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92화 - 시기심과 영웅의 그림자 - 본문
성녀님의 목소리가 호들갑스럽게 전장을 흔들었다
이것은 기회다
처음으로 이 발리안느라는 여자의
행동에 빈틈이 생겼어
내 손에 휘두를 수 있는 검은 없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야아아앗!"
몸을 비틀어서 어깨를 움직였다.
오른팔에 온 힘을 넣어서 발리안느의 목구멍을 내리쳤다
순간 내 오른팔은 흉기로 변모했다.
두둑, 하고 느끼기 싫은 감촉이 느껴졌다.
오른팔의 손톱이 발리안느의 목을 찌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이건 그냥 뒷골목의 막싸움에 불과해
눈 앞에는 목구멍을 손에 갖다대는 발리안느의 얼굴이 보였고,
오열을 하 듯이 입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아마 식도가 상했을 것이고,
숨만 쉬어도 격통이 오게 될 것이다.
자, 이제 편하게 해주마
그렇게 생각을 마친 후, 발리안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였다.
심지어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기에,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빛이 꺼지지 않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녀는 무엇인가의 커다란 의지 때문에
이 전장에 온 것만 같았다.
품에서 유일하게 남은 작은 단도를 꺼냈다.
발리안느가 이를 악물면서
억지로 몸을 움지려는게 보였다.
그 여자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채,
살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아직도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알 것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웠고, 무엇을 위해 배신했는 지도,
알 턱이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냥 죽인다
왼손으로 천천히 칼을 들어오렸다.
나이프가 묘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대로 발리안느의 목덜미를 도려냈다
피부를 찢어 고기를 도려내고,
칼 끝으로 신경과 함께 뼈를 드러내는 감촉
뿜어져 나오는 피가 검붉었다.
발리안느의 눈동자는 그 빛을 잃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까 목소리를 외친
성녀 마티아임에 틀림 없었다.
"...고마워요 성녀님
나는 틀림없이, 여기서 죽는구나 생각했는데 말이죠"
크게 한숨을 쉬며 그 말을 중얼거렸다
"뭐야, 나에게는 고마워하지 않는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죽어버리게 놔두는 것을!"
좋은 말투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피에르트가 입에서 뿜어내며 다가왔다.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려가는 것을 느꼈다
*
"네놈은 끝도 없는 바보구나
그것도 바보 중의 바보..."
나라면 그냥 뒤질거다
...하며, 카리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오랜만에 보는 은빛의 눈동자였다.
어찌 몸이 차가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시선을 뒤도 돌려도,
이번엔 검은 눈동자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였다
카리아든 피에르트든 둘다 전장에서는
빼놓기 어려운 전력이건만
그 둘을 보면, 내 마음이 겁에 싸이는 것은
지난 여행의 흔적이랄까
아니면 또 다른 감정이 싹트고 있다고 해야하나
"아... 뭐 결국 살긴 했잖아?
이래봐도 살아남을 궁리는 하고 있었다고"
"그건 다행이지만, 이제부터는
나랑 꼭 붙어다녀야 겠어.
이 세상은 너무 위험해, 어디든 나랑 같이 다니자"
나를 애완동물 취급 하는건가?
피에르트 녀석, 여기가 전쟁터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 건가
어느 때와 같이, 대가리가 텅빈년처럼 말하는군
물론, 이런 김빠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전장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밖엔 없다...
문장교도 기사들은 정정하게 싸움을 시작했다
그들은 전장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첫 전투라는 엘프들은
정말 상대가 안되는 상대였다.
발리안느가 거느렸던 병사들은
문장교 기사들이 검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기세가 꺽인 듯 하나 둘씩 도망갔다.
그러나 숫자는 아직도 이쪽이 열세였다.
발리안느의 병사가 시간을 끄는 동안,
곧 이어 라기아스의 본대가 돌격을 걸 것이다.
문장교도 또한 수는 조금 있었지만,
엘프의 병력에 비하면 한참 못 미쳤다.
거기에 더 안좋은 예감을 말하자면,
적측은 아무래도 승부를 빠르게 낼 생각인 것 같다.
장기전을 예측하고 있다기에는
너무 적들의 기세가 강렬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정이 가미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무슨 결정을 내리시겠습니까?
상황을 살피는 듯이 마티아가 목소리를 내었다
여전히 귀에 잘 울리는 목소리였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싸움에 득이 없다고 보고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살얼음판 위에 발을 디딜 각오로
돌격해야 할 것인가
이번 결정이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마티아의 말대로
지금 주어진 일시의 시간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이 전장의 운명은 물론,
엘프라는 종족의 존망까지 말이다.
당길 것인가, 밀 것인가...
"그래, 성녀님은 어떤 결정을?"
가볍게 말하듯 입술을 움직였다.
마티아가 놀란 듯 시선을 날카롭게 올렷다.
"...루기스,
저는 당신의 의견을 물은 것입니다."
그 말에는 어느 정도 놀라고 말았다.
마티아가 나란 인간을 싫어한다는 것은
가자리아에 이르는 여정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의견을 듣는 단 말인가?
"깊은 뜻은 없습니다.
단지, 당신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음.... 어느정도 신용은 하고 있는 겁니다"
말을 짧게 끊으며,
가만히 이 쪽을 바라보는 성녀의 눈동자에는
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신용이라니,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 나에게서 어떠한 의견을 구하지 않았던
사람이 나를 믿어주다니, 이거 정말 영광인걸
근데, 정말 내 말에 의미가 있긴 한건가?
어딘가 자신을 꼬집듯이
천천히 나의 턱을 움직였다
"당연히 앞으로 갈 수 밖에 없지.
왜냐? 나는 그것 때문에 여기에 온 거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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