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30화 - 시작의 복음 - 본문
"딱히 할 말은 없겠지?"
거창한 독백이 울려퍼졌고,
그 주위의 검은 공간으로 소리는 스며들어갔다.
그곳은 그 그림자를 위해 준비된 것 처럼,
준비된 곳 같았다.
"먼저 손을 댄 것은 그 쪽 아닌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이 곳은 나의 본령이라고"
그림자에 어렴풋이 윤곽이 잡혔다.
그것은 악마랑 비슷하지만, 인간의 형상 이였다.
하지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내 침대에서 조금만 움직였을 뿐인데
그게 무슨 불만이란 것이야?!"
과장된 웃음소리가 어둠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기쁜 듯이 이어졌고,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빨려갔다.
*
문장교도들의 지혜를 모아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신전의 본당에는
그들이 믿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과 그 밑에 긁어모은 서적과 서판,
그리고 쓸모없어 보이는 소품들까자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말 압권인 광경이였다.
이 일대 왕국에서 이만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과연 있을까?
문장교도는 늘 지식과 문자, 그에 준하는 것을 수탈하고 긁어 모으는 것을
규칙의 하나로 삼았다. 이 세상의 진리는 탐구 속에 있으며,
문장이 그것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지식을 숭배한다고 해야 할까나, 그 수탈은 때로는 도를 넘어서
대규모의 혼란을 일으킨 적도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신앙과 지식 숭배가
호전적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무력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은 확실하다
어떻게 보면, 베타적인 사고나 철학 조차 지식의 하나로 긁어 모았기에,
세월이 흐를 수록 그 기세가 쇠약해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
"굉장해! 이거 봐봐! 이런 것은 학원 도서관이나 연구실,
아니... 어디서든 본 적이 없어!"
하지만 그 신앙 덕분에, 지금 여기에 지식의 집합소가 만들어 졌다.
거기서 피에르트 볼고그라드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가슴을 콩닥거리며 발끝으로 리듬을 새며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피에르트 역시 지난 세계에서의 모습과 다르게
너무 들뜬 모습이였다.
지난 세계에서 그녀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앗간을 발견한 참새마냥 너무 떠들지 마시고,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보죠"
"어휴, 너는 분위기라는 것을 모르느냐?
의연하되 자연스럽게 하라, 이게 볼고그라드 가의 가르침이야.
그러니까 기뻐할 때는 당연히 기뻐해야지"
처음 들어본다고 그런거
의연한 태도... 라고 하는것은 지난 세계의 그녀에게서도 짐작 되는 점은 있지만,
지금 보는 그녀의 모습은 내가 아는 사람과 생판 다른 모습이였다.
내 앞에서 쾌활하게 춤을 추고 있는 그녀는
모습이야 똑같지만, 근본적인 부분이 어딘가 어긋났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물론, 이 시대부터 구세 여행까지
그녀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게 하는 사건이라도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머, 너 시골뜨기 주제에, 문자도 읽을 수 있었어?"
"너무 무시하지는 말라고, 이래뵈도 여러 가지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야"
손가락을 흔들면서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움츠렸다.
사실은 구세 여행 중에서 알류에노에게 배웠지만
지금의 세계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기에, 말할 수는 없었다.
책의 표지를 바라보며 서서히 시선을 움직였다.
책이란 사치품이며, 하나의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책들이 줄지어 서 있다는 것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것을 다 팔면, 그런대로 엄청난 재산을 얻겠지만
나한테는 도저히 무리인 것이였다.
책 같은 고급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격식과 자격이 필요하다.
나 같은 시궁쥐가 책을 팔아 봤자, 사기꾼으로 몰릴 뿐이였다.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그저 적당히 돈이 될 만한 것들만
주머니에 슬쩍 넣어 두었다.
낯이 익든 없든, 여기에는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이 꽤 많아 보였다.
나 같은 평민에게는 책보다 이쪽이 훨씬 나아 보일 것이다.
씹는 담배와 비슷한 것이 있어서 입에 넣어 보았는데,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지독한 맛이 났다.
"우와! 진짜 꿈만 같아! 이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피에르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쪽은 분명 대예배당이 있을 것이라고 문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사람 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어서
도저히 지하에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공간 이였다.
지난 세계에서 우리가 방문 했을 때는,
사람의 뼈나 핏자국 그리고 검이랑 갑옷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곳은 문장교도들의 최후의 요새 였으며, 복음전쟁 이후
패배를 알게 된 여럿 사람들이 이곳에서 숨을 끊었을 것이라고
피에르트는 그렇게 추정했다.
복음전쟁 이란, 구교도의 대반란이라고도 불리는 전쟁 이였다.
각지에서 마치 손발을 맞춘 듯한 탄압받고 있던 구교도들이
봉기의 깃발을 들고, 주변의 국가들을 혼란으로 끌어들인 대전쟁 이였다.
갈라이스트 왕국처럼 대성교가 태반인 나라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구교도와 대성교가 서로 반반씩 갈라서면서, 내전에 빠진 나라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대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그 피해는 결코 적지 않았고,
철벽의 성채도시로 군림하고 있던 갈루아마리아도
구교도의 공격에 한번 함락되었던 적이 있을 정도 였다.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던 구교도 지만,
더 이상의 공세를 하지 못한 채, 전략적으로 패배한 구교도들은
결국 이런 지하신전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끝을 선택한 셈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시체를 봤을 때, 기분이 별로 좋은 것은 아니였다.
...라고 생각하니, 나는 무엇인가를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지붕만 세우고는, 정작 중요한 기둥을 빠뜨리는 것처럼
초보적인 무언가를 잊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피에르트가 호기심에 빠진 채 문에 손을 걸었고,
문은 그 호기심 만큼 힘차게 열렸다
문을 열어보니, 예배당 안에는 창을 들고 갑옷으로 무장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적의를 가진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피에르트의 얼굴이 일순간에 굳어지고, 파랗게 질렸다.
나는 발뒤꿈치 속에서 기어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예배당 안에서, 깨끗하게 울려 펴지는
목소리가 나의 귀를 울렸다.
"침입자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설마 이 곳까지 올 줄은 몰랐군요"
아름답고 고운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주위에 울려펴지는 목소리를 가졌고, 위엄과 맑음을 둘 다 가진 얼굴,
순수한 눈동자, 그리고 어딘가 미쳐보이는 듯 했다.
"우리의 신앙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그 진흙 투성이의 구두로 우리의 예배당을 짓밟다니!
이 무슨 대죄이며 모욕인가! 저 자들을 잡아서, 몸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우리 지성의 주춧돌로 삼도록 하세요!"
아, 나는 순간 나의 흐릿한 경계심을 탓하기 시작했다
갈루아마리아에 왔을 때는, 분명 이에 대한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피에르트를 헤르트 스탠리에게서 떼어냈다는 성공 것 때문에
성취감에 겨워서, 경계심을 풀어 버렸던 것이였다.
이런 젠장할... 이 무슨 실수 인가
"거짓말... 구교도들은 오래 전에 이 곳을 떠났을 텐데...'
입술을 떨며, 말을 더듬기 시작한 피에르트의 두 팔을
갑옷을 입은 자들이 붙잡기 시작했다.
이들은 영락없이 구교도 문장기사단의 일원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아마도 복음 전쟁에서 성녀로 추앙 받은 여자 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을 피로 물들인 여자 였다.
아아 이런 것이였나
복음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확실히 말하자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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