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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40화 - 간청하는 수괴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5장 배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440화 - 간청하는 수괴 -

개성공단 2021. 4. 14. 02:42







갈라이스트 왕국
왕도 아르셰의 중심지는 원래 왕이 거처하는 성이자 옥좌일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검댕과 잿더미로 얼룩진 그곳은
옛 영화 속의 잔향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제 왕은 왕도에 있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것은 비교적 무사했던 다른 궁
거기에 마련된 임시 옥좌였다

진좌하는 옥체는 녹색을 기조로 한 귀인복을 입고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입술을 열었다




"싫습니다, 지금 당장 즉위할 순 없어요
잘도 그런 말을 하는 군요, 지금은 그럴 상황도 아니잖아요"




필로스=트레이트, 첩의 공주
그렇게 불리는 그녀는 눈앞에서 몸을 굽히는 귀족의 말을 일축했다

남자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남자는 한번 말을 멈추고 그렇게 혀를 돌렸다




"그러나 공주님, 왕도의 백성들은 이제 하루하루를 되찾으면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주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없으면 가지가 자라지 않는 법입니다
공주님께서 본래 이름과 함께 갈라이스트를 이어주시는 것이
백성들의 평온과 연결되는 것일 것입니다"




남자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럴듯하게 말했다
억양이 잡힌 목소리는 귀족으로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지녔다



남자의 이름은 비오몬도르 가가리
필로스= 트레이트를 떠받든 귀족들 중에서도
가장 고개를 숙인 것도 빠르고, 공도 큰 남자였다

왕도 탈환전에서도 다른 귀족들이 미온적이던 곳에서는
과감하게 군사를 돌리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필로스와 눈높이를 가까이하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이 남자야말로 필로스를 옥좌로 이끈 공로자의 한 사람이었다

입가와 턱에 기른 수염을 재주 있게 움직이며 비오몬도르는 말했다




"공주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필로스는 그 말을 받고 호들갑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과거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왕관을 썼다가, 목 통째로 땅에 내려놓은 왕들을 잘 아실테죠?
비오몽도르 경. 저는 때와 장소를 가리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필로스는 외안경을 흔들며, 당당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영웅의 앞이 아니면 대관할 수 없습니다
나를 옥좌에 앉힌 것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마인을 죽이고, 왕도를 해방해, 백성들을 구한 것은 누구입니까?"




그가 없는데 내가 어찌 옥좌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
필로스는 녹의를 미려하게 휘감으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비오몬도르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것은 분명 당황하는 눈치였다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을 숨기는 데 서툰 것이
비오몬도르가 중앙에서 입신출세를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비오몽도르도 필로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 아니였다

왕도의 백성들도 자신들을 괴롭힌 마인들을 살해하고
동시에 마성의 무리들을 구축하게 한 영웅들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구원과 안녕의 상징인 것이였다
마인 살해... 대재앙의 와중에서
이 두사람이 가지는 의의는 너무나도 컸다



어차피 즉위를 한다면 그 영웅을 대대적으로 치켜세워
왕권을 지탱하는 검으로 삼는 것도 선택의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사태가 아니였다
필로스가 정식으로 왕관을 받지 않는 이상
지금 왕권은 저 북쪽의 왕에게 있었다

말한자면, 지금의 비오몽도르들은 반역자의 수괴에 지나지 않았다
왕의 말도 없이 왕녀를 옹립하는 등
왕에게 창을 던지는 것은 반역 그 자체였기에

하지만, 지금 이때
왕이 왕도를 버리고 공주가 왕도를 탈환한 이때만은
약간의 정통성이 필로스의 손아귀로 굴러들어왔다

대관식을 치르고 나면
기회주의 지방귀족들도 필로스 편을 들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했다
왕관이란 오직 그 자체로 힘을 갖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비오몬도르의 속은 타들어갔다
언제 또 그 도망갔던 왕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것이였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입신출세 등은 상관없이
곧바로 처형대로 보내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우려되는 사항은 또 있었다
그것은 비오몬도르가 생각날 무렵에, 그것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지금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군요, 비오몬도르 경"




비오몬도르가 얼굴을 휙 돌리며 목소리로 시선을 주었다
필로스를 옥좌로 이끈 공로자, 그 중 한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문장교의 성녀 마티아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하늘로 띄우며 잘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세련돼 보였다




"먼저 전령이 알렸던, 볼버트 왕조의 서정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도시국가의 지배지역에 당도할 것입니다"



