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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15화 - 황혼의 전역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16장 동방 원정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15화 - 황혼의 전역 -

개성공단 2021. 5. 4. 13:23





은색 눈이 동요에 저려 머리가 기울었다
허공에 늘어진 은발이 카리아의 뺨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그저 파괴를 기다리는 톱니바퀴를 향하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말은 겁쟁이의 것이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말장난이야"





그러면서도 카리아는 라브르의 눈길을 떼지 못했다
지독하게 뜨거운 한숨이 목구멍을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반면 라브르는 이제 육체의 죽음을 기다리는 몸이면서도
기묘한 침착함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상냥하게 풀려갔다




"후...후... 겁이 없는 자는 없어요"




자신이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는 사실에
라브르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라브르는 꺼져가는 심장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그가 있어요...
아이러니 하군요... 카리아..."





그래, 일찍이 루기스는 어떤 운명을 접했다
그래서 지금의 그가 있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런 그 덕분에 나도 감정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라브르는 비웃음도 아닌 그저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카리아는 의아스럽게 눈동자를 찌푸리면서 검을 확 치켜올렸다
그것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운명일 것이라는 것을 라브르는 깨달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 자신의 톱니바퀴는 회전을 시작했다
이젠 누구도 말릴 수 없다
그것은 그의 안에도 있는 것이니까

브릴리간트의 부활도, 그의 존재도
모든 것은 톱니바퀴가 움직이는 대로 그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충고를 하겠어요... 카리아... 버드닉"





라브르는 카리아가 버린 그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표정은 진심 어린 안도와 자애의 미소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두를 사랑하라고 라부르는 말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뿐...
마성은... 결코 누군가를 구원하게 되어 있지 않아요
그건 운명... 그러니 포기하도록 하세요...."




검붉은 색이 시야 가득 번지는 것이 라브르에게 보여졌다
그러나 카리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라부르에는, 카리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 상상이 갔다
분명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겠지

라브르는 하나 뿐인 눈꺼풀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생각을 품었다

나는 무대를 잘 돌리기 위한 기구일 뿐
역할은 충분히 했어,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귀에 브리간트의 포효가 관철됨과 동시에
눈꺼풀 뒤로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감정에 흔들린 채 라브르는 톱니바퀴에 순간 손가락을 갖다 댔다




"감정이란 너무 사랑스럽고 미칠 것만 같군요
당신을 원망하겠어요, 오우후르..."




일찍이 인간이었고, 그렇게 동족이었던 상대에게
중얼거리는 순간 라브르의 머리가 깨졌다
그렇게 톱니바퀴를 끼운 마인의 체구는 철저하게 거인에게 파괴되었다

은색 머리의 거인은 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비통하게 뺨을 움츠리고 입술을 깨물며 눈을 찡그렸다





"...바보 같으니... 바보 같으니라고!!
운명의 수수께끼? 난 그런 녀석이 제일 싫단 말이다!!"





내뱉듯이 흘러내리듯 카리아는 말했다
그것은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 같기도 했다





 ◇◆◇◆





신화란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머릿속으로 그런 시시한 생각을 하면서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것만으로도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견딜 수 없군. 눈앞에는 올려다볼 정도로 거대한 마의 용
이쪽은 오직 검 하나에 보석 마인의 원군 뿐
서로의 전력 차는 압도적이였다

포효가 스쳤을 뿐인 왼쪽 옆구리는 상처가 생겨 피를 흘리고 있었고
왼쪽 눈이 반쯤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통증을 느낄 틈도 없이 저림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운이 내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가토스의 보석이 없었다면 지금쯤 온몸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저기 말야 아직 살아있어? 살아 있는 거겠지?
나한테 그렇게 큰 소리 쳤으면 살아는 있어야 하는 거잖아?
후... 여기는 그냥 죽었다간 개밥으로 남에게 넘겨질거라고
그래서 어때? 브릴리간트 시점에서 벌레가 된 기분은?"





아가토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귓속을 울렸다

몇 개의 보석을 통해서, 이쪽에 소리를 전하고 있을 것이다
몇 번 희미해진 데가 있었지만
요점은 나에게 푸념을 하고 싶었던 것 뿐인 것 같다

뭐야, 아직 의외로 여유가 있네.

마검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가늘게 시선을 모았다
멀리 진짜 태양이 그 몸을 산간에 맡기려 하는 것이 보였다
황혼이 대지를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마아가토스, 하고 싶은대로 이룰 수 있는 건 오직 신 분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해볼 수 밖에 없어"





그런 의미로 말한다면, 본래 마인으로서는
브릴리간트에 종속되거나, 혹은 철수해야 하는 것이겠지.

