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8성 연합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09화 - 스승과 제자였던 자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09화 - 스승과 제자였던 자

개성공단 2020. 4. 28. 17:29

피에르트가 일으킨 마력의 회오리가 하늘을 가르고, 물방울을 삼켜갔다

그 모습은 마치 공간 자체가 큰 입을 벌리고 

날려왔던 화살들을 삼켜가는 듯 했다

사람의 피를 빨아들이기 위한 흉기는

단순한 나무토막으로 바뀌어 땅에 내동댕이쳐져 갔다

 

아무래도 잘 된 것 같군

나는 가볍게 입술에서 한숨을 내쉬며, 굳어진 어깨를 내렸다

그것은 틀림없는 안도의 숨이였다

 

카리아, 그리고 후방에 대기하는 피에르트에게는

사전에 일어날 수 있는 사태를 미리 말해 두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이 일어났을 땐

나 답지 않았지만, 손을 빌리고 싶다고 얘기해 두었다

뭐, 가끔은 괜찮겠지

 

어쨌든, 상대는 저 리처드 할아범이다

할아범이 설마 적 지휘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불러내서

그저 담소만 나누고 가버리겠는가

 

어떤 상황이 되든, 적 지휘관의 목을 떨어뜨리는 것은

그 자체로 적군의 사기를 무너뜨릴 수 있으며

자신의 병사를 잃지 않은 채, 승리와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할아범이 정말로 좋아야 할 만한 일이였고

정정당당하다는 말은 할아범에게 냉소의 대상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할아범에게 그렇다는 것은, 내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마력선풍으로 날아간 화살은 땅으로 떨어져버렸다

나는 똑바로 서서, 시선의 끝에 있는 적장 리처드를 바라 보며

말의 고삐를 세게 잡아당겼다

 

"카리아, 나머지 복병은 네게 맡길께"

 

시야의 끝에서 명멸하는 은색의 빛에게

그것만을 말하고, 말을 달리게 했다

 

물론 아와 리처드 할아범 사이에 있던 공간은

불과 말 몇마리 분의 거리

암살에 실패했음을 알아차린 복병들이

그 수중의 칼을 뽑아서 들고 베려고 한다 해도

시간안에 맞출 수 있는 거리는 아니였다

 

무엇보다, 호위용도로 대기시키고 있던 

카리아의 은빛 섬광을 넘을 수 있을 녀석은 없었다

 

허리춤에 매달린 보검을 잡고, 그대로 공간을 향해 날렸다

말의 달리는 기세에 올리타 듯이,

그대로 한 길로 적장 리처드의 목구멍으로 향했다

 

칼날이 목덜미를 향하는 순간

할아범이 일그러진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키이잉'

 

보라색 빛이 공간에 선을 그리고

그리고 그것을 흑검이 물어 멈췄다

쇠끼리 접합해서 서로 살을 깎는 불꽃이 튀었다'

 

리처드는 힘껏 내리친 보검을 예상했다는 듯

두툼한 검은 검으로 받아들였다

몸은 이미 노령의 영역일 터인데

흑검을 받치는 힘은 흔들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이쪽이 힘을 조금만 빼도 그냥 튕겨내겠다는 투였다

 

"할아범, 이제 나이가 다 됐잖아?

은거라도 하면서 편안히 지내지 않겠어?"

 

검은 서로 물어뜯고, 떼어놓으며

그리고 한 번, 두 번, 세 번

내가 참격을 거듭할 때마다

흑검은 기세를 잃지 않고, 나를 떨어뜨리려 했다

 

할아범은 마치 지독하게

이상한 것을 보고 있다는 듯 즐거워했다

 

"꼬마얘가 누구한테 쉬라고 하는 거냐?

네놈 같은 것도 버젓이 다니는 와중에

은거 같은거 할까보냐"

 

그리고 4번째

 

할아범의 심장을 노린 한방은

궤도 상에서 검은 검에 의해 약간 비껴져서

할아범의 어깻죽지를 가볍게 도려내면서 끝났다

핏빛의 붉은 빛이 평야의 녹색에 물들였다

 

과연 할아범도 피가 흐르지 않는 인간이 아닌 생물은 아니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죽일 수는 있을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익숙치 않은 마상전, 틀림없이 기량은 상대편이 위이며,

섣불리 건들렸다간, 그 순간 이쪽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이제는 지휘관끼리 전역을 대변하며 검을 휘두르는 격이 되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가득 차 있었다

일찍이 넘지 못하고 있던 스승과 검을 맞댄다는 고양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고 있는 것일까

 

