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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98화 - 영웅에 걸맞는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5장 가자리아 내전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98화 - 영웅에 걸맞는 자 -

개성공단 2020. 3. 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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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 앉은 자세에서 일어서려니

오른팔이 그대로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들었다.

목구멍 안쪽에서는

통렬한 구역질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멈춰있던 아랫도리를 억지로 깨우고

뼈를 삐걱거리며 그대로 일어섰다

이마는 땀방울로 가득찼고, 

입가는 벌써 숨으로 헐떡였다.

 

하지만 일어섰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카리아는 적을 뒤엎기 위해 전선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만한 일을 하지 않으면 언된다

단지 웃으며 그 등을 지켜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였다.

나 같은 손발을 부리지 않느면

그 존재를 인정 받을 수 없으니 말이야

 

"약속을 어기는 건가 루기스"

 

온몸을 일으켜서 한숨을 돌릴 무렵,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후위에서 숨어있는

엘프 공주의 목소리 였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당연하지, 나는 이 전장의 책임자야

모든 것을 지켜보고 모든 것을 간직할 책임이 있어"

 

책무를 다하라고 그렇게 말한것을 너일텐데?

...하며 엘디스는 시선을 높였다

 

나의 눈동자에 비친 그 모습은

환영으로 만들어진 엘디스의 모습이였다

 

그렇든 말든 이 모든것을 지켜보다니

이 공주님은 생각보다 의리가 강한지도 모르겠는걸

분명 책임을 다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스스로 처참한 현장을 보러오는 지휘관 같은건 별로 없었다

 

전술적으로 따지면 꽤 유용하긴 했다.

지휘관 자체가 멀리 있으면서,

전선을 바라보다니...

어떻게 말하면 환영술이 지휘관을 위한

기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침 잘됐네, 전령을 보내려고 했던 참이야

엘디스,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질문은 끝나지 않았아

약속을 어기는 거야? 그 아이를 믿지 않는 거야?"

 

그것은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의 말이였다.

나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을 따돌리는 것 따윈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투

어딘가 깊은 감정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약속은 카리아와의 대화를 말하는 건가

근데 공주님은 거기에 집착하는 거지?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카리아를 진정으로 믿고 있어"

 

왼손을 가슴에 두며, 씹는 담배를 찾았다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어갔다

 

카리아는 승리를 바치고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하면, 나도 그럴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볼 낯이 없었다.

차라리 여기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은

그냥 목을 메는게 나을 정도 였다.

 

카리아가 나에 대해 할 말을 다했다면,

나도 그 말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상칙이다.

그것이 카리아라는 영웅에 대해

나 정도가 살 수 있는 성의의 표시 였다.

 

"아무튼 나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

엘디스, 이 나라에 왕족 특유의 샛길이라던가

탈출구 라던가, 그런건 없나?"

 

그 말에 어디선가

엘디스는 기가막힌 듯 했다.

 

말하는 의미를 모른다기 보다는,

그 맥락을 알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늑대를 여지껏 몰아넣어 놓고,

자신은 담벼락의 구멍으로 도망을 간다?

 

엘디스의 눈동자는 곤혹스러운 빛을 동반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에 있어서도 전장은 혼란의 도가니에 있다

승패 따위는 과거의 역사에서도 

증명되지 않는 사항이였다.

 

오히려, 지금 이 때에 있어서는 

이쪽의 상황이 압도적으로 나빴다.

그 사실은 엘디스도 알고 잇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천재인 피에르트와

영웅인 카리아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선에 나섰다

 

그렇다면 당연히 승리할 것이다.

그 밖의 결과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이 영웅이나 천재들이라는 것이고,

역사는 항상 영웅의 손에 굴러 떨어졌다

 

엘디스가 입가에 손을 얹으며

고민하듯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알았어, 네가 그렇다면

그 탈출구로 군사들을 보내자"

 

그러니까 너는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는

그렇게 말하는 말투였다

 

과연, 좋다.

빈틈없이 군인으로 둘러싼다면

그들은 항전할것이고, 큰 피해가 속출할 것이다.

 

"...아니야. 나도 가겠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냥 여기서 앉아 있다가, 라기아스를 놓쳤다간

나는 목을 메달아도 충분하지 못할거야"

 

"...너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자네보다는 보통의 군사가 도움이 될거야

라기아스도 탈출한다면, 합당한 정예를 데리고 있을 테니까"

 

이상하게도 어딘가 노기를 띤 것 같은

엘디스의 말이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지금 이 몸에서 오른팔은 움직이지 않았고,

다른 부분에서도 상당히 무리가 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도움이 될 지는 전혀 없었이에,

지금은 잡병 그 이하의 수준 이였다.

 

그래도, 지금 이 때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안 된다.

등줄기에 식은 땀이 달리고,

목구멍이 진흙이 채워진 것 같은 끝없는 불안감이 있었다.

 

"엘디스... 무례하다는 것을 알지만...

너의 적, 원수이기도 한 

라기아스는 영락없이 영웅에 걸맞는 엘프야"

 

그건 어찌보면 확실했다

 

옛날 시대에서도

찬탈자이면서 이 커다란 국가에서 병사의 운용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게다가 인간 나라와 협정을 맺는

그 의지와 시대를 앞서가는 예측력

그리고 그 소문의 마디마디로부터

내 안의 불안감이 솟아올랐기 때문이였다.

 

틀림없이 라기아스는

영웅에 걸맞는 엘프라는 것을...

 

그리고 영웅은 쉽게 죽지도 않는다

아니,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수 많은 적을 앞에 두고도,

절체절명의 칼날을 노려보며 태연하게 연명한다.

그런 존재가 확실히 존재했음은

지난 여행을 거치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을 조르는 손을 늦추고 싶지 않았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것 이였다

 

라기아스가 영웅에 걸맞는 엘프라면

그 자신도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총명함이라든지,

총지휘관으로서의 의무라든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움켜쥐는 영웅은

반드시 살아남아서 틀림없이 다시 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이 쯤에서 숨통을 끊을 수 밖에 없다.

그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라기아스라는 그림자는 우리의 시름으로 남을 것이다

 

왼손으로 보검을 움켜잡았다.

보랏빛 일선이 들어간 칼날이 희미하게 빛났다

 

- 영웅을 죽이는 자

 

그렇게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루기스는 속으로 드높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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