, 내 말 들을 생각은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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