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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4화 - 악랄한 자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4화 - 악랄한 자 -

개성공단 2020. 4. 13. 21:58

- 악랄한 자

 

 

 

 

'악덕의 주인 루기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어라'

 

원탁 위에 펼쳐진 양피지를 바라보며, 

리처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들여다보았다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상처가 일그러지면서 그림자가 깊어졌다

그리고 나이 값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훌륭해졌군, 그 마른 아귀녀석..."

 

감탄한 듯 턱수염이 물결쳤다

그의 뺨은 무너지며, 얼굴엔 확실한 미소마저 짓고 있었다

 

훌륭해졌다. 그 말은 틀림없는 진심어린 칭찬이였다

하찮은 인간이 남에게 시비걸기 위한 그런 표현이 아닌,

경험을 많이 쌓은 리처드에겐 경의의 표시로

순순히 흘러나온 그런 목소리였다

 

정말 감탄할 지경이군, 그 무엇도 아니였던 꼬마가

지금 이렇게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다니 말이야

나라는 존재를 역사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군

 

그 목소리에 답하듯, 리처드의 맞은 편에 앉은 남자가

상당히 과장된 몸짓을 하며 입술을 움직였다

 

"호오, 네가 아는 사람 이였나?

굉장히 발이 넓구나 리처드!"

 

그 남자는 체구가 몹시 컸다

 

앉아 있는 의자는 장성한 남자가 앉기에 충분할 정도의 크기였지만

이 남자가 앉으면 매우 작아 보였다

 

모습만 보면 도저히 상류층 사람 같지 않았고

리처드 또한 같은 생각이였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이 메츠 폴

갈라이스트 왕국 고위 귀족 폴 가의 현 당주

그리고 리처드가 섬기는 주군이였다

 

그의 재주는 영지경영과 전쟁에 능했고,

고위귀족과 대성당의 속셈이 겹겹히 얽혀있는

갈라이스트 왕국의 정치영역에서 아직도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정치에는 사람의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는

후각과 시간의 흐름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그 중 하나가 빠지면, 설령 흥정을 잘하더라도

설령 지식이 풍부하더라도, 정치라는 세계를 헤쳐 나갈 수 없었다

 

로이 메츠 폴은 국왕의 외척이기도 했지만,

이들의 정치에 필요한 소양을 갖고 있었음에는 틀림 없었다

하지만 리처드는 그의 조잡한 행동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그런 인간 같지 않다며 어깨를 움츠렸다

 

리처드는 탁상에 놓인 와인을 집어 들며 단숨에 목구멍으로 흘려 보냇다

혀와 잙 얽히고, 향기도 깊은 와인이였다

오랜만에 꽤 괜찮은 와인이였고, 빈 용기를 들자. 바로 옆의 하인이

걸어와서 새 포도주를 따라 넣었다

 

"그래서 이건 어떤 사람인가, 리처드?"

 

그 로이 메츠가 흘린 한 가지의 질문이 리처드의 귓전을 흔들었다

리처드는 새로운 와인 냄새를 콧구멍에 흘러 넣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로이 메츠의 시선이 빈틈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의 주름은 얼굴에 깊고 깊은 그림자를 만들게 했다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용가치가 있다고 응해야 하나, 아니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해야하나

더 나아가서 훌륭한 인재라고 말해야 하는건가

 

그러나 자신의 주군이 요구하는 답은 이것 밖에 없음을 깨닫고,

리처드는 입을 열고 목청을 높였다

 

"유쾌한 녀석이죠, 질리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그것만을 말하고는 리처드는 입술을 와인으로 적셨다

 

지금 말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긴 했다

그의 제자 과거의 루기스는 굴리는 재미가 있었고

그가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그릇을 크게 펼칠 것을 예상했었다

이상한 길을 택하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리처드는 루기스를 칭찬해주고 싶진 않았다

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주름을 깊게 접었다

 

"각하가 저 같은 인간을 부르신 것은 어떠한 사정이 있겠지요?"

 

마치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식으로 리처드는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추측이였다

겉으로 보기에 리처드는 그저 모험자일 뿐이였고

그런 그가 귀족의 저택에 초대받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였고

더 나아가서, 그에 대한 안좋은 소문들이 들려오곤 했던 것이였다

 

악랄한 자, 악덕을 먹고 사는 뱀, 이것은 리처드를 표하는 말로

자신도 이 별명이 틀렸다고는 생각 안하는 듯 했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자신을 로이 메츠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집에 초대한 것이다.

나 같은 모험자를 초대했다는 행위가 알려지면, 

정치계에서 망신을 당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부른 목적은 술판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하며

리처드는 미소를 지으며, 로이 메츠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꼴은 전혀 가신 같지 않았다

도저히 주인을 대하는 태도라고는 보이지 않았지만,

로이 메츠는 리처드의 이러한 태도를 용서하고 있었다

이 행동은 두 사람 간에는 그저 당연한 행위였던 것이다.

 

로이 메츠가 팔꿈치에 팔을 기대고 입을 열었다

 

"이젠 대성당 패거리들이 너무 막나가는거 같아

놈들의 머리속은 텅 비어버린 것 같단 말야

시시해, 거대한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돼, 리처드"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였다

조금 전까지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아닌

낮고, 고요하고, 약자라고 생각되는 그런 목소리...

 

공기가 납을 먹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리처드는 목소리를 상당히 가볍게 내면서 말했다

 

"하하하, 재밌는 생각이시군요

평화로운 시대를 깨갰다는 말씀이십니까?

좋습니다, 대성당 만세! 이렇게 한번 외쳐볼까요?"

 

목청을 울리고, 이를 일그러뜨리며

무언가를 야유하듯이 리처드는 입을 열며 말했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결코 미소조차 띠고 있지 않았으며

단지 무엇인가 먼 곳을 응시하는 것 처럼, 시선의 날카로움을 더하고 있었다

 

팽팽한 공기가 한동안 계속 되었다

리처드도, 로이 메츠도 서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직 하인만이 손 끝을 떨면서, 

두 사람의 빈 용기에 와인을 계속 떨고 있었다

리처드가 로이 메츠가 서로 와인을 연거푸 마시는 순간

 

"리처드"

 

로이 메츠의 낮고 돌처럼 굳은 말이 방안에 퍼졌다

 

"다시 한번 군사를 이끌어 주겠나?

대역죄인의 목을 가져다 줬으면 좋겠어"

 

그 직후, 로이 메츠의 목소리를 억누르듯

희미한 떨림이 공기를 흔들었다

리처드는 말없이 원탁에 두 주먹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주군께서 원하신다면야"

 

 

 

 

&리처드가 누구냐면

바라건데 극초반에 루기스의 스승으로 있는 성질더러운 할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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