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6화 - 주어지는 갈림길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186화 - 주어지는 갈림길 -

개성공단 2020. 4. 15. 10:09

갈루아마리아의 보루는 돌에 쌓여 있는 탓에

매우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그냥 방안에서 가만히 있을 뿐인데도,

냉기는 내 몸을 찔렀고, 폐 속에 차가운 공기를 넣고 있었다

 

안되겠군, 이젠 정말로 한계야

이런 방에 계속 틀여박혀 있는 것도 무리가 있어

 

적어도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에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테이블 위에 놓인 도자기들은 아무리 뒤집어도

한 방울의 물기 조차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거야

 

처음, 그 묘한 제안을 한 것은 

성녀 마티아의 오른팔인 라르그도 안 이였다

 

"용사님, 잠시 방 안에 있어 주겠습니까"

 

라르그도안 가라사대, 그것은 문장교라는 조직의 규율 때문이라 했다

 

용병도시 베르페인을 함락시킬 때,

내가 아무에게도 말 하지 않고, 갈루아마리아에서 출정한 것은

엄청난 소동이 되버린 것 같았다.

그 내용 자체는 모르지만, 마티아 조차 표정을 바꿨다고 들었다

 

안은 만에 하나 같은 일을 이루려는 자가 있다면, 곤란하다고 했다

 

공을 높이 올리기만 하면, 어떤 무법을 이뤄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조직일 경우 그건 다른 문제다

조직엔 조직의 규율이 있기에, 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할 수 없다

물론,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던 나에겐 생소한 감각이지만...

 

그러니 모양만이라도 근신해 달라는 것이였다

나로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하고 있었지만,

곧 그게 큰 착각이였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설마 술 하나 제대로 구할 수 없을 줄은 몰랐다

아니, 물론 근신이라는 명목상 술을 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씹는 담배 정도는 허락해 줬으면 하는데 말야


다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숨을 내쉬자,

똑 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용사님, 잠시 시간 되겠습니까?"

 

소리와 동시에 그 목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그 호칭만으로도 문 앞에 서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이 방대한 세계의 어디를 바라봐도, 나를 용사라고 부를 자는

딱 한 사람 뿐일 테니까


"아, 되고말고, 가능하면 와인이나 에일을 선물로 가지고 오면 좋겠지만 말야"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앞에 있었던 것은, 라르그도 안...

 

목소리 자체의 상태는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눈 밑에 거뭇거뭇한 것이 생긴 것을 보니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았음을 알 수 있었다

 

과연, 아직도 정무를 볼 수 있는 인재는 늘어나지 않은 것인가

 

지식을 존중하는 문장교도에 있으면서도,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인재라고 하는 것은 매우 적었다

그 중에서도 안은 마티아의 오른팔로서

자그마한 체구에 상상도 못할 정무를 맡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나쁜 예감이 손끝을 달리는 감각을 느꼈다

끝내는 그 중책을 맡고 있을 그녀가

어찌 감히 근신 중인 나 따위를 찾은 것일까

 

근신을 풀고 탈주를 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려면

주위의 병사에게 시켰으면 될 터였다

 

"아쉽게도, 술은 안 가져왔습니다. 다만 선물이라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지만, 안은 그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입술과 뺨이 일그러지며, 눈썹이 위로 항했다

손 끝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안의 말을 재촉했다

 

"대성교가 손끝을 움직였습니다.

갈라이스트 왕국에서는 이 추위 속에

군대의 동원을 열띤 기세로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이 한 말에 내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냉기 속에 몸을 파묻어선, 제대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던

혈액이 다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녀석들이? 이 시기에?"

 

무심코 내뱉은 그 말에, 안이 입술을 끝을 깨물고 눈을 가늘게 하며

예 이 시기에, 하고 말을 되 받았다.

 

빠르다,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대성교가 군사를 가다듬기 시작하는 것은

적어도 좀더 따뜻한 때라고 생각했는데

 

한랭기, 특히 대지가 하얗게 화장되는 시기의 진군이라는 것은

끔찍하게도 어려우며 돈이 많이 드는 것이였다

몸을 따뜻하기 위한 방한구는 물론이고, 술 소비도 평상시보다 

빨리 없어지는 시기 였다.

 

술이 다 없어져 버린다면

단련된 정예라면 모를까, 전쟁을 위해 모인 용병들의 사기가 있을리 없었다

게다가 눈에 발이 묶여 진군이 늦어진다면,

그 만큼 군량도 헛되이 먹어치우는 꼴이 되버리는 것이다'

 

물론 한랭기에 진군하는 사례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부러 전투를 행한 때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지금, 마티아님이 그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서

모두를 소집하고 계십니다. 용사님...."

 

"......알았어, 무엇을 할 수 잇을지 모르지만, 나도 가라는 건가?"

 

앤의 어미를 잡아먹는 듯한 말투에

나는 나도 모르게 초조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이런 내용이라면. 안이 직접 전령 역할을 할 만 하지

 

대성교가 그 무거운 허리를 들어서, 자신들의 목을 벨 준비를 하는 것이였다

 

여하튼 문장교도는 지난 세계의 역사에서

일찍이 대성교에게 패배하여 그 숨통이 끊어진 세력이며

성녀 마티아 또한 지하 신전을 자신의 관으로 삼아

목숨을 직접 끊기도 했다.

 

안돼,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돼

과거와 같은 역사의 선을 걷게 해서는 할 수 없어

문장교가 지난 세계와 같은 무참한 결과를 받아 들인다면,

나 또한 같은 최후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어

 

존엄도, 힘도, 사랑스러운 자도, 무엇도 얻을 수 없었던

여정 끝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손 안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그 때로는 

두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였다

 

만일 여기서, 문장교라는 존재가

이전과 같은 선을 더듬어 버린다면,

분명 나도 또 무엇인가에 얽매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예감이 어디엔가 있었다

 

허리춤에 보검을 매달며, 방을 나설 채비를 했다

그 때 다시, 안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용사님, 아니 루기스님

당신은 회의에 참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위에 울려 퍼졌던 안의 목소리가 아닌,

어디선가 땅을 기어가는 듯한, 낮은 음정이 수반 되는 목소리...

적어도 나는 이제까지 들은 기억이 없던 낯선 목소리였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