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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68화 - 친구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7장 성전 시대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68화 - 친구 -

개성공단 2021. 5. 20. 01:16




루기스가 자신의 몸을 땅에 대는 순간
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사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눈앞의 적을 베어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둘렀다
이제 나에게 있어서 거리도 사이도 의미가 없었다

엘디스의 가슴을 꿰뚫은 검은색은
예상보다 훨씬 더 갈가리 찢겨 그 자리에 떨어졌다
나는 너무 반응이 없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은 마치 검은 액체를 하고 있었다




"엘디스!"




하지만 당연히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거대한 건조물의 안쪽으로부터
차례차례로 배어 나오는 검은 액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건물에서
그것은 파도처럼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지?

이 검은 액체 모두가
방금 전 엘디스를 관통했던 것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면 너무 할 것이다
코가 삐뚤어질 듯한 마의 잔향이 거기에 가득했다




"젠장할, 죽지는 마!
네가 죽으면 나도 여기서 죽을 수 없다고!
너는 나의 주인이잖아!"




검은 액체로부터 감싸듯이, 엘디스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날씬한 몸매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니 절명은 안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가슴팍을 관통당했다면, 중상은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꿰뚫렸을 그녀의 가슴에 상처는 없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분명히 그녀는 검은 액체에서
상처를 받았을 텐데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엘디스의 입술이 말을 내뱉듯 일그러졌다





"살아있긴 하지만…… 별로 좋지는 않아
내게 알 수 없는 마력이 쏟아진 것 같아
괴물 같은 게 튀어 나올 줄 알았지만
이런 게 나올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 했어"





상처를 받아 가냘픈 목소리, 라고 하는 것은 아니였다
엘디스는 여느 때보다 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가락 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얼마 만일까
죽는 소리는 있어도 무서워하는 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엘프란 인간과 본질이 다른 것이다
인간은 많은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온 존재이지만
엘프라는 마에 가까운 종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보다 더 깊은 마성에게만 있었다

하나의 목소리가 검은 액체에서 울려 나왔다





"요정왕 드래그만, 오랜만이군
그래서 나에게 무슨 용건이야?"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실감이 났다
마력은 모든 것에 잠재하는 법
생물은 물론 무기물에조차 깃들여 있는 것이였다

그리고 목소리에조차 무시무시한 마가 깃들었다
이 목소리는 마력 그 자체였다




"왜 대답을 하지 않아?
나 대답 없는 거 싫어하는 거 알잖아"





넘쳐흐르는 검은 액체에서 태어난 듯
목소리의 주인은 거기에 서 있었다

눈꺼풀은 감고 있었고, 신체의 생김새는 엘프의 모양에 가까웠다
긴 머리를 땋아올려 여러 가닥으로 묶은 모습은
정성스럽게 손질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생김새는 여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어렸다
아직 잘 무렵에 인형을 안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처럼 보였다
윤곽은 섬세하게 다듬어졌고, 헐렁한 드레스 차림은
바깥에서 뛰놀기보다는 안에 틀어박히는 성격을 상상케 했다

그러나 당연히 이것이 단지 소녀일 수는 없을 것이다
팔 안에 안겨 있는 엘디스가 이를 딱딱 울리고 있었다




"드래그만? 내 목소리가 안 들려?"




그것은 호소하는 소리
대답이 없는게 싫다고 한게 정말인가
목소리나 몸짓의 마디마디에서 혐오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혐오를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어린애의 짜증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호소 하나의 압력으로 상대를 죽여 버릴 수 있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으으, 난 드래그만이 아니라 엘디스다
그를 이어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엘디스는 일체의 방심 없이 땅에 두 다리를 붙이고 소녀와 대면했다
소녀가 어떤 목소리를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인 드래그만을 부른다는 것은
틀림없이 그 신변에 가까운 것일 것이다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아니, 그런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빈틈을 보일 수는 없었다
드래그만과 가까운 존재였다면
그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격앙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말이다
곧바로 덤벼도 이상할 것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온화한 모습으로 쾌활하게 소녀는 목소리를 새웠다





"뭐? 그럼 네가 새로운 요정왕인거구나
난 말야, 요정왕은 드래그만에서 안 변하는 건 줄 알았어
음, 차세대 요정왕 엘디스라는 건가? 잘 알겠어
그래도 이상하네, 이 세계의 마성에 내가 모르는 자가 있다니
아무튼 우리는 분명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소녀는 검은 액체 속에서 나아가 이쪽으로 걸음을 향했다
그녀는 눈꺼풀은 감은 채 얼굴에 선을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제브릴리스, 뭐 신이라고도 불리지
모든 마성은 내 아이와 같아, 당신도 말이지
사랑은 반드시 모두를 구원하는 법이야
기쁜 걸, 엘디스 나를 만나러 와주다니"





그녀... 제브렐리스의 미소는 어디까지나 순진하고
단 하나도 사악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어린아이의 미소

그래서 더욱 무시무시했다
지금까지 만난 것 같은 마성과는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아마 마성이라는 격에서 가장 먼 곳에 있을 것이다




"그 쪽의 이름은 뭐지?
나한테 알려줬으면 좋겠어
우리도 분명 친구가 될 수 있을꺼야, 그렇지?"