신기하다. 정말 이상하게도 오늘 이 순간 만큼은

전혀 나쁜 기분이 아니였다

오히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기쁨이였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보라색 빛이 빨려 들어가 듯, 리처드 할아범의 옆구리로 궤도를 그렸고

흑검은 당연하듯이 나의 검을 받아들였다

아까부터, 일절의 변화가 없는 그 광경

그러나 지금 몇 번이가, 반복한 끝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흔들리는 것을 몰랐던 흑검이, 방금 살짝 흔들렸다

 

그대로 밀어넣어버리는 편은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몇 차례 검을 겹친다면, 이 경직된 공방을

어느 한쪽으로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직감이 내게 있었다

 

귓전을 벌벌 떨게 할 정도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대장님을 도와라, 활은 쏘지 마라!

검 가진 자는 휘두르고, 창 든 자는 관통하라!"

 

적군 호위대가 거의 다가와 있었다

더 이상 리처드 할아범에게 시간을 벌다간

나는 그 호위대 전원에게 둘러싸여

육신을 무참히 도려내는 미래를 택하게 될 것이다

 

서로 물어뜯고 있는 검을 떼고

어깨를 숨을 쉬며 입술을 흔들었다

오른팔에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있었고

자세히 보면, 한 가닥의 열상이 있었다

분명, 어느샌가 할아범에게 베어 있었던 거 겠지

 

"어? 저건 할아버지의 여자야? 꽤 좋은데?"

 

호위대가 도착할 때까지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얼굴에 묻어 있던 쇳조각을 손으로 제거하면서

호위대를 인솔하는 장성한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보야, 손녀라고 할 수 있는 나이야

게다가 저 여자는 너무 딱딱해

어쩌면, 조금만 부드러웟으면 나았을 텐데"

 

할아범은 가벼운 어조로 말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검은 검을 한 손으로 든 채,

네 여자 쪽이 좋은 여자로 보이는구나, 하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눈썹을 올리고 눈꺼풀을 깜박이며

도대체 누구? 하며 눈을 부릅뜨니

할아범의 시선이 바로 내 옆을 가리키고 있었다

 

"루기스, 복병의 목은 모두 베었다

더 이상의 적은 없어보이니, 일단 물러나도록 하자"

 

카리아는 은발에 핏빛을 묻혀가며 말했다

손으로 입가의 피을 닦는 모습은

어딘가 이상한 매력마저 풍기고 있었다

 

카리아의 말에 할아범이 웃으면서 고개를 쓰다듬었다

 

복명, 특히 궁병을 키우는 데는 엄청난 돈과 시간이 걸린다

단지 명령대로 돌격을 반복하는 병사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되고

무엇보다 진지하게 활을 쏴야 하는 것이였다

 

솔직히 말해 안타깝게도 문장교에는 복병으로 쓸 만한 궁병은 없었다

겨우 가자리아로부터의 원군에 조금이나마 활을 사용할 수 잇는

병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 정도이지만, 그대로 운용하기엔 아직 어려웠다

만약 가능하다면, 리처드 할아범처럼 복병으로 숨어 있게 할테지만...

 

카리아의 손을 잡아당겨, 내 뒤에 타게 한 다음

손으로 가볍게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 얼마 안되는 잡담은 정말 즐거운 시간이였지만

그것도 이젠 끝인 것 같다

말굽 소리가 귀청을 찢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이제 이런 시간이 나와 리처드 할아범 사이에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조금 시야가 흐릿해지는 듯 햇다

 

"그럼 할아범, 전쟁터에서 만날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으라구"

 

나의 마지막 말에, 리처드 할아범은

볼을 무너뜨리면서 호탕하게 입을 열었다

얼굴에 새겨진 주름과 커다란 상처가 일그러졌다

 

"루기스, 너야말로 죽지 마라

너의 마지막은 내가 몸소 무너뜨려 줄테니"

 

할아범의 말에, 내 뒤의 카리아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리처드 퍼밀리스 인가?

묻고 싶은 말이 몇가지 잇었는데... 그렇지"

 

카리아는 할아범을 향해 말하기 보단

오히려, 나를 향해서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듯 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장난이라도 치려는 고양이와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의 여벽이 나쁜 건

스승에게 물려받은 것 같단 말이지

민폐도 정도가 있다고"

 

그렇게 입술을 치켜올리는 카리아에게

할아범은 정직한 웃음소리로 목이 터져라 웃었다

 

그리고 한바탕 웃던 할아범은 돌아서서는

나에게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나도 작아서

나의 귀를 살짝 친 후, 바람에 흔들려서 사라져 버렸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