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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6화 - 오류를 범한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56화 - 오류를 범한 자 -

개성공단 2021. 5. 11. 22:22




마녀

대영웅 아르티아 이전
인간왕 메디크의 시대
아직 마법이 체계화되지 않아 신비의 일부였을 무렵에
그렇게 불린 여자가 있었다

문헌에 남는 기록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다
메디크와 함께 있었다는 그런 기록만 남은 신화시대의 인간

역사 기록으로 따지면 그녀의 설명은 이 한마디로 끝나고 만다
그녀의 기록은 마치 그녀가 의도한 대로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마녀라는 개념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녀의 엄청난 업적일 때문 일 것이다

마녀는 모든 마를 다뤘다
마의 눈과 손가락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잘 이용했다

그것은 잠자리에서 들려오는 신화나 영웅담 같은 것.
피에르트도 어릴 적 들어 눈동자를 반짝였던 정도의 추억밖에 없다
성장하면서 머리 한 구석에 넣어두는 전설 같은 것이였다

그치만 그렇겠지
마 하나로 극에 달했다고 하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
마도 장군 마스티기오스조차 아직이였다

그런데 마법뿐만 아니라 술식을 사용하고
나아가 마의 기구를 여럿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만일 진정으로 존재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사실은 가르침이라도 받고 싶은데
적이 되어버린 이상 그럴 수도 없겠지
그녀가 마녀라면 나같은 미숙아가 도전하기엔 좀 힘들거야
그래서 우리도 대책을 좀 세우고 싶어서"





얇은 옷을 입은 채 피에르트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표정에는 만감을 음미하는 빛이 있었다

마의 전부를 다뤘다는 마녀에 대해
피에르트가 무엇을 느끼는지 엘디스에게는 느낄 수 없었다

감정 파악에 서툴러서 그렇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해가 그녀에게는 부족했다

엘디스는 피에르트를 재주 있는 마법사로 인식하고 있었다
프리슬라트 대신전에서의 활약이나
전장 마법의 여러가지는 틀림없는 재주의 증명이였다

하지만 피에르트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등,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진정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피에르트는 입술을 매끄럽게 움직이며 대책을 말했다
엘디스는 자기도 모르게 긴 귀를 쫑긋했다




"어때? 축복을 좀 해줬으면 하는데"




피에르트는 오른손으로 잡는 칼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엘디스에게 보였다
둔탁한 은빛을 띠고 있지만 날카로움을 알 수 있는 단검
가볍게 휘어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였다

엘디스의 긴 속눈썹이 깜박였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나서야 그녀의 말을 깨달았다




"아이고, 정말로 인간이란 싫어지내
너도 카리아도, 본질적으로 루기스에게 감염이라도 된 게 아닐까?
그렇게도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옳은 건가?"


"설마, 언제든 결사적인 모험을 하는 인간처럼 말하지 마
루기스만큼 나를 무시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지"


"……다르다고?"





되묻는 엘디스에게, 피에르트는 지그시 미소만 지었다



그래, 다른 거야
자기희생이란 값진 것은 결코 아니야
오히려 피에르트에게 마인 바로누스에 대한 대항심은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진짜 마인 바로누스가 신화의 '마녀'라면
마법과 술식, 극한 마를 다루는 자에게 위대한 별이라면

그녀를 넘어설 수 있다면
그건 하나의 절대적인 증명일 것이다

피에르트는 생각했다



카리아는 어릴 적부터 검의 재능을 인정받았고
엘디스는 대정령의 총애를 받았다
이들은 환경이 불우했을지 몰라도 절대적인 개성이 있었다

하지만 난 다르다
나는 열등하기 때문에 고향에서 한 번 도망친 신분이였다

도망친 과거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피에르트의 밑바탕에 있었다

그녀는 사람의 냉철함을 알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깔볼 수 있는가
불우한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 등등

다 알고 있어...




그것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 피에르트 라 볼고그라드의 본질

지금이 행복할수록, 피에르트는 겁을 먹었다
머지않아 그 최악의 과거로 돌아갈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칭찬하는 것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머지않아 자신은 버림받을지도 모르지

재능이 없는 너를 깔보고 우습게 보기도 했지만
요즘 부쩍 늘은 것 같으니 친하게 지내자
그런 것을 어떻게 받아 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멀쩡하던 시절 자신을 위해
목숨조차 내던진 그의 존재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화상으로
피에르트의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건





"엘디스, 난 말야 사실은 제멋대로인 사람이야
잘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다니
난 루기스처럼 될 수 없어. 다만 난 내 증명을 위해 나아가고 싶어
그에게 의존하는 만큼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


"네가 그를 과소평가 하는 것 아니야?
루기스는 네가 망했다고 해서 단념할 사람이 아니야
난 그 점에 관해서라면, 너나 카리아보다 훨씬 루기스를 믿어
내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뿐이니까"

"말했잖아, 난 제멋대로인 인간이야, 그것 뿐이야"





피에르트는 엘디스를 바라보며 시선을 굳혀갔다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의존 받고 싶은 거야"




