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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7화 - 두 마리의 짐승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37화 - 두 마리의 짐승 -

개성공단 2021. 4. 14. 01:25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흑검이 허공을 갈라섰다

일리저드가 자랑하는 현란한 무술
흑색 갑옷이 말 그대로 춤추는 듯한 가벼움으로 뽑혔다
테르살랏의 긴 다리가 가늘게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을 맞이하는 은발은 출렁였다
장대한 검붉은 검이 적의 다리를 씹어 으스러질 듯한 기세로 떨쳐졌다
마성의 요염함마저 지닌 그 칼은 싸움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보면 남다른 살의로 가득 찬 물림이었으며
서로의 한바탕은 그대로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기 위해
위화감 없는 광폭함을 간직하고 있는 살인 그 자체였다

하지만 카리아와 테르살라랏, 두 마리 맹수에게
그것은 서로 죽이는 려는 행위가 아니였다
다만 사냥감의 소유권을 서로 주장하는 데 불과했다



짐승은 자기 사냥감에 집착하고
설령 조각이라도 다른 사람이 건드리려고 한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다해 적을 제거하는 법이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냥감에 대한 스스로의 소유권을 잃어 버리니까...

그것은 더 이상 호의의 감정이 아니였다
말하자면 두려움 일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짐승은
무엇보다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적어도 은색의 고양이에게는 그게 전부였다
힘의 신봉자인 카리아는 그것을 생각하니, 겁에 질려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힘으로 자기 것을 지켜내려고 하고 있었다

순간. 철과 철이 뒤섞여 허공에 불꽃을 낳았다
철이 미끄러지는 잔향음만 그 자리에 남았을 뿐이였다




정면으로 맞부딪친 철갑옷과 검
먼저 스스로 힘의 창끝을 빗나가 충격을 놓친 것은 테르살랏 쪽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 반사적으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최소한 정면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일합
단 그만큼의 맞물림으로 테르살랏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자신의 오른 다리가 터질 것처럼 저렸다

한 순간의 교차일 뿐이었는데 뼈가 삐걱거렸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근력


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으며 테르살랏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정면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으면서,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면으로 싸우지 않으면 될 뿐이다
거구와 괴력을 자랑하는 마수와의 투쟁 등 
얼마든지 테르살랏은 겪어왔다



테르살랏은 서로 사이가 멀어진 순간
흘끗 시야 끝에 그, 루기스를 쳐다보았다
초록색 군복... 생김새는 까마득한 기억이였지만, 분명했다

지난날 테르살랏은 이 남자와 카리아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알아본 모습으로 보면 무척 훌륭해졌다
그 때는 고작 모험자 정도였는데 말이다

심장의 고동이 뛰는 것을 테르살랏이 느꼈다
그것을 억지로 삼키고, 예리한 눈꼬리를 뾰족하게 내밀어
카리아를 응시했다

테르살랏은 분명히 그도 카리아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험자란 딱 한 번 해후한 사람은 머릿속에 기억하지 못하니 말이다

같은 의뢰를 받고, 함께 술을 마신 사람이
다음에는 다른 의뢰로 죽었다는 등의 일은 자주 있는 일
그런 사람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다





테르살랏은 카리아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은발이 이제 사나운 사자처럼 떨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그의 곁에 쭉 있었겠지...

그런 생각이 테르살랏의 가슴속에 끓어올랐다
그렇다면 조금 껴안는 정도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재회의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가장 좋은 행동인데 말이다

투사다운 처신이 아니라고 생각은 되지만...

그런 사소한 고민들을 가슴속에 품고
테르살랏이 다리를 고쳐잡는 순간이었다

그 둘만의 전쟁터에 목소리가 울렸다




"너희들 말야,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잖냐
인사는 좀 더 사람답게 온화하게 하는 게 어때?"




