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44화 - 피는 주홍색보다 붉다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44화 - 피는 주홍색보다 붉다 -

개성공단 2020. 5. 19. 19:30

은색 머리카락이  감옥 벨라의 공기와 맞닿았다.

카리아는 쉰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매장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표현하고 있는 듯 했다

 

음침하고 시체보다 진한 피냄새가 나며,

사람에게 좋지 않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였다


이것은 단순히 더러움을 씻어내린다고 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감옥 그 자체에 냄새와 망념이 베어있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면, 이 건물을 통째로 파괴하는 수 밖에 없겠지.


"어째서 갈라이스트 병사들은 물러난걸까?

엘프 병사들이 그렇게 위협적인 것이였을까?"

 

옆에서, 흑발을 휘날리며 피에르트가 말했다.  

아마도 스스로 뱉어낸 말에 조차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던 거겠지.  

표정에는 분명한 당황스러움이 떠올라있었다.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까. 

정식으로 훈련을 받지 않은 병사들이라면
엘프라는 이름만 들어도 전율을 일으키고, 전의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법갑옷을 두른 그녀, 발레리 브리트니스가 이끄는 군대는 다르다.
그건 틀림없이 최정예 그 자체였다

발레리를 포함해, 오로지 싸우기 위해 존재하는 놈들이였다.

 

그들은 설령 두려워하는 일은 있어도, 전의를 상실하는 일은 없다.
공포를 느끼지만, 등을 보이는 일은 없다. 

그것을 카리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그들이 군대를 물렸다면. 

그건 좀 더 다른 곳에 원인이 있었다는 얘기겠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겠지

번견 발레리가 직접 물러나야 할 무언가가

약해진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나야 할 무언가가..."

 

카리아는 웃음마저 지으 그리 말했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 뾰족해졌다.


그 무언가를, 분명 루기스는 알고 있을 거라고 카리아는 생각했다.
녀석은 이전부터, 아니 만날 무렵부터 그래왔기에


마치 이쪽의 전부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이 말하며, 움직였고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자신을 
신뢰하고 있는 듯 하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은 아무것도 꺼내려 하지 않았다.


분하다. 이제 와서 뭘 숨기겠다는 것인가

내가 그리 미덥지 못한단 말인가

설령 무엇을 안다고 해도, 변심이란 있을 수 없을 텐데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만약 가슴 속에 숨기고 있는 모든 걸 

루기스가 토해내준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카리아는 환희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이였다.

 

아, 하지만

이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여기에 오고 말았다

이것이 몇 번째인가? 세는 것조차 바보같을 지경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군

 

카리아는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갈았다.  

가슴 주변에 응축된 분노가, 피부에서 흘러넘칠 것만 같았다. 

손끝은 경련을 일으킨듯이 몇번이고 떨렸다.

허리춤의 주홍색 검이, 카리아의 감정에 이끌려 진동했다


태도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피에르트도 그 심경 자체는 카리아와 다를 바 없었다 

격정을 배에 삼키며, 진흙 같은 감정을 안고, 눈을 형형하게 번뜩였다


카리아가 갈고 닦아진 검 그 자체라면, 피에르트는 화약고 같았다.
얌전히 모든 걸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있지만.  

무언가가, 무슨 계기만 주어진다면 모든 것이 폭발할 것이다 


감옥 막다른 곳에 감시탑 맨 윗방까지 와서 카리아는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별로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노크도 없이 문을 여는 것은 무례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안에서 엘프의 여왕인 엘디스가 목소리를 내었다

의무를 다하고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카리아는 살짝 표정을 가다듬고, 재촉을 받은 채 실내로 들어갔다

 

"..... 면회라도 와준거야? 아니면 이제 나가야 하는 건가"

 

실내로 들어옴과 동시에, 그런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리아는 얇은 선을 뺨에 넣으며 대답했다.
조금 목이 들떠 있는 듯 했다


아아, 바로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앞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일인가.


"잠꼬대는 꿈 속에서만 해라, 루기스

본래라면 내 시야에서 나오는 것조차 허락못해"

 

카리아가 농담 삼아 말한 이야기에 이어서,  피에르트는 말했다.


"게다가 그 만큼의 상처를 입었잖아

무턱대고 밖으로 나왔다간 곤란해

아아, 그러고보니 크게 다쳤는데, 왜 감옥에 오게 된거야?"

