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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0화 - 행복은 누굴 위한 것인가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0화 - 행복은 누굴 위한 것인가 -

개성공단 2021. 4. 1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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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피일까 영혼일까
어쨌든 둘 다 좋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자신의 몸속에서 생명을 관장하는 것이
격류가 되어 흘러나오는 것을 살레이니오는 느끼고 있었다
제정신의 혈액이 미친 듯이 몸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살레이니오의 체구에선 온기가 사라져
살레이니오의 살갗이 차가운 쇳물이 돼버린 듯했다
그저 주위엔 눈 만이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제 눈도 보이지 않았다
시야는 상실되어 모든 것이 어둠 속이였다



뼛속이 얼어붙는 추위와 어둠을 이기지 못해
몸을 일으키려 해도 사지의 감촉은 이미 없었다
단단한 몸이라는 껍데기로 뒤덮인 채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던 것이였다

살레이니오는 의외로 쉽게 이 현상을 깨달았다

요컨대 이것이 죽음이라는 것인가
차갑고 꺼림칙하지만 누구나 찾아오는 죽음...

어리석었다고, 살레이니오는 움직일 수 없는 몸
그대로 그것만을 생각했다
통증도, 겁도 느끼지 않은 채, 말이다

모략에 젖은 인생을 보내고 있던 자신이
설마 최후에는 스스로 암살을 앞에 두고 목숨을 잃다니...
너무 어리석어....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해..."




그런 소리가 허공에 새어 나왔다
일체의 사지가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마른 입술만 들썩였다
그것도 이제, 조금 후에는 무너져 버릴 만한 운명이였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이 진정으로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정하는 것 또한 존재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억울하겠지
매우 한스러울 게 틀림없어"




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어둠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사뿐 사뿐 거리며 뭔가 다가오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꺼풀을 뜬 감촉조차 없는데
무언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기괴했다

살레이니오의 시야에 펼쳐진 것은 눈부신 하얀색
어둠은 잠잠해지고 흰색의 반짝임으로 뒤덮였다
하늘이라는 천장이 빛의 천으로 뒤덮여 밤을 잊은 듯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 존재가 있었다
우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손놀림으로 손가락 끝을 놀리며,
그 두 발로 걷는 모습은 실로 거룩하기까지 했다

인간의 형상이지만, 적어도 인간은 아니다
살레이니오는 그런 직감이 정수리를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비단을 미끄러뜨리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표정에는 인자함 가득한 미소가 떠올리고 있었다




"여러 해 쌓아온 뜻은 원치 않은 죽음으로 내몰려졌군
의지는 썩어버렸고, 존엄성도 더럽혀졌어
억울하겠죠, 절망했겠죠, 하지만 안심하세요, 인간이여
그런 자야말로 신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야..."




담담하게 전달된 그 말은 놀라울 정도로 몸속 깊이 울려 퍼졌다
그녀의 목소리 자체가 큰 종소리 같았다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
가까운 듯 멀고 작은 듯 크고....
그녀는 아득히 높은 곳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그래... 억울해, 억울하고 말고
누구야, 누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거야!"





살레이니오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떨었다
쉰 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몸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목구멍만은 살아 있었다




"무례하군, 하지만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저는 신을 섬기고, 신을 믿으며, 신에게서 보내진 사람이다
살레이니오, 네가 진정 신으로 믿는다면, 네게 기회를 주겠다"




자 일어서서 고개를 들라고, 그녀는 말했다



순간 심장이 뛰었다
처참했던 살레이니오의 육체가 스스로 빛을 되찾아
생명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폐를 지나고 근육이 약동했다
그리고 눈 속에 파묻힌 자신의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을 녹이는 것은 물론이고
시선만으로도 살을 꿰뚫어버릴 것 같았다




"그 영혼에 영원한 축복이 있기를 바라겠다
축복 없는 영혼은 오직 더러움을 떨구며
이윽고 짐승으로 전락하는 법이니 말이다"





마성에 먹힌 영혼은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 모습은 마성으로 변하며, 마 자체로 태어난다
설령 그것이 더러움을 모르는 아이였다고 해도 말이다

여자는 마치 독백하듯 말하며 살레이니오에게 입을 열었다
최대한의 장엄함과 오만함으로 담아서 말이다

신이 보낸 자이며, 스스로를 사도라고 하니
그녀의 그런 태도는 정상인지도 모른다





"너의 원수는 파멸과 살육을 계속 저지르며
왕도에 발길질을 하며, 지금도 악한 행동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니라
네가 그의 만행에 쐐기를 박아야 할 것이다"





원수. 아마 그렇게 불리는 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살레이니오는 눈꼬리를 찌푸리며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 신을 믿고 기도하라!
그리고 행복해져라! 너의 억울함과 절망은 풀릴 것이다!"