비오몽도르, 그리고 필로스를 포함한 누구나가
공기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땀 흘리는 듯한 감촉을 모두가 스며들고 있었다
순간 그 자리에서 할 말이 없어졌다

마티아는 억지로 공기를 털어내듯 말을 이으며, 입을 열었다

각 도시국가가 볼버트군에 사신을 보내도 돌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보병을 전진시키며, 대화 따윈 하려하지 않았다

도시 국가측도 협동적인 방비를 굳히고는 있지만
볼버트 왕조의 정예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불명료했다
바라건대 폭설과 마수가 그들을 막아주길 바랄 것이다




"숫자는 마법장갑병 8천...
이끄는 장수는 마스티기오스라는 자 입니다
도시국가에게는 짐이 무거워지겠죠"


"팔천! 게다가 마스티기오스!
보통의 때 보다, 두 배나 끌고 오다니
놈들은 마인에게 습격당하고도
국가의 수호를 버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비오몬도르가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기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표정이 경악과 동요에 허둥대며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하는 듯했다

반면 마티아는 한숨을 내쉬며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다행히 북쪽의 갈라이스트 국군은
대마 제브릴리스와 마인의 존재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볼버트 왕조에 대항할 수 있는 손을 써야겠지요, 공주님"




공주라는 말을 들으며 기분 나쁜 듯 필로스는 눈을 기울였다
맘대로 다니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옆에 있고 대등하게 접해 있던 마티아에게
그런 식으로 불리는 것이 기분이 이상했다

대접을 받게 된 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필로스는 침을 삼키고 눈꼬리를 치켜들었다





"생각은 있겠죠, 성녀 마티아
이왕이면 신도 놀라 자빠질 만한 걸 듣고 싶지만..."




당연하다는 듯 필로스는 말했다
이 성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탄식하는 모습을 필로스는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생각을 그만둔다는 것이
조금도 없을 것이다.
문장교 성녀란 그런 존재인건가?

마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하나는 문장교의 거점인
성벽 도시 갈루아마리아에 병력을 집중해
정면으로 적병을 맞아들이는 방안입니다"




도시국가군에서 특히 견고함을 자랑하는 성벽도시 갈루아말리아.

여기에 물자와 병력을 집중하기만 한다면
설령 볼버트 왕조의 정예들이 벼락같이 달려든다 해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견딜수록 시간은 아군의 시간을 벌어줄 것이고
쏟아지는 눈이 적병을 철수시켜 줄 것이다

일견 유용해 보이는 방안이지만 문제도 충분히 있었다



우선, 앞선 문장교 내란으로 인해
갈루아말리아의 문장교병은 대부분이 출병
현재 보유병 수는 최소한이였다

지금부터 억지로 병수와 물자를 쏟아 붓는다고 해도
문장교 주력은 이 왕도에 있었다
이쪽은 이쪽을 위해, 왕도 근교를 수호하기 위한 군사가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군사도 물자도 부족하다
주변 도시국가로부터 군사나 물자를 받아 모았을 때 가능할 것이다

마티아는 그렇게 덧붙이면서 또 다른 방안을 입술에 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한순간 입술을 다물어 버렸
마티아의 눈이 저절로 둥그러졌다
방금 전까지 매끄럽게 입에서 나왔던 말이
지금은 이상하게도 딱딱하게 느껴졌다

마티아는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꺼풀 뒤에 한 인물이 떠올랐다


그는 대체 뭐라고 할까

나는 틀림없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마티아의 손끝이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만약 이 방책이 실현되어 이루어지게 되었다면
혹시 나는 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닐까?

심장이 아프도록 울리는 것을 마티아는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이 울린 것이였다
눈동자에 금방 무언가가 번질 것만 같았다



문장교 성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마티아는 생각했다
지성에, 이성과 타산, 그것이야말로 믿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버리다니...

꼴사납고 수치스럽고, 정말 한심하다

마티아는 손가락 끝을
자신의 이마에 올려놓으며 목소리를 짜내어 말했다





"다른 하나는 이곳 왕도를 본거지로 삼아
볼버트 왕조가 도시국가군에 어금니를 드러내는 동안
전쟁의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적의 전선이 완전히 확장되어, 감당 못할 상태로 커진다면
그때서야 우리가 병력을 내보내, 그들의 옆구리를 칠 것입니다"




현실적인 것은 이쪽일 것입니다
마티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없고, 지금은 도시 필로스에 있을
자신의 영웅의 모습이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마티아는 옆에 있는 황금 반지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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