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8화 - 이끄는 자들 - 본문
"어때요 살레이니오 님?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테르살랏의 옅은 미소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살레이니오는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안과 마찬가지로 역시 살레이니오에게
테르살랏의 진의는 읽기 어려웠다
말은 그럴듯하게 도리도 통하는 것 같기는 했다
그리고 일리저드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믿을 만 한 것인지와는 다른 것이다
게다가 이것만은 살레이니오의 경험에서 느낀 것인데
남들이 원해서 내미는 길은 대개 변변치 않은 것이였다
살레이니오의 손끝이 순간 생각에 잠겼다
늙은 눈이 대천막을 뚫고 더 멀리 보려고 그 순간
바깥에서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살레이니오 님, 보고입니다
마수떼 같은 것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출병이 시급합니다"
보고자의 보고에 대천막 내
탁자에 주저앉은 자들이 모두 시선을 들었다
그들의 시선은 침입자의 존재를 탓하는 듯 했고
또 불만을 표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럴 때 말인가...
원로들의 표정은 굳어지면서도 그런 심경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살레이니오만은 달랐다
혼자 그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체중을 앞으로 기울였다
"라르그도 안, 사자 님
재해가 일어난 것 같군요
나는 지휘를 하지 않으면 안 되서... 나중에 이야기 하죠
병사, 이들을 천막으로 데려가도록"
살레이니오가 손뼉을 쳐 병사와 종자에게 명령을 내리자
장내는 일언반구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만으로도 이 노인을 중심으로 군이 움직이는 것이 역력했다
조금 전에는 검과 창으로 안과 테르살랏를 쫓으려 했으나
이번에는 정중한 대접으로 자신들을 선도했다
안도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어깨를 들며 안내에 따랐다
입술에는 아직도 목이 메어 있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로가 편안하고 일시적인 휴식 내지
생각을 돌릴 시간을 얻을 수 있었던 셈이였다
살레이니오든 누구든, 그것은 일종의 행운인 것이였다
아니, 사실 안은 그게 행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왜... 왜 그러신 거죠? 저를 도와주실려 했나요, 테르살랏 님?"
안내되는 길목에서 안은 목소리를 낮추고 이렇게 말했다
시선은 앞을 향한 채, 살짝 입술을 움직이기만 하는 말투는
옆에서 보면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테르살랏은 힐끗하고만 안을 보고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검은색 구두가 소리를 내며 울렸다
테르살랏 역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 채 말했다
"아까 한 말 그대로 입니다
라르그도 안 님, 지금부터 손을 잡자는 상대가
그대로 속으로 무너져 버릴 것 같으면 곤란하죠"
일리저드 사람다운 말투였다
무력을 믿고, 스스로의 체구와 강인함만을 의지한다
그것이 그녀의 나라 백성이였다
사막으로 뒤덮인 국가에서 살아남고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에 대항하려면 백성 누구나 강해져야만 했다
안은 입술을 작게 핥으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심하게 입술과 입이 건조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내된 천막으로 들어서면서 안은 무거운 입을 간신히 벌렸다
그녀는 조금 말성이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놀랐어요, 일리저드 분도 쉽게 거짓말을 하시는군요?"
역시 주위에 엿듣기를 하려는 자는 있을 것이므로
목소리는 최소한으로 했다
테르살랏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일 것이다
약간의 공기가 긴장과 압박의 빛을 띠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안은 손가락을 조그맣게 쥐었다
일리저드의 인간은 힘을 신봉하고 허영을 싫어한다
말뿐인 사람이나 진지하지 못한 사람은 특히 경멸의 대상이였다
그들은 정직함을 좋아하는 부류
성격상 다른 나라와의 외교관계는
험악한 상태로 진행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리저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허영심을 가진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을 심한 불명예로 여겼다
그야말로 주위도 살피지 않고 분노할 정도로 말이다
안의 말은 곧 그 나라 인간의 역린을 힘껏 걷어차는 것일 것이다
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르살랏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의 변화가 그 표정에 찾아올 것이다
안도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달리 선택할 수단이 없었다
적지에서 과연 테르살랏이 진정으로 아군인지 적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설령 다소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말이다
다음 순간. 안이 기대했던 대로 테르살랏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원할 정도의 쾌활한 미소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벌리고 뺨을 치켜올리기까지 했다
"후후, 그렇지 않습니다, 라르그도 안
일리저드로서는 하나든 둘이든 필요로 하는 힘과 가치가 있으면 됩니다
이것만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쪽이 훨씬 다루기 쉽다
허리에 손을 얹고 긴 그림자를 만들며 테르살랏이 말했다
안은 그것을 보자 입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귀찮은 일이다
이런, 안팎을 알 수 없는 상대는 실로 귀찮아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안은 발꿈치를 땅에 찧었다
일부러 일리저드의 사자... 말하자면 외교관으로서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였다
배짱 한 두가지와 천진난만한 얼굴이 없다면
외교관으로서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테르살랏은 한참이나 높이서 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단지 저 개인으로서의 생각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삼키고
보다 강대한 세력이 되어 주시는 것이 기쁩니다만..."
