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2화 - 고요함 - 본문
갑자기 문득 입이 심심하다는 생각이 났다
입술은 묘하게 건조하고, 뺨은 차가웠다
입속에는 점착액 같은데 가득해서, 끈적끈적한 기분 나쁜 감촉이 들었다
물이든 술이든 뭐든 좋으니 뭔가를 입에 머금고 싶었다
주위를 살피듯 손을 뻗으며 눈을 떴다
순간 햇빛이 눈동자에 꽂혀서, 반사적으로 몇 번 눈꺼풀을 깜빡이니
흐릿한 시야가 비로소 윤곽을 되찾아 갔다
여긴 어디?, 나는 멍하고 석조천장을 바라보며 그런 얼빠진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몸은 깨어났지만, 머리속은 그대로인거 같았다
전혀 생각다운 생각이 머리속에 떠오르지 않았고
머리 속의 누군가가 나에게 좀 더 누워 있으라고 말하는거 같았다
나는 눈꺼풀을 무겁게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물병 같은 것을 잡기 위해 오른손을 길게 뻗었다
이곳이 침대 위라면, 머리맡에 분명 물병이나 술병이 있겠지 라는 생각이였다
길게 뻗은 손이 저리기 시작할 무렵, 무엇인가 오른손에 잡혔다
실이 얽힌것 같은 감촉... 설레설레 손가락을 풀리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뭐냐는 듯, 시선을 돌려보니
오른손의 손가락에 은빛의 무언가가 여러개 얽혀있었다
나의 머리속은 사고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은색 실?
그것은 확실히, 햇빛에 반사되어서 그렇게 보이는 듯 했다
매끈하고 아름다우며 아마도 그 하나하나에
가치가 붙을 것 같은 그런 은빛 실 이였다
그러나 뭔가 이상해
과연 내가 이런 것을 어떤 용도에 쓰고 있었던가?
꽤 고급스러워 보이기에, 감히 내가 범접 할 수 있는게 아냐
문장교라고 해도 쓸데없이 고급품을 손에 쥐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은색 실타래가 내 머리맡 바로 옆에 있는 거지
나는 무겁게 느껴졌던 눈꺼풀을 조금씩 뜨며,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단정할 얼굴로 조그마한 숨소리를 내는 우리의 기사가 거기에 있었다
바로 내 얼굴 오른쪽에, 카리아의 얼굴이 있던 것이였다
그렇다면 내 오른손에 감겨있는 건.... 그녀의 머리카락...
아, 그렇군, 난 여기서 죽는구나
나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카리아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신체 어딘가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러고 말고 나는 왜 이런 사태에 빠져있는가
빠져나가듯 카리아의 잠든 모습에서 고개를 돌렸다
사실 몸이 호소하는 본능적인 위기감과 다른 의미에서도
카리아의 모습을 너무 빤히 쳐다보는 것은 좋지 않았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좋지 않은 것이다
빠져나가기 보다는 도망가자는게 맞는거겠지
생각의 끝자락을 찾아 헤메도, 나는 왜 이런 사태에 빠져 있는거지?
적어도 우선 내게 원인은 없을거야
나는 일단 베르페인의 영주관에서 괴물을 쓰러뜨렸을 테야
근데 왜 나는 침대 위에서 카리아와 누워있는 거지?
오른손에 감기는 머리카락을 조심히 다루면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 이번에는 왼팔 자체가 굳어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나의 팔이 쓸모 없어진 것은 아닌것 같았고,
무엇인가가 나의 팔꿈치를 억누르고 잇는 것 같은, 그런 감촉이 있었다
나는 한숨을 삼켰다
입술은 아직도 메말라 있었다
이번에는 카리아의 반대편, 왼손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검고 긴 머리카락이 하얀 침구 위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마법사 피에르트 볼고그라드가 상당히 기분이 좋은 듯
몸을 웅크리며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 왼팔을 끌어안은 것은 덤이고...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귀찮은 일이 일어난건 아닌가...
문득 뇌리 속에 그런 말이 떠올랐다
왜 이 두 사람이 그리 넓지도 않은 침대 위에서 함께 자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그 중심부에 내가 그대로 놓여져 있는 것인가
모르겠어, 완전 모르겠다고
머리속이 비로소 자신이 처한 그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곧 여기는 갈루아마리아의 한 방임을 파악하고 말았다
"고용주? 좀 괜찮아졌나? 밥 갇다주러 왔어"
쿵쿵쿵, 다소 거칠어 보이는 노크와
동시에 내 친구 브루더의 것으로 보이는 목소리가 방 안에 울러펴졌다
*
"안, 그의 상태는 어떤가요?"