마인은 결코 대마를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섭리요 통상적인 것이였다

하지만 섭리가 절대적이라면 그들이 이룬 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마스티기오스와 병사들은 재해의 마인들에 맞서 승리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것을 승리로 판단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결단과 용감함으로 재해의 마인을 자신의 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얼마나 얻기 어렵고 위대한 일인가
인간은 더 이상 마성의 가축이 아니었다

그들에게선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그런 그들은 나를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영웅이어야 한다
나에게는 그럴 의무가 있다



루기스는 발목을 구동시키고, 허리를 돌려, 손목을 풀어 마검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 일격은 거리를 무시하고 브릴리간트의 육신을 먹어갔다

심장이 있는 위치를 피하면서 그 주위만을 참획했다
몇 번의 참격 끝에 확실한 반응과 혈육을 도려낸 감각이 있었다
틀림없이 놈의 내장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순간, 공격의 보복이 돌아왔다

소리라고 할 수 없는 굉음
동시에 다가오는 것은 압도적 존재감



그것은 엄청나게 큰 말뚝이였다
브리간트의 손톱은 바위 표면을 잘게 부수고 허공을 도려냈고
허공은 번번이 형체를 빼앗기는 것을 참다 못해 오열을 토해냈다

시야 가장자리에서 아가토스의 보석이 열선의 비를 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브릴리간트의 눈동자, 목, 기타 등등에 사정없이 뿌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약간의 의미밖엔 없었다
약간의 상처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결코 치명상이 될 수 없었다

허공의 보석을 박차고 굉음을 피하듯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적의 명중률은 대단했다



배에 말뚝이 박혔다
하늘을 뒤흔드는 충격만으로도 내 뼈라는 뼈가 부서지는 기색이 있었다
용의 손톱 하나는 내장의 대부분을 도려내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까지 한 순간이 영원히 느껴졌다
호흡이 안 되고 피가 돌지 않고 마력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입에서 분수처럼 체액이 뿜어져 나오는 게 보였다

배에 구멍이 난 것은 이제 두 번째 인가?
그러고보니 첫 번째는 어디서였지?





"우와, 정말 꼴불견이내? 어이 살아는 있는거야?
이왕이면 아직 살아있는 게 좋을텐데 말이야
아니면 너무 추태를 부려서 창피한 나머지 못 일어나는 거야?"




아가토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은 내 귀가 망가진 것인가
아니면 아가토스도 한계가 가까움을 알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숨을 들이마시고 내 쉬었다
손가락 끝에서 눈에 이르는 모든 것에서 고통을 알리고 있었다






"용이라... 정말 대단하군"





루기스는 오직 그 말만을 답했다

용, 엄청나게 거대한 약탈자
몸 자체가 신화의 무기이며, 놈의 원전이였다
놈은 모든 것을 빼앗가버리는 약탈자이며
이러는 동안에도 자신에게서 마력이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접근전은 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데 가까울 정도니까

나는 호흡을 멈추고 양손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마검에 신경을 쏟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숨도 쉬지 않고 브릴리간트의 손톱에 냅다 꽂았다

온몸이 삐걱거리고 등뼈가 절규를 질렀다
내 몸에 박힌 손톱을 자극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였다

하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손톱을 베어버리는 순간 아가토스의 보석이 나를 쳐냈다

순간 묵직한 소리가 났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는 그대로
브릴리간트의 거구에 찌부러져 구덩이가 되어 있었다





"어이, 아가토스 내 목소리 들려?"


"들려, 자... 잠깐 설마 유언 같은거라도 할려 하는거 아니겠지?
나 그런 말 전혀 듣고 싶지 않아, 이왕이면 희망찬 말을 해달라고
우는 소리라든지, 푸념이라든지 그런거 할거면 입 닫아주겠어?"





여전히 제멋대로인 놈이었다
옛날에도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나는 볼을 일그러뜨리고 치켜올리면서 말했다




"그래... 이제 다 파악했어, 접근전을 할 거야
그것밖엔 승산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엄호해 주겠어?"


"다행이네, 머리만 다친 것 같아서, 안심이야
여기서 철수니 뭐니 하면 죽음을 각오했는데"



 
이제 내장은 엉망으로, 피도 살도 멋대로 내게서 흘러내렸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건 내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마력만이 나를 떠받치고 있었고
그것이 없어지면, 당연하게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 용을 상대로 접근전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므로 완전히 최악의 상황이였다

뭐, 최악이란 건 항상 나에게 달려 있는 꼬리표 였으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아가토스에게 말했다




"농담 하지 마, 난 언제나 정상이라구
이길 수 있는 승부로부터 도망치는 쪽이 미친거지
나의 적은 정의로 말하는 놈 뿐이야, 그러니까 저 녀석은 적에도 못 미친다구"




아가토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직 마검만이 내 손아귀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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