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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99화 - 영웅의 광경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99화 - 영웅의 광경 -

개성공단 2020. 4. 22. 13:33

의례대 주변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그 목소리가 공기를 가득 떨게 하고, 내 피부를 화끈하게 했다

사람의 목소리란 모이면, 이렇게도 질량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때서야 잘 알게 되었다

 

"그렇게 영웅으로 태어난 당신에게 두번째 이름... 문장을 드리죠"

 

의례대 위에서 바라본 채로 있는 나에게 마티아는 그렇게 말을 고했다

 

순간 목소리가 질량처럼 되어, 온 곳에 울러퍼졌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공간을 갈라, 온곳을 기쁨으로 메워나갔다

 

하지만, 반면에 나에게도 그러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숙인채 눈을 부릅뜨고, 볼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기다려, 마티아, 나는 그런 말 들은 적이 없다고

 

이 세상 진리는 탐구 속에 있고 문장이 그것이 가리킨다

 

그것은 문장교도가 말하는 상투 문구 중 하나

문장교가 지식과 문자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근원은

신이 남겼다는 문장에 있다

 

일찍이 존재했다고 하는 운반식 오우흐르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문장을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그 문장을 통해 지혜를 얻고, 이성을 기르며 문화를 일궈나갔다

누구나 신이 주신 문장을 숭배하며, 문장에 주어진 지식과 글을 숭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지식은 사라지고, 문화는 멸망하며

그렇게 숭배는 유명무실 해졌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신에게 주어졌을 문장의 의미를

어느새 누구나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직도 싸움을 계속하며

자기 욕심 때문에 살 수 없게 됐다고, 이들 문장교도는 말한다

 

문장교도의 지향점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문장이 나타내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인간의 손으로 되돌려서

이 세상의 질서를 되찾는 것인 것 같았다

 

그런 경력 때문일까, 그들에게 있어 문장이란 둘도 없는 의미를 지닌다

 

그야말로, 문장의 영정을 한번 짓밟았을 뿐인데도

처형된 기록이 있다고조차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이에 써진 글일 뿐이지만

그 정도로 그들이 문장이라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장교도에게 있어서

고유의 문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지상의 명예

그야말로 교단 안에서도 유사한 공적을 내건 사람이나

마티아와 같이 성녀의 지위를 얻고 있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일 것이다

 

근데 그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애당초 나는 문장교도도 아니다.

그리고 너희가 그토록 숭배하는 문장도 자세히 모른단 말야

그런 나에게 문장 따위 거창한 것을 주면,

문장교도들 중에서도 모종의 알력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걸?

 

게다가 내가 오늘 식전에서 들었던 것이라고는

영웅으로서의 직함을, 형식적임에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엿다고

문장이니 뭐니 하는 말은 조각만큼도 듣지 못했어

 

가슴속에 동요를 띠며, 몇 번 눈꺼풀을 깜빡이며

살짝 고개를 들어 마티아 쪽을 바라보았다

너 잘못 말한거 아니냐는 의심을 빛을 포함한 시선으로...

 

마티아는 나의 시선을 눈치챘을 것이다.

시선을 받은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그 표정에 미소를 지었고

마치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이 잘 풀리는 듯,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나의 눈에 비추자마자, 

가슴속에 문득 한 가지 의심이 소리를 질렀다

 

이 녀석, 혹시 나를 속인 건가?

 

등에 뭔가 차가운 것이 기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을 청하듯 이번에는 마티아 결에 선 라르그도 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은 어느 쪽인가 하면 문장교 중에서도 단언 온건파 인간이였다

 

사람과 사람의 협조를 제일로 생각하는 그녀라면

문장교 전체에 격량을 일으킬 수 있는 

마티아의 이번 언동에 대해 뭔가 행동을 일으켜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햇다

 

"영웅 루기스, 성녀께서 당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시려 합니다

부디 왼손을 내밀어 주세요"

 

시선을 돌리자마자, 안은 입술을 치켜올린 채, 미소를 지으며

어느 하나 의문점이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을 뱉었다

 

과연, 안 너도 공범이구나?

