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4화 - 죽이는 자와 죽지 않는 자 - 본문
- 죽이는 자와 죽지 않는 자
직선으로 날려진 흰 빛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이자
살의의 덩어리였고, 마인 드래그만의 머리를 튕겨냈다
뇌수가 흩어지고, 두개골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안구의 일부를 도려내 삐를 흩뿌렸더
통상적이라면 틀림없는 일격
하지만 살의는 거기서 끝이 아니였다
사지, 몸통, 골수 그리고 신경에 이르기까지
흰 빛의 열선은 드래그만의 모든 것에 쏟아졌다
그것은 격량을 생각할 정도로 감정적인 행위였다
아이가 짜증을 내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땅바닥에 발길지를 하듯이
집요하게 여겨질 정도로 자행되는 잔혹한 것이였다
그것을 한 몸에 받아
이제 온몸을 바꾸면서 재생하기 시작한
드래그만은 혀와 목구멍으로 입을 열었다
그의 떠오른 망막이 하얀 소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보니 아까 지보를 삼킨 인간은 자취를 감췄다
휘말린건가, 아니면 지하도로 도망친 건가
순간 그런 사고가 지나쳤지만
드래그만은 지금 그런 것에 생각을 집중할 때가 아니였다
"역시 자네 였군, 너무 과한 인사 아닌가
보석 아가토스, 미개한 공주는 아직 건재한 것 같군"
자기 앞에 선 소녀는
더 이상 조금 전까지의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아까의 그 소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여기에 있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의 동포인 마인이자, 유일무이한 보석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까지의 권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각성인지
아니면 잠시 눈을 떴을 뿐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확실히 이 자리에 서서
나를 향해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드래그만의 냉담함을 담은 눈이 사나워졌다
보석 아가토스는 입술을 매끄럽게 만지며, 대답했다
"인사는 이쪽 대사야, 통제자 드래그만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우울해지는 걸?
너의 귀찮은 성격 그대로, 계속 자고 있는게 좋았을텐데
우리 모두 만만세 아니야? 지금이라도 잠들어주면 안될까?"
예전부터 한결같은 밉살스러운 목소리
거기다가 그리움 마저 느끼니
드래그만은 재생된 볼살을 들썩였다
검은 안개가 걷힌 주위를 바라보니
마성과 인간의 시체가 몇 구 겹쳐져 있었다
아마도 아가토스의 소행일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공격에 휘말린 것일 것이다
안구를 움직여
아직 무사해 보이는 베르그에게 눈짓했다
사람 몇몇이 도망쳐 버린 것 같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였다
저능한 인간들 보단, 이 아가토스야말로 제일로 대처해야 할 존재
자칫하면 왕도가 그대로 잿더미가 되버릴 수도 있다
아가토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히 입을 열어, 말을 이어나갔다
"너... 날 죽이려고 했지? 이 아이 말이야
너의 권능으로 말야, 그렇지? 대답해!
침묵은 긍정으로 간주할 거야, 당장 대답해!!"
아가토스는 짜증을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여유를 보이는 것도 아닌, 그저 감정을 대놓고 드러냈다
드리그만은 문득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어느 것 하나 바뀌지 않았음을 말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녀에게 권능을 발휘했는지는, 말 안해도 뻔할텐데
아가토스에 붙은 소녀는 인간 편에 서 있었다
하필이면 보석의 권능을 사용해서 말이다
심지어 충동적이 아닌, 계획적으로...
그렇다면 당연히 반격했어야 했다
자신이 죽지 않는다고 해도, 최악의 결과는 뻔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마성된 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고 드래그만은 아가토스에게 물었다
"응 아니야, 드래그만
내가 원하는 것은 변명이 아니라, 최상의 결과야
너는 그저 수형자, 고발자는 나
증인도 나, 법관과 사형집행인도 나
너는 그저 최후의 발언만 생각하면 돼"
아가토스는 말을 마치자
그녀 주위에 온갖 색의 보석들을 만들어 내
드래그만을 향해 겨냥했다
그녀의 신호가 내려지면
금세 폭풍우 같은 보석이 열선이 되어
드래그만에게 쏟아질 것이다
하나하나, 마성 쯤은 열번 정도 죽여버릴 수 있는 흰 빛 말이다
드래그만은 뚜렷한 살의를 눈 앞에 두고
조용히 자기 휘하의 부하들이 막사에서 몸을 피한 것으을 확인하고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전례 없던 거친 감정을 드러내면서...
