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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91화 - 합동회의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91화 - 합동회의 -

개성공단 2020. 4. 17. 11:30

문장교와 가자리아의 합동회의 진행은 매우 순조로웠다

 

라르그도 안은 다소 표정과 태도를 굳게하면서도

평소대로 능숙하게 진행을 해왔고

무엇보다 문장교의 대표자인 성녀 마티아,

가자리아의 여왕인 핀 엘디스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회의 진행을 원활하게 하고 있었다

 

이것이 만약 사신끼리 주고받는 것이라면

하나의 절충안을 만드는 데에도, 며칠, 몇주가 걸릴 것이다

서로 어느 곳을 양보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주군에게 주어진 권환인지

그것 등을 일일히 확인하면서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였다

 

그 확인을 위해 말을 이용해 곳곳을 달리게 하거나

주군에 대해 격식을 차린 문서를 작성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나 같은 인간은 너무나 귀찮아서 그냥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여하튼 나 같은 빈민가나 용병같은 사람에겐 작전회의라 한다면

그저 내뱉는 대로 행하거나, 제비뽑기 같은 도박으로 결정하는 것이였다

거창하게 사전계획이나 정보수집이니 하는 것은 전혀 아니였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왠지 모르게

그저 두 세력의 회의를 세심하게 응시하며

하품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었다

 

다른 곳에 앉아있는 카리아나 피에르트는

가끔 회의에 끼어들어 의견을 제시하곤 했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여태까지 해봤던 싸움은 소규모 부대끼리의 싸움으로

거대한 세력끼리 어금니를 겨루는 같은 큰 자리에서,

나와 같은 존재의 의견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용주, 너는 이게 뭔 소린지 알겠어?"

 

나처럼 말석 근처에 앉아있던, 브루더가 작은 목소리로

겸연쩍은 듯이 말을 걸어왔다

 

베스타리누의 대리라는 형태로 출석한 브루더는

갈색 머리카락을 눈가에 흩날리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

 

질문을 받은 아 역시, 아는게 별로 없었기에

 

"...나도 이게 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어"

 

그렇게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중얼거렸다

 

대성교, 즉 갈라이스트 왕국과 주변의 연합국은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를 목표로 군대를 진격했다

 

본래라면 먼저 용병도시 베르페인이나

공중정원 가자리아로 침공하는 것이 쉬울테지만

대성교의 이름을 따서, 구교도 토벌을 목표로 하는 이상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원칙이란 놈은 언제나 편리하고도 귀찮은 것이다

 

그 군대 규모는 문장교와 가자리아 합동군을 훨씬 웃돋았다

정면으로 맞닥뜨린다면, 그야말로 용과 뱀의 대결이였다

이길리 만무했기에, 이런 회의를 하는 것이였다

 

"하나님이 기적이라도 일으켜 주신다면 편할텐데"

 

이길 가망이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만에 하나 대성교가 완전한 용이 되어

이곳에 강림한다면, 승산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대성교는 대국인 갈라이스트 왕국과

주변의 소규모 국가를 집어삼킬 정도의

규모를 가진 대종교다

하지만, 대성교는 그 정도의 규모를 가졌기에

조직 자체가 바위 처럼 단순한 구조가 아니였다

 

그 내부는 여러개, 작은 것까지 포함하면

셀 수 없을 정도의 파벌로 분화되어 있엇다

 

그 중에서도 큰 것이 세속과 혼합하자는 속권(俗権)파

대성교의 본래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이념(理念)파

 

대부분의 귀족은 이 중 한 쪽에 속해 있고,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세력은 매우 나빴다

 

거기에 더해, 표면적으로는 대성교의 신앙을 말하면서도,

대부분의 조직은 이미 썩어빠질 만큼 부패해 있었다

지금은 문장교라는 모두의 적이 있기에 뭉쳐 있는 것 같지만

실제 그 내부의 모습은 매우 참담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노리는 용의 급소라며

회의 진행자 안은 열변을 토했다

 

전투 지향인 이념파에 전술적 승리를 얻고

비전투 지향인 속권파에 전략적 승리를 얻는다

 

모든 전쟁터의 모든 적을 이겨낼 필요는 없다

전투 지향인 이념파가 송곳니를 드러내는 전장에서

전략을 쏟아서 단 한번의 승리를 거둔다면

이제 조금씩 상대의 발밑을 무너뜨릴 수 있다며

마티아가 안의 말을 거들듯 말했다

 

다른 말로하면, 그것은 어딘가 소극적인 수단이였다

아예 전면 승리를 포기하고,

우리 측도 어딘가 손해를 보는 듯한 선택

 

물론, 우리의 생각이 잘되어서 이번 한번을 극복할 수 있다 해도

한랭기가 끝나면, 저들은 곧바로 군대를 몰고와서

이번과 같은 수은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단지 시간벌기의 전략이였다

 

대성교의 내부는 참담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쪽 또한 잔인하긴 마찬가지였다

조직 내부는 취약하고, 군비 증강도 여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저 불어닥치는 찬바람을

온몸으로 그저 버텨야 하는 처지...

 

지난 세계 때처럼, 복음전쟁이 끝날 무렵에

대지를 덮친 대재앙이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문득 뇌리에 상처가 난 것처럼, 통증이 왔다

내장의 밑바닥에서 말할 수 없는 불안이

기어 올라오는 것 같은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이상해, 아무래도 연도 계산이 안맞아

나의 기억착오 였던건가?

 

그런 식으로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리니

문득 회의장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발랄하게 논의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입술을 하나같이 다물고

시선을 알 수 없는 곳에 두고 있었다.

 

"루기스, 내 말 듣긴 한거야?"

 

그런 불가사의한 정적 속에서

엘디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꺼풇을 몇 번 깜박이면서

무슨 일인지 모르는 양, 시선을 그대로 엘디스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이 회의에 낄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주위의 이야기든 뭐든 귀에 넣지 않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위의 시선이 모두 날 향하고 있었다

안, 마티아, 카리아, 피에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기분 탓인가?

 

엘디스가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입술을 열었다

그녀가 입을 열자, 손 끝이 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는 대성교와 전투를 치를 때,

가자리아의 기사로 부대에 가담할꺼야"

 

아아, 그 이야기 였어?

 

전술이나 전략같이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가 아니여서 다행이내

그렇다면 나도 답을 들려주어야 겠지

 

나는 약간 무거워진 입술을 벌리고

목을 한번 울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럴 순 없어, 나는 이미 역할을 정했거든

나는 지금 문장교의 용병과 같은 입지야

그렇다면 나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야"

 

이렇게 해야, 문장교도도 가자리아도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왠지 엘디스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엘디스는 내 말을 듣자,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으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냐, 라는 심정을 보였다

 

'루기스 넌 내 기사잖아'

 

엘디스는 둔한 벽안으로

마치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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