테르살랏의 커다란 눈이 안을 관통했다
그것은 안을 꿰뚫어보고 가격표를 붙이려는 시선이었다
그녀에게 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상대일까, 그렇지 않은 걸까
그녀는 이 상황을 좋은 기회라 판단하고 있었다
그건 안에게 유쾌하진 않았지만 아주 익숙했다
그녀는 협상 재능은 타고나기만 했지 체격은 전혀 없었다
평균 키에 비해 몸집이 작은 안은
모종의 업신여김으로 대해지기 일쑤였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므로 안은 자기를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가격표를 올려 자신의 가치를 알려야 할 것이다
"테르살랏님, 어째서 살레이니오 님이
마수 토벌에 스스로 지휘를 요청하고
방금 그 자리를 중단시켰는지 아십니까?"
테르살랏은 안의 물음에 허를 찔린 듯 표정을 이완시켰다
뜻밖의 말을 건네면 사람은 이런 표정을 짓게 마련이었다
의아하게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테르살랏은 지휘관의 의무죠, 하고 중얼거리듯 이렇게 말했다
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더 쉬운 이유에요
군상을 진정으로 거느릴 줄 아는 자가, 그 밖에 없거든요
특히나 이 군에는 말이죠, 원래 동포였으니 잘 알고 있어요"
더 이상 그들에 대한 적의 일체를 숨김없이
오히려 꽃피우듯 안은 말했다
얼굴에는 쓴 벌레를 힘껏 씹어 으깬 듯한 표정이 붙어있었다
시선이 지독하게 가늘어져 있었다
군사를 거느리다, 사기를 유지하다, 지시를 내리다
그것은 남을 억지로라도 믿게 만들어 버릴 자질과
자신의 판단이야말로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단지 똑바로 군사를 돌격시키는 것 뿐이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서는 천을 넘는 군사를 거느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문장교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제게는 이런 것 밖에 없었어요, 너무 속상하내요"
안은 그 뒤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테르살랏은 그녀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오거스 대하를 내려다보며
베스타리누는 하얀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주위의 삼림에 몸을 숨기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였다
그전에는 옆에 지휘관님이 있었는데 말이다..
베스타리누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세를 가볍게 가다듬자 입은 갑옷이 찰칵 소리를 냈다
문득 멀리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끄는 용병들에게는 몸을 굽혀 숨죽이도록 했다
큰 인간이 덩어리가 되어 호흡을 하면, 흰 숨이 표식이 되어
거기에 사람의 집단이 있는 것을 전해 버리기 때문이였다
피신하기에는 최악의 사태
그래서 폭설에 시달리더라도 때가 올 때까지
숨죽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마음이 내키지 않는 군
베스타리누는 투구 아래에서 표정을 찡그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원래 베스타리누라는 사람은 당당함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성격이었다
이렇게 몸을 숨기고 무엇을 이루겠다는 성격이 아니였다
그녀는 꺼림칙함 같은 것이 가슴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 싫었다
이끄는 베르페인 용병들도
어느 쪽인가 하면 화려하고 화려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로
어딘가 숨는 것은 별로 피부에 맞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베스타리누와 용병들은 성격이 잘 맞았다
그런데 이렇게 숨어지내는 것도 이제 끝이었다
눈 아래를 마수의 몇 구가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사냥터를 털린 탓일 것이다
몹시 화를 내고 있는 것을 먼눈에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하듯 군사를 거느린 일부가 눈에 보였다
베스타리누는 바로 용병들에게 외쳤다
"내키지는 않지만, 망치러 가볼까
베르페인 용병의 가치를 그들에게 알려주자"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 > 제15장 배덕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0화 - 행복은 누굴 위한 것인가 - (2) | 2021.04.13 |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9화 - 행운은 원하는 자의 손 안에 - (0) | 2021.04.13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7화 - 생각은 빠르게 - (0) | 2021.04.13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6화 - 악마는 항상 성인을 속이는 법 - (0) | 2021.04.12 |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25화 - 용감함과 무모함 - (0) | 2021.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