"...응, 어?"




나는 깜짝 놀랐다
눈가가 굳어짐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고 있었다

이 녀석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최북단 스지프 보루에서
수만명의 인간을 잡아먹으며
과거 대재앙의 상징인 괴물
인류의 적인 제브렐리스는 나에게 뭐라고 한 거야?

눈꺼풀을 감은 소녀
그녀를 향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마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정말 제브렐리스일지도 모르고
놈의 분체나 의식의 일부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의 행동이 올바른가
올바르지 않은 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과거 이 녀석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만은 사실이였다

속이 매우 탔고, 목이 몹시 저렸다

제브렐리스는 지금 이때도 마성을 계속 낳고 있다
그것은 많은 인간을 죽이고, 많은 비극을 낳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난 반드시 이놈을 죽여야만 한다





"제브릴리스, 미안하지만 난 너와 친구가 되기 위해 여기 온 게 아니야
어떻게 네 녀석과 친구가 될 수 있겠어?
지금까지 죽인 인간의 수를 생각하면 말이야"




나는 다가오는 소녀를 향해 시선을 거듭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장소에 있는 존재가 제브렐리스를 자칭하는 시점에서
목을 쳐죽이는 것 이외의 선택사항은 없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마검이 허공을 가르며 검은색 선을 그렸다

발목부터 허리까지를 구동시켜, 칼날에 힘을 쏟았다
마검은 미려하게 궤도를 그리면서, 소녀의 목을 베었다.
청난 양의 피가 튀어 검은 액체에 녹아갔다





"아니야,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어
왜나면 너도 마인이잖아?
인간 같은 거동을 하다니, 그렇게 인간이 되고 싶었어?"





눈앞의 소녀가, 갑자기 검은 액체로 변해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건물 일부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둥둥 공중에 띄우고 있었다




"나는 인간이야, 지금이든 옛날이든 말이지"





서 있는 오른 다리를 축으로 하여
기세를 죽이지 않은 채 몸을 반전시켰다
칼이 겨눠지며, 참격만이 소녀의 머리를 양단했다
칼날에 진동은 없었지만 손 안에 마성을 죽인 감촉이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겠어?"





다시 그 녀석의 얼굴을 베어 죽였다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제브렐리스가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는 허리와 어깨를 구동시키며 칼을 흔들었다
검은 선이 계속 튀었다

무작정 하는 게 아니였다
죽일 수만 있다면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쉽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관찰을 하자면 역시 이 소녀의 신체 자체는
분체이거나 검은 액체 그 자체가 제브렐리스 본체일 것이다
놈은 검은 액체의 어디에서나 쉽게 나타나니 말이다
본질적으로 액체가 끊어질 수 없듯이, 녀석도 이래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엘디스, 이 친구는 왜 이러는 거야?
인간이 죽은 것이 그렇게 슬퍼? 당연한 섭리라구
인간도 뭔가를 먹고 희생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어
그리고 그것은 마성도 마찬가지야, 안 그래?"


"그러겠지, 엘프나 인간이나 그 점은 다르지 않아
하지만 그렇다면 죽지 않기 위해 항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거야
너의 행위로 많은 자들이 죽었어, 그렇다면 항거할 수 밖에 없겠지"




엘디스가 주변의 공기를 무겁게 만든 것이 드러났다
그녀의 저주가 제브렐리스 주위의 공기를 침식하고 있었다

엘프의 저주는 원래 인간을 향해 죽이는 것
인간이라면 저항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터였다

마성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지만 그래도 치명적일 수는 있었다
손가락 끝에 저주를 집적거리는 엘디스를 보며
제브렐리스는 그래도 꿋꿋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런 것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은 사건들을
제브릴리스는 그 단 한 마디로 끝냈다




"그렇다면 그렇게 슬퍼할 건 없어, 곧 만나게 될 테니까"





곧 만날 수 있다?

그 말의 의미를 따지기 전에
그녀는 담담하게 당연한 말처럼 말했다




"나는 축복하고 잉태하는 신이야
먹은 것을 죽이는 일 따위의 짓은 하지 않아
나는 내가 먹은 것조차 사랑하는 법이니까"




눈꺼풀을 감은 채
세상 모든 것을 축복하며 제브렐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뒤를 듣고 싶지 않았다
이 여자가 이미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존재로 이해해 버렸기 때문이였다

아니, 애당초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같은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습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것은 
인간 소녀도 단순한 마성도 아니다
대마 제브렐리스





"내가 죽였다는 건 모두 잡아먹었다는 거야
나는 먹은 모든 것에 축복을 내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낳아주는 거지
인간에서 마성으로 변하게 해준다면, 분명 그들도 기뻐할거야
그럼.... 우린 이제 친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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