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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6화 - 하나의 끝과 시작 - 본문
갈라이스트 왕국 상공
보석 아가토스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몸을 움츠렸다
자신의 육체를 보석에 의지한 채 편히 지내고 있었다
시선의 끝에 있던 것은 인간들이 하고 있는 것
아득히 먼 상공에서는 벌레들이 움직이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왕도의 부흥 작업일 것이다
질리지도 않는 건가, 아가토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찌푸리게 했다
바로 얼마 전 마인 드래그만과의 대립으로 불타
볼품도 없어진 왕도는 이제 겨우 인간들의 손에 의해
완만한 부흥을 보이고 있었다
매일매일 어디선가 인간들이 쏟아져 나와
집이니 교회니 하는 것을 만들어 겄다
어떻게 그렇게도 똑같은 일만 되풀이할 수 있을까
아가토스는 참 신기했다
인간 모두가 예전의 영광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력을 잃지는 않은 것이였다
오히려 잃었기에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는 그런 자존심은 어디에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이들의 영향일 것이라고 아가토스는 생각했다
늘 백성 앞에 서서 침식조차 잊은 듯 돌아다니는 그 여자들이 있었다
문장교 성녀 마티아
그리고 이제 왕도의 주인 노릇을 하는 첩의 공주
그것들이 기치가 되어 이 왕도는
지금 다시 빛을 되찾으려 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한치 앞을 모른다고, 아가토스는 생각했다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번 망가진 것은 다시 망가지는 운명이다
아무리 혼신을 다해 부흥을 이루든
마인이 나타나면 하룻밤 사이에 날아가 버릴 텐데
물론 아가토스도 그 마인 중 하나다
잃어버린 마력이 되돌아오기만 하면
이 도시 자체를 아름다운 보석으로 바꿔버려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숙주인 레우도 생각을 바꿀 것이다
게다가 자신 말고도 이미 많은 마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가토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보다 더 잔인한 자가 얼마든지 있었다
드래그만이나 나 같은 것은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그들의 포로가 되어 버릴 것을 생각하면
인간도 자신의 보석으로 함께 있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가토스는 문득 자신의 바로 아래를 쳐다봤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검은 머리를 펄럭인 여인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아가토스는 또 흰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그녀도 조금은 마력으로 하늘을 달리는 요령을 알았는지
서서히 그 목소리는 아가토스에게 외치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레우가 아가토스의 이름을 불렀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채고는 있었는데
아가토스는 크게 한숨을 쉬며
스스로 고도를 낮춰 검은 머리를 맞으러 갔다
허공에 떠 있는 몸을 안아 주자 검은 머리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마력을 매우 소비해, 숨이 차 있었다
"이봐, 언제까지 하늘에 있을 셈이야!
조금은 그 아이를 쉬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아가토스에게는 이런 용건이 있을 것이라고 대강 파악은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검은 머리에게 대답했다
"몇 번이나 네게 말한지 모르겠는데
난 보석이야, 넌 마인이 무엇인지 아는 거야?
이 정도 일로 지치지도, 죽지도 않아
약한 너희들과는 됨됨이가 달라, 이제 알겠어?"
설사 레우의 체구가 인간의 것이라고 해도
이미 내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졌다
힘이 센 것과 약한 것이 섞이면
약한 것은 자연히 강한 것으로 바꿔지게 마련이였다
레우의 피부는 이제 검의 날카로움도 통하지 않고
어설픈 마법도 의미가 없을 것이가
아가토스가 의식을 하고 레우의 영혼을 남겨두지 않는다면
마인으로서 완전한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식사도 휴식도 필요없다는
아가토스에게 피에르트 또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아가토스는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피에르트를 끌어 안아, 손을 잡았다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취했느냐
뭔가 아주 불쾌한 느낌이 떠올랐기 때문이였다
아가토스의 영혼이 꺼림칙한 포효를 느꼈다
눈에 상상되는 것은 파멸의 화신, 대마 브릴리간트
아가토스가 가장 깨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던 존재가 깨어나는 소리가 났다
물론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언젠가 이 때가 오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여하튼 예전의 정령신 제브렐리스마저도 지금 다시 이 대지에 내려섰다
그렇다면 일찍이 하늘의 신을 자칭했던 브릴리간트가
마찬가지로 눈을 뜬다고 해도 아무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놈을 섬기는 독극물이나 톱니바퀴 놈도 소생했을 것이다
이마에 찬물을 흘리며 아가토스는 생각했다
브릴리간트, 그리고 그 휘하의 마인들은
인간을 명확하게 적대시하고 있다
그것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을 잡아먹고, 죽이고
그렇게 해서 멸망 시킬 것이다
제브릴리스에 브릴리간트
그리고 그 마인들이 현현한 이상
인간국가는 더 이상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마성이 대륙의 패자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 여자... 인류 영웅 아르티아가 왜 행하고 있는지, 의문이였다
지금 마성을 제압하고 근원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그 여자일 터
제브릴리스도, 브릴리간트도, 아르티아에게 영혼을 움켜쥐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왜 다시 현현하게 한 거지?