 

루기스는 만연의 미소를 짓고 있는 피에르트를 보고

겸연쩍은 듯 씹는 담배를 빼어,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은 분명 드물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미안한 짓을 해버렸다.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 

적어도 지금, 루기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카리아는 확신했다.


따라서 그는 구속에 가까운 삼황을 감수했다.  

신체가 완치될 때까지 간부실 안에 틀어박혀
자신들이 지켜볼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는 것을 수락한 것이다.


그것은 모두 죄책감이기 때문에

 

얼굴이 뜨거웠다

카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뺨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지금 녀석은 약점을 보이고 있다

몸도 피폐해져, 우리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거야

 

그렇다면 이틈을 타서, 녀석의 정신을 속박하고 싶다

사고의 주도권을 빼앗아 내가 없으면 안됀다는 것을, 

내가 있어야만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할거야

 

어깨를 으쓱이면서 침대에 누운 루기스를 보며, 

엘디스가 수중의 책을 넘겨가며 말했다.
벽안이, 부드러워지며 미소를 짓는다.

 

"루기스, 이것만은 받아들어야 해

무엇이든지 자유 멋대로 할 수 없는 법이란 걸"

 

분명, 피에르트든 엘디스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 

카리아는 깨달았다

 

자신도 그녀들도, 이미 왜곡된 감정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왜곡보다 더 뒤틀린 무언가...

 

그리고 이젠 누구 하나, 그걸 버리려 하지 않았다.


카리아는 루기스의 옆에 앉아 기대며 말했다.


"게다가 감옥 안에서, 네 대리 역할을 애써주고 잇다

이 이상 바랄게 뭐가 있단 말이냐"


카리아는 침대위에 내던져진 채로 있던 루기스의 팔을 가볍게 만졌다.
상처가 아직도 두드러지지지만 그보다 앞서 카리아가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피

피의 순환 그 자체

호흡이나 심장의 움직임과 동시에, 루기스의 체내를 뛰어다니는 그것


카리아는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지금 루기스의 몸 안에는 자신의 피가 있다


혈맥교합

프리슬란트의 일막을 계기로

카리아는 다량의 피를 루기스에게 쏟았다

본래는 그저 의식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았던 그것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분명히 그 피가 루기스의 안에서 숨쉬고 있다.
의미를 이룬 것이다.


그 의미는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카리아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단지 함께 있고 싶다는 것 뿐


카리아는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순수한 사람이 아니다. 

거인이라는 신화 속에나 나올 법한 종족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본능이 직감하고 있었다.

 

물론, 어느 하나 후회하진 않는다. 

프리슬란트에서 이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도 루기스도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 역겨운 여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였다


가슴속이 떨리고 끓는 듯한 분노가 조용히 솟아올랐다

그걸 생각하면 거인이라는 종족이 된 일에, 어떤 후회가 든단 말인가

오히려 환희할 만한 일이 아닌가

 

그래, 후회는 없다. 

하지만, 단 한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기자신이 이 세상에 홀로 남은 종족이 되버렸다는 것.


사실상 동족은 멸망하고. 

거인이라는 종은 멸종할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분명 그것은 변할리 없는 사실.

 

생물으로서의 본능인지, 그것을 생각하ㅈ자니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카리아를 좀먹고 있었다

전에는 느껴본적이 없던 감정

설마 내가 그런 것을 고민하는 약자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까지 약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루기스의 속에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록

카리아는 작은 신체에서 흘러넘칠 정도의 희열을 낳았다. 

머릿속이 저릿하며 그대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피는 그를 변질시키고 있다. 본래라면 몇개월은 요양이 필요할 상처가
거의 아물어가는 것이 그 증거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종족이란 것은, 싫다. 

하지만 둘 뿐이라면, 그것은 좋다

아주 아주 좋다, 카리아는 느슨해진 뺨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루기스는 가볍게 어깨를 기울이며, 카리아의 손을 오른팔에 감싼채 말했다.


"얌전이 있으라 하면, 지금은 그렇게 할께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싶은 녀석이 있는데, 허락해주지 않을래?"


루기스의 말에

피에르트가 또 무슨 여자냐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볼 주변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디스 역시 벽안을 가늘게 일그러뜨리고 잇었다

 

루기스는 이들의 반응에,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여자는 아니야.. 라기보단 인간이 아니야

도하스라, 이 감옥에 붙어있던 마수야"

 

그 녀석에게 묻고 싶은게 있다고, 루기스는 입술을 열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