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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11화 - 달빛 아래의 맹세 - 본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完)/제8장 악덕 왕국 편

바라건대 이 손에 행복을 제211화 - 달빛 아래의 맹세 -

개성공단 2020. 4. 29. 04:17

 

"당신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미워한 적이 있나요?"

 

성녀 마티아의 짜낸 듯한 목소리에

나는 순간적으로 뭐하고 대답해야 할지, 당황해하고 말았다

 

마티아는 도대체 나에게 어떤 말을 원하는 걸까

애초에 그녀가 감정을 수반한 말을 한다는 자체가 드문 일이다

마티아는 평소 계산적으로 행동하며 말을 하지,

장난을 치는 것 이외엔 저렇게 진지하게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였다

 

그게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마티아는 고개를 숙인 채, 마치 소녀처럼 목소리를 떨며

가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요, 사람 사는데 증오든 사랑이든 있을 때가 있죠"

 

나는 의자에 깊이 앉아,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내 눈 속에 뭔가 타오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머리 속에 몇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말을 둘러대면, 증오를 가슴에 품은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미 나 이외에는 모르는 일인 동시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일찍이 품었던 감정...

 

그렇기에 말을 함부로 해서 속일 수는 없었고

동시에, 그것을 외면하고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여하튼 그 감정은 틀림없이 과거 이 몸을 움직였던 근원 그 자체니까...

 

"부끄럽지만, 저에게도 있습니다 혐오라든지 증오라든지 말입니다"

 

성녀에게는 그런 감정을 따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일지도 모른다

문장교의 성녀는 지식과 이치를 상징하는 존재이기에

감정의 고조라는 것은 꽤 먼 곳에 있을 것이다

 

누구든 아무리 눌러도 한 두번은 증오와 분노라는 것을

그 가슴속에 떠올릴 테였지만

마티아는 땅을 기어가는 음색으로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라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새 떠올라 버리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이 요즘 부쩍 커져버려셔, 수습이 안된 것 같군요"

 

나는 마티아가 내뱉은 말에, 

저절로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지켜올리고 있었다

마티아는 아직도 고개를 들려하지 않았다

 

나의 손을 잡는 마티아의 양손에 조금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대성교인가"

 

툭, 천막 속에 찾아온 정적에 던져 넣듯이 하며 말했다

마티아의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한숨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난도 모르게 내 입술을 세게 깨물고 있었다

 

그런가, 그럴 것이다

왜 지금까지 눈치를 못햇던 건가

순간 나의 이마를 조이고 싶어졌다

 

대성교는 문장교도들에게 최악의 원수다

오랜 기간 문장교는 대성교에 의해 토지를 빼앗기고

교의를 폄훼당하고, 그렇게 침을 맞아 왔었다

 

어디에 이르러도 박해는 존재했기에

문장교에 있어서 돌 맞는 일은 일상에서 조차 있었을 것이다

 

나의 양부모인 나인즈씨도 그래서 그랬군

문장교도인 것을 숨겼던 것도

고아원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 였던 거야

문장교라고 당당하게 말해버렸다간

오래오래 살기엔 글러먹게 생겼으니 말이야

 

문장교의 성녀로 불리는 마티아가 왜 일찍이

지하 신전 안에 숨어 있을 수 밖에 없던 이유도

분명, 갈루아마리아의 습격을 계획하기 위한 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 오랜 세월에 걸쳐, 고뇌를 자신에게 강요한 상대가 지금 눈 앞에 있다

명확한 적이, 창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장소에 있는 것이다

비록 성녀인 마티아라도, 성녀이기에

그 가슴에 적지 않을 감정을 품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 전장은 갈루아마리아나 가자리아 때와는 전혀 의미가 다르다

규모도 그렇지만, 지금 적대하여 자웅을 결정하려는 상대는

도시도, 병사도 아닌, 틀림없는 대성교 그 자체였다

 

이 당연한 걸 지금 알아채버리다니...

 

마티아는 내 손을 움켜쥔 채, 띄엄띄엄 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감정을 수반한 채

억지로 입에서 흘려내보내고 있는 그런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농촌에서 문장교도 인걸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요?

남자는 농노로서 쉴 새 없이 일하고, 매일 곤봉으로 맞게 됩니다

여자는 그야말로 쓸모 없게 될 때까지, 노리개로 이용 당합니다"

 

담담한 말이였고, 겁먹은 듯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정말로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마티아의 모습...

 

"심할 때는 가축 그 자체로도 취급 받기도 합니다

조롱당하고, 모멸당하고, 신앙 마저 짓밟히는..."

 

마티아는 잘게 몸과 목소리를 떨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쉴새없이 말을 이을려고 했다

마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뭔가 의무감에 사로잡힌 것 같기조차 했다

 

"제가 성녀로서, 그들을 해방시켰을 땐

이제 그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사람이 아니였다... 도대체 그게 뭘 의미하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난 마티아에게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오열하듯 말을 내뱉는

그녀에게 내가 무슨 말을 걸 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녀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참아왔을 것이다

결코 표정에 나타내지 않으며,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 원념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을 가슴 깊은 곳에서

계속 죽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 조금 무너져 버린 것이다

원수를 눈으로 보고, 날뛰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것...

 

마티아는 더 이상 말을 토할 수 없게 되었는지

문장교에 관여하면서도, 문장교가 아닌 내 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안합니다, 추태를 보여서...

억누르고는 있었습니다만... 이것도 오늘로 마무리 짓겠어요"

 

마티아는 다시 가면을 쓰려는 건가

 

마티아라는 인간은 

언제까지나 땅에 엎드려 있을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이 아니다

나처럼 바보같은 생각을 계속 떠올리는 인간과는 다른 것이였다

 

마티아가 내 손을 잡는 힘을 조금 풀었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천막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역시 나 같은 인간에게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았지만

 

"마티아"

 

나는 마티아의 멀어지려던 두 손을

이번엔 내 두 손으로 맞잡았다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동료가 고개를 숙이고 오열을 흘리고 있을 때

두 손을 맞잡는 것 쯤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나의 스승님이 말씀하셨어

너는 자기 때문에 남이 죽든 살든

아무렇지도 않는, 그런 악랄한 인간이라고..."

 

전혀,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갈루아마리아의 빈민굴에서 그들을 이용하려 했고

가자리아에 있어서는 엘디스를 끌어들여, 몇 명의 희생을 강요했다

 

이제와서 정의로운 사람이라느니, 선량한 체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악랄한 자든 혹독한 자이든. 그게 그나마 나을 것이다

 

"뭐, 정말 대성교의 말대로 나는 악랄한 자에 불과할지도 몰라 ㅎㅎ"

 

농담을 지껄여도

여전히 그녀는 겁먹은 듯 떨고 있었다

 

나는 마티아의 두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도 여전히 네가 이 몸에 신임을 갖다 준다면

나는 대신에 이 목숨을 네게 맡기고, 영웅으로서 검을 휘두르겠어"

 

마티아는 순간 어리버리하게 눈을 깜빡이며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또한 내가 한 번 본 적이 없는 아주 예쁜 표정이였다

 

"루기스,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마티아는 여전히 어딘지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손이 강하게 뒤집혀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당신의 소원이라면,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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