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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2화 - 시궁쥐의 긍지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2장 피에르트 볼고그라드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2화 - 시궁쥐의 긍지 -

개성공단 2020. 2. 12. 15:20

그것은 마치, 간청하는 것처럼,

하늘의 있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은 말투였다.

 

"아.. 같이 잡힌 것이... 헤르트, 헤르트 스탠리 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의 그 말을 듣자마자

폐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체내에서 만들어져서

혈관을 통해 몸 전체로 통하는 것을 느꼈다.

 

일찍이 이 여자와 함께 여행을 했을 때 조차도

이 처럼 굉장한 증오를 품은 적이 있었던가

 

이 시대에서도 네놈의 성격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구나

 

물론 지난 세계에서의 당신은 이토록 절박한 면은 없었다지만,

하지만 나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 있었다.

"아 왜 너인거냐? 헤르트 였으면 좋았을텐데"

 

물론 시궁쥐에 불과한 나에게는 당연한 얘기였다.

그리고 피에르트의 가치관과 맞물려서

그녀가 내릴 수 있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그 와중에 지금까지 우리들의 그림자 밖에 비추지 않던 도자기 촛대의 불꽃이

갑자기 불쑥 나타난 큰 그림자를 벽에 비췄다.

그는 얼굴을 투구로 가리고 꼼꼼히 갑옷을 입었고 참수를 위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참수병이였다.

 

"기도는 다 하였느냐? 성녀님의 지시다. 우선 한 사람만 나와라"

 

아무래도 그들은 아직도 지하 신전 통로를 뛰어다니고 있을

두 사람을 붙잡기 위해, 한 사람을 본보기로 죽여두려는 속셈일 것이다.

 

피에르트가 '히익' 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는 당황스럽고, 희망도 없다는 그런 표정으로 얼굴을 짓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내 평가가 시궁쥐인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 평가는 달라질 리 없었다. 그러니까 그거는 받아두는 셈을 쳐도

 

그녀에 대한 증오는 여전히 억누를 수 없었고

곧 토해내려고 하는 순간 이였다

 

"여전히 너는 변하지 않았구나, 마법사 씨"

 

벽에 있는 그림자 중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도자기 촛대는 스스로 흔들리 듯 활발하게 불길을 흔들고 있었다.

일어선 순간 품에 남아 있는 담배를 떨어뜨리면, 그 기세가 더 강해질 것이였다.

 

파수병들은 벌떡 일어난 나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치켜보았다

다들 하나같이 예상 밖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신 말대로, 유감이지만 나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그리고 미래도

시궁쥐인 채로 계속 살아갈거야.

그러니까 헤르트 스탠리 처럼 널 멋지게 구출하는 일은 할 수 없어"

 

그러면서 그녀에게 결박된 손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불쑥 일어선 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한 파수병들도 일어선 나를 보고도, 곧바로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었다

 

그럴만도 할 것이다. 손이 묶여진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다 숫자도 그들이 더 많다

 

나는 파수병들도 무시하는 나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 헤르트 스탠리 였다면, 모두가 이쪽으로 창을 겨누었겠지

 

그런 망상과 다름없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면서

새끼줄을 확 잡아당겨서 팔꿈치를 내밀었다.

눈 앞에 보이는 촛대의 불꽃이 묘하게 어른거려 보였다.

 

하지만, 불이 차오르는 것만으로는 위력이 약하다.

게다가 놈들의 허를 찌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였다.

 

"저기 마법사 씨, 시궁쥐에겐 말이야 시궁쥐의 긍지가 있다고.

조금 떨어져 있어, 그리고 빈틈이 생기면 바로 도망가는거야 알았지?"

 

피에르트만 볼 수 있도록, 뒷 주머니에서 숨겨둔 그것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비틀어 냈다.

 

그것은 갈루아마리아에서 구입한, 마수의 점액으로 만들어진 점착액 이였다.