믿고 싶다, 기대고 싶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모두 자신에게 답을 구하라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저번의 열등감마저 떨쳐버리고 맛본 굴욕의 아픔을
보충하고도 남을 만한 가치증명

신화의 마녀를 타도하면
나는 비로소 자신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

그래서 대가를 아끼지 않았고
동시에 바로누스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대책은 단순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마법사나 마녀에 맞서려면
그에 걸맞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

결국 마안에 맞서려면 같은 기구를 가지면 된다
지금의 피에르트는 용의 심장과 마력을 지녔다
인간의 몸인 동시에 자신을 주조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

그렇다면 한 번 내 눈을 파괴하고 마를 새긴 눈을 만들면 된다




"…엘프의 가치관으로 말한다면, 역시 너는 틀렸어 피에르트"


"그래? 그 틀리는 것은 누가 결정하는 거지?"





피에르트는 손에 든 단검을
청결하기 짝이 없는 천막 안에서 치켜들었다
그 칼끝은 자신의 눈동자를 향하고 있었다





 ◇◆◇◆





"귀찮아"






마안, 마녀 바로누스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에서 시작된 말버릇이였다

바로누스는 세상이 너무나 귀찮다고 말했다
이유는 명료, 세상에 바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나를 듣고 열을 이해해야 할 곳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면 들은 것을 딴 것으로 치환하기도 했다
사실을 사실로 파악조차 할 수 없는 바보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조차 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

인간왕 메디크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그가 죽은 날 많은 사람들은 슬픔, 근심, 탄식했다
마치 얼굴에 폭우가 쏟아진 것 같은 모습
누구나 그를 성대한 장례식으로 보내려고 하고 있었다

바로누스는 그냥 어이가 없었다
메디크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반드시 마성은 재정복을 개시할 것이고
섬에 쌓아올린 왕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왕국은 메디크라는 단 한 명의 위대한 인간만이
이루어낼 수 있다고, 바로누스는 그렇게 믿었기에




"귀찮지만, 메디크를 살려내자
윤리적인 문제고 뭐고, 나는 인간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바로누스가 한 말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격분해서 욕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자도 있었다

나는 탄식했다
관에 넣은 시체를 들춰내고, 영혼을 빼내고
부검하고, 육신을 재구성한 후에 집어넣기만 하면 될 텐데

메디크의 기억이나 인격은 상실될지 몰라도
영혼에 남은 최소한의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종의 사령마법 응용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당신은 틀렸어."





군중들이 한 말에 바로누스는 코웃음을 쳤다

옳다, 틀리다
그런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마를 취급하는 것으로서 삼류인거야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
마를 다루는 자라면 배신이든, 독을 범하든, 금기를 짓밟든
세상을 인간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거야

이유를 대어 주저하고, 하찮은 윤리라든가로 묶인 몸으로 무엇이 가능해?
가령 메디크의 육체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진흙투성이가 된다 해서
그가 그로서 기능한다면 나는 개의치 않을거야
인간의 존속에, 그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왕국을 버리게 될 걸?

결국 너희는 인간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구나
위대한 왕 곁에 있어, 자신도 위대해진 것으로 착각하고 싶을 뿐이야"




메디크를 잃은 당시 인간에게
마녀 바로누스를 붙잡을 힘은 없었다

바로누스는 적의를 향한 모든 자를 죽이고
최초의 인간 왕국을 버렸다

그녀의 예상은 1년도 안돼 적중했다
인간왕 메디크를 잃은 인간은
마성에 항거할 힘을 가지지 못했고 왕국은 무너졌다
많은 사람은 죽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성의 가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신분으로는
나도 그렇게 변한게 아닐까, 하고 바로누스는 비웃었다
그녀는 여전히 양손 두 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였다
동시에 걸음을 옮겨, 코를 킁킁 거렸다

사람 냄새가 나는 군





"바보 같으니라고"





무심코 바로누스는 중얼거렸다
아직도 인간이 머무르고 있다는 것은
수천명을 살해당하도록 해놓고
여전히 그들은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였다

그녀는 실망했다

인간이란 남아 있는 존재가
아무런 수법도 없이 대마나 마인을 타도할 수 있다고
바로누스는 생각하지 않았다
천성룡 브릴리간트가 파괴되었다고 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는 마적인 준비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정령이나 요정들이 이곳을 경계하는 정도일 것이다





"이러다간 아르티아한테는 배달도 안 되겠군, 귀찮아"


"바로누스, 인간이 가깝다, 네 차례야, 날려버려"


"귀찮아, 네가 하면 되지 않을까
착각하진 말라고, 한가해서 하는 거니까"





욕설을 퍼부어 마성의 반감을 받으면서도
바로누스는 자신의 눈을 가린 천을 정중히 벗겨냈다

바로누스는 탄식했다

예나 지금이나 주위는 적들로 가득하다
결국 인간은 마성의 손바닥 위 그대로

왕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는가






바로누스는 눈을 뜨는 순간
엄청난 불타는 듯한 열을 눈동자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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