절대적인 빛으로 사도가 말했다
그 모습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의와 행복이 거기엔 분명 존재할 것 같았다

그것에 손을 뻗으면, 거기엔 정말 낙원이 기다리고 있겠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니, 약속된 빛이 거기에 있었다

눈앞의 여자가 다시 음흉한 미소를 뺨에 떠올렸다

매력적인 친구군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살레이니오가 믿었던 교의는 철저하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목표로 한 것도 그것이 아니였다

살레이니오는 손가락을 떨며 입을 벌려 목을 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힘 있어 보였다





"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인생 아래,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거야!"





쉰 목소리였다
그것도 허세라는 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흐뭇한 목소리로 살레이니오가 말했다





"사도여, 그리고 신이여...
귀가 있으면 들어라, 눈이 있으면 보아라!
축복 같은 것은 내게 필요 없다
살레이니오라는 이 어리석은 사나이는 여기서 억울하게 죽는다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믿었던 것을 위해서!"




억울하다, 억울하고 말고
야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의지는 끊어져
화려하게 죽지도 못하고 모략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죽었다
이래서야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원한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살레이니오라는 인간은 성인이 아닌 것이였다

그러나 절망 같은 건 한 조각도 없었다
억울한 것 하나도 없이 죽을 수 있는 것은 승자가 갖는 특권이다
나는 그런 그릇이 아니였던 것이다

여자는 살레이니오의 말에 분노하지도, 비탄에 잠기지도 않았다
그저 한순간 눈을 움직이더니 역시 담담하게 말했다





"아쉽군... 너는 신이 주신 기회를 놓쳤다...
이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은 자인가
무지란 슬픈 것이다, 그냥 어서 죽도록 해라"





온몸에서 다시 생명을 잃는 소리가 났다
일각의 유예도 없이 살레이니오라는 남자의 목숨이 끝나가고 있었다

생명을 잃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살레이니오는 필사적으로 목을 울렸다
만일 신이나 그것에 가까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은 얼마든지 있었다

몇 년이고 이제 헤아릴 수 없이 쌓아올린 지식만이 
지금 살레이니오의 영혼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이 세상은 아직도 신의 손바닥 위다
신들의 지배와 권능 위에 대지가 있었다
그들 마음대로 사람도 마성도 굴러다닐 수밖에 없다
누구 하나 자유롭지 못하고 누구나 무대 위에서
어리석게 춤을 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깨부수고 싶었다
지식을 무기로, 신념을 방패 삼아
인간이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내겐 무리였다
이미 때는 지나갔고 또한 재주도 없었다
나는 한낱 평범한 자에 불과한 것이였다

하지만, 가능성은 남겼다
누구도 알지 못한 사실을 모아 지식을 축적했고
그렇게 문장교는 여전히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제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조금의 절망도 하지 않았다!
유감스럽군, 세계를 만들어 낸 신이여!
인간이란 언제까지나 어린 양처럼 무지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네놈들도 넘보고 말 것이다!"





입안에서 피맛이 났다
목구멍이 헐떡거려 숨을 쉴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왔다
무너져 내린 몸은 이제 멸망을 맞이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살레이니오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대지에 엎드려 최후를 기다렸다
이제 눈에는 다시 어둠이 드리워져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몇 분인가 몇 초인가
어쩌면 다음 순간에는 영혼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 말미에 몇몇 모습을 살레이니오는 눈에 떠올렸다
버나드, 라르그도 안, 그리고 성녀 마티아... 영웅 루기스




진실로 왕도를 함락시킨 것이라면
그들에게 결코 안녕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와 같이 어리석으며, 신의 사자를 자칭하는 자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놈들은 지식을 집적하는 문장교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건드리려 하는 것을 거부할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할 것인가...

이미 생명을 잃고 있었던 살레이니오는
한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듯 목을 열며, 말했다





"이제 늙은 사람은 사라질 때야...
세상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이여, 바라건대 모두가 행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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