아가토스가 알기로 아르티아는
과거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신과 마성을 분쇄했다
수없이 피와 오열을 토하면서 어김없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인류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녀는 인류의 신화가 되었다
그런 그 여자가
지금 왜 일찍이 적대했던 대마, 마인들을 풀어놓는 것일까
그것이 아가토스에게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아가토스라는 마인은 어쩔 수 없이 순수했다
사랑스러운 것은 안아 올리고, 미운 것은 잡아먹는 존재인 것이다
아름다운 보석에는 단 한 방울의 얼룩도 허용되지 않듯이
그녀에겐 탁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갖는 양면성이라는 것을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아가토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문득 짚이는 데가 있었다
"……피에르트,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어디로 갔어?
네 짝짓기 상대인 인간 영웅 말야
인간의 영웅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해서 그래"
짝짓기 상대
그 말을 듣고 순간 피에르트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한순간 뒤에는 눈을 부릅뜨고
뺨을 약간 붉히면서 또 큰소리를 냈다
왜 이러는 거지? 짝짓기 상대는 아니란 말인가?
아무래도 인간의 심정이란 알 수 없다는 듯
아가토스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
갈라이스토 왕도 아르셰에서
멀리 떨어진 남방 괴뢰도시 필로스
원로 살레이니오 및 측근들의 반란은 완전한 침묵을 맞고 있었다
기치가 되어야 할 살레이니오는 죽었고
도시 필로스에는 루기스 및 카리아가 귀환
반군에 의한 기습은 라르그드 안의 책략에 의해 그 우위성을 잃었다
더 이상 반군에 항거할 힘도 의지도 없어
도시 필로스의 목구멍까지 다가온 반란은
이 시점에서 진압된 것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지금 살아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리 만무하다
반란군 주력 처분, 병사의 취급, 향후 조직체제의 재편성
문장교에 남겨진 과제는 너무나도 많앗다
사후 처리야말로 진짜 전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도, 어쩌면 사후 처리의 일단일지도 모른다
라르그도 안은 뺨에 팽팽한 느낌을 받으며 눈을 조용히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뺨을 실룩거리고 있던 루기스에게로 눈을 돌렸다
"영웅님...? 마중 나온 건 기쁘지만, 이건.... 대체...?"
그만 몰아붙이는 듯한 빛이 말에 가득 찬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직접적인 말을 쓰지 않는 것이 다행이엿다
그녀는 떨리는 입술을 억누르며, 다시금 상황을 직시했다
도시 필로스의 성문 앞
그곳에 우뚝 선 자들을 경직시키는 이들이 있었다
한 쪽은 공간을 일그러뜨릴 정도의 살의를 내비치면서
검붉은 색의 대검을 휘두르려고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받아
여전히 흔들림 없이 호장한 흑색 갑옷을 빛내고 있었다
영웅의 방패 카리아와, 일저드의 투사 테르살랏 르와나
유례없는 무위를 가진 이들이
어쩐 일인지 살의를 휘두르며 대치하고 있던 것이였다
아니... 안은 이미 뭔지 다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적 진영을 설복하고
도시 필로스로 돌아왔을 때 웬일인지 루기스가 자신을 맞았다
뭔가 이상하다고는 들었지만, 그것이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영웅님이 내 목숨을 의식 해 준 것 아닌가
그러니 이렇게 일부러 마중을 나와준 것일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영웅 님은 그런 배려를 최초로 보인 것이였다
...거기서부터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루기스의 모습을 보고 안도 순간 안도와 함께 숨을 내쉬고 말았다
긴장하고 있던 정신이, 산뜻하게 느슨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틈이라도 난 듯 옆에 있던 테르살랏이 루기스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경의라도 표하는 투로 말이다
그러고는 그대로 온몸으로 부둥켜안았다
당연히 루기스의 옆에는 방패막이로도 볼 수 있는 카리아가 있었고...
그 이후 일은 안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안은 캐묻듯 루기스를 계속 응시했다
그러자 체념한 듯 루기스가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다 잘못 했어"
그렇게 크게 숨을 내쉬는 루기스에게
만족스러운 듯 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목숨을 걸고 살았건만, 재회해서 최초로 보여진 것이 이것이였으니
조금만 심술궂게 굴어도 되겠지
안은 볼을 느슨하게 만들며 입술을 치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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