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반응형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62화 - 가슴속의 진흙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7장 베르페인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62화 - 가슴속의 진흙 -

개성공단 2020. 4. 2. 11:20
반응형

태양이 모습을 감춰가면서

베르페인의 거리는 어둠에 휩사였다

원래대로라면 지상을 비추는 것은

달의 희미한 불빛뿐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두운 거리를

비추고 있는 무언가가

신음소리를 내고 잇었다

 

그것은 마치 끓어오르는 불길 같았고

뿜어져 나오는 탁류 같으며,

무언가를 요구하며 날뛰는 용과 같았다

 

휘황한 불빛을 밤거리에 쏟아내며

마력의 분출이 베르페인의 중심으로부터

피어오르고 있었다

명확히 이상한 사태인것은 틀림없었다

 

원래 마력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사람의 시야에 비추는 것이 아니였다

마법사가 마법을 통해 

어떤 것이든 형태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마력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농도가 없다면 그 모습을 보이지 않는 

마치 얇은 비단처럼, 엷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연두색의 빛깔을 내며

사람들의 시야에서 하늘을 가르며

하늘을 계속 기어 오르고 있었다

 

너무나 높은 고밀도의 마력이

하늘로 뛰어 올라서

빛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미 그것은 동화속에 나올법한

그런 광경이였다

 

사람들은 눈꺼풀을 감지도 않고

표정을 짓는 것을 잊은 듯

그 광경에 매료되어 있었다.

 

빈민도, 서민도, 귀족도

이때만큼은 신분의 울타리조차 잊은 듯

한결같이 똑같은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 입을 열지 않고

가슴속에 한 가지 말을 품기 시작했다

 

아, 분명 어떤 무서운일이 일어나려는 거야

 

 

 

 

*

 

 

 

 

뺨이 공기의 흐름에 쓸리는 것을 느꼈다

그 솟아오르는 마력의 분출이

조금씩 기세를 더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리아의 몸에 의지하면서

몸을 조금씩 일으켰다

 

폐 속에서 뭔가가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며

날뛰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피에르트도 온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남에게 말하기 위한 목소리가 아닌

그저 푸념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카리아는 어떻게 알았느냐고,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언제나 당당하게 목소리던 그녀가

희한하게도 작은 목소리를 내다니

 

아무래도 어깨나 팔에 상처를 입은

나에게 약간의 배려를 해주는 건가

이런 카리아는 처음인데

 

"모를리가 있겠어?

저런 이상을 일으킨 만한 녀석이

또 어디에 있겠어?"

 

그래, 말 그대로

눈 앞에 비치는 것은, 영락없이 이상적 존재였다

과거를 가든, 미래를 가든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단 한사람일 것이다

 

날씨조차도, 세계조차도

모두 자신의 손 안에서 바꿔버릴 수 있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여자

 

그러나 어째서 베르페인에...라고

중얼거리려다가 순간 입을 닫았다

카리아에서 그 말을 또 내뱉자니

급소를 한 대 얻어맞을 것 같았다

 

나는 살짝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카리아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넣자

걸쭉한 감촉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어깨에서 품어대던 피가 고여버린 것 같았다

 

무심코 미간에 주름을 잡고

귀를 떨면서, 씹는 담배를 입에 넣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씹는 담배였다

 

콧구멍을 통해 독특한 냄새가 지나갔다

나는 눈동자를 가늘게 뜨면서

숨을 두 번 크게 내쉬었다.

 

"그런 몸으로

저 마굴에 발을 들여 놓을 생각이냐"

 

"그럼, 당연하고 말고"

 

나는 짧게 대답하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뼈에서 통각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카리아의 은빛 눈동자가

어떤 감정을 품으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으려는 듯

그녀답지 않은 표정이 얼굴에 피어 잇었다

 

아아, 정말이지, 이건 너답지 않아, 카리아

그렇게 속으로 작게 호소하며

담배를 손가락으로 굴리면서

조금씩, 다리를 앞으로 나아갔다

 

"너와 마찬가지로

피에르트는 내 동료야..."

 

나는 결코 토해내지 않을 것이라고

가슴 안쪽에서 뭉쳐져 있던 감정이란 진흙을

지금 형태를 말로 바꾸어 내서

입 밖으로 뱉어냈다

 

"저 마굴 속에 있는게 내 동료라면

나는 저기가 위험한 곳이라도

분명 갈거야, 넌 어때 카리아?"

 

이상하게도 입이 내 멋대로 움직이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마치 감정이 그대로 입술에서

흘러나와 버린 것 같은 감각...

 

아, 그렇군, 그랬던 것이였어

나는 이 말을 무엇보다

입술에서 뱉어내고 싶었던 거야

 

가슴을 펴며 동경하던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그 무엇보다 바랬었다

 

"내게 힘이 되달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거냐?"

 

카리아의 그런 말을 듣고

순간 얼굴을 보여주지 못할 만큼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자

등 뒤에서 카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 같은 놈, 함께 하지 않을 줄 알았냐?

네가 말한 대로, 나는 너의 동료다

걱정하지마, 난 너와 함께할테니까"

 

카리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하면서도

그녀의 속눈썹은 어딘가 기분 좋은 듯

튀어 나와 있었다.

 

사병도, 용병도

그 누구하나 나와 카리아의

걸음을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리고 세계의 이치에서

한 발짝 벗어난 듯 이상한 광경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은지

도저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