주변 일대의 시선이 목소리를 낸 그를 향하고 있었다
어느새 누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이 두 짐승이 서로 물어뜯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그에 맞는 사람뿐이였으니까 말이다

카리아는 그 말에 문득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녀의 대검은 아직 자세를 풀지 않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 나는 너의 방패야
너에게 덤벼드는 자들은 당장 칼을 들어야 마땅하다"





아니면 뭔가, 하고 카리아는 재미없다는 듯이 입술을 떼었다





"너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옆에 앉아 있으라고 하라는 것이냐?"




은색 눈이 일그러져 루기스의 모습을 비추었다
그녀는 불만에 떨고 있는 듯하면서도
불안감에 가까운 감정도 담고 있었다





"그...그럴리가, 우리 방패 님에게 그런 일을 시키겠어?
다만 우리 편에게 칼을 휘두르는 건 좀 아니잖냐"





루기스는 고개를 홱 돌리며 테르살랏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두 눈을 마주보고 표정을 굳혔다

틀림없이 전에 한 번 만났던 그 남자가 맞다
그것을 보면 따스한 그리움과
동시에 날카로운 적막감이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테르살랏은 입술 끝을 다물며 말했다




"일리저드에서는 인사 같은 겁니다
실례를 했습니다, 조금 아는 사람을 닮아서요"




다리를 내리고 검정색 갑옷을 찰칵 소리를 내며
테르살랏은 자세를 풀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와 다시 만났다면 과거의 예를 말해야 했다
그때는 구해줘서 고마웠다고, 하지막 막상 대면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테르살랏의 안에는 고요한 공포가 있었기에 말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재회를 기뻐하며 손을 잡고 싶어
그 생각만큼은 틀림없이 존재했다

하지만 말이다...
만약 저쪽이 이 일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고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한다면
분명 나는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쏟아지는 감정을 억누를 수는 없게 될거란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테르살랏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존심이 방해한 것도, 허세를 부린 것도 아닌, 그저 두려워서 였다




"테르살랏님, 카리아님, 일단 도시로 들어오시죠
할 일이 많습니다, 시간은 때때로 돈보다 귀한 법이니까요"





지친 기색이 완연한 라르그도 안의 목소리를 듣고
테르살랏은 가슴속에서 두근거림을 멈추지 못했다
호흡이 멎은 것 같은 기척마저 있었다

잘못한 게 아닌데 묘한 긴장이 등골을 잡았다
다음에 누군가가 소리내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낸 것은 루기스였다





"....닮은 사람? 글쎄... 
너 전에는 카리아와 키가 비슷하지 않았나?"




마치 당연하다는 듯 루기스는 그렇게 말했다
입가에 씹는 담배를 물고 말이다

테르살랏은 순간 그 목소리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나라는 것은 너무나 그저 꿈이라고 믿고서 말이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자니
루기스는 눈을 가볍게 동그랗게 뜨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미안해
기억할 리가 있나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자조하는 듯한 루기스의 미소
그러자 테르살랏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입술이 흔들리며 떨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게 이런 표정을 짓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다
치켜뜬 눈을 부릅뜨며 테르살랏은 입을 열었다
혀가 얼어붙어 잘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에요!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하고 말고요, 루기스님! 오랜만이에요"





그만한 말로 숨이 턱까지 찼다
그제서야 말을 나눈 안도가 테르살랏의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그렇구나,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럴 가치가 내게 있었던 것이구나

반면 거침없이 덤벼든 행동을 보면
카리아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문득 은발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앞을 걷는
카리아가 테르살랏처럼 보였다
루기스가 테르살랏를 얘기하자 카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넌 그걸 이제야 눈치챘느냐? 난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
테르살랏은 창백한 것을 이마에 떠올리며
검은색 갑옷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군... 눈치 채고도 날 베려했다니...
그러한 이유 때문인가, 과연 서로 근본적인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군



◇◆◇◆





"남방국가 일리저드와의 동맹... 문장교도 많이 커졌군"





