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596화 - 황폐한 마을의 전역 - 본문
황폐화된 촌락에 마치가 지나갔다
눈이 유난히 쓸쓸한 것은 역시 사람을 잃었기 때문일까
신왕국과의 회담을 마치면서
로이메츠 폴은 일말의 안도를 가슴속에 담았다
이상하게도 덩치가 큰 체구가, 이때만큼은 작아져 보였다
회담 내용은 급제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상대 측에 양보할 부분은 있었지만
과대한 요구를 강요당하지는 않았다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귀족들의 영지도 보전할 수 있다
브래켄베리에 얼굴을 돌릴 수 없는 사태는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옆을 걷는 가르라스 가르간티아가 창을
어깨에 건 채 지루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 이번 협상에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얼굴에는 긴장감 같은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폴 경, 발레리는 버드닉 친구랑 얘기하고 있는데 말야
시간이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
"상관은 없는데... 설마 피를 보는 건 아니겠지?"
버드닉 가문에서 출가한 여자애는 젊은 나이에 외톨이가 됐다
원래 기사로서의 재주가 있다고 들었고 운도 따랐을 것이다
무사히 꽃이 핀 것 같았다
발레리와 처지가 비슷한 만큼
서로 느끼는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로이메츠는 카리아
그러다 새 왕국의 대표자였던 성녀 마티아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로이메츠가 마성에 대해 묻자
마티아는 거침없이 대답해 보였다
"마성을 무턱대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두려움은 무지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마성은 그저 이웃에 불과하답니다"
그녀에게서 가장 선명한 말은 그것이였다
지혜의 신앙인다운 문장교의 성녀답다면 어쩔 수 없겠지
그러나 로이메츠는 이 한마디에서
우리가 사신을 맞이하고
그들이 왕도를 품에 안은 이유를 본 느낌이 들었다
갈라이스트 왕국에서는 대성교와
시조 아르티아의 사상에 따라, 마성을 최대의 적으로 삼았다
마법은 일정한 자에게만 공개되고 사상은 통일됐다
시민들 중에는 마법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마성이 대륙의 패자이며
인류는 학대받고 빼앗기는 자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그들을 이웃으로 여기는 사상을 배척해야 마땅했다
갈라이스트 왕국은 통일제국의 계승자였고
이 생각을 의심하는 일조차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버렸다
인류가 대륙의 패자가 되어
문화는 발전하고 지혜가 태어나고
사상은 복잡해지고 의문을 가질 여유가 생겼다
학자들은 때로 시민들조차도 이렇게 묻곤 했다
마성이란 어떤 것인가
대성교는 적이라고 답했고
문장교는 알아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단지 그것만의 차이
어느 쪽이 옳은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시대가 결정하는 것이였다
"가르라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나는 내 머리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가 없군"
"글쎄요"
가르라스는 짐승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밀고
턱에 손을 얹고 나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진지하게 사고하는 모습은 드물었다
로이메츠도 잡담인 줄 알고 흔드는 바람에
의외라는 듯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르라스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워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 서 있었다
그는 신묘한 모양을 충분히 취한 뒤에 말했다
"아마 가희님이 호국관들을 죽이고 군의 주도권을 잡겠지요
폴 경, 당신도 아마 죽을 것입니다"
당돌한 말투에 로이메츠뿐 아니라
호위병들도 굳은 표정을 짓지 못했다
몇 초의 공백이 지나고...
몇 명이 일순간 사고의 움직임을 멈춘 틈을 타
가르라스는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여기서 당신과 저쪽을 죽이기로 되어 있었죠
이제 다른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폴 경, 난 당신을 싫다고 했잖습니까
기사인 이상, 암살자의 흉내는 내고 싶지 않군요
이런 모양으로 기사고 뭐고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여기서 당신이 도망쳐 준다면
내가 그냥 놓친 것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를 죽이겠다면. 기사장전에 따라 당신을 죽일 수 밖에 없소
말했잖습니까, 발레리 두고 와도 되겠냐고"
"…너는 국가의 대사를 맡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가르라스"
"……그건 당신 눈이 흐려있는 것이겠지
내 목적은 예전부터 달라지지 않았다고"
붉은색 창이 순식간에 살의 덩어리로 변해갔다
공기가 찬 이유가 눈 때문이 아니었다
가르라스의 날카로운 눈동자는 이제 맹수의 것을 띄고 있었다
그의 말은 진실이였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적대행동을 보이면
이곳은 그의 사냥터로 변모할 것이다
명예의 기사의 칼끝은 결코 적을 놓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경직된 호위병사를
로이메츠는 손을 흔들어 제압하고 뺨에 주름을 잡았다
"왜 이러는 거지?