본래는 접착제로 사용하며, 생활용품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칼이나 값나가는 물건을 빼앗더라도, 이런 잡동사니를 눈여겨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제2의 용도가 있는데,

이 점착액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뭐 간단히 정리하자면, 

칼을 빼앗긴 포로는 포승줄을 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남은 방법은 태워버리는 것이다.

아, 알류에노에게 받은 손수건만은 태워지지 않게 해야하는데...

물병에 넣어 둬야 겠다. 그럼 안전할 거야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나는 팔꿈치에 모든 무게를 실어서 도자기 촛대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나의 행동에 무엇을...이라고 하는 피에르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든 말든 일단 제쳐두고

 

'캥챵'

 

이런 새하얀 소리를 내며, 도자기는 깨어졌다

 

 

 

*

 

 

 

처음에 느낀 것은, 팔꿈치 만이 아닌 전신을 관통하는

격렬한 통증 이였다.

몸이 두동강 나 버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도자기를 때려 부수고, 그대로 바닥에다 꽂아버린 팔꿈치는

영락없이 이상이 생긴건 분명했다. 아, 오른팔은 다행히 무사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어지는, 타오르는 아픔

이 불꽃은 뜨겁다는 단계는 지나간 채, 나에게 고통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자유를 얻은 불꽃은 팔꿈치 부분에서 내 옷으로 옮겨 붙은 다음,

점액이라는 연료가 더해져서, 그 기세가 방 전체에 퍼질만큼 발화하고 있었다.

 

왜소한 촛대에 담긴 한을 풀기라도 하듯, 

습기 없는 마른 소품들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당연히 그 기세는 내게도 쏟아지며,

그것은 팔에서 허리까지 퍼지며, 그대로 피부를 태워 갔다.

 

아직 모자라다. 더 타는 거다.

그 정도로 나를 태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 정도로 나의 정신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귓전을 때리는 것은 피에르트의 비명과 

파수병들의 당황한 목소리

 

아아 이 얼마나 유쾌한가

나를 업신여겼던 너희들이 그토록 당황할 줄이야

 

그렇다 내 앞에 서 있던 참수병은 손아귀에 참수검을 떨어뜨렸고,

그 옆을 지키던 파수병은 패닉에 빠진 채, 주저 앉아버렸다.

 

"물! 물을 가져와라!!

 

내 새끼줄은 다 타버렸다.

 

불길을 짊어진 채, 양손으로 참수검을 집어들었다.

 

그러고는 검은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힘을 쥐어

참수병의 갑옷과 투구사이의 목덜미를 도려냈다.

 

그 일격으로 혈육은 찢어지고, 척수는 절단되어

참수병은 한 방에 명이 끊어지고 말았다.

 

주위의 파수병들은 악마라도 본 듯

경련하고 오열하면서, 공포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숨을 내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가서 심하게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 내 증오는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몸은 한계를 맞고 있었다.

 

왼팔은 더 이상 감각이 없었고, 시야도 희미해져 갔다

귀에서도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만족한다.

나 자신의 열을 가진 채 생을 마감할 수 있다니

더 이상의 염원은 없다.

 

피에르트가 이 혼란을 틈타서 무사히 도망가길...

팔은 묶여 있지만, 다리는 무사할 것이다.

 

이렇게 까지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더 있을까?

나는 헤르트 스탠리도, 영웅도 아니다. 그냥 루기스 일뿐이다.

 

그리고 보고 있나?

나를 이 시대에 데려온 검은 그림자여...
루기스는 여기서 겨우 여자 하나를 구하고 꼴불견처럼 끝나버렸어

어떤 연극에서도 이런 영웅은 받아들이지 않겠지?

 

뭐, 만약에 영웅을 시궁쥐로 바꾼다면 잘 될지 몰라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숨도 쉬지 못하게 된 몸은

자연의 이치에 따르듯 그 자리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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