나는 괴뢰 도시 필로스의 의장 중앙석에 앉은 안을 응시하며 말했다

마티아에게서 되찾아온 담배가 콧구멍을 간지럽혔다
왠지 감개 깊은 것이 뱃속에 있었다

그저 벼룩에 불과했던 문장교가 
이제는 당당한 국가와 동맹을 맺은 것이였다
설사 문장교도가 아닌 나였다고 해도
울컥하는 것 정도는 느껴졌다

내 말을 받았는지 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응했다




"네, 정식적으로는 성녀 마티아가 체결을 하겠지만
왕도에서 마인의 위협을 바로 본 이 사태에
회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겠지요"



마인
그 말에 살짝 회의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금 이 동맹이 맺어지려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 위협 때문이었다
영웅을 잡아먹고 용사를 죽이고 짓밟는 삶의 재앙들
파멸적으로 인간의 생존권을 침략하는 악몽들...

남방국가 일리저드에서도 사막을 배경으로
마인들이 그 위협을 드러내고 있다고 들었다

이제 사람끼리 창과 이빨을 서로 물어뜯을
우아한 여유가 없어졌다는 것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리저드가 이렇게까지
빨리 다른 세력과의 동맹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외적으로 문장교가 신흥 세력이었기 때문이였다
다른 국가가 상대했더라면
그들은 결코 동맹 따위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리저드는 무엇보다 무위를 중시하고
강대국들과 동등하게 겨뤄온 존재다
그 긴 역사 속에서 갈라이스트 왕국은
물론 동방의 볼버트 왕조 및 서방 국가들과도 계속 다퉜다

지금 이 때만큼은 사태가 진정되고 우호적으로 보여도
속으로는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심정이였다
국가란 대개 그런 것이라고 누구에게 배웠었는데 말이다

그런 인간 한 사람의 수명 이상으로
서로 미워하고 으르렁거리던 패거리들이
위난의 시기라고 쉽게 손을 잡고
과거의 불화를 잊을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없다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국가의 울타리는
녀석이 피를 토해내고 죽을 때까지 말이다
일체를 잃고 마침내 국가가 상실될 때까지 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옛날에는 그랬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리저드는 문장교와의 동맹을 구했을 것이다
말다툼의 역사가 없고, 그러면서도 꺼림칙한 갈라이스트 왕국과
적대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였다



안이 의견을 묻듯 회의장 모두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제, 안이 말하는 방침에 반대할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오직 카리아만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자네가 수긍하지 않는다면
마음 속 깊이 반대하겠네만, 일리저드와 동맹이라니..."





그 말에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보면 예상했던 말이었다

카리아는 지금은 나와 같이 다니고는 있지만
본래는 갈라이스트 왕국에서도 상류의 인간이었다
이제 그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핏줄 속으로 지워버릴 수 없을 만큼의 원한이 흘러들고 있었다

특히 일리저드와 갈라이스트 왕국은
오랜 기간 전쟁을 거듭한 존재
쉽게 받아들여질 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턱에 손가락을 얹으며 이를 떼고 말했다
그녀의 은빛 눈이 가까이 보였다




"사이가 안좋은 건 아니지만, 좀 봐줘
네가 없으면, 내가 힘들어진다고"




카리아는 순간 은색 눈을 떴다
그러고는 은빛 머리카락을 흔들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득의 양양하기까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좋다, 대신에 네놈의 자유분방함은 내 몫인줄 알아라"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응했다
볼을 느슨하게 흔들면서 말이다




"좋은 동료를 둬서 행복한 걸"




안은 카리아의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역시 그녀도 카리아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대륙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일리저드와 동맹을 맺었다면, 남쪽으로는 신경 쓸게 없어지게 됩니다
반면 북쪽의 대성당은
대마 제브릴리스에 대한 대응으로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마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보다 다른 방향으로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안은 말했다
탁상 위의 대지도 위에 안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기어갔다





"요컨대 다음으로 봐야 할 것은 동쪽과
서방 연합 로어, 동방의 볼버트 왕조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구축하느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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