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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56화 - 혈통은 여기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3장 대재해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56화 - 혈통은 여기에 -

개성공단 2020. 5. 29. 21:52

눈이 내린다고 해도, 불이 켜진 실내는 다소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옷을 두껍게 입은 탓도 있고 해서인지, 목덜미에 땀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내게 내어진 도시 필로스의 개인실에서, 드디어 외투를 벗어던졌다. 

다소 한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쪽이 더 편했다.

 

그런 와중에

마치 당연한듯이 내 방을 자기 제 방처럼 사용하는 카리아가 말했다.

 

"허세를 잘도 부리더구나, 마수재해 토벌의 거두가 되겠다는 등..."

 

설마 무턱대고 질러본 것 아닐테지 하고, 

은발을 쓸어넘기며 카리아는 말했다.

옆에선 피에르트도, 카리아의 말에 끄덕이듯이 흑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정말 실례라고

마치 내가 생각없이 움직인 적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항상 약간은 뭔가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곤 했지만 말야

 

...라곤 해도, 모든 게 순조롭게 풀리는 게 드문 건 사실이였지만

 

자 그럼,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을 

어떻게 해서 말로 표현해볼까 하고, 조금 사고를 회전시키는 그런 찰나였다 

 

문이 노크도 없이 가볍게 열렸다. 

거기서 나온 인물은, 하얀 눈을 형형히 부릅뜬 채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필로스 트레이트. 

괴뢰도시 필로스의 통치자였던 자이며, 

그리고 현재 문장교 동맹자의 일원.


그녀가 내 방을 방문하는 일은 드물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난폭한 방문은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니 분명히 그녀는,  내게 무슨 용건이 있다고 말했었지

 하지만, 이렇게 성급하게 발걸음을 할 줄이야


좀 봐줬으면 한다

적어도 새 와인 한 통이라도 가져다 준다면 환영일텐데


그런 내 생각을 짓밟듯이, 필로스는 사용인을 데리고 실내로 들어왔다.
카리아나 피에르트를 한번 처다봤지만 

흥미없다는 듯이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크게 입을 삐죽이면서 말했다.


"......당신 나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루기스 브리간트, 제후에게 무엇을 불어넣었지?"

 

비교적 작은 체구가 크게 떨리며, 그림자를 흔들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슴속 밑바닥에 가득 담아둔 감정을 

어떻게 해서 토해내야할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가까이서 이쪽을 노려보는 그녀가,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과연, 그런건가.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나를 방문했는지
그 시점에서 잘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제후에게 그녀의 본명으로 편지를 쓰게 한 것일 것이다

그것도 그녀에게 무엇하나 진의를 알리지 않고 말이다

 


그도 그럴게 필로스라는 인간은, 

사람을 꾸짖는다는 것을 지독히 어려워하는 성질이였다.
오히려 일이 벌어지고도,  모든 걸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전부 끌어안아버리는 인간


적어도, 이전에 도시 필로스가 로조라는 마인에게 전복당했을 때도.
그녀는 최후의 최후까지 원망하는 말 한마디 내뱉지 않았다. 

틀림없다., 고귀한 기품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증오스러운 기분으로 나를 노려본다면
사실상 원인은 하나 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아무 이유없이 모함을 받았을 때 뿐이겠지.

 

옆에서 카리아가 또 네놈은 뭔가 저지른 거냐,  질색하듯이 그리 말했다.
나는 뺨을 달싹이며, 씹는 담배를 품에서 꺼내들었다.


"짐작 가는 바는 몇가지 있지만 말야

뭐야, 제후에게서 선물이라도 받은 거야, 필로스?"

 

나는 씹는 담배를 입에 물은 채 말했다.  

그리고 창을 방불케하는 백안의 시선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과거 이 시선으로 도시 하나를 집어삼켰다고 하니, 어쩐지 두려웠다


필로스는 목이나 어깨를 뻣뻣하게 한 채

뺨을 씰룩거리면서도, 심성을 달래며, 하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노여움을 다소 알아차렸는지, 하인들의 움직임은 

어딘지 어색했다

 

사용인이 지시받은 것은 하나, 양피지 뭉치를 방으로 옮겨오는 것.
그것이 차례대로 테이블 위로 놓여져, 마치 작은 산처럼까지 쌓여갔다.


과연, 이건가


"이게 너의 편지에 대한 답장인데, 무슨 문제 있어?"

 

한 박자를 놓고, 양피지 더미에서 필로스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변명같은 걸 하는 건,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사람이 하는 거잖아?"

 

내 말에, 필로스의 표정이 한층 더 사나움이 짙어진 것이 보였다.