문장교의 정무관이자 성녀 마티아의 오른팔인 라르그도 안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목소리에 답했다
"네, 성녀 마티아. 의무관의 얘기로는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안의 시선은 집무실의 책상에 펼쳐진 양피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손가락 끝은 깃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안에게 말을 건 성녀 마티아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쪽도, 그 손의 움직임을 늦출려고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얼마간 성벽도시 갈루아마리아의 중추기능이라고 할 수 잇는
마티아 자체가 도시에서 없어졌던 것이였다.
아무리 오른팔인 안이라도 그 기능을 다 해낼 수는 없었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성녀 마티아가 하다 만 안건 정도...?
하지만, 당연히 처리하기 어려운 정무와 안건은 수북히 쌓여갔다
그래서 마티아는 한때 자유의 대가라도 되는 양
잠자는 시간 이외의 모든 것을 집무책상에 앉아 지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부족해...
안은 이 말이 입에서 절로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이제까지는 갈루아마리아 내부 안건의 문제만 있었지만
지금은 여기 새로운 문제가 쌓여져 버린 것이였다
도시의 정무를 담당하는 영주가 쓰러지고,
동시에 용병들을 통제하는 강철공주가 사라져버림으로써
일종의 공백지대가 되버린 용병도시 베르페인...
문장교는 지금, 이 도시를 수중에 넣으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래서 정무를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을 베르페인 건에 쏟아 붓는 중이였다
당연했다. 어쨌든 베르페인 정도의 대도시가
그냥 손을 뻗기만 하면, 그대로 손에 넣을 수 있다니
결코 포기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문장교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이제 와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하튼 혼란의 와중에서 민중은 통치할 사람을 스스로 선택하기 없기 때문에앞장서서 통치를 하는 자가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따라가는게 법칙이다
양이 그 행선지도 모른채,
무리의 선두에 있는 양치기에게 이끌리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지금의 베르페인은 바로 양 자체다
무리에서 벗어나 늑대가 침을 질질 흘리는 대상 그 자체...
그러므로 이제 문장교도는 갈루아마리아에 더해
베르페인이라는 거대 도시를 영향 아래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였다
물론, 그로 인해 정무는 대폭 증가했다
혹시 나는 여기서 죽는 것은 아닐까
마침내 감각마저 상실해 온 손끝에 그런 예감마저 느끼며
안은 가볍게 눈을 비볐다
영웅님의 업적은 매우 훌륭하다
과연 그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잇는 단독 행동에는
눈을 부라리지 않을 수 없지만
문장교라는 세력에 있어서는 더 할리 없는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했다
필시 역사를 펜으로 쓴다면, 나는 갈채와 찬양으로 영웅님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옆에 딱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었다
그 루기스의 영웅적 행동에 의한 영향을 한 몸에 입은 것은
틀림없이 라르그도 안이다
안은시야가 탁 트인 기분이 들며.
피로를 달래듯 입술을 열었다
"오히려, 걱정스러운 것은 베스타리누 님 쪽입니다.
지금은 정신을 차리며, 브루더 님과 붙어 계시지만 말입니다"
강철 공주 베스타리누
그녀야말로 이번 소동에 있어서 가장 좋은 전리품 이였다
용병도시 베르페인에 있어서, 뒤에서 실질적인 통치를 행하고 있던 것은
당연히 영주, 모르도 곤 이였지만
표면적인 얼굴로서 군림하고 있던 것은,
강철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베스타리누 곤 이였다
문장교가 베르페인을 통치할 때에도,
꼭 그 형식만은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안은 간절히 바랬다
물론 마티아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겉으로 아버지를 잃은 강철공주 베스타리누가
상처받은 몸을 유지하면서도, 통치에 진력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 일 것이다
민중은 그런 미담을 좋아하기 때문에, 통치도 더욱 쉬워질 것이다
백성에겐 그 이면에서 누가 실질적인 통치를 하느냐의 관계가 없으니 말이다
겉으로는 강철공주 베스타리누, 실제로는 문장교
이 형식을 유지할 수 있다면, 베르페인에 있어서의 염려사항은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안은 베스타리누와 그녀의 가족인 브루더를
문장교로서 붙잡고 싶은 인재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안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웅님... 저의 그 간절한 바램을 이루어주세요
그 소원은 어짜피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안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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