"생각났어, 너는 옛날부터 바보였지"
손바닥을 벌려
온갖 적의를 살결에서 베어나오게 했다
대지가 드래그만의 뜻에 따르듯 토사를 뱉어냈다
공기는 극한까지 치달았고
넘치는 흉흉한 의지가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마인... 그렇게 불리는 자들의 악몽같은 상극
괴물이 괴물을 상대하는 광경
그 직전
막사 끝에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삼키려는 마법의 업화가 말이다
*
"정말 괜찮으려나........"
피에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대화재에 흽싸인 막사를 바라보았다
민가의 지붕에서 내려다보는 그 광경은
처참을 넘어 차라리 황량해보이기까지 했다
불꽃은 일체의 예외 없이
막사의 모든 것을 감싸기 시작했다
시체도, 마인도, 무구도, 물자도 전부 다 말이다
모든 것은 준비된 대로다. 잘못 된 것은 없었다
루기스는 그 때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하라는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그것은 당초의 속셈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막사 자체를 불태워버리라는 뜻이기도 했다
다만 피에르트에겐 우려가 있었다
정말 이것이 잘 하는 짓인가 하고 말이다
그녀의 이마와 목엔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루기스가 소리치긴 했지만
그는 정말 무사하긴 한 걸까?
엘디스 역시 인간을 무사히 대피시켰을까?
그것은 마인만을 주시하던 피에르트에겐 영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카리아는 뭐... 괜찮겠지만
그래서 당초 피에르트에겐 망설임이 있겠다
정말 이게 좋은 선택인 것인가
루기스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자 하는게 아닌가
피에르트는 순간 자신의 손짓을 멈추었지만
곧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루기스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이였다
그것은 그녀에겐 뭔가 추한 느낌으로 다가웠다
나는 그저 그에게 버림받는 게 무서웠을 뿐이야...
가령 모든 것이 문제가 없었을 때
만약 자신이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면
루기스는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물론 대놓고 질책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신용 받지 못할 것이다
그건 싫어
세계와 재능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외면한다면,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다
피에르트는 그것을 피부로 직감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 주변을 차가운 것이 어루만져 가고 있었기 때문
피에르트의 이성은 너무나 위태로운 장소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한 걸음이라도 기울면,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뭔가 하나라도 틀리면, 그대로 낙오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그녀의 불꽃은 형식마법을 뛰어넘는 것이였다
전장 마법, 마법의 시조 아르티아에서 벗어난 것
그렇든 말든 피에르트에겐 대화재건 홍수건 뭐든 상관없었다
그녀가 가진 원래 재주는 상식에 짓눌리지 않고
세계의 이치를 짓밟는 것이였기 때문이였다
고유 속성에 얽매이는 속인과는 얘기가 다른 것이였다
그 중에서도 불꽃을 선택한 것은
그녀가 불꽃을 좋아하기 때문이였다
물론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였다
불꽃을 보면
그 날이 생각나기 때문이였다
지하신전의 그 날
루기스가 자신의 몸을 불꽃에 맡기고
처음으로 그의 몸을 새롭게 만들던 날
그 날을 떠올리니, 피에르트는 불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나친 긴장에 휩싸여야 하건만
피에르트는 단지 그것만으로 짜릿한 한숨조차 나왔다
"그 날은 밧줄 하나 조차 태우지 못했지만...."
피에르트는 그런 말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제14장 마인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6화 - 후방 전선 이상없다 - (0) | 2021.04.05 |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5화 - 쌓을 수 있는 벽돌 - (0) | 2021.04.05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3화 - 축복받은 물건 - (0) | 2021.04.05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2화 - 죽음의 한 순간 - (0) | 2021.04.05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81화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자들 - (0) | 2021.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