잘도, 이렇게 건방진 말을 할 수 있는지, 나 자신조차도 고민했다

그녀를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끌어내놓고, 이렇게 변명하다니

스스로 목을 조이고 싶을 정도의 오만함인것 같다


피에르트가 필로스의 말을 잠시 끊으며 양해를 구하고, 

양피지 내용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의아한듯이 눈을 찡그리고 나서 입술을 열었다.

 

"귀족치고는 묘하게 신경 쓴 말투내

그리고 무슨 일이 있다면, 상당해 주겠다고까지 했는데, 

이건 무슨 뜻이야, 루기스"

 

흑발이, 허공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아니 일이 이쯤 되면 필로스 자신이 어디까지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요컨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나서 

나를 따지는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가... 이다


이후로, 필로스는 여기에 닥칠, 

큰 일들에 대해 가는 팔을 휘둘러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한다면 모든 건 제자리걸음이다.
따라서, 그 진의는 물어두어야겠지.

 

"정중히 안부를 묻는 사자까지 보내주더군

당신이 무엇인가 제후에게 불어 넣었겠지, 루기스 브리간트"

 

사자들을 물리면서, 필로스는 역시 분노한듯이 말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분노겠지.
그녀는 긍지 높은 사람이다. 

나 같은 것에게 휘둘려지고 도구처럼 취급당한다면 

그 감정은 당연한 것

 

아아, 하지만 그런가.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것인가.  

이 양피지 다발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니, 혹시 어쩌면 다소는 짐작가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너무나도 멀고 두꺼운 천에 뒤덮여져 있는 것.  

도저히 생각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이라면, 통상적이라면, 상상조차 못하겠지.  

과연 내가 무언가를 제후들에게 불어넣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알기 쉬울거여

 

하지만 늦었다

이미 일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라던, 바라지 않던 간에 말이다


그 와중에, 

그녀만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야 일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미, 막은 오른 것이다.

 

나는 씹는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아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들은 그저 보낸 편지에 경의를 표하고 있을 뿐

네가 보낸 편지에 말이야"

 

애초에 내가 어떻게 해서 귀족 제후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불어넣느냐고, 

그리 말했다
필로스는, 일순간 표정이 경직되면서도 

예리한 시선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런 필로스를 향해서, 말을 계속했다.


"옛날에, 어떤 고귀한 인간이

나잇살이나 먹은 주제에, 애인을 덮쳐, 한 아이를 만들었어"

 

어이없는 일이다. 

귀족이라면 후계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는 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있어선 그건 틀림없는 분쟁의 씨앗 그 자체. 

나라를 통치할 자격을 가진 인간이
그것도 국가를 분단시켜버릴 불안요소를 결코 만들어선 안됀다.

 

그것도, 첩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본래는 반드시, 어서 그 사생아의 목을 비틀어 버렸어야 했다

그것이 일종의 냉정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때때로, 대를 살리기 위해 소를 죽이는 법

그럴 수 있어야, 국가의 통치자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것이 자신의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대성교의 교의에 순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결과론적으로 아이는 목숨을 연명해버렸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수중에 계속 둘 수는 없었다. 

그것은 명확한 소란의 씨앗이 될 것이기에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은 허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아이는 지방귀족의 양자로서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귀족측도 거의 사정을 듣지 못했겠지
어쩌면 고귀한 인간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느쪽이든 간에 상세한 사정이나 경위는 나도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은, 원인과 결과뿐
그것들을 천천히 필로스에게 곱씹어 들려주며, 말을 지어냈다.


"그 고귀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누구보다 고귀하고, 누구보다 귀한 핏줄"

 

그렇게 묻자, 필로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내 출생을 야유라도 할 생각이야?"

 

필로스의 백안이, 격정이 아닌 창백한 것을 띄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심, 그리고 흥미와 곤혹

그런 것이 마음껏 섞인 감정이, 그녀의 표정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럴린 없지

첫째, 도랑에서 태어난 내가 누구의 태생을 야유할 수 있겠어

내가 말하는 건 사실일 뿐이야, 알겠어 필로스?

너에게 편지를 보낸 귀족은 말이야, 이렇게 믿고 있어"

 

나는 그 백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 눈동자 속은 내가 본 적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지금 당장이라도 흘러 넘칠 것처럼 되어있었다.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아멜라이츠 갈라이스트, 그것이 너의 아버지이며

그리고 너는 첩의 공주라고... 그렇게 믿고 있을거야

그리고 그것을 진실하게 만들기 위해, 알아서 움직여 주겠지"


순간, 필로스가 크게 손을 치켜든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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