국가를 피폐하게 만들고 싶은 건 아니잖아
성당 기사의 긍지 때문인가?"
"응? 성당 기사든, 수호자는 내겐 상관이 없어
대성당에도 의리는 없고 말이지"
"그렇다면 왜!
가르라스 예리한 칼날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풍기며 붉은색 창을 겨누었고
내뱉는 날숨 하나조차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히려 이성적인 말이 어색할 정도였다
"나는 갈라이스트 기사로서 최고 자리를 원하지
새삼스럽게 길을 바꾸기에는 좀 늦은 것 같아서 말이야"
기사의 최고위란, 최고 자리를 뜻하는 것이다
일찍이 통일제국 시대에 만들어지고
아르티아의 기사에게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칭호
이제까지 두 명 밖에 받지 않았던 것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국왕과 교황 두 사람의 뜻이 합치되었을 때뿐이다
이를 위해 구왕국에 가담했다고, 가르라스가 말했다
"이런 멍청한...! 고작 칭호 같은 것에 눈이 멀어!?"
"난 그 칭호 같은 것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거야
아무튼 수다는 여기까지 인 것 같군"
그 소리를 알아챈 것은 가루라스뿐이 아니었다
로이메츠도, 호위병들도 귀를 움직였다
쇠가 스치고 소리
그것은 중장보병이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도약하는 듯한 신속함이였다
로이메츠가 갈라이스트 국내에서 대귀족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핏줄과 정치력도 있지만
그가 두 자루의 칼을 가진 영향도 컸다
하나는 이전의 용자인 리처드 퍼밀리스
다른 하나는 파수꾼, 은테 군청 발레리 브리트니스
"하하, 변함없이 눈치가 빠르다니깐"
"주군을 죽이지 않은 것만큼은 감사드리겠다"
가르라스의 살의를 받고 발레리는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온몸을 덮는 마법 갑옷으로 가르라스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속도는 활과 화살에 가깝고
다부진 체술의 매끄러움은 눈에 보이면서도
여전히 포착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있기에
로이메츠는 말로 시간을 얻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붉은 창과 마법 갑옷이 얽혔다
순식간에 접합하면, 불꽃이 튈 정도였다
하나 하나가 살의의 응수
로이메츠에겐 눈길로 쫓기조차 힘든 영역의 싸움
마법 갑옷이 발레리의
마력을 빨아올리며 섬광을 번쩍이게 했다
눈 사이로 빛이 반짝였다
이에 맞서서 가르라스는 붉은 창을 움직이며
갑옷의 틈새를 노렸다
서로,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를 죽이기 위한 일격이었다
배려란 없었고, 조금 전까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던
사람에게 품는 감정 따위는, 두 사람은 간단하게 버려버렸다
오히려 발레리가 신경 쓴 것은
가르라스가 배반한 이유가 아니라 다른 기색이였다
무너진 마을 속에 스며들어 있는
마성의 기색... 그것이 발레리의 목덜미를 찌르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온 순간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로이메츠와 신왕국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를 여기서 죽이고
왕도에 기습을 가하겠다고 했나, 단순한 방책이군"
"단순한 게 가장 편하고 가장 강력한 건 뻔하잖아
게다가 앞일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가르라스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음 순간에 발레리의 목덜미에 붉은 창을 찔렀다
발레리가 손등을 들고 창을 내리친 뒤 다시 몇 차례 접합시켰다
"네 원수를 받들도록 해
적에 대한 예절이 네게 영예를 줄 거야
기사장전 몇 장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 인간으로서 네게 경의를 표하겠어
여기서 죽어주겠어? 그걸로 끝일 테니까 말이야"
"내가 이 정도로 끝날 줄 아느냐?
용사에 비하면, 너는 쓰레기나 다름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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