 

나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 정도의 혼란을 느끼는 가운데

숙연하게 식전이 진행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황송하다는 듯이 거절해야 할까?

 

아냐, 그럴 수는 없어. 너무나도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

 

이 행사는 문장교와 가자리아가 단결해

모든 의지가 일치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였다

그 가운에 엇박자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 영향이 어느정도 여파를 미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성녀의 의식을 망쳤다고 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 자리에서 폭도에게 습격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군중의 목소리가 간간히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입술을 들썩이며, 시키는 대로 왼손을 눈 앞의 마티아에게 내밀었다

'

마티아는 상당히 공손한 손놀림으로 내 손을 만지며

그리고 어떤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내 손가락에 넣었다

마치 부서지지 않도록 건드린 것 같은 정중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다시 주위 일대에 마티아의 목소리가 울렸다

 

영웅 루기스, 당신에게 주는 이름과 문장은 황금

저는 당신이 이름에 걸맞은 진가를 지니고

그리고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고결함을 지닌 인물이라고 믿습니다

 

황금, 뭐야 장난을 쳐도 정도가 있지

남의 눈만 없었다면, 이 자리에서 크게 한숨이라도 쉬는 건데

 

기껏 내게 주어지는 것이라곤, 가짜 황금이나

금의 도금 같은 것일텐데, 황금이라니...

 

정말로 그런 두 이름, 문장이 어울리는 인간은

그야말로 헤르트 스탠리와 같은 태양 같은 영웅을 말하는 걸꺼야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분명 본래라면 황홀해야 할 마티아의 문구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였다

과연 순순히 받아들여도 좋은 걸까?

 

아아, 그야말로 남이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미려한 말을 늘어놓아, 좋은 기분이 들게 하고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대상이 나 자신이라면, 그렇게 간단하게 될리가 없었다

 

어쨌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은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놈이니까

 

아무리 가슴속에 허튼소리를 하고, 본심을 덮어버려도

어느새 악마인지 뭔지의 손가락이 그 뚜껑을 열어버린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빙글빙글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머리 위에서 말이 들려왔다

 

"루기스, 고개를 들으시오"

 

그것은, 방금것까지의 것과는 다르게

주위에 울러퍼지기 위한 것이 아닌, 언제나대로인 마티아의 목소리였다

내가 목소리에 이끌리듯이 얼굴을 들자, 마티아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자애를 머금은 듯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대략 이해하고 있습니다

칭호가 자신에게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다

그런 일은, 분명 당신 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잇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가슴속에서 생각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건져낸 것 같은 말이였다

나는 무심코 대답하는 것도 잊고, 마티아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것이 약이라곤 할 수 없지만

모든 진실이 안쪽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끔은 밖을 내다보는 것도 좋은 법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마티아는 내 손을 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의 왼손에는 마티아가 내민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거기에 새겨진 문장은 그들이 숭배하는 문장의 형태와는 또 딸랐다

황금의 뜻을 가리키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마티아에게 재촉받는 채로 일어나

나는 군중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소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세계를 진동하게 할 소리가

 

살갗이 따가웠다.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질량으로 변환되어

나에게로 꽂혔다. 그것은 아픔따윈 잊어버릴 정도였다

나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은 처음이지만, 

그 광경만은 이상하게도 본 기억이 있었다

 

맞아, 분명히 본 기억이 나

 

그 시선과 목소리는, 이전의 여로에서 나에게는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던

여로를 함께 가는 그들에게는 주어진 것이였고

동시에, 내가 마음속 깊이 동경하고 있던 것이였다

 

영웅이라고, 그렇게 불린 자들이 받아 들이고 있던 시야가

확실히, 지금 여기에 있었다

 

"사람의 눈은 때로는 입술보다 웅변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

어떤가요 루기스, 당신을 향한 눈은...?"

 

마티아는 옆에서 목소리로 내 귓전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거기에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제일일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다만 이상하게도 딱딱하게 굳어있던 의심이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사라지고

지금은 단지 온몸을 떨게하는 묘한 심장의 두근거림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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